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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자가 진단 SPIRITUAL CHECKUP
1. 지식과 겸손
a. 나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에 대한 실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가?
불분명한 회색지대는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씀 안에서 주님이 나에게 가르치시는 바를 어느 정도 명확히 알고 있는가?
b.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시인할 겸허함이 내게 있는가? (AE 117:2)
2. 사고 패턴
a. 나는 진리에 대해 좁은 마음을 갖고 있는가?(예를 들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가르침은 회피하거나
달리 해석하려 하는가?) (AC 5128:2, 1673:4)
b. 진리를 상고할 때, 그리고 진리가 확증될 때 기쁨을 느끼는가? (AC 984; DLW 252)
c. 나의 생각들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귀결되는가? (SD 4577m)
d. 나는 내 안의 악을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악이 더럽고 추하게 느껴지는가?)
(AC 9128:2, 2041:2, 2654e; Char. 181)
[그렇지 않다면, 존경하는 사람에게 나 자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가!(HH 487; SD 734)]
3. 감정
a. 내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AC 3570:2)
b. 나의 생각, 대화 주제, 행동에 있어 내가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NJHD 147; AC 3939)
c. 나에게 가장 큰 성취감을 주는 것은? 가장 큰 실패감을 주는 것은? (AC 7648)
d. 불안
1. 내 과거의 어떠한 부분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AC 5881)
2. 내 삶에 악이 있음을 애통해 하는가? (AC 1914:2)
3. 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강요당하는 것을 싫어하는가? (AC 977)
4. 육신의 쾌락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에 마음 속으로부터 저항하는가 (AC 5159)
5. 주님께 거역하는 생각, 말,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속으로부터 저항하는가? (AC 5949:3, 7118)
6. 악을 지옥적인 것으로 혐오하는가? (AC 892e)
7.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한가? (AC 5470)
4. 내적인 선의 느낌
a. 이웃을 위해 이웃이 잘되기를 바라는가? (AC 1102:3)
b. 불행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AC 1102:3)
c. 비진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가? (AC 1102:3)
d. 말씀과 예배에서 거룩함을 느끼는가?(AC 10614:3)
e. 배우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CL 238:3)
5. 생활
a. 내 직무를 공정하고 신실하게 하고 있는가? (DLW 252)
b. 남을 돕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가? (AC 4247:2, 977)
c. 십계명을 항상 지키는가? (AR 502e)
6. 거듭남
a. 나는 악을 죄로 여기고 있는가,
아니면 악을 단순히 실수, 판단 부족, 오류, 혹은 들추지 말아야 할 과거 정도로 여기는가?
(DLW 426; DP 215:13)
b. 나는 적극적으로 내 안의 악을 찾아내려 하는가?
찾은 뒤에는 그 악을 주님께 거역하는 죄로 여겨 떨쳐버리려 하는가?(DLW 426)
c. 만일 법이나 치뤄야 할 사회적 댓가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HH 508:5; DP 278; SD 3716; Char. 5)
7. 내 죄가 사해진 증거들을 갖고 있는가? 죄가 사해지지 않은 증거들을 갖고 있는가? (NJHD 167)
죄가 사해진, 즉 죄가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옮겨진 증거: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기쁨을 느낌; 이웃을 위해서 이웃을 섬기는 데서 기쁨을 느낌; 선 자체를 위해 선을 행하고 진리 자체를 위해 진리를 말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낌; 자신의 신앙이나 선행을 자신의 공로로 여기지 않음; 적대감, 증오, 복수, 간음 같은 악들을 혐오하고 악에게서 멀리 달아남;행하려는 의도로 악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함.
죄가 사해지지 않은, 즉 멀리 옮겨지지 않은 증거: 하나님을 예배한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하는 게 아님; 이웃에게 유익한 일을 행한다 해도 이웃을 위해서 행하는 게 아님; 선한 일을 하고 진리를 말할 때도 이와 마찬가지임. 선과 진리 자체를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동기로 그렇게 함. 자기가 한 일의 공로가 자신에게 있다고 여김. 적대감, 증오, 복수, 간음 같은 악들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끼지 않음. 따라서 그런 악들을 행할 생각을 거리낌 없이 함. -NJHD 167.
