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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씨의 작업실은 경기도 일산 신도시 중산 마을의 한 상가 건물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당장 지난해 한 미술품 경매에서 자기 작품이 경매 최고가인 7500만원에 팔린 덕분에 30여 평짜리 작업실을 생애 처음 구하게 되었노라고 크게 웃었다. 작업실은 소품실(?) 그리고 유화들이 쌓인 넓은 대작실(?)로 나눠진 듯하다. 먼저 안쪽 소품실을 돌아다본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똥값>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스타 작가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이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가 세운 하루 경매 판매 기록 1300억 원을 앞질러 무려 1978억 원이나 팔렸다는 지난해 9월17일자 <중앙일보>기사를 스크랩 필름으로 뜬 뒤 한가운데를 홀랑 태워버린 자신의 소품 그림에 턱 하니 붙여놓았다. 그림이 이 시대 잘 팔리지 않는 변방 화가의 고통스런 독백일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그런데 태운 부위에는 원래 무슨 그림이 그려졌을까. “뭘 태웠냐고? 기억도 없어. 허스트 작품이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는다는데 거기 비하면 내 건 똥값인 게 사실 아니냐구요. 뭐,그런 심사를 담은 거지.”
작가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캔버스 그림을 무심하게 태우거나 잘라버리는 건 보통 배짱이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 자기 그림을 28개의 조각으로 잘라 비닐봉지에 넣은 뒤 다시 캔버스에 표구한 작품 <진실 06>도 그래서 유난히 눈에 띈다. 이런 파천황적인 발상은 임산부의 모습을 오려낸 종이들로 표현한 <도망가는 임산부>(1998)라는 작품의 인쇄물 위에 9·11테러 당시의 건물 폐허 필름을 덧입힌 작품에서 섬뜩하게 재확인된다. 소비자본주의 시대 현대인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설탕? 소금? 지킬박사? 하이드씨?’는 액자 안에 흰 가루 담긴 봉지를 넣고 다시 비닐로 봉해 명작인양 꾸며놓았다. 작가도 그 안의 봉지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문득 제작비가 궁금해졌다. “제작비?묻지마, 얼굴 빨개지잖아…” 이들 소품은 대개 4~5호짜리 캔버스들이다. 화구상에서 사면 5000원 내지 6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주씨는 “불황기의 시대 정신과 잘 맞지 않느냐”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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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3년 서울 광화문 민속 주점에서 사진 콜라주로 첫 개인전을 했다. 그 후 긴 잠행기를 거쳐 환갑을 앞둔 2001년에야 아트선재 센터에서 ‘이 유쾌한 씨를 보라’는 제목의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미술판에 ‘금의환향’했다. 비닐, 폐조각, 깡통 같은 재활용물 등을 주로 쓰면서 비루한 현대 한국인의 일상적 삶을 소재화한 작품들이다. 이런 그를 진보 미술진영의 젊은 평론가들은 ‘한국적 개념 미술’이라고 추어올리곤 한다. 물론 “이것도 작품이냐”, “개념미술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후지고 조잡하며, 부피감이 없다”는 비판도 따라다닌다. 첨예한 것은 아니지만, 노년의 그에게 논란 섞인 세평이 따라다닌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개념미술? 그 자체가 ‘먹물’들이 하는 말이지, 난 그런 거 몰라, 뭐라고 하던, 한 귀로 듣고 잊어버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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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종묘파’라고 불렀다. 서울 종로 3가의 종묘에 모이는 자기 나이 또래의 부류들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화단의 주류는 어쨌건 40대 아니오. 간간이 전시에 끼면 영광일까, 70대 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요.” 푸념과 달리 미술판에서 주씨를 노인 작가로 생각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2003년 주씨는 놀라운 사건을 연출한다. 20~30대 청년 작가들과 저 유명한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뽑혀 함께 출품한 것. 비닐과 폐휴지로 만든 ‘로또맨’ 같은 푸석푸석한 재활용 매체 작품이 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젊은 작가들의 컨템포러리 작품들과 함께 베니스 전시장에 입성했다. 그 전해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좁쌀만한 빈라덴의 상과 거대한 미 B-52폭격기의 그림을 비교한 작업을 출품해 국제 기획자의 눈에 들었던 것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파벌 논리가 횡행하는 국내 제도권 화단에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세계에 알린 셈이다.
