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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담 / 본지 편집주간 임 애 월
꽉 찬 여유, 미니멀리즘적 여백의 美學
강 희 동 시인
- 입춘 지난 2월 어느 날 오후
강희동 시인님을 만나러 안동에 다녀왔다.
강 시인님은 여전히 겉치레도 없고 꾸밈도 없는
그만의 직설화법으로 투박하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
임애월: 강희동 시인님, 안녕하세요? 햇살이 이렇게 따사로운 걸 보니 올해는 봄이 좀 일찍 오려나 봅니다.
강희동 : 네, 안녕하세요? 따뜻해서 좋긴 하지만 어째 좀 불안합니다. 세상일이 그렇듯이 겨울은 겨울답고 봄은 봄다워야 하는데, 요즘 날씨가 이상기후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삶이 그렇듯이 기후 또한 제때 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애월 :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시인님께선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강희동 : 요사이는 날씨도 포근하여 아침에는 들길과 샛강 둑방길을 걸으며 봄을 맞으러 나다닙니다. 때로 곡차도 좀 마시고 복숭아밭 가를 어정거리기도 하고요.
임애월 : 어정거린다는 표현이 참 재미있네요. 이제 아예 고향인 안동으로 낙향을 하신 건가요? 오신 지는 몇 년이나 되었나요?
강희동 : 완전히 낙향했다고 봐야지요. 30년 넘게 살아온 서울 변방의 생활보다 이제 시골 정경에 더 익숙해졌으니까요. 2021년 2월에 콘테이너 박스에 책과 개인 사물을 싣고 전격적으로 내려왔으니까, 이제 만 3년이 되었네요.
임애월 : 도시에서 오래 살다가 시골로 오셨는데 적응은 잘하시는지 궁금하네요.(웃음)
강희동 : 저는 원래 안동시에서도 면 단위 농촌 출신이라 시골 생활환경에 익숙합니다. 비교적 적응을 잘한다고 봐야겠지요. 단지 식생활이 아직 편치 않아 자주 건너뛰는 편입니다. 요즘은 굶지 않으려고 식생활을 개선하여, 하루 두 끼 먹고 살기 운동이나 간편식으로 길들이려 합니다. 역시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인 모양입니다.
임애월 : 복숭아나무를 심으셨다고요?
농사 일은 할만하신가요?
강희동 : 2020년 11월에 복숭아나무를 심었고, 그 복숭아나무도 뿌리를 내려 작년에는 120박스 정도 수확을 했답니다. 복숭아나무처럼 저도 이제 시골생활에 어느 정도는 뿌리를 내린 것 같네요.
복숭아나무를 먼저 심은 이유는, 변덕이 심한 제가 시골생활을 포기할 것을 우려하여 미리 뿌리 내리라고 심었었는데... 요사이는 나무가 자라는 걸 보는 게 낙이 되었습니다. 또 다시 농번기가 돌아오고 있네요.
임애월 : ‘안동’하면 부사인데... 왜 복숭아나무를 심으셨는지요?
강희동: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면 소재지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십 리 남짓 하굣길이 온통 과수원이었어요. 그때 과수원집을 무척 부러워했거든요. 살면서 과수원을 한번 해보는 것이 제 희망사항이었다고나 할까요.
우리 동네는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봄날 복사꽃이 만발했었고요. 그 시절 복숭아는 사과보다 흔치 않은 과일이었어요. 꽃도 여인의 분 냄새 같아 매혹스럽지만 그 색깔이 꼭 사춘기 소녀의 연지볼 같은 것이 그냥 좋았어요. 그래서 심었습니다. 하하
임애월 : 그래요. 그런데 복숭아 농사가 쉽지는 않으실 텐데요.
강희동: 물론 쉽지 않지요. 복숭아는 2월 전지를 시작으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제초작업, 방제, 적과 등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여 8월 초면 수확이 끝나기 때문에 일단은 그 경작 기간이 짧아서 좋아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농번기가 끝나면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어정거릴 수 있어 좋습니다. 농사일에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고요. 또 농사짓는 즐거움을 얻으려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임애월 : 아, 그러시군요. 잘 적응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웃음)
화제를 전환해 볼까요? 안동시에서 내건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문구 때문에, 저는 안동에 올 때마다 저의 정신세계를 다시 돌아보기도 한답니다. 오늘도 그랬어요. 예로부터 안동은 유학자들의 본향이고 저명한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으니, 지금 안동에 사시는 분들은 그 슬로건에 대한 압박(?)이 저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요. 혹시 자신의 정체성이나 정신문화의 수준에 대한 강박 같은 건 없으신가요?
