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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율법의 영원성 (A)
“The Perpetuity of the Law of God”
1882년 5월 21일 설교
챨스 스펄젼
A Message Delivered on May 21, 1882 by
C. H. Spurgeon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까지 율법의 한 점이나 한 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It has been said that he who understands the two covenants is a theologian, and this is, no doubt, true. I may also say that the man who knows the relative positions of the Law and the Gospel has the keys of the situation in the matter of doctrine.
The relationship of the Law to myself, and how it condemns me; the relationship of the Gospel to myself, and how if I be a believer it justifies me--these are two points which every Christian man should clearly understand. He should not “see men as trees walking” in this department, or else he may cause himself great sorrow, and fall into errors which will be grievous to his heart and injurious to his life. To form a mingle-mangle of law and gospel is to teach that which is neither law or gospel, but the opposite of both. May the Spirit of God be our teacher, and the Word of God be our lesson-book, and then we shall not err.
두 언약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신학자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사실입니다. 저 또한 율법과 복음의 상대적 관계를 아는 자들은 교리 문제에 있어서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율법의 나에 대한 관계와 그것이 어떻게 나를 정죄하는가? 하는 문제와 복음의 나에 대한 관계, 내가 믿는 자라면 그것이 나를 어떻게 의롭다 하는가? 이 두가지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걸어가는 나무들로 보아서도 안될 것이며, 자신에게 큰 슬픔을 야기시켜 자신의 마음에 심각하고 자신의 삶을 해치는 일을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뒤범벅으로 만드는 것은 율법도 아니고 복음도 아닌 것을 가르치는 것이며 둘다의 반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스승이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교과서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옵시면 우리가 실수 하지 않으리이다.
Very great mistakes have been made about the law. Not long ago there were those about us who affirmed that the law is utterly abrogated and abolished, and they openly taught that believers were not bound to make the moral law the rule of their lives. What would have been sin in other men they counted to be no sin in themselves. From such Antinomianism as that may God deliver
us.
아주 큰 실수들이 율법에 관하여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우리 주위에 율법은 철저히 없어졌고, 폐하여졌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히 믿는 자들은 도덕법을 그들의 삶의 규율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죄가 될 수 있는 것을 그들은 스스로에게는 죄가 아닌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와 같은 반율법주의로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We are not under the law as the method of salvation, but we delight to see the law in the hand of Christ, and desire to obey the Lord in all things. Others have been met with who have taught that Jesus mitigated and softened down the law, and they have in effect said that the perfect law of God was too hard for imperfect beings, and therefore God has given us a milder and easier rule. These tread dangerously upon the verge of terrible error, although we believe that they are little aware of it. Alas, we have met with authors who have gone much further than this, and have railed at the law. Oh, the hard words that I have sometimes read against the holy law of God!
우리는 구원의 방법으로 율법아래 있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들에 있어서 주님을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만난 다른 이들은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화시키고 부드럽게 하셨다고 가르치며 그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완벽한 율법은 불완전한 존재들에게는 너무 어려우며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다 부드럽고 (온화한) 보다 쉬운 계명들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위험스럽게도 무시 무시한 오류의 가장자리를 밟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지만 말입니다. 아! 우리는 또한 이보다 훨씬 더 심하게 나아간 저술가들도 만났는데 그들은 율법을 욕했습니다. 아! 그 혹독한 말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대해 퍼붓는 것을 수시로 내가 읽다니!
How very unlike to those which the apostle used when he said, “The law is holy, and the commandment holy, and just, and good.” How different from the reverent spirit which made him say,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fter the inward man.” You know how David loved the law of God, and sang its praises all through the longest of the Psalms.
얼마나 그들은 사도가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릅니까? “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들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도다” 얼마나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말하게 한것과 다릅니까? “ 내가 속사람을 좇아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나”
당신은 다비드가 얼마나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였으며 그리하여 그것의 찬양을 시편의 가장 긴 시편들 내내 노래했는지 아십니까?
The heart of every real Christian is most reverent towards the law of the Lord. It is perfect, nay, it is perfection itself. We believe that we shall never have reached perfection till we are perfectly conformed to it. A sanctification which stops short of perfect conformity to the law cannot truthfully be called perfect sanctification, for every want of exact conformity to the perfect law is sin. May the Spirit of God help us while, in imitation of our Lord Jesus, we endeavor to magnify the law.
