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8총선은 공유부선거연대와 민치설계의 두 축으로 — 백낙청과 이병권에 화답한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2026-07-04
백낙청은 말했다.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고. 이병권은 말했다. 전투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이병권은 7가지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개헌, 극단주의 감시체계, 검찰·사법개혁, 플랫폼 통제, 선거제도 개혁, 정당민주주의, 차별금지법·시민교육.
두 사람의 문제 제기는 옳다. 12·3 내란이 진압되어도 극우의 토양이 사라지지 않으면 또 부활한다는 이병권의 경고도 옳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같은 지점에서 멈추었다. 방향론은 있는데 설계론이 없다. 저항의 언어는 있는데 건설의 언어가 없다.
이 글은 그 빈자리에 화답하려 한다. 두 개의 축으로.
왜 설계가 없으면 반복되는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정권 모두 광장이 건네준 기회를 받아 집권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구조개혁을 완결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리인은 위임받는 순간부터 구조를 바꿀 유인을 잃는다. 구조를 바꾸는 것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20년 동안 고기는 수없이 바뀌었는데 불판은 여전히 그대로다. 셀프 입법 특권은 여전하고, 공천 파동은 4년마다 반드시 되풀이된다. 이병권이 제시한 7가지 과제 역시 결국 "국회가 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한다"는 구조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기득권을 허무는 선거제도를 바꾸어줄 것인가. 이것이 설계 없는 개혁론의 근본적 함정이다.
그러므로 답은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와야 한다. 밖에서 제도를 밀어붙이는 힘과, 안에서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는 힘. 이 두 축이 동시에 달릴 때 비로소 노회찬이 주장했던 '선거제도 불판교체'가 가능하다.
제1축 — 공유부선거연대: 밖에서 제도를 밀어붙이는 힘
2028년 총선은 양당 독점 체제에 결정적 균열을 낼 역사적 기회다. 돌파구는 기본소득당, 녹색당 등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모든 군소 정당들의 과감한 연대에 있다. 그러나 연대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뭉치는 기치와 이기는 제도다.
뭉치는 기치 — 공유부(共有富)
공유부는 진보 진영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들의 가장 큰 교집합이다. 토지 불로소득의 사회적 환수와 시민배당, 탄소·환경 자산의 공공 관리, 빅테크가 독점하는 데이터의 사회적 공유. 이것은 단순한 재분배가 아니다. 소수가 독점해온 사회적 부를 공동의 자산으로 되찾아 시민에게 돌려주는 미래지향적 프레임이다. 기본소득, 복지국가, 기후위기 대응, 노동 존중을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다.
이병권이 경고한 대로 극우의 토양이 사라지지 않으면 또 부활한다. 그 토양의 뿌리가 공유부의 약탈이다. 토지 불로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청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앞 세대처럼 살 수 없는 구조—이것이 극우 포퓰리즘의 비료다. 전투적 민주주의만으로는 두더지 게임이 된다. 토양을 말려야 두더지가 사라진다.
이기는 제도 — 순위투표제(STV)
아무리 훌륭한 연대도 현행 선거제도 아래서는 구조적 함정에 빠진다. 한 표만 찍는 단기명 방식에서는 진보 후보가 여럿 나서는 순간 표가 갈라지고, 사표가 두려운 유권자는 거대 양당으로 회귀한다. 제도 자체가 연대를 처벌하는 구조다.
이 함정을 깨는 열쇠가 순위투표제(STV)다. 유권자가 후보에게 1, 2, 3순위를 매기고 1순위 후보가 당선권에 못 들면 그 표가 죽지 않고 2순위로 살아서 이사 가는 방식이다. 2025년 뉴욕 시장 선거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조란 맘다니가 열 명이 난립한 예비선거를 뚫고 당선된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표의 공포가 사라지는 순간, 군소정당들의 공존은 아름다운 패배가 아니라 실제로 이기는 전략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 제도를 바꾸는가. 국회의원들이 제 손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허무는 제도를 도입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결국 제도를 바꾸는 힘은 바깥에서 와야 한다. 연대 없이는 제도를 바꿀 수 없고,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연대는 이길 수 없다. 이것이 제1축의 이중 사명이다.
추진 주체 — 종교계 지도자
이 연대의 주춧돌은 종교계 진보 지도자들(스님, 신부, 목사, 교무)이 놓아야 한다. 무소유, 상생, 생명 존중, 약자 편에 선 정의라는 종교의 본질적 가치는 공유부 개혁의 정신과 완벽하게 부합한다. 권력을 탐하지 않는 원로 지도자들이 앞장설 때 선거공학적 야합이라는 오해가 사라지고 시대적·도덕적 결단이라는 정당성이 생긴다. 진보 진영 특유의 주도권 다툼과 미세한 노선 차이를 중재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다.