강희동 : 아마도 퇴계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양반문화 때문에 슬로건으로 내건 모양인데, 어찌 보면 좀 부담스러운 문구입니다. 안동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행동거지나 의식에 있어서 선제적으로 실천하는 무엇이 돋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저 자신도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다른 도시보다 실천에 있어 구별되는 뚜렷함(?)이 약한 편입니다. 즉 말로만 정신문화의 수도이지 거리 질서의식이나, 차량 운행 예절, 양보정신 등, 실천에 있어서 낯 뜨거운 점이 있습니다. 앞으로 명실상부한 정신문화의 수도가 되게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임애월 : 그거야 어디 안동만 그런가요?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 모두 남을 먼저 배려하는 의식수준이 조금 더 상향되기를 바라봅니다.
시인님의 어린 시절 재미있는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죄송하지만 좀 악동이었을 것 같거든요. ㅎㅎ
강희동 : 저는 사실 모성애 결핍증이 좀 있는 듯합니다. 부친은 기관사셨어요. 강원도 태백에서 연탄을 운송하는 게 업무여서, 저는 안동에 남겨진 채 조부모 밑에서 성장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제가 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 무척 불만스러웠어요. 방과 후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십 리 남짓 하굣길은 온통 사과꽃이 피었고, 그 길은 항상 더디었지요. 집에 와 봐도 모두 들에 나가 일하시느라 반겨주는 사람은 하나 없고, 텅 빈 집 컴컴한 마루 공간을 고양이만 후다닥 뛰쳐나가는 것이 그때 일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기가 싫었어요. 고아나 진배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요. 먼지 뽀얗게 이는 신작로를 혼자서 타박타박 걸어오던 그때 그 시간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내장된 외로움이 저를 키웠지 않나 싶습니다. 대자연의 넓은 품속에서 홀로 보고 듣고 스며든 내용을 이야기로 꾸미며 혼자 글짓기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부재에 대한 외로움과 허전함으로 가득 찬 공상은 우울하였지만, 그래도 순발력이 뒤섞인 엉뚱함이 많은 아이였죠. 그 엉뚱함과 순발력으로 별 어려움 없이 각종 글짓기대회에 나가서 상을 휩쓸기도 했었지요. 그 이후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어요. 아마도 외로운 생활환경이 글을 쓰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임애월 : 아하,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 외로운 소년이 되었군요. 사실 외로움은 글을 쓰게 하는 맨 처음 동기가 되기도 하지요.
강희동 : 그래서 술도 일찍 시작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 살다 보니 일손을 자주 거들어야 했어요. 특히 초여름 모심기 철이 되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심부름을 했거든요. 새참으로 주로 술 심부름이었어요. 집에서 강가 들녘 일터까지는 족히 오리(약 2km)나 되는 거리였는데 거기까지 두되들이(4L) 술주전자를 들고 논으로 가는 길은 매우 지겹고 힘든 일이었지요.
임애월 : 맞아요. 그 시절에는 시골아이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더랬지요.
강희동 : 모심기 철이라 땀은 뻘뻘 나지요. 술주전자는 힘에 겹지요. 길은 멀지요. 거의 탈진상태였을 때, 봇도랑가 그늘에 쉬면서 꾀를 내었어요. 목도 마르고 하니 저걸로 목을 축이고 가면 무게도 줄고 갈증도 해소하고... 좋은 생각이라고 혼자 쾌재를 불렀어요. 주전자 뚜껑으로 여러 번 마셨어요. 어찔어찔한 것이 황홀하더라고요. 막걸리는 이미 어른들이 마시는 것을 자주 봐 왔던 터라 어색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마시다 보니 주전자의 막걸리가 3분의 1가량이 줄었어요. 너무 많이 마셔버렸지요.