모든 참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율법에 대해 가장 경외합니다. 그것은 완벽합니다, 아니 완벽함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완전히 일치해지기까지는 우리는 결코 완벽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완전히 일치하는데 미달하는 성화는 진정으로 완벽한 성화라고 불리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완벽한 율법에 미치지 못하는, 완전히 일치하지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주 예수를 본받는 동안에, 우리로 율법을 존귀히 여기게 하소서.
I gather from our text two things upon which I shall speak at this time. The first is that the Law of God is perpetual: “Til heaven and earth pass, one jot or tittle shall in no wise pass from the law.” The meaning is that even in the least point it must abide till all be fulfilled. Secondly, we perceive that the law must be fulfilled. He who came to bring in the gospel dispensation here asserts that he has not come to destroy the law, but to fulfill it.
저는 이 기회에 말하고자 하는 교재에서 두가지를 모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질 때까지(지나갈때까지) 한점이나 한획도 율법에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다” 그 의미는 가장 작은 점까지도 그것은 성취될 때까지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율법이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것입니다. 복음시대를 불러오시려던 분께서는 그분이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고 다만 그것을 성취하러 오셨다고 언명하십니다.
I. First: THE LAW OF GOD MUST BE PERPETUAL. There is no abrogation of it, nor amendment of it. It is not to be toned down or adjusted to our fallen condition; but every one of the Lord's righteous judgments abideth forever. I would urge three reasons which will establish this teaching.
첫째 하나님의 율법은 반드시 영원합니다. 그것의 도말이란 없으며 그것의 수정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타락한 상태에 맞추어 음성을 낮춘 것도 아니며, 수정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의로은 판단들 모두는 영원히 서있습니다. 저는 이 가르침을 뒷받침하는 세가지 이유를 천명합니다.
In the first place our Lord Jesus declares that he did not come to abolish it. His words are most express: “Think not that I am come to destroy the law, or the prophets: I am not come to destroy, but to fulfill.” And Paul tells us with regard to the gospel, “Do we then make void the law through faith? God forbid: yea, we establish the law” (Romans 3:31). The gospel is the means of the firm establishment and vindication of the law of God.
첫째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선언하시기를 그분이 그것을 폐하러 오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말씀들은 매우 분명합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왔다고 너희는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성취하러 왔노라”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에 관하여 말합니다. “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뇨? 천만에!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세우느니라” (롬 3:31) 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견고히 세우고 변호하는 수단입니다!
( 계속)
첫댓글 스펄젼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또다시 율법의 종노릇 하게 하려한 사람이겠습니까?
제가 영문글로 올렸지만 이 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는 분이 안계셔서 번역해보았습니다. 앞으로 2-3개 더 올려질 것입니다.
요즈음 상고하고 묵상하던 말씀들을 여기서 만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영문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글인데, '하토브'님께서 충분히 공감하시고 친절히 번역해 주신 덕분에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또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진 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글들 중에는 한국 교회의 입장에 안맞는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성경들도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된 것은 일반 신학대학들이나 교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종사나 공과대학 교수에 의해서라든가 비주류 교회인사들에서였습니다. 스펄젼의 글도 이러한 종류의 글은 좀처럼 번역되어 소개되지 않을 것입니다.
스펄젼은 이 카페에 오면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다든가, 율법에 종노릇하게 하는 거짓 진리를 전하는 자라고 비난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여기 오시면 율법주의자라고 비난 받으실 것인데, 그분은 율법을 행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로 여김을 받는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수그리스도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3:3
유대인들은 외적으로철저하게 율법을지키며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그들은 개들이라는 소리와 행악하는자들이라는 표현과 손할례당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개들의 특징중의 하나가 토한것을 도로 먹는 습성이 있기에 개들이라 불렀으며
율법은 범법한자를 위하여 세웠다고 하였기에
율법아래 있는자는 다 그 범죄가 드러날수밖에 없기에 행악하는 자들이라 했으며
내적인 변화가 없이 외향적로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기에
손할례당이라는 표현을 사도바울이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행하지 않고
율법을 들여다보며 그 율법을 내가 지켜보려고 한다면
우리 역시 개들이며 행악하는자들이며
손할례당이라는 표현을 벗을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육체를 신뢰하여 나도 할수있다 또는 구원받았으니 할수있다
큰소리며 율법안에서 행할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받은자는
그 주님안에서 주님을 본을 삼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여기 카페에 와서 율법의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며 가르치면 율법주의자로 비난받을 것이며, 율법에 흠이없는 자(빌 3:6) 라고 하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레위기를 인용하며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율법의 말씀을 말하면(벧전 1:15-16) 그도 비난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책잡겠느냐" (요 8:46) 하신 것은 바로 유대인들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율법에 비추어 흠잡을 것이 없을때에만 가능한 말이었습니다.
