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 7. 24. 15:50
■ 오얏나무와 열매(오얏).
황숙자
2006년 봄 창덕궁을 관람하면서 잊고 있던 오얏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늘까지 4년동안, 그 동안 찾아 본 오얏의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한다.
내 어릴적 오얏나무가 흔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운이 좋게 오얏나무가 마을의 보호수처럼 집집마다 두어 그루 정도는 쉽게 볼 수 있었던 이웃마을에 산 덕분에 오얏의 맛을 알고 있었다. 60여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오얏의 기억을 되살린 고궁관람은 어릴 때의 추억과 더불어 궁굼증도 함께 불러 일으켰다.
오얏나무에 관심을 가질수록 접하는 정보들은 더욱 더 나를 답답하게 했다. 무엇보다 오얏나무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기대했던 궁내에서 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고향마을에 알아보았지만 단 한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것도 수령이 많아서인지 결실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주변 수목원의 홈페이지를 검색해보고 찾아가 보고 했지만 찾을 수 가 없었다. 더군다나 기가 막힌것은 국어사전에서조차 '오얏'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 실록'의 기록이나 대한제국에서도 오얏의 이름으로 그 꽃을 제국의 대표문양으로 사용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있어서는 안될일이 아닌가 싶다.
그 이름이 오얏 종류의 한 가지인 자리(紫李 : 오얏나무의 열매)가 변한 자두의 옛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는 것은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좀 더 시간을 내서 오얏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2009년 덕혜옹주 추모제향에 참석했다가 '우리황실사랑회'회원 두 분에게서 창경궁과 종묘, 방배동 효령대군 사당인 청권사에 오얏나무가 있다는 정보를 얻고 당장에 그 곳을 찾았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꽃이 필 무렵부터 금년 열매가 익을 때 까지의 모습을 서투른 카메라에 담아 왔다. 평소 오얏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의 궁굼증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고 정리해 올려 놓았다. 지방에 따라 이름이 다를 뿐 지금도 지방에는 더러 오얏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가끔씩 들을 수가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