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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화
눈비 내리던 추운 겨울 날 이었다. 아마 영하 27도는 될 것 같은 전방의 시골길 뚝 넘어 얼어붙은 밭고랑이의 고드름이 뽐내고 서있다.
아랫입술을 내밀어 눈 내린 눈썹위의 눈을 불어 날려본다. 하지만 체온에 녹아 땀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이 입김과 같이 내 앞에서 춤을 춘다.
뒷 잔등의 땀이 내의 밑으로 흘러들어 가려움을 달랠 길 없이 걸음을 재촉하며 보고픈 마음에 지칠 줄도 모르고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성길이는 숨을 몰아쉬며 이정표를 바라보며 눈 속의 발자국을 뒤 돌아 본다. 아직도 얼마를 더 가야 하나? 눈 내리는 날씨에게 물어본다.
어두움 속에서 시계를 보니 정오가 닥아 온다. 4시간정도 걸었는데도 아직도 군대 막사는 보이지를 안는다. 바로 그때,
세찬 바람이 나의 코끝을 때리며 지나는 그 순간 눈바람도 같이 움직인다. 아련하게 보이는 검은 그림자인데 사람인지 건물인지 야생 동물이라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춘다. 어차피 눈 속에서 요동치는 몸 서로가 쳐다본다. 그런데 시야에 들어오는 시커먼 연기가 우리를 반긴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나지막한 표지판은 눈에 덮여 글씨가 보이지를 않는다. 손보다 발이 앞선다. 눈꽃이 날려 의젓해진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 있다.
접근금지 앞길이 훤하고 뒷길이 아늑함을 느끼는 순간 사람 소리가 들린다. 군인 두 사람이 점심 교대를 하러 내무반으로 가는 중 이란다.
숨 거를 틈도 없이 주머니 속에 적어온 인적 사항을 물어 보려고 더듬는 사이 무조건 따라오라고 손 사례를 치며 앞서서 간다.
무조건 뒤 따라 가면서도 조심스럽다. 그들도 자꾸 뒤 돌아 보며 걸어간다. 꼬불대는 길로 오십여 미터 앞에 막사가 보였다.
서너 채로 보이는 눈에 덮힌 콘센트 막사 지붕위에 낡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눈에 물이 들어 뽀얗게 온기를 비틀며 반겨준다.
머리의 눈을 털고 얼굴을 수건으로 훔치고 나니 추위에 고생한 코에서 놀란 듯 콧물이 흘러 내 입술을 맴돌아 턱 밑으로 스며든다.
다시 찾은 주머니속의 쪽지를 내밀며 이곳에 이런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로가 에서 젖은 군화를 말리던 나이든 스포츠머리의 사나이가.....
이 부대의 중대장 이라며 눈길에 오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셨다고 인사 한다. 안도의 긴장이 눈길에 지친 종아리에 경련을 불러 온다.
어이 ! 박선택 이병 어디 있는가? 예 ! 동초 근무 중인데 식사 교대 차 내무반으로 귀대 중입니다. 오는 즉시 중대 본부로 오라구 해 ! 그리고 우리를 중대장 실로 안내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다지도 긴지...... 십 여분이 지나 철모를 옆에 낀 키 작은 이등병이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중대장에게 신고를 한다. 야 ! 박이병 서울에서 형님들이 면회 오셨다. 눈이 휘둥그러진 순간에 우리는 졸지에 형님이 되었으며 선택이 어머님은 이로 인해 돌아가시기 전 까지 나를 큰아들이라고 부르셨다.
그 당시 젊은 박이병의 얼굴 모습은 잊혀 지지가 않는다. 양 볼은 군대 밥살이 올라 통통하고 몸은 방한복에 쌓여 안을수가 없었다.
철모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순간 우리를 발견한 박이병은 우리가 닥아 서자 울컥 울음을 삭이며 포옹을 하며 말없는 눈물을 흘린다.
중대장이 슬며시 자리를 떠나며 오후 동초는 다른 사람으로 교대 한단다. 한참을 말없이 서성이던 박이병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가지고 간 아리랑 담배를 나누어 주고 그 대신 화랑 담배 한 갑을 얻어 가지고 전방에서 피어본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최전방의 막사에서 대학교에서 응원 단장을 하던 나를 보았다는 상등병 제일 무서운 놈이다. 박이병이 내 집안 동생이니 잘 부탁한다고.....
감시병을 붙여 6시간의 특별 외출을 얻었다. 점호 전까지 귀대를 하되 술을 먹어도 적당히 마시게 하라는 부탁이다.
서울에서 관보를 보내주면 특별 휴가를 보내 주기로 다짐받고 버스 종점까지 나오는 시간이 왜 그리도 빠른지 아직도 모르겠다.
박이병, 감시병, 성길이 그리고 나, 얼마만인가? 소주잔을 기울며 마셔본 그 시절이 아물 거린다.
민간인의 출입 통제 구역에 성길이와 둘이서 검문소 마다 까벌린 지갑 그래도 나는 군에 있을 때 지녔던 특별공용증이 큰 효자 노릇을 했다.
그 덕에 성길이도 무사통과 하고 참으로 보직과 계급의 힘이 충분하게 작용된 드라마딕한 스토리임을 지금도 자랑하고 싶다.
박이병의 중대장이 위관급인데 내가 거수경례를 받고 막사를 떠났으며 여러곳의 검문소 헌병들도 마찬가지로 예우를 갖추었다.
그후, 보름만에 특별휴가를 보름동안 받고 집으로 왔다. 선택이 어머님은 “슨-택”이라고 부르셨다. “슨-택아” 너는 “오긴이”를 형님으로 모셔야 해, 알겠지 ! 나는 팔자에 없는 박씨 가문의 장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50 여년이 지났다. 우리 모두가 젊은 날의 초상화가 있으련만 기억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내 초상화는 기억 할 수 있어도 남의 초상화는 기억하기가 힘들다.
내 자신이나 남의 초상화를 간직한 사람은 머리가 하얗게 늙었어도 참으로 행복하고 인생 무상함을 쉽게 헤쳐 가는 삶을 누릴수 있을는지?
작년 10월 초순 병실의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이 나를 반긴다. 눈을 감고 지난 추억에 잠겨 머리를 조아려 보는 순간 나타난 초상화...
오랜 시간동안 병상에 누워 자신이나 남의 얼굴마저 기억 못하는 친구 전방에서 서로의 얼굴을 비벼대며 빨개진 귀 언저리에 입김을 .... 이러한 초상화를 그려 본적이 있는가?
보고 싶고 지금 듣고 싶은 너의 숨소리까지 들려오는 듯 지금도 나의 귓전에 머무는데 어찌하여 너는 잠만 자고 있느냐? 오 ! 주님이시여 사랑하는 우리 친구에게 젊은 날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도록 살피시고 깨어나 우리에게 다가와 추억을 곱씹으며 옛날처럼 해맑은 미소로 사랑을 나누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소망이 부활 하는 날 나는 다시 한 번 너의 얼굴을 내 가슴속에 영원토록 그려 넣고 가고 싶구나 !
흐르는 눈물을 손등에 적시며 이글을 적어본다. 엘에이에서, 오균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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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Those were the days - Mary Hopkin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tavern
Where we used to raise a glass or two
Remember how we laughed away the hours,
Think of all the great things we would do
선택이가 쓸어진 그날 2009년 1월 10일, 하늘도 울었다
오늘로 만 5년하고도 1주일이 흘렀다. 최근 근황은 나도 몰라...
설날전에는 가 보아야겠다.
오균아 '젊은 날의 초상화' 가슴이 뭉클하구나. 나도 눈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