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배운것이 참 잘한 일 같습니다.
문제가 있어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
팬티와 런닝만 걸치고 뛰어나가면
한시간만 뛰어 다니면 해결책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여행이람시고 대도시의 이름난 건물들을 좇아 다니는데
그것보다는
들을 뛰고 이름은 모르지만 소박한 공원을 여유롭게 구경하는 것이
한결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게다가
뛰고 난 다음에 맥주 한 캔은
모든 걱정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킵니다.
10년전의 두번째 마라톤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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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선.
조금이라도 시간에 차질이 생길까봐 노심초사, 안절부절못하여 차갈아 타고, 물먹고, 스니커즈 먹고, 워밍업하고, 소변보고, 물먹고.
기차에서 만난 분이 생각난다. 바나나 한 줄, 스포츠 드링크 한 병 들고 휘파람 불며 룰루랄라. 나는 마라톤을 무슨 전투처럼 하는데 그는 즐기는 것 같다. “relax". 즐겨아 되는데...,
펑! 펑! 펑! 출발을 알리는 세발의 대포소리가 상념으로부터 나를 깨운다. 그래 출발이다.
이곳 1928년 9회 올림픽이 열렸던 암스테르담의 올림픽스타디움에서, 16세기 한때 세계를 제패한, 법이나 이념에서 가장 자유로운,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나 네덜란드는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그리고 dutch play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가장 구두쇠 나라 네덜란드, 그리고 그 심장 암스테르담에서 생의 멋진 추억을 만들자.
줄어있던 용수철이 늘어나듯이 트랙을 따라 대기하던 달림이들이 움직인다. 선두의 선수들부터 출발선 밖으로 튀겨 나간다. 드디어 찌- 하는 전기음이 들리는 스피드칩을 감지하는 출발선을 통과.
그래 시작이다, 어디 한번 해보자. 트랙을 따라 한발 한발 내 디뎠다. 처음 5 km에서는 절대 속도를 내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발을 바닥에 스치듯이 가볍게 한발 한발 내디뎠다. 트랙을 돌고 운동장을 나오는데 악대의 연주소리, 관중들의 응원소리,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이다. 선수들도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이름을 부르고, 그러나 난 묵묵히 한발 한발 나아갔다. 지금은 경기에 집중할 때이지 감정의 사치를 부릴 때가 아니다. 나중에 30km 지나 힘이 있으면 응원하는 사람에게 손도 흔들어 주고, 폼도 재고, 마라톤의 기분을 만끽하자.
운동장을 빠져나와 이제 네 맘대로 뛸 수 있는 앞 뒤 공간이 생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렸다. 앞 뒤 옆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아주 낮은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조금을 가다보니 내 앞에서 뛰는 달림이가 고정되어 있다. 상하의를 스판 소재의 운동복을 입고 몸매를 자신있게 들어낸 젊은 아가씨다. 화려한 복장과 자신감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힙만 조금 작다면 더 멋있을 텐데. 옛날 어른들이 보시면 얘는 잘 놓겠다 하시겠다.
1km 표지판과 시계가 눈에 들어 왔다. 6분 10초. 아니 이러면 않되는데. 지금 어느 정도 속도로 뛰고 있는데 넉넉하게 잡은 예상시간을 20초나 초과하다니. 불안한 마음이 일기 시작한다. 조금 더 속도를 내어야 겠다.
암스텔담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이나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다. 우리나라로 보면 서울, 부산, 대구에는 갖다 대지도 못하고 수원, 마산 정도나 될까? 인구 70만 정도의 도시이다. 이 도시는 tram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는 도시인데 지금 달리고 있는 stationwag도 중앙으로 2차선은 트램라인, 철도선 이다. 달리는데 이 철도선이 신경이 쓰이길래 바깥차선으로 이동하여 묵묵히 달렸다.
노랫소리가 들려 보니 그룹사운드 같다. 남자들이 드럼과 기타로 반주를 하고 여자가 신나고 즐겁게 노래한다. 동네아줌마 몇 명이 거기에 맞추어 어깨춤을 추며 같이 즐기고 있는데 전국노래자랑에 나오는 신명을 참을 수 없어 춤추는 우리 할머니들과 같은 인상이다. 그들은 달림이들을 응원한다기 보다는 자신들의 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달리던 나도 그저 웃음이 나왔다. 참 흥이 많은 사람들이다. 구김이 없다.
4차선의 Stationweg를 돌아 Hobbenakade로 들어섰다. 전형적인 네덜란드 도심길이다. 바닥은 타일이고 왕복 2차선, 차들은 거북이 운행,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건너면 그만.
처음 네덜란드에 와서 도로바닥이 타일인 것이 무척이나 이상하였다. 우리네는 길이면 무조건 아스팔트 아니면 시멘트인데 이들은 시내길은 대부분 타일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여기 이 길들은 일, 이백년 된 길이 아니다. 수백년 된 길이고 건물들이 아닌가! 그 때는 시멘트가 있었는가 아스팔트가 있었겠는가. 이들의 도시는 이 모양으로 수백년을 서 있으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어 왔다. 그리고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갑오경장, 일본침입, 해방, 6.25, 산업화와 같이 자고 일어나면 환경이 바뀌는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살던 건물에서 자식이 그리고 그 자식이 살고 있다. 안정되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사람들이다.
2 km 시계판이 보인다. 내 출발시간이 늦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예상보다 over다(마라톤시에는 두 가지의 기록이 있다. gun time과 net time이 있는 데 출발 대포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시간이 gun time이고 자기가 출발점을 통과한 시간부터 계산되는 시간이 net time이다. 달리면서 확인하는 시간은 gun time이나 자기기록은 당연히 net time으로 결정된다). ‘아니,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오버페이스를 막기 위하여 처음 2 km는 km 당 20초씩 시간을 더 주었는데도 시간이 오버되면 어쩌란 말인가? 할 수 없다, 계획에 충실할 수밖에, 예상시간에 맞추어 달려야 한다.’ 속도를 조금 더 붙였다.
