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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획사이시발영공에게 주다[贈贊畫使李令公時發]
예전에 도순찰사가 되어 / 昔忝都巡察
새로 금수영 열었지/ 新開錦水營
공이 찬획사에 오르니 / 公陞贊畫使
어사의 임무 마친 때였네/ 粤自繡衣行
나라에서는 정승처럼 중히 의지했고/ 國倚台衡重
사람들은 막부의 영웅이라 칭송했지 / 人稱幕府英
규모는 사마의 병법 따라 / 規模司馬法
군대를 악야의 병사로 만들었네/ 部曲岳爺兵
내직과 외직 오가며 특별한 은혜 받았고 / 出入承殊渥
빨리 승진하여 아경의 반열에 들었네/ 飛騰列亞卿
변방의 직책에 발탁되어 / 藩維膺簡擢
서북쪽에서 지휘하는 깃발 잡았지/ 西北擁麾旌
다시 기용되자 의리 위해 내달렸고/ 起廢驅馳義
위기 닥치자 감격할 만한 충정이었네 / 臨危感激情
어느덧 이십 년 지났는데 / 依然廿載後
오히려 옛 직명 띠었으니/ 猶是舊時名
여론은 문무겸전의 인재로 추천하고 / 物議推文武
민심은 부형처럼 바라보네 / 民心望父兄
장차 원수로 승진시키려고 / 方將進元帥
먼저전정을 허락하셨네 / 先已許專征
문득 믿노라 공의 왕래가 / 却信公來去
진실로 나라의 경중이 됨을/ 眞爲國重輕
감당나무 그늘에 남긴 사랑 있으니 / 棠陰有遺愛
죽마 타고 나와 환영하리/ 竹馬爲相迎
용맹스러운 군사 통솔할 때 / 統率貔兼虎
누가 계와 경을 외칠까/ 誰呼癸與庚
창을 잡았으니모름지기 명령 따라야 하고 / 執殳須用命
수확을 보려면요컨대 깊이 갈아야 하니 / 觀銍要深耕
창과 방패 난무하던 곳 / 莫使干戈地
끝내 가시나무 자라게 말라/ 終歸荊棘生
삼가 들으니 윤길보가 / 恭聞尹吉甫
북방에 성을 쌓았다지/ 設備朔方城
이길 계책을 마땅히 먼저 정해야 하니 / 勝算宜先定
요망한 기운 맑힐 수도 없다네 / 妖氛不足淸
찬 얼음 같은 절조 본래 스스로 힘쓰지만 / 寒氷元自礪
언 눈 쌓인 먼 길 부디 조심하시길 / 凍雪愼長程
용맹하지 않으면 진실로 효가 아니며/ 無勇良非孝
충성을 바침은 정성을 다함에 있지 / 輸忠在竭誠
공을 이루고 일찍 돌아와서 / 功成早旋斾
어머니 모시고 은총과 영광 받으시게 / 將母荷恩榮
유근(柳根) 서경집(西坰集)
1549년(명종 4)~ 1627년(인조 5)
조선시대 예조판서, 충청도관찰사,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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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이시발(李時發):
1569년(선조 2)~1626년(인조 4).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ㆍ후영어은(後潁漁隱), 시호는 충익(忠
翼)이다. 이 시(詩)는 1619년에 오도찬획사(五道贊畫使)로 기용되었을 때 지어 준 것이다.
찬획사는 나라에 난리가 났을 때 조정에서 파견하여 그 지방의 주장(主將)을 도와 전술(戰術)ㆍ전략(戰略) 등의 일을 계획하게 하는
군직(軍職)이다. 이시발은 1596년(선조 29)에 찬획사로 임명되어 충주에 덕주산성(德周山城)을 쌓고 조령에 방책(防柵)을 설치하
였다.《碧梧遺稿 卷8 諡狀》
[주02] 예전에 …… 열었지:
유근이 1603년(선조 36)에 충청도관찰사 겸 도순찰사(都巡察使)로 있었기에 한 말이다.
[주03] 공이 …… 때였네:
이시발이 1595년(선조 28)에 어사의 신분으로 호서 지역을 순찰하고 이듬해에 찬획사의 임무를 맡게 되었기에 한 말이다.