임애월 : 아이쿠나~ 저런저런, 그래서 어떻게 수습하셨나요? (웃음)
강희동 : 흐흐... 적당하게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길가 도랑물을 퍼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지요, 비틀거리는 걸음을 억지로 수습하여 간신히 전달했어요. 목마른 모심기 일꾼 하나가 “자가 왜 저리 얼굴이 뻘겋노, 쪼매한 아가 저 큰 주전자를 들고 올라카이 얼매나 힘이 들었겠노 얼굴이 다 익었다. 애썼다”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모면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들이 “술이 와 이리 싱겁노? 이놈의 도가 놈들, 물을 너무 많이 퍼 넣어 술이 싱겁네, 몹쓸 놈들. 술도가 바꿔라”고 술도가를 나무라셨는데 저는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습니다. (웃음)
임애월 : 죄없는 술도가만 욕을 먹은 셈이네요.
하하하 재미있습니다.
강희동 : 아마 그때부터 술맛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이후 방학이면 논둑으로 들판으로 신나게 연을 날리다가도 집으로 쫓아 들어와 사랑방 벽장 속에 있는 할배 소주 됫병에서 한 잔씩 훔쳐 마시고 나가 뛰어놀곤 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는 질풍노도의 예민한 시기라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어떤 날은 지붕 위에 올라가 용마루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신 적도 있습니다. 들판 건너 미천강 잔물결 치는 윤슬이 눈 안으로 들어오고, 멀리 울울이 병풍을 둘러친 산들이 수군거리며 이야기하는 형상을 바라보면 뭔가 가슴이 탁 트이는 위로를 받기도 했거든요.
임애월 : 지붕 용마루 위에서 술을 마셨다니 참...
강 시인님답네요. (웃음)
강희동 :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그 집 지붕이 새나? 요새 자주 지붕 위에 앉아 있네” 하시며 혀를 찰 뿐이었죠. 사실 이 얘기는 저의 부모님도 모르는, 아직까지도 비밀스런 사건이랍니다. ㅎ
임애월: 네네, 악동님의 비밀 하나 공유합니다. (웃음)
등단 무렵은 어떠셨는지요?
강희동 : 사실 저는 문청시절 신춘문예에 몇 번 떨어지고 나서, 살아가는 길과 거리가 멀다고 글쓰기를 포기하고 있었어요. 삼십대 초반(1990년대)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투병생활로 지독한 상실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요. 그때 아버지는 서울 강북 삼성병원에 오래 입원하고 계셨는데, 참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힘들수록 혼자서 습관처럼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곤 했어요. 어느 날은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어정거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교보문고에서 문학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기도 했었어요. 몇몇 문학 잡지의 작품들을 읽어보면서 문예지에 산문을 써서 보내기도 했었고요. 어떤 문예지 관계자는 제 시를 여러 문예지에 실어주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실질적인 등단이라면 1999년에 시집 출간인 셈이지요.
저녁을 넘어
굴참나무 어둠의 숲에
요요히 파동치는 부엉이 소리
곳집을 돌아
언덕 넘어 무당집
대나무 끝에 매달린 붉은 댕기 바람에 요동치고
징소리는 밤새 동네를 흔들었다
할미꽃 고개 숙인 밭둑가에
애치묘 하나 엎어 놓소
전설처럼 지는 복사꽃잎 맞으며
부부는 밭둑에 퍼질러
진종일 울었다
- 「전설 속에 묻힌 풍경」 전문
임애월 : 그 첫 시집의 표제시인데 신세훈 시인님은 “토속적인 죽음과 삶과 이별의 미학이 고향 풍경 속에 담겨있다”고 평하셨어요.
“부엉이 소리”나 “무당집” “징소리” “애치묘” 등이 주는 이미지가 정말 전설 속에 나올 듯한, 조금은 오컬트한 토속적 정서를 끌어냅니다. 읽다보면 이상한 긴장감이 살짝 생기기도 하네요.