I. 자신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 What we do not know about ourselves.
A. 간직된 선("남은 것")의 양과 질: AC 268, 561, 2284:3
B. 거듭남의 정도: AC 6686, 8865:2, 10049, 3179:2, 2431, 894; HH 530
C. 중간선을 통해 얼마나 거듭나 있는가: AC 4122
D. 자기 억제 속에 존재하는 자유: AC 1937:4
E. 입류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 DP 156; AC 4067:2, 4977; CL 122; AE 419:6
F. 섭리의 역사하시는 방법: AC 1554, 2678; DP 125, 175
G. 우리에게 연합되어 있는 영들: AC 687, 784:2, 4067:2; DLW 252
H. 우리의 내적 사고가 진행되는 방식: AE 527:4, 625:5; AC 9051:2. 4104:2, 2494
I. 우리가 말씀을 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AC 4280:3, 5614:2, 10551:5
J. 우리가 내적으로 행복한지 여부: AC 9103, 10722, 2379
K. 자기 안에 그리고 배우자와의 사이에 결혼애가 있는지: CL 183:7,
531, 123, 193:2, 475:3
L. 악한 사랑의 정도: AC 892, 3402:2; TCR 381:5
M. 우리가 진정 주님을 생각하고 있는지: AC 5130
N. 성찬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 AC 6789:3
II.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기 어려운 이유
A. 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AC 5649:2, 4027:2
B. 진리를 잘못 알고 있어서: AC 5096; Char. 5
C. 열정의 오도와 악의 일시적 부재로 인한 착각: AC 1661:4,
4311:3, 2041:3
D. 자신에 대해 반추하지 않기 때문에: AC 4366:2, 933:2, 5224:2; DP 278
E. 육신을 입고 있을 때는 영적 지각이 어두움: AC 2380:2. 1043:3, 2380:4
F. 습관이 된 것은 자각되지 않으므로: AC 2488, 4633; HH 492
G. 거듭남은 계속되는 과정이므로: AC 894, 4638:10, 2796
H. 변화가 있었다 해도 자연적인 것이지 영적인 변화는 아닌 경우: AC 4136:2, 5159:2
I. 일상생활의 염려가 우리의 분별력과 영적 행복감을 막아서 AC 4027:2,
994:3, 3938:7,
2367; HH 401
J. 거듭남의 초기에는 큰 차이를 못 느끼므로: AC 159, 3325:3, 3336:3, 1581, 5696, 10219, 7056e
K. 자신이 즐기는 것은 악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 AC 2488, 1072e; DP 198, 296:9
III. 자신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것: What we can know about ourselves.
A.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가 또는 경시하는가: AC 5125:2, 5128:2
B.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 AC 1568:3, 3957:6, 2982:2; HH 487; AE 1138:6; D. Love XVIII:4
C. 진정한 내적인 면이 있는가: AC 3324: 10, 10614:3
D. 자신에게 주님이 임재해 계시는가: AC 7056e
E. 이기적인 동기로 행하는가: DLW 426; AR 502e; NJHD 147
F. 자신의 믿음이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가: AC 9297:3
G. 자신의 영적 생활이 질서 안에 있는가 (내적 차원이 외적 차원을 지배하고 있는가): AC 3939, 5159
IV. 자신의 영적 상태를 분별하는 방법:
A. 자아 성찰: AC 3980, 3570:2
B. 진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살펴본다. 또 우리의 생각의 전 과정을 살펴본다: HH 500; AE 837; DLW 278;
AC 5128:2, 984, 5340e. 3876; SD 4577m
C. 자신 안의 악을 볼 수 있는가: Char. 181; AC 9128:2, 2041:2
D.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가: AC 737 1, 3939, 7648; AE 945; NJHD 147
E. 악에 대해 괴롭고 불안함을 느끼는가: AC 5881, 1914:2, 5949:4, 5470
F. 이웃사랑을 느끼는가: AC 6325, 6737, 1102:3, 10614:3; CL 238:3;
DP 208
G. 자기 생활이 어떤지 본다: AC 9434:2, 4247:2, 5128; DLW 252
H. 회개를 하는가: DLW 426; DP 215:13
I. 외적 제재가 없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본다: SD 3716f
J. 죄가 사해졌다는 증거들이 있는가: NJHD 167
K. 기타: AC 2057:4, 5125:2; NJHD 180
V. [맨 위에 올려둔-역자주] 영적 자가진단법. (Note: many more questions
could be usefully asked. These are drawn from specific numbers in the
Writings.)