《碧梧遺稿 卷8 附錄 行狀》
[주04] 나라에서는 …… 의지했고:
나라에서 이시발을 크게 의지하여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는 말이다. 태형(台衡)은 정승을 가리킨다. 하늘의 삼태성(三台星)은 인간
의 정승을 맡은 별이라 하고 정승은 세상을 저울질하는 권한이 있다고 하여 정승을 태형이라고 한다.
[주05] 규모(規模)는 …… 만들었네:
이시발이 찬획사로서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는 말이다.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쓴 병
법서(兵法書)인데 흔히 병법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史記 卷64 司馬穰苴列傳》부곡(部曲)은 호강한 대족(大族)의 사병(私兵)
을 가리키기도 하고 행정구역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군대의 편제 단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악야(岳爺)는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의 명장(名將) 악비(岳飛)로, 자는 붕거(鵬擧), 시호는 무목(武穆)이다. 악비는 군졸이 병
들면 직접 약을 조제하고 군에서 죽으면 곡을 하고 남은 가족들을 돌보아 주었다. 음식은 균등하게 배분하고 모든 전략을 함께 의논
하여 병사들은 적을 만나도 동요하지 않았다. “산을 흔드는 것은 쉬워도 악비의 군대를 흔드는 것은 어렵다.”라는 칭송이 적의 입에
서 나올 정도로 정예군을 만들었다.《宋史 卷365 岳飛列傳》
[주06] 빨리 …… 들었네:
비등(飛騰)은 비황등답(飛黃騰踏)의 준말로 말이 빨리 달림을 형용하는 말인데 승진이 빠름을 비유한다. 비황은 신마(神馬)의 이름
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신마 비황은 높이 뛰어올라 내달려, 두꺼비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네.[飛黃騰踏去, 不能顧蟾蜍.]”
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古文眞寶 前集 卷1 符讀書城南》
아경(亞卿)은 조선 시대의 경(卿), 즉 판서의 다음 벼슬이라는 뜻으로 육조의 참판(參判), 한성부의 좌윤(左尹)ㆍ우윤(右尹) 등을
정경(正卿)에 상대하여 일컫던 칭호이다. 이시발은 1604년(선조37)에 36세의 나이로 형조 참판과 병조 참판에 올랐다.
《碧梧遺稿 卷8 附錄 行狀》
[주07] 변방의 …… 잡았지:
이시발은 1605년(선조 38)에 홀온(忽溫)이 동관(潼關)을 함락하여 북변(北邊)이 소란해지자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이를 진정
시키고 진보(鎭堡)와 포루(砲樓), 성곽을 수선하였다. 번유(藩維)는 나라의 울타리라는 뜻이다.《시경》〈판(板)〉에 “큰 덕을 갖
춘 사람은 나라의 울타리이며, 많은 무리는 나라의 담이다.[价人維藩, 大師維垣.]”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08] 다시 …… 내달렸고:
이시발은 1605년(선조 38) 가을에 예조와 병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는데,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했다가 양사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리고 1607년(선조 40)에 여진족(女眞族)의 침입으로 함경 감사에 다시 유임되었다.
[주09] 어느덧 …… 띠었으니:
이시발은 1596년(선조 29) 처음 찬획사가 되었는데, 23년 만인 1619년(광해군 11)에 서북 지역이 소란해지자 다시 오도 찬획사
(五道贊畫使)로 기용되었다.
[주10] 전정(專征):
정벌하는 데 필요한 작전이나 전략을 임금에게 일일이 허가 받지 않고 장수의 편의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찬획사인 이시
발에게 전권을 부여했다는 의미이다. 송(宋)나라 악비(岳飛)의〈주사선무부사찰자(奏辭宣撫副使札子)〉에 “선무의 중명으로 실
로 전정의 큰일을 맡겼습니다.[以宣撫之重名, 實寄專征之大事.]”라고 하였다.
[주11] 문득 …… 됨을:
이시발의 출처(出處)에 따라 나라의 안녕이 좌우될 정도였다는 말이다.
[주12] 감당나무 …… 환영하리:
이시발이 1605년(선조 38)에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므로 이제 찬획사로 부임해 가면 그 지역의 백성들
이 이시발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라는 말이다. 당음(棠陰)은 감당나무의 그늘이라는 뜻으로 소공(召公)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지방관
의 선정을 비유한다.《시경》〈감당(甘棠)〉에 “무성한 감당나무를 자르지 말고 휘지 말라. 소백이 머무셨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유애(遺愛)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 공손교(公孫僑)가 죽자 공자가 눈물을 흘리며 “옛날에 사랑을 남긴 분이다.[古之遺愛]”라고
칭송했던 데서 유래하여 지방관이 선정을 베푼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 내용을 기록한 비를 유애비(遺愛碑)라고도 한다.《春
秋左氏傳 昭公20年》 죽마(竹馬)는 어린아이들이 타고 노는 대나무로 만든 말이다.