강희동 : 2,000부를 발행하여 세상에 유포하면서 저의 문단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남태령을 넘어 서울을 기웃거리며 행사에 참여도 하면서 몇 년 문단의 시간을 보내던 중 경기시인협회 임병호 시인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이 통하는 시인 여럿을 만나게 되었어요. 또한 안동에 있는 아주 오래된 동인지 <글밭>에 나가며 활동했습니다. 그때에는 안동의 <글밭>에도 임병호 선배 시인님이 계셨어요. 시를 쓰는 두 임병호 시인님은 동명이인이었지요. 나이는 동갑인데 수원의 임병호 시인님이 1개월 형님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두 분은 서로 깍듯하게 형님, 아우 하면서 우의를 다지는 멋스런 선비정신과 해학을 가지신 분들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이고 좋은 분들과 함께 문학단체 활동을 하면서, 시인으로 거듭나는데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임애월 : 아하, 등단 초기에 어떤 분을 만나느냐가 개인의 문학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하지요.
두 번째 시집 손이 차가워지면 세상이 쓸쓸해진다를 2005년도에 출간하셨네요. 故 김대규 선생님은 이 작품집을 ‘유실성의 감성시학’이라고 평하셨어요. ‘시상의 전개가 유실성을 지향하고 있는데 물과 관계되는 젖음의 정서가 주도적이고, 그 모든 시적장치들이 궁극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귀일되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 그리운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상재하기도 했네요?
강희동 : 그 당시 수원에 임병호 시인님이 계셨다면, 안양에는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명망 높은 김대규 시인님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시집 해설을 김대규 선생께 부탁드린다고 주변에 말했더니, 모두들 그분은 잘 안 써 줄 거라 했어요. 부담을 가지고 전화를 드렸는데 김대규 시인님께서는, 강 시인을 눈여겨 봐 오던 터인데 알았다며 쾌히 승낙하시고 해설을 써 주셨어요. 육필로 원고지에 비교적 자세하고 길게 논문형식으로 써주셨지요. 지금도 육필로 쓰신 그 원고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후배에게 선비 기질을 가지신 분이 해설을 써 주신 것은 상당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기차도 사람도 기다림도 멈춤도 잊었다
녹슨 시간의 먼지가 측백나무 잎에 쌓이고
플랫폼을 걸어나간 이야기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축을 흔들고 지나간 사연들이 침목에 누워
녹슨 옛이야기를 철길로 전해주고 있었다
드문드문 눈발 속에 나무지붕을 이고 선 역사의 지친 얼굴에
내 살아온 세월이 희미하게 함몰되고 있었다
아무도 떠나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다
동박새 몇 마리 눈길을 날아 측백나무 품에 바스라지고
바람에 누워 긋는 세찬 눈발 속에 멈춤도 기다림도
마알간 내 사랑도 묻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 「겨울 무릉역」 전문
임애월 : 아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 시집에서 「겨울 무릉역」이라는 시를 가져와 봤어요. 이 시에 등장하는 무릉역은 실존하는 역인가요?
강희동 : 네, 무릉역은 중앙선의 남쪽으로, 안동역 바로 옆에 있던 간이역인데 안동역이 서쪽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지금은 폐쇄된 역입니다. 시의 내용처럼 역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우리 마을 근처에 있어서 예전에는 이 역을 통하여 시내에 있는 중, 고등학교를 통학하곤 했지요.
임애월 : 네에, 역이름부터 왠지 서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았다” 등 과거형의 서술로 미루어 볼 때 모두 떠나가고 오지 않는 “무릉역”은 참 쓸쓸한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혹시... 그곳에 시인님의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
강희동 : 그 역을 통하여 울 어매는 강원도 태백에서 검암리 집으로 매월 조부모의 서답 빨래를 하러 오시곤 했지요. 학교 앞 교문을 통해서 대구 방면으로 난 비포장 신작로 쪽, 버스가 뽀얗게 먼지를 일구며 사라진 소실점으로부터 한 여인이 걸어옵니다. 그 여인의 형체는 점점 커지며 학교 교문 쪽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도 그리던 저의 어매지요. 길 양쪽으로 도열해 선 미루나무 X자 소실점이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인상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어매, 미루나무, 소실점, 측백나무, 우중충한 역사, 측백나무 품으로 포르륵 날아드는 새떼 등... 모두가 무릉역과 연계되는 풍광입니다.
임애월 : 소중한 기억들로 채워진 역이군요.