형제님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3:6절에서 율법에 흠이없는자라는 말을 했다고
여러곳에서 몇번언급을 하셨는데
왜 사도바울이 이 말을 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정말 모르시는지요?
빌3:2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교사들
곧 유대인들을 향하여 개들이라하고 행악하는자들이하였으며
손할례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빌3:2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3:3
거짓교사들이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고 율법을 지킨다고 자랑한다면
나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자라는 말을햇던 것입니다
자신도 팔일만에 할레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며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자라
가문이나 혈통이나 그들이 그런외적인 것을 자랑한다면 사도바울또한
전혀 손색이 없는 자격과 신분을 갖추었다고 자신의 배경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으로
이모든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내용입니다 빌3:1-8
이런 전체적인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바울도 율법의 의로는 흠이없다고 말했다는
한구절만 딱 빼내어 계속 말씀을 하시면
바울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것처럼 오해하여 들릴수가 있는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라는 뜻입니다. 교회 모임의 진리들 하나 하나를 풀어나갈때 에베소 교회에 목사가 없고, 장로들만이 있었으며 그들을 감독들로도 불렀음을 행 20:17, 28 에서 엿볼수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다른 주제로 바울이 말하고 있었더라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무시하는 사람이었는가? 를 그 대목을 통해서 알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형과 그림자, 참 형상에 관하여 많이 오해하시는것 같네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할것입니다.
미래~ 그리스도로 세우신 언약과 그의 약속으로 나아가야지요.
소망있는 신자는 그림자와 참형상을 마땅이 구분할 것입니다...!
<< 다른 이들은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화시키고 부드럽게 하셨다고 가르치며 그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완벽한 율법은 불완전한 존재들에게는 너무 어려우며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다 부드럽고 (온화한) 보다 쉬운 계명들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위험스럽게도 무시 무시한 오류의 가장자리를 밟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지만 말입니다. 아! 우리는 또한 이보다 훨씬 더 심하게 나아간 저술가들도 만났는데 그들은 율법을 욕했습니다. 아! 그 혹독한 말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대해 퍼붓는 것을 수시로 내가 읽다니! >>
윗글중 이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구원받기전에 완벽하고 온전하고 거룩하고 엄격해서 지킬수 없었던 율법이
구원받은 후에는 그 완벽성이 낮아지고 그 엄격성의 수준이 내려와서 지킬수 있는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만나보게 됩니다
율법은 사람의 생각대로 수준을 내렸다 올렸다 할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세운 엄위한 율법은 한치의 움직임도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하고 엄격하게 하나님이 세운 그 위치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율법을 폐하러 오신것이 아니지요
주님이 율법의 요구를 다 들어주심으로 오히려
율법을 온전하게 세우셨으며 완성하신 것입니다
율법이 폐하여 사라졌다라는 식의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에게 이 율법이 더이상 아무것도 요구할수 없기에
우리가 더이상 그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율법이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그것은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인간을 죽게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다는 바로 인도합니다. 그런 과정을 늘 계속하므로 신자들을 성령님께 밀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스펄젼의 글들을 더 올리면 많은 반문들이 이미 답하여 져 있을 뿐만 아니라 스펄젼은 율법에 대하여 더욱 단호한 입장임을 아실 것입니다.
그길님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시지 마시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과 다른 생각이 과연 성경적인가? 여부를 놓고 분별하시는 자세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쓰던 글은 대략 반절 정도 썼습니다. 그중에서 그길님이 갖고 있는 오해부분들도 더 해명해드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하여 율법을 인용하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은 율법이 불신자들과 불법자들을 위하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증거합니다. 그 말의 참 뜻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그길님 왈:
<< 개들의 특징중의 하나가 토한것을 도로 먹는 습성이 있기에 개들이라 불렀으며
율법은 범법한자를 위하여 세웠다고 하였기에
율법아래 있는자는 다 그 범죄가 드러날수밖에 없기에 행악하는 자들이라 했으며
내적인 변화가 없이 외향적로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기에
손할례당이라는 표현을 사도바울이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교회인들이 갖고 있는 큰 오해이며 제가 그런 오해들을 풀고 싶어하는 바입니다.
