경북 의성 구봉산에 있는 누각 문소루(聞韶樓)다.
경북 의성의 중심지인 의성읍은
구봉산의 아홉 봉우리가 휘돌아 감싸고 있다.
구봉산은 해발 211m로
예부터 읍성을 방어하는 요새(要塞)다..
의성은 남대천 육곡수가 흐르고 있다.
남대천과 구봉산에 얽힌 전설이다.
옛날에 봉우리가 하나뿐인 기다란 산이었다.
남대천에서 어느 절세미인인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냇물 가운 데 비친 산봉우리가 뱀처럼 꾸물꾸물 움직여 기어 가는걸 보고
'에구머니!'하고 소리치면서 바라보니
웬일인지 꿈틀 거리던 봉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뱀의 움직이는 등과 같이 봉우리가 아홉개(九峰)생겼다.
이 산이 바로 우리 의성을 진호하는 영맥이다.
문소루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고
여기에 김지대의 시(詩)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 김(金)학사 지대(之岱)가
일찍이 경상도 안찰사로 있을 때
문소루에 대해 읊기를
"문소의 공관 깊숙한 후원에는/백척높은 누각이 서서 있구나
/십리의 향기바람 주렴은 걷혔는데/달 아래 피리소리 아련하게 들리더라/
연기서린 버들가지 가늘게 이어 있고/비갠 뒤 산빛을 프른 빛 듣는 돗다/
오랑케 무찌르려 달리던 무인이/안찰사로 와서보니 조심되기 그지없다"
지대(之岱)의 시(詩)는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시를 새겨 둔 현판을 잃었다.
의성(義城)의 옛 이름은 문소(聞韶)다.
신라 경덕왕16년(757)부터 의성군을 문소(聞韶)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려 태조 12년 서기929년 후백제 견훤이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의성부를 공격하였다.
이때 김홍술(金洪術) 장군이 이에 맞서 힘껏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태조는 김홍술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문소를
"의(義)로운 성(城)" 곧 의성(義城)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의성읍의 중심도로도 김홍술장군의 이름을 따 홍술로 부른다.
문소루는 6.25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당시에 고려시대의 문신인 상촌 김자수(金子粹),
포은 정몽주(鄭夢周,1339-1392) 가 남긴 시판과
문소루 중건기문 등도 함께 불탔다 한다.
그 후 1981년 중건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1983년 9월 옛 모습을 되살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2층 문루로 복원되었다.
원래의 터는 읍내 객사의 북쪽, 의성관아 뒤편 자리였으나,
현재의 문소루는 구봉산 제9봉에 복원되어
이 고을을 오가는 길손을 맞이하고 떠나 보내고 있다.
의성은 거대한 호수였다.
시루떡을 잘라서 쌓아놓은 듯한 크고 작은 퇴적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퇴적층은 의성지방 일대가 거대한 호수였던 지질시대의 흔적이다.
의성군 일대 여러 곳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도 그 시대의 산물이다.
퇴적암이 생성될 때 철분이 많이 들어간 것같다.바위가 붉은 색이다.
붉은 단(丹)을 쓰는 단촌 단강 등 지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