사람에 대한 가치를 높이 둔다는 것은 인간적인 정서가 풍부하다는 의미인데 시인님은 인간관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인가요? 김대규 선생님이 언급하셨듯, 「지금 그리운 사람」 등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사람을 무한 신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어요.
강희동 :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간 대신 기계가 더 유용하게 쓰이는 시대이다 보니 진짜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불신으로 일그러진 작금입니다. 시인들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사람의 시를 써야겠지요. 아픔도 그리움이 되는 그런 시를 써보고 싶었나 봅니다. ㅎㅎ
사람의 그늘에서도
늘 푸르게 서 웃는 함박꽃
새삼 사람이 그립다
촘촘히 삶을 바느질하는 사람의 마을
재봉틀로 바삐 지나간 시간의 흔적 속
오래 머무름 없이 그리운 사람 있다
세상 모퉁이 이마 맞대다 보면
부드러우며 단호하고 바쁘게 여유로운
문득, 반듯하게 단정한 사람 냄새 젖어온다
꽉 찬 여유, 동양화의 여백으로 그냥
그 자리에 허허로운 듯 진솔한 그런 사람
지금, 그리워진다
- 「지금 그리운 사람」 전문
임애월 : 요즘 AI니, 메타버스니 하면서 눈이 팽팽 돌아가도록 빠르게 변하는 사회현상이 때로 어지러울 때가 있거든요. 그럴수록 더 사람을 믿고 의지해야겠지요?
강희동 : 물론입니다. 그럴수록 시인들은 사람냄새 나는 시를 쓰고, 다변화된 문화예술이 존중되는 인문학이 풍성한 사회를 만들어야겠지요. 물론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시스템도 함께 작동할 때 사람끼리 서로서로 신뢰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임애월 : 네, 희망사항입니다.
세 번째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은 어딘지 순박해 보이면서도 호쾌한 시인님의 이미지와 걸맞게 시편들이 미니멀리즘적 솔직함으로 다가옵니다. 시편들을 읽다보면 가장 원초적인 누드기법 속에 삶의 해학이 녹아있음을 느낄 수가 있거든요.
사월에
산 뻐꾹새
절규
뚝 떼어
산빛 좋은
마루에 널었더니
녹음 몰래
분단장한 계집이
이 산 저 산 막 타네.
- 「진달래」 전문
화사하게 차려입고 “이 산 저 산 막 타”는 “분단장한 계집” 진달래의 농익은 분홍빛 자태로 봄은 바야흐로 절정으로 내달리네요. 작품 속의 시어들은 겉치레나 형식적인 제스처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냄새 짙게 풍기는 시인님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순수 오브제에 대한 원초적인 표현들은 다분히 의도적인 시적장치로 보이는데 그런 시어들은 이 시집 속의 여러 시편에서 나타나고 있네요.
강희동 : 해학적 장치를 살짝 가동시켰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와는 좀 다른 느낌의 진달래 말입니다. 뻐꾸기는 남정네 냄새를 풍기며 울고, 한 소절씩 뻐꾹 거릴 때마다, 가슴 뛰는 진달래가 한 뭉치씩 피는 듯했어요. 그러자 온 산이 기다렸다는 듯 봄꽃들이 마구 피어나는 거예요. 사람의 동네 꽃잔치처럼 처녀들의 가슴은 얼마나 두근거렸겠어요. 지금은 너도나도 도시로 떠나고 산에 꽃이 피든 새가 울든 “봄이 와도 봄 같지 않(春來不似春)”은 동네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임애월 : 아... 네, 감각적이라 읽는 재미가 있네요.
달도 찌그러진
늦은 밤
취자 왈
학문은 똥구멍이요
시詩~이는 오줌 떨치는 소리라
흐흐흐-.