바울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길님은 율법을 바라보고 상고하는 것을 속사람이 싫어하며 개들이 토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같습니다. 왜 율법 이야기 하는데 개들이 토하는 것을 말합니까? 율법은 거룩하고 정당하며 의롭고 선한 것이라고 사도는 말하는데 그것이 토한 것으로 보입니까?
벌거벗은 구원의 수치스런 구원의 신자, 초기 신자, 초중급 신자, 중급 신자, 중상급 신자 수준까지는 율법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많지 않고 그 유용성을 많이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교훈의 모든 것을 충분히 실행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든지 주님의 뜻을 좇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남들을 편벽되이 판단하지 않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지니고 다니지 않는 것등이 포함됩니다.
율법은 의롭고 선하고 거룩한 법입니다
율법이 개일수는 없지요
문제는 구원받은후에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허물이 가려진 상태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으시고 율법의 잣대로 보고 계신다면
우리는 여전히 토한것을 도로 먹어도 그것이 더러운것인지를 알지못하는
개와 같이 여전히 죄를 반복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눈에 보여질수 밖에 없다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과 스펄젼이 주장하는 말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펄젼이 말하는 것은 옳고 제가 말할 때는 무시하는 것은 바로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출 23:2절에서 불공정한 증거를 하지 말라는 말씀에 해당되며 주머니에 큰 저울추와 작은 저울추를 갖고 다니지 말라는 말씀(신 25:13-15)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장수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신 25:16) 그래도 안들으면 본인만 손해입니다. 잠언 20:10절은 바로 이런 말씀을 상고하여 쓴 것입니다.
나중에 더 쓰겠지만, 율법은 범법자들을 위하여 세워놓은 것이며 따라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다는 교훈은 큰 착각입니다.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안믿는자들이 율법에 따라 형벌받을 것입니다만 믿는자들 또한 범죄할 때 큰 찔림으로 작용합니다. 평소에도 범죄를 예방해줍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등불이 되어 주기 때문에 시편 119편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율법아래 있지않고 은혜아래 있다고 했으니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살아있지않고 죽었다고 하였으니 또한 그렇게 믿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율법을 이룬것이 없지만 내 대신 주님이 이뤄주심으로
그것이 주님을 믿는 나에게 의가 된다고 성경이 말하기에 그렇게 믿고있는것 뿐입니다
주의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아멘입니다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 문자적인 율법이 등불이라면
주님은 밝은 태양이십니다
말씀의 실체이며 빛의 실체이신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에
더이상 등불을 밝히고 어떻게 행하는 것이 바른길인지 쳐다보지 않아도
진리(말씀)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그말이지요
형제님과 저와 엄청난 큰 차이가 있는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가 율법을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고 무법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것입니다
또형제님이 율법을 주야로묵상해야한다고 말씀하셔도 율법을 지키자고 주장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저 또한 잘 압니다 그런데도 큰 차이가 있는것 같은 느낌은
형제님이 자꾸만 그동안 큰 오해로 한국교회가 물들어있다는 식이며
신약교회가 엄청나게 큰 잘못된가르침을 그동안 받아온것 처럼 말씀하시기에
어느 한쪽은 매우 잘못된 주장일수밖에 없다는 논리이기에 자꾸만 변론이 되는것입니다
한국 교인들이 많이 세뇌된 부분이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혜 아래에는 무법인가요?
율법과 은혜를 적대관계로 보도록 세뇌된 것이 문제입니다. 율법시대에도 믿음이 있었고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며(요 8:56-58) 야곱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며(창 31:13, 창 48:16), 모쉐 또한 그리스도를 믿었고(히 11:26,)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요 5:46) 삼손의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삿 13장) 수많은 선지자들이 자기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예언하였습니다(벧전 1:11)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과 성령의법을
별개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법이라고 말하고, 성령님 또한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일체이시고 모든 것을 공유하신다면, 성령님 또한 율법을 공유하시며 하나님또한 성령님의 법을 공유하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법(갈 6:2) 이 성령의 법과 별도로 있습니까? 율법을 전하여준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갈 3:19). 왜냐하면 중보는 한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딤전2:5).
