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6.15. 부암동 환기미술관을 찾아간다. 홈페이지 안내를 따라 경복궁역에서 하차, 버스로 갈아타고 부암동주민센터에서 내린다. 북악스카이웨이 길로 접어들자 등산을 하는 무리들이 있어 따라간다. 가다가 가게 앞 물청소 하는 젊은이가 있어 길을 물어 다시 찾아간다. 한 나이지긋한 노년의 남자 분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여 고맙게도 그를 따라 오르막 골목길을 들어서자 바로 내리막 골목길, 거기에 동양방앗간이 보이고 그 앞을 지나자 바로 가정집같은 환기미술관 안에 들어선다. 1992년 설립된 환기미술관을 1995년도에 와본 이후 오래만에 찾아오니 옛 생각이 난다. 코로나19관계로 해설자 안내가 없어 내가 좀 아쉬워 하니까 관리인이 작은 가이드북 하나를 찾아준다. 김환기의 시와 드로잉·유화 등 200여점으로 구성된 전시 '樹話詩學'이 서울 환기미술관에서 10월 11일까지 열린다. 경매 최고가 기록으로만 호명되는 김환기의 조형 세계를 시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라 한다. 사진 촬영이 완전 허락되지 않는다. 전시실 초입에 커다란 전면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관람객 시선을 압도한다. 알고보니 올해가 이 작품으로 김환기가 한국화단에 새로운 추상미술을 제시하고 인정받은 지 50 주년이 되는 해라네. 전시제목 樹話詩學은 라나의 주제어를 통한 시각으로 김환기 작품세계를 살펴보려는 의도라 한다. 그래서 "경매 최고가는 그만, 화가 아닌 시인 김환기를 만난다."라는 말이 나왔구나 싶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캔버스에 유채, 236cm×172cm, 1970 이 작품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기로 한다. 김환기의 1970년 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한국일보가 그해 제정한 한국미술대상 제1회 대상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들 같기도 하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점들이 한 곳에 뭉쳐 있지 않고, 하얀 사각형과 푸른색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말이 더욱 깊게 와 닿는다. 각각의 점들이 서로 만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각 점들이 어떤 리듬감을 형성하고 전체적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면처럼 보이기에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이 작품은 작가가 철저히 계산한 후에 기계적으로 점을 찍은 것이 아니다. 점을 하나 찍고 푸른 색으로 그 점들을 감싸며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점들이 완벽한 수직, 수평을 이루지 않으며, 색이 번지기도 하고 푸른 빛도 점점 달라진다. 2미터가 넘는 캔버스에 하나하나 붓 터치를 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인데, 점을 하나하나 찍으며 작가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을지 느껴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느꼈던 감동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문학적인 것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 없이 <무제>였다면? 만약 내가 이 작품을 김광섭의 시와 함께 보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작품을 실제로 본 적도 없기에 작품의 이미지만 보고서는 이만큼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 김환기 미술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의 작품 그 자체가 주는 감동을 알게 되었다. 문학적 해석이 없더라도 그가 작품에 쓴 점, 선, 면, 색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며, 거기서 오는 감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김환기의 일생을 알 필요가 있다.
그는 1913년 전라남도에서 태어났다. 1933년부터 일본대학에서 미술을 배웠는데, 그때 서양화를 접하고 추상미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37년에 귀국한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1년 정도 체류하며 전국의 피난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이후 1956년부터 1959년까지 3년 동안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했으며 1964년부터는 부인 김향안과 함께 뉴욕에서 지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1974년에 뉴욕에서 사망했다.