- 「취자시론(醉者詩論)」전문
이 짧은 시에서도 고상하게 윤색하지 않은 미니멀리즘적인 누드기법이 돋보입니다. 달이 이지러진 밤이 아니라 “찌그러진” 밤에 거나하게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 담벼락에 대고 시~ 하면서 어떤 詩論을 곱씹었을까요. 학문은 항문과 발음이 같으므로 “학문은 똥구멍”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데... 물론 이 시의 화자는 “취자”이므로 이런 표현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겠습니다. 취중 진담이라고, 이 시 속의 화자는 죽은 학문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행세깨나 하려는 자들, 미숙아가 된 詩를 껴안고 그래도 제 새끼만은 잘 났다고 으스대는 팔불출 시인들을 질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돌아서며 홀로 “흐흐흐-” 웃는 대목에서는 저절로 함께 미소를 짓게 되는데 시인님의 평소 분위기를 떠올리면 참 시인님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웃음)
강희동 : 사실입니다. 술을 퍼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근처 초등학교 담벼락에 오줌을 갈긴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번득 스쳐가는 생각이 꾸물거리는 것보다 솔직하게 쏟아버리는 것이 시원하고 직설적인 ‘詩’가 아닌가를 생각했습니다. 취기와 광기를 섞어 내뱉어 본 것입니다.
임애월 : 이승하 시인은 “국적불명의 시를 쓰고 있는 이 시대에, 강희동의 시를 읽으면 잃어버린 시원의 바람소리, 태고의 물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면서 “때로는 선현의 목소리, 혹은 고승의 법어를 듣고 있는 느낌도 든다”고 평하셨어요. 이 어수선한 세상에서 고집스러운 사유로 시인님만의 시세계를 확장해 간다는 의미겠지요.
강희동 : 사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시풍으로 자기만의 쓸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지 않겠어요? 그러나 요즘 난무하는 시들은 거의 사이비(似而非) 같은 시들이지요.똑 같지는 않지만 비슷비슷한...
아직까지 완성도가 높은 좋은 시를 쓰지 못해 저도 헤매고 있습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화두입니다. 나만의 색과 향을 지닌 나만의 시를 위해 더 정진해야겠지요.
임애월 : 자기가 쓴 시에 만족하는 시인이 얼마나 될까요? 60년 동안 시를 써오신 어느 원로시인은 자신을 소개할 때 ’시인‘이라는 말을 부끄러워 못쓰신답니다. ‘시를 공부하는 아무개입니다’라고 하신다네요. 귀감이 되는 일화입니다.
2019년에 출간하신 시선집 세한도 는 그 글씨체 때문에 출판기념 전시회에서 더 주목을 끌었다고 기억합니다. 개성 있는 글씨체가 참 매력적인데요. 서예는 얼마나 오랫동안 하셨는지요?
강희동 : 사실 붓을 잡은 지는 한 25년 정도 됩니다. 게으른 성격에 열심히 하지 않아 남에게 내보일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아쉬운 대로 제 나름의 표현을 할 정도입니다. 그걸 건방지게 내걸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임애월 : 타고난 재주인가 봅니다. 제가 서예 쪽에 문외한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강 시인님의 붓글씨는 그림 같거든요. 흔한 글씨체가 아니라서 질문드립니다. 독창적으로 개발하신 ‘강희동체’인가요?
강희동 : 전통서예로 기초를 닦은 후 ‘현대서예’를 했습니다. 현대서예란 옛 선인들의 필법을 그대로 흉내 내는 ‘임서’에서 벗어나 제 나름대로 개성 있는 자기표현의 글씨를 쓰는 것입니다. 선을 살리되 글씨를 정형적인 형체에 구애받지 않고 글씨가 지닌 내용을 더듬어 상형의 형식을 가미하는 기법입니다. 그렇다고 요사이 유행하는 ‘캘리그라피’는 아닙니다. 글씨를 회화적으로 쓰되 선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전체 균형과 살아있는 선을 회화적으로 표현해내는 서예입니다. 사실 싫증 나지 않고 매력이 있는 개성적인 글씨지요. 그러니 나름대로 ‘강희동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ㅎㅎ 그러나 남들에게 자랑할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아직도 갈고 닦아야 할 길이 아득하거든요.
임애월 : 다시 봐도 멋지고 독특합니다.