-Rt. Rev. Brian Ke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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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브라이언 키이드 비숍이 작년에 발표한 Spiritual Assessment 라는 16쪽짜리 소논문이 있는데,
이 영적 자가진단은 그 마지막 부분에 딸려온 appendix로,
논문 내용의 근거가 되는 저서 조항번호를 정리한 목록입니다.
(교리에 대한 어떠한 견해를 발표하든 항상 이렇게 출처를 일일이 명시하는 관행은
학계의 당연한 절차이기도 하지만 진리를 순수하게 보전하기에 참 바람직한 절차이기도 합니다.)
진리를 순수하게 보전하려는 노력의 산물을 값없이 이리 편히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 진리를 왜곡하여 삼천포로 빠지지 않도록 발휘된 라t의 지도력은 언급하면 입만 아프조!
그러나 하나만 예를 들면 --- 이 부호 아래에 펼쳐지는 내용은 그 글에 대한 생각의 틀과 방향을 제시해 주고
거기에 라t의 냉철하고 세심한 필치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덤으로 따라붙곤 합니다.
좋은 내용이군요.
브라이언 목사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마을 글을 알아듣지 못하는 현실과는 별개로 새로 주신 글은 언제나 단비 같습니다.
라t의 '로뎀나무에서 호렙산으로..' 를 읽으면서 뭔가가 더 필요함을 느꼈고
그 필요는 '거듭남'에서 조금씩 채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분의 글에서 이름모를 풀향기가 나고 질문 하나하나가 자기점검의 소중한 씨앗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이런 논문이 제가 바라왔던 논문들 중 하나입니다. 총정리를 좋아하시는 꽁이님도 분명 반기실 거라 생각했지요.^^
자신의 악을 단순히 실수, 판단부족, 오류, 들추지 말아야 할 과거 정도로 여기는가? 라는 질문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만약 여기서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명백한 잘못을 판단력 부재나 불우한 환경, 배움부족에서 연유한 거라며 그를 변호한다면 이는 어떤 악인가요?
타인에 대해서는 외적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에 대한 판단만 할 수 있고 그의 내면(속생각, 동기, 의도, 영적 상태 등)은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하지도 말라는 것이 원론입니다.
거듭남의 표시가 악을 혐오하게 되는 것인데, 주의할 것은 악을 혐오하다가 악인을 혐오하게 되거나, 혹은 반대로 인간적 정으로 악인을 변호하다가 악을 변호하게 되거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야겠지요.
꽁이님이 질문하신 예는 천사들의 마음 같습니다. 천사들은 악에 전염될 가능성이 없어 그런지 악행의 의도를 무조건 선하게 해석한다고 하는데, 물론 천사의 마음을 닮아가야 겠지만 아무래도 지상에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가 봅니다.
@해바라기
타인 판단의 원론.
a. 판단 허용 범위 : 그의 말과 행동
b. 판단 불가 범위 : 그의 내면(속생각, 동기, 의도, 영적 상태)
c. 타인의 내면 판단은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d. 사제에게도 피부병(언행에 상응)에만 허용됨.
e. 내면판단은 스스로에만 가능.
@해바라기
거듭남.
A. 거듭남의 표시 : 악을 혐오하게 됨.
B. 거듭남 중 주의점
a. 악을 혐오하다가 악인을 혐오할까 저어됨.
b. 악인을 변호하다가 악을 변호할까 저어됨.
@해바라기 지상에서 천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언뜻 보면 좋은 것도 같으나 지상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라는 부드러운 조언을 듣고 끝나서는 안되고 사람이면서 천사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이것이 혹시 더러운 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마음 내부를 이 잡듯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바라기 15년 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어요. 이것이 진실이 아닐까 하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려 볼께요.