율법은 성령의 법의 근간이요, 골격을 형성하며, 기초이기도 합니다. 그 토대와 뼈대와 골조에 추가 설명된 것이 갈 5장의 7가지 성령의 열매들이며 여러 성화의 말씀들입니다. 산상수훈을 율법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오해하던 바를 설명해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줄여서 두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들은 십계명의 문안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율법책에 기록된, 레위기 19장 18절과 신명기 6장 4-8절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여기 스펄젼 외에도 형제모임의 여러 앞서간 형제들이 제가 말하는 바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매킨토쉬가 살핀 율법의 내용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살필 가치가 충분이 있을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무지는 많은 세월을 허송하게 합니다. 반대로 율법을 잘 공부한 사람들은 성장을 크게
앞당길 수 있습니다. 초기 신자들, 중급 신자들에게 율법은 그리 유용하지 않게 보일 것입니다. 초기 신자들은 우선 침례받아야 하며, 목사제도가 잘못된 것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다음 주님의 만찬 중심 예배와 여자들이 머리수건 쓰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기도를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외 수많은 신약 교훈들을 살피고 실행한 다음 구약에 걸리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율법을 다시 보게 될 것이며 그때에 깨닫는 것은 율법이 최상의 온전함을 목표로 하는 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초기 신자들도 율법을 중시했더라면 훨씬 더 빨리 성장했을터인데, 하는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율법과 성령의 법의 관계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그들이 구약에 대해 별로 공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글을 읽으시면 상당부분의 오해가 풀릴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연계를 알지 못하면서 가르치는 선생이 되려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천국에서 작은 자로 여김을 받을 자는 지옥 백성이 아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 중에 율법을 허물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있을 줄을 예수님은 아시고, 마태 5:17-19에서 언급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형제님과 저와 엄청난 큰 차이가 있는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가 율법을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고 무법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것입니다
또형제님이 율법을 주야로묵상해야한다고 말씀하셔도 율법을 지키자고 주장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저 또한 잘 압니다 그런데도 큰 차이가 있는것 같은 느낌은
형제님이 자꾸만 그동안 큰 오해로 한국교회가 물들어있다는 식이며
신약교회가 엄청나게 큰 잘못된가르침을 그동안 받아온것 처럼 말씀하시기에
어느 한쪽은 매우 잘못된 주장일수밖에 없다는 논리이기에 자꾸만 변론이 되는것입니다 >>
궁극적으로 큰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차이때문에
온전한자, 흠없는자, 거룩한자, 로 양육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보고밀의 퍼펙티에서도 나온 문제입니다. 제가 나중에 글을 쓰겠지만 (반절밖에 안썼음) 그 글들에서는 여러 글들에 대한 방어만이 아니라, 율법이 적용되고 필요한 증거들로서 공격적인 부분들도 있음을 증거할 것입니다. 중간에 스펄젼 글부터 번역하겠습니다.
제자도님 << 모형과 그림자, 참 형상에 관하여 많이 오해하시는것 같네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할것입니다.
미래~ 그리스도로 세우신 언약과 그의 약속으로 나아가야지요.
소망있는 신자는 그림자와 참형상을 마땅이 구분할 것입니다...! >>
제 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스펄젼이 모형과 실상을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인가요? 본문 글에 충실하게 비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두개의 저울추를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잠 11:1, 16:11, 신 25:13) 이 글은 스펄젼의 글이니까 우선 스펄젼의 글에 대한 비평만 치중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느 부분이 그가 잘못 알고 한말인지를 지적하십시오
스펄젼보다 위대하신 그리스도인들이 이 카페에 많이 계시다는 것에 대해 큰 기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스스로만의 자긍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가 여부가 중요할 것입니다.
나중에 디엘 무디가 강력한 안식일 준수자 였음과 십계명에 대한 강조 사안은 별도로 기회가 허락되면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레 또한 제가 구분하는 것처럼 도덕법의 준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But, the moral law contained in the ten commandments, and enforced by the prophets, he [Christ] did not take away. It was not the design of his coming to revoke any part of this. This is a law which never can be broken ... Every part of this law must remain in force upon all mankind, and in all ages; as not depending either on time or place, or any other circumstances liable to change,
알고보면 훌륭한 복음 전도자들이 뜻밖에도 율법의 정확한 준수에 대해 상당한 경의를 표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는다거나 율법을 좇아 살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을 좇다 보면 침례와 만찬, 목사제도 아닌 성경적 장로제도, 머리 수건을 거쳐서 여러 성화의 말씀이며 정상적 그리스도인의 생활 등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단계에서 보면 성령께서 다음은 어디로 인도하실까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물론 성경 사본과 번역문제, 이스라엘까지도 살핍니다. 결국에는 구약에 관한 깊은 이해와 신구약의 연결을 깊이 상고하는 단계에 들어가고 율법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제가 스펄젼 글의 번역을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쓸 글을 반절 정도 밖에 못 썼는데 그 다음에 진행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제가 답변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