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요일 공부 모임 후기
여름 더위로 땀을 흘린 토요일과 달리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일요일 오후, 뉴욕커피상점으로 가는 길가의 은행나무잎이 무성해지고 초록빛도 짙다. 고독을 즐기러 일찍 와계신 소영 샘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글을 쓰다가 오랜만에 혜영 샘이 오셔서 너무 반가웠다. 곧 이번 모임부터 함께하실 세경 샘이 오셔서 마음이 산뜻해지고, 지원 샘, 영희 샘, 서형 샘, 은영 샘까지 도착. 우리들의 목소리로 공간이 가득 채워지는 이 느낌, 충만하다.
근황 토크
지원샘 무탈한 한 주를 보내고 모처럼 과제 없는 토요일에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정주행하며 평화롭게 보냈어요.
진경샘 지난 한주 독서 구술 수업을 마무리했어요. 아이들의 배움일지를 읽으며 의미 있는 배움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낭독극 수업을 준비하며 지필평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어요.
세경샘 시험을 출제하고 검토하며 한 주를 보냈어요.
영희샘 바쁜 일상을 보내고, 토요일에도 출근해서 원안지를 검토하고, 학교 감사를 받고, 동료교사의 부고에 함께 슬퍼하며 정신 없이 지내다가 금요일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모래 사나이’를 함께 읽고, 아트센터 공연으로 일상을 버티는 힘을 얻어요.
소영샘 바쁜 영희샘께 감사에서 받은 출결 수정을 급하게 수정하자고 한 게 마음에 걸렸어요. 업무가 너무 많아서 조정이 필요해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외할머니 투병기를 예로 들었는데 학생들이 깊이 공감해서 위로받았어요.
혜영샘 생활교육 업무가 힘들지만 팀원들의 협업으로 잘하고 있어요. 학교 폭력을 처벌하는 것이 한계점에 이르렀고 회복적 정의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요. 우리 모임이 머리와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에요.
서형샘 4월의 과학의 달을 맞아 융합과학, 과학토론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초등학생들의 생각과 활동이 귀여워서 힐링이 되었어요. 요즘은 정시에 퇴근해서 산과 바다, 호수가 아름다운 4월의 고성을 즐기고 있어요.
은영샘 대화와 관계에 대한 스타일의 차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 이젠 적응하며 지내고 있어요. 시험을 출제하고 동료 샘과 검토하며 꼼꼼하게 수정했어요. 전년도 문제를 공개하니 더 신경이 쓰이네요.
《독립의 오단계》책 이야기
소영샘 책 제목을 보고 자기계발서인 줄 알았어요.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에 이어 기계권을 고민했어요. 그래도 기계는 기계가 아닐까 싶네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배경과 유사해서 익숙한 내용이지만 미래에 오재정 변호사처럼 지능증축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저도 죽지 않고 계속 살고 싶어요.
지원샘 이분법적이고 인위적 인물 설정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일반적인 인공지능 관점에 대한 기울어진 시소에서 약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균형 있는 통찰을 주는 책이에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과연 인간 수준에 머물러 있을지, 지능증축 특권, 에어시티 거주권 등 인간적 수준의 인공지능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을지, ‘인공지능 시대가 열어버린 새로운 노예 시대’는 인공지능이 아닌 이를 누리지 못하는 인간들이 노예가 되는 시대가 되는 건 아닌지, 인공지능과 인간의 바람직한 공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한 작품이에요. 조선시대의 한글과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영희샘 인간과 기계의 관계 설정이 관건이죠. 25쪽 “너는 나에게 지능을 제공하고 나와 기억을 공유하지만 너에게는 제어권이 없어. 너는 일종의 그릇이야. 나를 담고 있는”이 그 대안이 될 것 같아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의식을 확장하는 역할을 할 뿐 도구라는 거죠. 지능면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앞서기란 불가능할 수 있지만 자의식을 지니고 주도권을 발휘해야 함을 가재민이 오단계와의 분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끊임없이 배우는 인공지능과 달리 학습을 거부하는 아이들에 대한 문제가 남네요.
세경샘 흥미진진한 전개와, 학대하는 엄마로부터 독립해서 새로운 엄마를 선택하는 인물,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분을 탄생에 둔 점, 기계권 인정에 대한 문제 등 토론 거리가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법과 관련된 부분은 중학생 수준에는 좀 어려울듯 싶기도 하구요.
은영샘 중3 정도는 괜찮겠죠? 어린 가재민을 대하는 엄마 가혜라를 보며 제 경험이 떠올랐어요. 아이들이 안전밸트를 착용하지 않아서 달리다가 급정거를 해서 아이들이 놀란 적이 있거든요. 그 후론 잘 착용했지만 방법이 적절한지 고민이었거든요. 저는 이 책이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주체적인 삶의 태도, 부모의 역할을 다룬다고 생각했어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계의 문제를 인간의 삶에 비유한 거죠. 73쪽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완전해진다면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기계라고 할 수 있지? 그 ㅂㅣ율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지? (…) 출산”이라는 부분에서 출산을 통한 인간의 탄생을 의미 깊게 봤어요.
서형샘 저는 남녀의 출산을 신성시하는 것을 차별로 본다고 생각했어요. 엄마의 통제와 로즈와의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에 대해 가재민이 죽음을 선택하잖아요. 출산이 특별한 의무이거나 그것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자각몽의 의미가 궁금했어요.
영희샘 물리적 출산보다 정서적 유대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자각몽은 만남과 소통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서형샘 결정적 선택이 되는 어릴 적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아빠가 죽고 오재정이 인권 변호사가 되고 폭탄 테러를 겪고 기계권을 인정하는 삶을 선택한 것처럼요.
저희 함께 읽었던 책 중에서 인공지능을 다룬, ‘헬렌 올로이(레스터 델레이)’, ‘국립존엄보장센터(남유하 외)’, ‘당신이 보고싶어하는 세상(장강명)’,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김혜진)’, ‘파견자들(김초엽)’ 등으로 도서 목록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진경샘 저도 책 읽으면서 조지오웰의 《1984》, 영화 ‘공기인형’이 생각났어요. 이 소설은 자유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신체의 한계나 사회의 강요를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51쪽 “네가 앞으로 어떤 꿈을 꿀 수 있을지 생각해 봐. 경험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의식 속에 쌓여가지. 네가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네가 꾸는 꿈도 달라질 거야. 너만의 꿈을 꾸어봐” 구절이 인상적이었는데, 독립적인 삶을 끊임없이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영샘 영화 ‘her’도 관련되죠. 금쪽이의 코끼리도 인공지능이라고 해요.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우리 삶에 엄청 가까이 있어요. 상담에서도 활용할 정도로. 그래도 인공지능보단 사람이죠. ‘her’의 결말처럼 인공지능과의 관계는 공허하잖아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격차를 생각했어요.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생길 거예요. 구글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자기 자녀들에겐 휴대폰을 주지 않고 자연에서 교육을 한다고 하죠. 내년부터 디지털 교과서 보급으로 변화가 있을 텐데 인공지능을 잘 활용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향을 지향할지 철학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오단계의 최후변론을 기억하고 싶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인간이 져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 그에 대한 의무와 사명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기계도 그것을 따를 것입니다. (…) 가재민이 이끄는 세상이라면 그것이 어떤 삶이든, 저는 앞으로도 계속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혜라가 만드는 세상이라면 저는 거부합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세상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아이들이 잘살기 위해 오.단.계처럼 하나씩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같은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우리들의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책과 서로에게서 얻은 힘으로 두 주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보낼 것이다.
-2024. 04. 28. 기록자 곽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