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다음카페 <함안조가 감찰공파 하림유사>입니다. 이 글을 주변의 함안조가들과 관계자들에게 널리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관정 조성래 합장
오늘 아침에 광개토왕비문의 한문원문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조소앙 선생이 광개토비문을 판독하여, 1932년에 <한국문원(韓國文苑)>이라는 책을 써서 출판했는데, 그 책에 광개토왕비문의 원문을 판독, 해설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애국, 애족의 조소앙 선생이었다. 아마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광개토비문에 관심을 가지고, 판독을 한 게 아닌가 한다. 주로 사대주의만 했던 조선시대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조소앙 선생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기 위해 역사공부를 많이 했고, 그는 자신의 필적 끝에 "아라가야 후인(阿羅伽耶後人)"이라는 필명을 즐겨 썼다.
이 비석은 고구려가 멸망한 뒤 중국 영토가 된 지역에 있었고, 땅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사람 중에서 광개토대왕비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이 비석은 414년에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부친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석의 높이가 6.4m가 될 정도로 웅대한 비석이고, 그 글씨도 동양 최고의 예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도 그것의 존재를 알지 못 했다. 이 비석은 청나라 장군이자 정치가었던 좌종당(左宗棠)이 1882년에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여, 그것이 광개토대왕의 비석임을 세상에 알렸다. 1907년에 프랑스의 에두아르 샤반느가 이 비문을 탁본해서 발표함으로써 이 비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일본군의 한 장교가 1880대 말(?)에 이 비석의 존재를 알고, 그 비문을 탁본하여, 일본으로 보냈고, 일본은 이 비문을 연구했고, 비석에 접근하여, 비문의 내용을 변조함으로써 역사왜곡을 시도했다. 일본은 이 역사왜곡을 통해 삼국시대와 그 이전에도 일본이 한반도의 남부지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설을 주장했다.
다음은 광개토대왕 비문의 탁본의 일부이다. 글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