수많은 사람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호소를 듣고 눈물을 닦으러 가야 한다 -- 지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모두 천국으로 데려갈 수만 있다면 그들 대신 지옥으로 가도 좋다
그래? 너의 바람대로 저 사람들을 천국으로 데려가겠으니 너는 저들을 위하여 이 불타는 장작불 위로 몸을 던져보거라
절망하며 기껏 바닥에 주저앉아 울거면서 고문이 무서워 숨던 연약한 정신을 가지고 괜히 호들갑만 떠는 거였어요. 대신 어쩌고 싶다는 발상 자체가 제영혼이나 걱정해야할 매우 위험천만한 감정이라 여겨져요.
@딸꽁이 어려운 질문을 품고 계셨군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도가 그런 정신이지 싶어요. 그런데 불교에선 깨달으면 바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깨달았지만 바로 열반에 들길 거부하고 중생을 구제하겠다 발심할 수 있고 그 마음의 실행을 보살도라고 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체계에선 깨달음이 곧 거듭남은 아니고 일생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살의 마음이 고귀하고 닯고싶지만 선뜻 제가 품겠다고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누구나 수많은 시험들을 거쳐야 한다고 하고, 저 자신의 중심사랑은 저도 모르게 하신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다른 분들이 보살도를 행하시는 것엔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해바라기 거듭남은 일생의 과정이 필요하고 수많은 시험들을 거쳐야 하며 자기자신의 중심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하신다. 정답을 들으니 기쁘고 가볍습니다. 마을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숨겨진 보물 같은 말씀이지만 거기에 있던 때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온 지금은 전혀 또다른 세계예요.
@딸꽁이 이 경우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말이 기억나요. 묻지 않는 자에게 해답을 던져주지 말아라..
꽁이님은 '묻는 자'이셨고 그래서 해답을 찾아다니신 것이지요. 발견의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 것이구요.
그러나 위의 생각이나 보살도에 대한 의견은 어디까지나 제 사고와 경험치에서 나온 소승적 사견이구요, 새교회에도 대승적 보살님들이 계셨어요. 특히 초창기에.. 예를 들면 미국 서부개척 당시 사과농장 일꾼이던 Johnny Appleseed 라는 전설적 인물은 사과씨와 함께 새진리를 서부 방방곡곡 집집마다 전파하고 다니신 분으로 유명해요. 꽁이님이 한국의 애플시드 여사가 되실 수도 있으니 너무 제 말에 개의치 마시기 바랍니다.
@해바라기 Johnny도 라기만큼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천사도 아닌 인간이 타인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판단력 부재나 불우한 환경, 배움부족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는 것은 인간적 정(사대교리에서 말하는 '그것은 오직 정일 뿐이다' 에 속하는 종류의)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요?
@딸꽁이 인간적 정이나 너그러움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그 '사람'을 옹호하는 생각을 한 뒤에 그의 '악'에 대해 어떤 행동과 태도를 가질 것인가에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 안에서 그의 악에 대해 합리화를 해줘버린 것인가, 즉 그 악을 계속 방치할 것인가의 문제가 따르는 것이죠.
그 타인이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면 신약에 '네 형제가 잘못하거든...' 하신 가르침의 단계대로 따르는 게 원칙이라고 해요.
1. 혼자 가서 그 잘못을 알려줄 것
2. 그래도 회개의 기미가 없으면 두 셋의 증인과 함께,
3. 그래도 안되면 교회에 알릴 것
4. 그래도 안되거든 이방인처럼 여길 것 (즉 그냥 내버려 둘 것).
@딸꽁이
우리 휴먼들은 대부분의 경우 마음이 약하여 일대일로 면전에 대고 악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지 못합니다.
즉 신약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고 뒤바뀐 순서로 처리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바로 마지막 단계로 가서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든가 (1, 2, 3단계 모두 생략),
혼자서는 그 사람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남들이 함께 있을 때 다수의 힘을 믿고 말을 꺼내거나 (1단계 건너 뛰고 2단계만 시행)
당사자 뒤에서 남들과만 그의 허물을 '논의'하게 되죠. 논의라는 이름의 가십. (1, 2단계 생략, 3단계의 왜곡된 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