후한(後漢) 때 곽급(郭伋)이 병주(幷州)에 있으면서 은혜로운 정사를 폈는데 순시를 하다가 서하(西河)의 미직(美稷)에 도착하자,
어린아이 수백 명이 어진 수령이 오는 것을 좋아하여 각자 죽마를 타고 길가에서 절을 하면서 환영한 고사가 전한다.《後漢書 卷31
郭伋列傳》
[주13] 용맹스러운 …… 외칠까:
찬획사로서 용맹스러운 군사들을 통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군량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는 말이다. 비(貔)와 호(虎)는 맹수처럼 용맹
한 군사를 비유한다. 계(癸)는 오행(五行)에서 물에 해당하고 경(庚)은 서방(西方)에 해당하여 가을에 수확하는 곡식을 상징하므로
계와 경은 군량을 의미한다.
오(吳)나라 신숙의(申叔儀)가 공손(公孫) 유산씨(有山氏)에게 양식을 구걸하자 유산씨가 “쌀은 없지만 거친 곡식은 있으니 수산에
올라 ‘경계야’라고 부르면 내가 응낙하겠소.[粱則無矣, 麤則有之, 若登首山以呼曰, 庚癸乎, 則諾.]”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 《春秋左氏傳 哀公13年》
[주14] 창을 잡았으니:
집수(執殳)는 창을 잡는다는 뜻으로 근왕병(勤王兵)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찬획사의 직책을 맡았음을 의미한다.《시경》〈백혜(伯
兮)〉에 “우리 님이 창을 잡고서, 왕의 선구가 되었도다.[伯也執殳, 爲王前驅.]”라고 하였다.
[주15] 수확을 보려면:
관질(觀銍)의 질(銍)은 질애(銍艾)의 뜻으로 수확을 의미한다.《시경》〈신공(臣工)〉에 “네 가래와 호미를 장만하라. 곧 낫으로
수확함을 보리라.[庤乃錢鎛, 奄觀銍艾.]” 하였다.
[주16] 창과 …… 말라:
전란을 겪었던 지역이 황무지로 변하지 않도록 하여 민생(民生)을 안정시키라는 말이다.《노자(老子)》제30장에 “군대가 주둔하
고 나면 가시나무가 돋아나고 대군이 지나가고 나면 흉년이 들게 마련이다.[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라고 하였
다.
[주17] 삼가 …… 쌓았다지:
이시발은 1605년(선조 38)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홀온(忽溫)을 회유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지만 뒷일을 염려하여 육진(六鎭)
과 요해처에 포루(砲樓)를 만들고 성곽을 높이는 등 방어책을 일신한 바 있는데, 이를 윤길보(尹吉甫)를 들어 말한 것이다.
윤길보는 서주(西周)의 현신(賢臣)으로 성은 혜씨(兮氏), 이름은 갑(甲), 자는 백길보(伯吉甫)이다. 윤(尹)은 관직 이름이다. 문무
를 고루 갖추어 오랑캐인 험윤(玁狁)을 정벌하고 중흥의 업적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다.《시경》〈유월(六月)〉에 “문무를 겸비
한 길보여, 만방이 모범으로 삼도다.[文武吉甫, 萬邦爲憲.]”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이시발을 가리킨다.
[주18] 용맹하지 …… 아니며:
증자(曾子)가 제자인 공명의(公明儀)에게 효에 대하여 말하기를 “행동거지를 장중하게 하지 않는 것은 효가 아니며, 임금을 섬기면
서 충성하지 않는 것은 효가 아니며, 관직에 나아가 신중하지 않은 것은 효가 아니며, 붕우 사이에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효가 아
니며, 싸움터에 나아가 용맹하지 않은 것은 효가 아니다.[居處不莊, 非孝也, 事君不忠, 非孝也, 莅官不敬, 非孝也, 朋友不信, 非
孝也, 戰陳無勇, 非孝也.]”라고 하였다.《禮記 祭義》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김문갑 이규춘 (공역) |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