우리 삶의 팍팍한 질감과 애환이 묻어나는 그의 개념적 매체 작업들은 냉소를 앞세우기보다는 유쾌한 웃음 속에서도 선가의 화두처럼 생각을 머금게 한다. 한때 삼성 가(家)의 소장품으로 알려졌던 리히텐슈타인 작 <행복한 눈물>의 패러디 그림 속 여인의 눈동자는 대기업 삼성 로고다. 귀고리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상 모조품이 끼워져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껏 만들었다는 <미끼는 무얼 매달아야 하는가>는 생각을 뭉실뭉실 피워 올리는 작품이다. <미끼는…>은 누르스름한 작은 캔버스 위에진짜 쥐틀을 붙여 놓고, 그 밑의 화폭에 그림 제목을 화두처럼 쓴 것이 전부다.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 죽을 때까지 조직의 틀 속에서 살지요. 그게 바로 덫이죠. 그 틀에 들어갈 때 성공이나 욕망같은 미끼를 보고 들어가는 거니까. 그걸 생각하다 보니 쥐덫이란 오브제가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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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넘치는 주재환표 미술은 초로의 시기까지 이어진 파란만장한 사회 경험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는 1960년 홍대 미대에 ‘잠깐’ 입학했다가 한학기만에 ‘성에 차지 않아’ 그만둔 뒤 잡초 같은 인생을 살았다. 말로는 자영업과 출판업을 했다지만, 입에 풀칠하기 위해 신문 구인란을 흘끔거리면서 온갖 분야의 잡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다. 행상, 외판원, ‘아이스케키’ 장사, 원남동 파출소 심야 방범대원으로 일했다. 누드 미술학원 운영도 해봤고, 빈민 학교에서 임시직 미술 교사도 했다. 여러 출판사를 돌면서 책, 잡지도 만들어봤다. 하지만 ‘몽상가적’이라고 평론가 백지숙씨가 지적한 대로 그는 이 엄혹했던 시기를 악다구니 쓰듯 지나치지 않고, 상상력의 거름으로 숙성시켜내는 몽상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미술계에 복귀한 80년대 이후 20여 년 동안 작업해왔는데, 이 과정은 몸으로 익힌 한국적 사회 현실에서 얻어낸 재기를 작품에 방전시키고 다시 충전하는 과정이었다. | |
참여 미술운동의 모태인 ‘현실과 발언’ 동인 창립전(1980) 때 주씨는 지금껏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몬드리안 호텔>을 선보였다. 모더니즘의 전형을 창출한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칸막이들이 한국식 러브 호텔의 요지경 세계를 구획한 벽으로 둔갑한 그림이다. 여기서 그는 시대 정신과 지성이 파묻혔던 당시 문화판의 현실을 은유했다. 함께 소개됐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또한 개념미술의 선배 격인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계단마다 서있는 사람들이 오줌발을 갈긴다. <태풍 아방가르드호의 시말>은 70년대 한국 화단을 뒤덮었던 모노크롬 회화(하나의 색이나 이미지로 전체 화면을 뒤덮는 단색조 그림)의 몰지성과 협소한 상상력, 무감각한 사회 의식을 찔러댔다. 담배와 파리채 든 채 나자빠진 무력한 예술가의 그림에는 통렬한 냉소와 비판이 깃들어 있었다. 푸른빛 공기 속에 몽환적으로 짜장면 면발이 휘날리는 <짜장면 배달>, 비닐과 전단지 등 소비사회의 잡동사니로 구성한 <쇼핑맨> 같은 작품들에서도 현실을 찌르는 개념적 패러디가 기발하게 변주된다. 심지어 2007년 6월 서울 관훈동 대안공간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렸던 개인전 ‘CCTV작동 중-잃어버린 밤’은 전시실 문을 잠그고, 작품 공개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전시의 의미 자체를 무너뜨리는 초유의 해프닝을 보였다. 후끈 달아오른 미술시장 열기 속에 작품 값만 우선시되고, 창작 혼이 도외시되는 현실. 그런 현실에 대한 경고이자 절규였던 셈이다.
뜻밖에도 화실의 넓은 방에서 주씨는 “요즘 한창 열중하는 것”이라면서 창백한 푸른빛, 보랏빛 화면으로 채워진 진중한 유화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뱃속의 오장육부가 뜯겨져 나와 신호등으로 변하는 아기 고래의 이미지, 먼 혹성에서 외롭게 좁쌀 지구를 지켜다 보는 외계인, 뱀처럼 꾸물거리는 선들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수평선 모습이 화폭에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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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한 유화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작업하는 건 가래침 뱉는 것과 비슷합니다. 50대까지 터널처럼 지나왔던 어려웠던 시절들, 그때 생긴 정신의 오물들을 정화시키는 행위라고나 할까요. 매체 작업과 달리 음울하고 고통스럽고 끝도 잘 안보이지만, 유화는 유난히 애착이 가요. 내 안의 발효된 상상력을 풀어내어 주기 때문이죠. 칠순을 앞두고 발악한다고 봐야지……” 주씨는 요즘 몇가지 고민이 있다고 했다. 사회를 위해 선행한 보통 사람들의 사적을 담은 의인(義人)공원의 구상을 지자체 등의 도움을 얻어 이루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고, 내년에 그가 몸담았던 ‘현실과 발언’ 동인의 창립 30주년도 앞두고 있어 기념 행사 등도 이리저리 구상해보고 있다. 그래도 가장 큰 소망은 “소박하게 하고 싶은 그림만 그리다 죽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 이면에는 “작가가 손에서 그림을 떠나 보내면 무력해진다”는 비애감이 있었다. 학력 이력보다 이미지로만 승부하겠다는 각오를 보이는 주씨가 웃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아, 그림은 헛된 꿈이지, 캔버스 앞에서 붓질하다 ‘꼴깍’하는게 제일 행복한 거 아니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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