<한기봉글 인용했음> 樹話는 김환기의 애정 깊은 필명. 그는 창조적 사고를 조형으로 표현하는 열정만큼이나 간결 명확하고 맛깔나는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 시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한다. 남겨진 일기와 편지, 수필들은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전시장 곳곳에 그의 글 속애서 뽑은 글들이 적혀 있다. 점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 가지 생각하며 찍어내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주는 것일까, 그렇다 내 점의 세계... 나는 새로운 창을 하나 열어주었는데 거기 새로운 세계는 안 보이는가 보다, 오호라... 선 비 내리는 아침이면 출근 시간 전에 기여코 나는 전차를 탄다. 출근시간 전이어야 전차 바닥이 청결하고 또 승객 수가 적어 내가 꾀하려는 작품을 제작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짚고 앉은 우산에선 빗물이 흐르던 정거장까지의 거리 여하에 따라서 '가늘게 긁게, 짧게 길게, 강하게 약하게' 리듬있는 속력을 가지고 물이 흐른다. 선이 가고 오고, 멈추고 흐르고, 곧게 혹은 휘어지게, 서로 뭉치었다 헤어졌다. 인간의 무연한 이 합작에서 놀라운 구성미를 알았고 회화정신으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바라이어티한 음악까지 감득한다. 1940.5. <종달새 노래할 때> <론도> 그림에 부치는 詩 이조 항아리가 둥그렇게 앉아 있다. 굽이 좁다 못해 둥실 떠 있다.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는 한 쌍이다. 똑 달이 알을 낳듯이 사랑의 손에서 쑥 빠진 항아리다. 김환기 新天地 1949.2. 나는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내가 그리는 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훤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江山. . . 전시는 1부 함축성, 2부 음악성, 3부 형상성 으로 분류되어 전시되고 있다. 사람이 별로 없어 아주 조용하게 보고 나와서 카페에 앉아 김환기 공부를 좀 하며 한 시간 가량 서가의 책들을 보다가 나오다.
<매화와 항아리>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그의 일생에 따라 작품세계도 동경시대, 파리시대, 뉴욕시대 등으로 나뉜다. 뉴욕시대에는 그가 주로 표현했던 소재들이 점, 선, 면으로 분해되어 더욱 추상적인 작품들이 나타난다. 특히, 1970년 이후에는 작은 점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전면회화가 등장한다. 점들이 반복되며 무한히 확장되는 듯 하기도 하고, 전체가 리듬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하나의 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월> <사슴> <봄의 소리> <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뉴욕 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다. 김환기 예술의 흐름을 알고 작품을 다시 보면 점 하나가 그냥 점이 아니며, 푸른색도 그냥 푸른색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일생과 고국에 대한 그리운 감정이 녹아있고, 지금까지 이어온 수많은 예술적 실험들이 모두 함축된 것이다.
김환기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그에게 점 하나를 찍는 것은 단순히 기계적 행위의 반복이 아니라 깊은 사유와 수행의 결과인 것이다. 한기봉의 글을 더 인용한다.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이상하게 가슴에 사무치는 구절이 있다. 그게 시구(詩句)거나, 노랫말이거나 영화 대사거나 혹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나 먼저 가신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거나 누구나 한두 개쯤은 가슴에 안고 산다. 그건 오랫동안 가슴에 용해돼 머리보다 눈자위가 먼저 반응하는 말이다. ‘사무치다’라는 단어조차 사무친다.내게 오래 사무쳤던 말을 얼마전에 다시 마주쳤다. 늦가을이 막 건너가고 있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다. 거기서 열리고 있는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 전시에서 그 그림과 제목으로 삼은 그 문장을 봤다.‘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의 이 그림을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한국일보 구 사옥 스카이라운지 복도에서 1982년에 처음 봤다. 짓푸른 작은 네모 점들이 화면 가득 점점이 박힌 그림도 그림이거니와 그림 옆에 붙은 제목이 강렬하게 가슴에 파고들어 평생 잊히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1970년에 제정한 한국미술대상 제1회 대상 작품이었다.
그림 제목이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1970년 환기의 친구 김광섭은 뉴욕에서 외롭게 그림을 그리던 환기에게 연하장을 보내며 자신의 시가 실린 잡지를 보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환기는 이 시를 읽고 붓을 들었다. 고향 안좌도의 바다, 그리운 고국 친구들을 하나 하나 검푸른 점으로 찍어나갔다. 그리움 하나 점 하나, 슬픔 하나 점 하나, 그리움이 깊을수록 붓도 점도 오래 머물러 번져나갔다. 주례를 서준 화가 고희동, 사회를 본 시인 정지용, 자신이 시집 표지를 그려준 노천명, 그림을 팔아준 최순우, 피란 시절 부산에서 자주 술잔을 나누던 이중섭, 장욱진, 조병화….