3 km를 지나 국립박물관 아래를 지난다. 암스테르담 중앙역과 흡사한 신고전주의 고딕건물이다. 박물관건물 중앙으로 길이 나 있는데 그 아래도 뛰자니 기분이 묘하다. 일부 달림이들은 그 감격을 참지 못하여 고함을 지른다.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국립박물관을 통과하고 곧 Vondel Park에 들어섰다. 정문의 장식이 인상적이다. 공원내에 큰 호수가 있고 물새들이 한가롭게 노닐며 얘기를 데리고 온 부부가 호숫가에 앉아있다.
5km, 29:30(NT).
예상 시간은 28:40 인데 속도를 더 내어야 겠다. 속도를 조금 더 내어 달리자니 40km 푯말이 보인다(이번 마라톤코스는 일부 구간이 중복되는데 40km 때에도 이 길을 지나도록 되어 있다.). 약 3 시간 후, 여기를 지날 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Vondel park를 벗어날 때쯤 첫 물공급소가 나타났다. 왈트를 외치며 봉사자들이 길 중앙까지 나와 컵을 권했다. 처음에는 왈트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알 수 없었으나 15km쯤 가서야 그것이 물, water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고유의 네덜란드어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 나라 말에 대하여 프랑스 못지 않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어는 일반적으로 독어와 유사(그네들은 그들말이 독어와는 아주 다르다고 하고 자기들말이 독어와 유사하다면 기분 나뻐 한다고 하나 일반적으로 독어와 유사한 것으로 여긴다.)한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 네덜란드 내와 벨기에에서 공식언어로 사용되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수리남에서는 비공식 언어지만 많이 사용되며 네덜란드의 많은 영향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등에서는 그들의 단어가 많이 남아 있다.
일본인들은 Europe과 Belgium을 ‘요로파’와 ‘벨기에’로 발음하는데 이는 각 단어에 대한 네덜란드 말이다. 우리가 영어로는 벨지움이라고 불리는 나라를 현재 벨기에라고 부르는 것은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영향 때문이니 역시 일제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Moscow 역시 같은 이유로 모스크바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Belgium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 일부 식자들은 벨지움으로 부르는 것 같다. 이는 영어식 발음이다. 우리가 국명이나 지명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유럽을 가서 느낀 것이지만 유럽사람들은 영어를 영국말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17세기 이전에는 게르만족 등의 유럽 본토의 나라에게 자주 얻어 터지는 보잘 것 없는 나라였다가 17세기 후반(?)부터 힘을 쓰기 시작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의 패권자였다. 이 기간중에 미국과 캐나다라는 나라가 건설되었고 잡종인 미국은 어떤 말을 공식언어로 쓸까 고심하다가 독일어를 힘겹게 물리치고 영국어를 공식언어로 선택하였다(그전에 건설된 남미 국가들은 당대의 패권자였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한다). 그런데 20세기 중반부터는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되어 영국어가 더욱 날개를 단 셈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중세에는 유럽의 패권자였고 영국을 그들의 경쟁자 정도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은 찬란한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긍지로 미국을 아주 상놈나라 취급하고 있으니 영어에 대하여 좋은 점수를 주겠는가!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그럼 Belgium이라는 나라를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영어식으로 벨지움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답일까. 아닐 것 같다. 아마 한국의 맞춤법통일안(?)에는 그나라 사람이 부르는 국명이 정답인 것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면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나라를 뭐라고 부르는지? 그러나 하지만, 그 나라 사람의 발음에 충실하게 우리글로 옮길 수 있을까? 한편으로 보면 벨기에가 정답이 될 듯도 하다. 일제 잔재든 뭐든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많이 사용되니까? 일본은 영어로 japan이고 자기네는 니폰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 나라를 니폰이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느냐. 이 니폰의 한문을 한글로 발음한 일본이라고 하지 않는가. 뭔가 확실한 기준이 필요할 것 같다. 아니 혹 잘 정리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철저히 교육을 시켜야 할 것 같다. 이 문제를 닫기 전에 allergy라는 말은 뭐라고 말해야 되나? 의학이 먼저 발달한 독일에서는 알레르기라고 발음하는 것 같고 뒤쫓아간 미국은 알러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린 뭐라고 발음을 해야 할지?
반드시 물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첫 테이블의 물을 경쟁적으로 빼앗다시피 하여 받았으며 뛰면서 물을 먹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애써 다 마셨다. 다시 올림픽스타디움 앞을 지나고 Stadionweg. Stadionweg가 끝날 쯤에 옛길을 버리고 Bethoven str.로 들어섰다. 길도 넓고 아름드리 가로수도 멋있다. 초조한 마음으로 속력을 붙였다. 한사람씩 한사람씩 앞에 있는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World Trade Center를 지나고,
10km, 56:00 (NT).
겨우 예상시간을 맞추어 왔으나 속도를 너무 내는 것은 아닌지 ---
- 계속 (?) -
첫댓글 마라톤 후기인줄 알았더니 역사 공부에 외래어 바로 알기 공부네요.. 그 동안 정확히 잘 몰랐던 것들을 덕분에 잘 알게 됐네요.. 네덜란드 생활은 재미있나요?.. 건강 조심하시고 업무수행도 잘 하시고 오시길...
"글은 정신의 지문"이라 하더니 과연 자네를 본 양 반갑기 그지 없네
주끼저네 꼭 암스텔담 마라톤은 함께 뛰고 싶다는 소망 항개 갈무리 하고...
언제 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