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비유 이야기 : 돌아온 탕자
I. 들어가기
가치는 현실세계에 대한 인간의 실천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의식적인 관계가 축적된 결과로서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과 대상의 관계를 통해 정착된 가치는 인간의 사고와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그들의 존재조건·욕구·이해관계 등을 보여주는 개념이 된다. 따라서 가치의 내용은 변화되는 의식구조를 반영하면서 시대적·사회적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론적인 기차는 진이라 하고, 도덕적인 가치는 선이고 미적 관심을 충족시키는 가치를 미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머물지 않고 보다 본질적이고 긍극적인 가치가 바로 종교적 가치 즉 신앙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물질적 가치, 육체적 가치 그리고 미적 가치에 치중하고, 정신적이며 영적이며 종교적인 가치를 대부분 상실하고 있다는데 큰 위기가 있는 것이다.
온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생명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생명보다 귀한 것은 진실로 없음을 알 수 있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국가가, 어떤 가치가 나의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결단코 생명보다 귀한 값어치를 지닌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온 천하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모든 것입니다. 명예, 건강, 돈, 권력 등등, 진실로 모든 것입니다. 진정 생각해 보십시오. 명예, 건강, 돈, 권력, 지식… 등등이 있으면 행복해 집니까?
한 생명의 귀중하고 무한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의 비유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비유라는 말은 희랍어로 “은유”, “상징”, “격언”, “규칙”, “이야기” 등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간단한 이야기, 비교, 직유, 은유 등의 언어 형태로 이루어져 있지만 예수님 자신이 자기 당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주된 메시지, 곧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특성들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문화마다 다르지만 고대 로마사회에서 문자를 사용하는 사라들은 불과 1-2%밖에 안되었다. 지혜는 고대 세계에서 전적으로 지식인들과 상류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고대세계에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은 분명히 사회에서 상류계층이었다.
이스라엘도 고대 근동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전문가 계층에 의해서 지혜가 전수되어 왔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러한 지혜의 계층화 현상은 철저하게 관찰되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대중적이었다. 그는 소박한 언어로 대중들과 호흡하듯이 이야기 했고 그래서 더욱 인기를 가졌는지 모른다. 예수가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한 중요한 언어적 도구는 비유이다.
비유는 고대로부터 일상생활의 소재를 통하여 사물의 이면에 숨은 뜻을 수월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수사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비유는 보통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되었다.
II. 이야기 전개하기
죄인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가?
1. 돌아온 탕자의 비유
탕자의 삶은 전형적인 죄인으로서의 모습과 모범적 회개자로서의 모습을 예시해 준다.
탕자는 어떤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한결같이 죄인인 우리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다.
탕자는 자기 의지에 따라 아버지의 품(하나님)을 떠나 비극적인 삶을 사는 전형적인 죄인으로서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시사해 준다.
탕자의 비유 등장하는 이물은 아버지, 첫째 아들 그리고 둘째 아들입니다. -케릭터
2. 둘째 아들이 탕자인 이유
1) 패역무도하고 후안무치한 행동
아직 때가 되지도 아니하였는데 둘째는 아버지에게 “내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신21:17) 재산 양도를 장자에게 3분의 2, 차자에게 3분의 1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자기 나름대로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버지께 순종하며 때를 기다리기보다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며 재산을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합니다.
2) 재산을 처분하고 즉시 현금화함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재산에 대하여 가지는 도덕적인 요구 따위는 무시해 버리고 행동합니다.
인간 본성적인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사59:2) 영적 소경이 되게 하므로써 탐욕에 빠지게 하며(벧후2:14) 필경 사망으로 인도한다(롬6:23).
3) 가족을 버리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 먼 나라로 훌쩍 떠남
탕자가 자신의 이권을 아버지께 주장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악의 씨앗이 배태되어 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품을 떠났을 때 그가 겪는 모든 고통과 수고는 자기 의지대로 행한 죄의 결과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갔듯이 타락한 인생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고 그 은총의 길에서 떠나려는 본성을 지녔다.
4) 쾌락 추구의 삶
둘째는 규모있게 삶을 살지 못하고 ‘허랑 방탕하여’ 생활합니다.
‘아소토스’는 무절제하게, 방종하게, 타락하여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큰 도시에 가서 돌을 벌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는 일이 있었지만 이 작은 아들은 술과 부도덕한 생활에 돈을 다 써버렸습니다.
거듭되는 사업의 실패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는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누구하나 이 실패자를 대우해 주거나 측은히 여겨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돼지를 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돼지 키우는 일이 율법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유대인들에게는 더러운 일이었습니다.
둘째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사회의 최하층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돼지 먹이를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더욱 비천해진 상황을 의미합니다.
3. 이 비유가 주는 교훈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 아들과 그를 환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
1) 아버지의 사랑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용서를 상징하는 행동, 끊어진 관계를 회복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에게서 상속될 분깃을 미리 받아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이 떠나갔지만 언젠가는 그 아들이 돌이켜 아비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집나간 아들이 뉘우치기(회개)를 기다렸습니다. 아주 오래 동안 기다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천년이 하루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십니다.
2) 지위 회복 -아들의 권리와 소유를 회복
돌아온 아들에 대하여 아버지는 자비하였습니다. 그는 아들의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어서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지위의 회복
반지 -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이것은 부와 권위, 특히 왕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신 - 신은 자유인을 상징한다. 노예들은 신을 신지 못하였다. 또 신은 주인임을 상징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유대사회의 ‘케차트사’
‘케차트사’란 유대 사회에서 사람이 법을 어겼을 때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고 출발하는 예식이었다. 이것이 그 반대로 되면 권리를 회복하는 예식이 된다.
바로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에 대하여 유대 관습법인 ‘케차트사’로 그의 권리와 소유를 회복시켜 준 것이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큰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하고 헐벗고 굶주림의 고통가운데 아들이 신도 신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하면서 아들이 아닌 종이나 머슴으로 살아가겠다는 아들에 대하여 아버지는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III. 생활 속에서 살아가기
1. 참 자유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안에서 자유롭게 됨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이 자유가 아니라 속박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것을 추구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봅시다.
2. 방향전환
세계 최대의 부호로 꼽히는 록펠러는 중년의 나이에 사업에 쏟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한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 등에 시달리며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담당 의사로부터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게 되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때까지 그의 인생철학은 오로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었고 욕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돈만을 위해서 살았고 그 많은 물질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을 뿐 그 누구에게도 베풀지 못했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연약함으로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며 커다란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비우고 베풀면서 살겠다고 하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기 위해 대학과 교회를 세우고 교육과 선교 사업을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 함께 생각해 보기
1. 왜 둘째 아들을 탕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요?
2. 탕자처럼 자기 운명을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아십니까?
3.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려는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