환기의 점화(點畫) 시리즈는 이렇게 태어났다. ‘어디서 무엇이…’와 조우한 다음날 그의 다른 점화 ‘우주’가 한국 작가로는 최고가로 경매됐다는 뉴스를 봤다. 환기미술관에 갔다. 마침 환기재단 40주년 특별전 ‘Whanki in New York-김환기 일기를 통해 본 작가의 삶과 예술’이 전시 중이었다(12월 31일까지).
“새벽부터 비가 왔나 보다. 죽을 날도 가까운데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꿈은 무한하고 세월은 모자라다”(1974. 6. 16, 타계 39일 전)
“내가 그리는 선이 하늘까지 갔을까, 내가 찍은 점이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무지개보다 환해지는 우리 강산”(1971. 1. 27)
환기미술관은 부인 김향안이 1992년 종로구 부암동에 세웠다. 김향안은 시인 이상과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사별한 후 환기와 사랑에 빠져 파리와 뉴욕을 따라다니며 평생을 뒷바라지했다. 아이 셋이 딸린 이혼남 환기와 재혼하며 환기의 성과 아호 ‘향안’을 받아 본명 ‘변동림’을 버렸다.
환기는 뉴욕에서 병이 깊어져 1974년 여름 수술을 받은 다음날 병원 침대에서 떨어졌다. 키가 커서 침상의 보호장치를 떼어놓은 게 화근이었다. 뇌사에 빠진 환기는 12일 후 즐겨 산보하던 뉴욕의 한 동네 묘역에 묻혔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물음은 그렇게 미완이 됐다. 향안은 30년 만인 2004년 남편 곁으로 갔다.
환기는 의료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병이 깊어도 병원을 가지 못했다. 그의 그림 한 점이 132억원에 팔렸다. 글을 쓰는 지금 서울에는 첫눈이 점점이 내리고 있다.
<우주 05-IV 71#200 >
이 작품은 독립된 그림 두 점이 완벽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할 수 있도록 구성해 개념적·조형적으로 완벽한 우주를 그려냈다. 화면의 무수한 점이 원을 그리며 아래로 진동하듯 확장한다. 김 화백 작품 중 가장 큰 추상화이면서 유일한 두폭화로 알려져 있다.
푸른색 전면점화 ‘우주’는 김환기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작가의 말년 뉴욕 시대인 1971년에 완성됐다.
김환기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폭화이기도 하다. 독립된 그림 두 점으로 구성됐고, 전체 크기는 254×254㎝다.
이 작품은 지난해 11월 23일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800만홍콩달러(당시 약 131억8750만원)에 낙찰됐다. 구매 수수료를 포함하면 1억195만5000홍콩달러(약 161억7414만원)에 이른다.
한국 미술품이 경매에서 100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된 경우는 ‘우주’가 유일하다. 낙찰자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해외 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내에서 다시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우주’는 김환기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의학박사 김마태(92)씨 부부가 작가에게 직접 구매해 40년 넘게 소장하다가 경매에 처음 내놓았다. 경매 이전에는 환기미술관에서 대여해 전시했던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 앞서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환기미술관 설립자 김향안의 메시지 환기미술관은 전통의시기를 합치면 20년이 충분히 걸린 거다. 미술관의 문을 열면서 이제부터 익어가야할 거라는 생각으루하며 다양하누푸로젝트르루구상한다. 무엇으루어떻게 할건가는 역사와 병행할 것이며 민족과 인류의 운명에 따를 것이다. 또 오늘의 미술관은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요구하는 것이 충족되어야 한다. 시각적인 것, 음악적인 것, 그리고 시가 읊어ㅕ야 한다. 최근에 읽은 어느 비평가의 말이 생각난다. "푸르되 풍경이 아니고 파랗지만 하늘이 아니고 노랗지만 태양이 아닌 빛깔과 마티스의 종이 오림이 아닌 포름을 토왈에 유채로 그린 새로운 그림이다."라고 했다. 나도 그런 새로운 미술관을 만들고 싶고 , 만들 것이다. |
첫댓글 이제 김환기의 우주는 볼 수가 없네.
당연히 이번 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쉽고 또 아쉽다.
작품의 진가를 알고 전 세계 누군가가 잘 보존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