작년에 출간한 시집 정숙한 목련은 돌아가신 부인에 대한 애틋한 감성이 주조를 이루는데, 박현솔 시인은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형상화되고 있으며, 그녀의 영혼을 위로하는 불교적 염원이 나타나고 있다. 아내의 부재를 사실적으로 인지하려는 현실인식과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해 주는 자연의 새로운 발견이 있고, 다시 생에 다가가 보려는 의지와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큰 슬픔을 당하셨어요.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일은 당신의 첫 기일
아직까지 날 나무라듯
“원규 아빠” 목소리 들리는 듯 한데
하마 감꽃은 하얗게 지고
멀리 서쪽으로 웃어번지는 새털구름
산다는 것은 가차이 듣고 만지고 머무는 것
못다한 지난 시절 멈칫거리던 풍경들이
하얗게 망초꽃 대궁으로 일어선다
묘봉에 잔디는 푸른 결속으로 촘촘한데
이렇게 또 한 해가 돌아와 어제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아우르며
푸른 건반을 두드리는 오월
정작 살아있는 나는 영양실조를 업고
하루 두 끼를 힘겹게 때우며
코로나 속으로 기어들고 있다
- 「정숙한 목련은 지고」 전문
사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무심한 듯 처절하게 절절합니다. “아직까지 날 나무라듯”이라는 구절에서는 살아있을 때 잘하지 못한 회한 같은 게 언뜻 보입니다.
강희동 : 그렇습니다. 항상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공기 같은 사람이었지요. 말씀하셨듯 살아있을 때 잘 대해 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쓰립니다. 부부(夫婦)란 하나가 부재 시 부(夫)가 되는 것. 이제야 배가 고파옵니다. 공복으로 지친 가슴에 진한 아쉬움으로 그립습니다.
임애월 : 부부란 함께 살아있을 때는 영원히 함께할 줄 알고 서로 소중하게 배려하지 못하고 사는 게 현실이잖아요? 좀 직설적인 우문입니다만, 사모님을 생각하실 때 어떤 부분이 제일 후회 되시는지요?
강희동 : 사실 저는 아내에게 다정다감하지도 못했고 뭘 잘 해 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술이나 퍼마시고 말도 아무렇게나 하고 참 매력도 없이 무심한 사내였지요.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을 문득문득 느끼고는 있었지만, 좀 더 늙어서 둘이서 살 때는 잘 모시고 살려고 남겨 두었었는데, 세상일이란 무엇 하나 미리 알 수 없듯이 갑자기 떠나버리고 나니 정말 쓰라립니다. 남들처럼 손을 잡고 들길도 걸어보고 뒷산에 올라 좀 허풍도 치며 잘난 척도 하고 싶었는데... 떠나고 나니 있을 때 잘할 걸 후회가 막급입니다.
그대 오지 않으니
그대에게로 내가 간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고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일렁이는 바람의 향방
그대 피지 않으니 나 그만
시들어 지고말지니
그대여 꽃 피우지 마라
처연히 꽃 지는 모습에
아름다움은 저녁노을로 울고
나 또한 어둑해지는 밤길을 밟고
오래 그대를 그려 젖는다
- 「그냥 그대로 그대에게」 전문
임애월 : ‘상실과 부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시집 정숙한 목련은 돌아가신 사모님께 오롯이 바치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저 세상에 계시지만 강 시인님의 지극한 마음을 알아주실 것 같습니다.
강희동 : 참 괜찮은 여인이었는데 그땐 그걸 왜 몰랐을까요. 헌신적이고 조용한 산목련처럼 맑고 정숙한 여인이었어요. 기차가 떠난 뒤 뒤늦은 기적소리의 여운처럼 마음이 아련합니다. “있을 때 잘” 하라는 유행가 가사가 이래서 생겨났나 봅니다.
임애월 : 다시 화제방향을 바꾸어 볼까요. 요즘 서각을 하신다고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강희동 : 사람 나이 육십 정도 되면 숨을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했어요. 그 기념으로 회갑년 때 ‘시서전’을 열어 잔재주를 보인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더 이 세상에서 어정거릴 수 있다면, 그때는 제 시를 제가 판각으로 새겨 나에게 선물해 주고 싶어요. 죽지 않고 잘 살았다고 다독이는 기념으로 70세에 ‘시화판각전’을 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 열심히 연마하고 있답니다. 이미 66세가 되었으니 아직 4년 정도 남아있네요. 하하
임애월 : 서각이 주는 제일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강희동 : 각이란 칼로 무엇을 파서 새기는 작업입니다. 글씨를 새기는 것을 서각이라 하지요. 글을 읽는 것보다 손으로 나무에 새겨 보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글의 혼을 나무에 심고 있는 느낌이 들지요. 좋은 글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는 심정으로 나무판에 담아보는 하나의 정신수련이라 생각합니다. 나무판에 한 글자 한 글자... 붓 대신 칼이 써나가는 구절들. 그 과정을 통하여 좀 더 다듬어지고 촘촘해지는 시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매력입니다.