제2축 — 민치설계: 안에서 새로운 구조를 짜는 힘
제1축이 밖에서 제도를 밀어붙이는 힘이라면, 제2축은 안에서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는 힘이다. 선거 연대가 기득권 구조에 균열을 내는 동안, 민치 설계가 그 균열 안으로 새로운 제도를 심는다.
첫 번째 설계 — 추첨숙의형 시민의회
아리스토텔레스가 갈파했듯 선거는 귀족주의의 원칙이고 추첨은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160명의 시민에게 선거제 개혁을 맡겼다. 11개월의 숙의 끝에 찬성률 91%의 결론이 나왔다. 아일랜드는 수십 년간 정치인들이 건드리지 못한 낙태권과 동성결혼 문제를 시민의회에 넘겼고, 9개월 만에 결론을 냈다.
이병권은 '민주공화정수호위원회'를 제안했다. 발상은 옳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구성하는가의 설계가 없으면 또 다른 대리권력 기구가 된다. 답은 하나다. 추첨으로 구성해야 한다.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은 평범한 시민 150명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숙의하는 것. 그것이 대리권력의 함정을 근본에서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더 나아가 추첨숙의형 시민의회가 자동으로 소집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국민 10만 명 이상의 청원이 모이고 국회가 6개월 안에 처리하지 못하거나 1년 안에 결론을 내지 못하면 자동으로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해당 사안을 심의하는 구조다. 재량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객관적 기준이 발동 조건이 될 때, 셀프입법의 자물쇠를 시민이 직접 여는 열쇠가 생긴다.
두 번째 설계 — 공유부 제도화
토지배당과 데이터 배당, 탄소배당. 공유부를 모든 시민에게 돌려주는 구조 설계다.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 원리를 한국에 실현하고, 빅테크의 데이터 수탈에 과세하여 시민에게 배당하는 것. 이것은 극우의 경제적 토양을 말리는 동시에 공유부 개혁 연대의 정책적 알맹이가 된다. 제1축과 제2축이 여기서 만난다.
세 번째 설계 — IT 직접 민치
대만의 오드리 탕이 보여준 디지털 민주주의, AI가 수백만 명의 의견에서 합의 지점을 찾아주는 기술—직접 민치가 기술적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IT는 양날의 검이다. 알고리즘이 극우 클러스터링을 자동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이병권이 플랫폼 통제를 7번째 과제로 꼽은 것이 옳다. IT가 민치의 도구가 되려면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플랫폼의 민주적 책임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열쇠만 있고 자물쇠를 바꾸지 않으면 열쇠는 무용지물이다.
두 축은 경쟁이 아니라 상호 보완이다
제1축(공유부선거연대)과 제2축(민치설계)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완성시킨다.
선거 연대가 2028 총선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순위투표제 도입을 압박하는 동안, 파일럿 시민의회가 민치 설계의 실험을 쌓는다. 선거 연대가 기득권 구조에 균열을 내면, 시민의회 자동회부 제도가 그 균열 안으로 직접 민치를 심는다. 공유부 배당이 극우의 토양을 말리는 동시에 선거 연대의 정책 강령이 된다.
도원결의의 세 사람이, 칭기즈칸의 19인이, 남태령의 응원봉이 같은 원리로 움직였듯—뜻으로 모이고 공감으로 결합한 자발적 결정체가 먼저 있어야 설계가 현실이 된다.
크리스 하먼이 경고했듯 설계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득권의 5천 년 저항 앞에서 조직적 주도세력이 있어야 한다. 제1축이 그 주도세력을 조직하고, 제2축이 그 주도세력에게 설계도를 건넨다.
그러한 조직을 결성해내는 체계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그 자체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당선시켜주면 일 쫌 하겠네"라는 신뢰. 그 신뢰가 또하나의 핵심이다.
백낙청과 이병권에 화답한다
백낙청이 "물음을 멈추지 말자"고 했다면, 이병권이 "전투를 멈추지 말자"고 했다면, 우리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두 축을 동시에 달리자. 2028 총선에서 공유부 개혁 연대를 조직하는 동시에, 파일럿 시민의회로 민치 설계를 완성하자. 밖에서 제도를 밀어붙이고 안에서 새로운 구조를 짜자. 그리고 그 실행을 시작하자.
'민치'를 짜고 '연대'를 실행해야 '민주'를 이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