임애월 : 칼이 써나가는 글... 대단하십니다.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쓰고, 거기다가 서각까지 마친다면 완벽한 자기만의 작품이 탄생하겠네요. 재주가 참 많으신 것 같아요.
강희동 : 재주라기보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한 방편으로 이것저것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번잡스럽게 하지 않아도 인생은 지나가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시간은 지나가지만,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그냥 꿈적거려 보는 것입니다. 그 부산물로 얻은 결과들이지만 서예나 시, 서각 모두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냥 내 속을 나타내 보이는 어설픈 수준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임애월 : 70세가 되고 작품들이 완성되어 전시회를 열면 인기가 대단할 것 같습니다.
강희동 : 칠순이 되면 그동안 죽지 않고 잘 살았다고, 어영부영 그냥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 나에게 주는 기념 선물로 전시회를 할 예정입니다. 누구에게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꿈적거리며 살아온 기념으로 내다 걸어 볼 심산입니다.
임애월 :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강희동 : 하하 아닙니다. 보름달을 보고 놀라 짖어대는 우리집 깜숙이와 함께 그냥 복숭아 농사나 지으며 어설픈 농부로 살아 보려고 해요. 그러다 지치면 그냥 쉬면서 욕심 없는 동네 늙은이가 되어가겠지요. 서리맞아 빛바랜 풀이 되겠지요. 그런 시를 쓰며 살아가겠지요.
임애월 : 욕망의 끝자락을 밟고 오는 평화는 아주 편안하고 달콤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시인」이라는 작품 한 편 읽으며 오늘 대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군가 때리는 자 있어
소리로 살아 종이 되었다
맞을수록 넘치고 번져
오래 맴도는 여운
나 누구에게 예배당 종처럼 맞아
청아한 제 소리 낼 수 있을까
스스로의 울음으로 날아가
미몽을 깨우는 종소리 될 수 있을까
- 「시인」 전문
임애월 : 이것 저것 바쁘실 텐데 긴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강희동 : 제가 고맙습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저를 여러모로 뜯어보게 되어 부끄럽지만, 좀 더 시를 잘 쓰라는 격려로 여기겠습니다. 「시인」에 나오는 여운으로 오래 시를 더듬거리며 더 좋은 시 쓰기에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 인용한 「시인」 속의 종처럼
맞아서 청아한 소리를 낼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맞아보고 싶은 날들이다.
세상에 대한 욕망의 부피를 줄이며
나무 속으로 한 글자 한 글자
詩의 의미를 심고 있는 강희동 시인
그의 시들은 이제 곧 푸른 잎들이 무성하게 돋아나
이 지상에 시원하고 큰 그늘을 만들어 가리라. -
■□ 시인의 자선시
십구공탄 외 4편
강 희 동
내 뜨거움 모두
그대에게 줄 수 있어
가볍다
내 무거움 세상에게
모두 태울 수 있어
뜨거웠다
그리고 버려져
진솔한 땅이 되어
가고 있었다
꼴
꼴좋다
만드는 것이 꼴
세모나 네모나 모진 것 매 한 가지
둥근 원이 되기 위해 깎이고 닳아
구불구불 막힘을 돌아 원만하게 되는 길
물돌이동 돌아가는 낙동강 사행천도
서리 날카로운 모진 시절 내리고
봄볕에 자지러지듯 꽃웃음 날려
노랗게 냄새 익어가는 세상 꼴 꿈꾸며
매서운 겨울 잔소리도 이겨낸다
그곳에 들고 싶다
적막으로 잠든 새벽에
글을 쓰네
그대에게 밤새 안부를 묻네
동이 트려면 새벽이 엷어지고
굴뚝새가 잔소리로 울어야 하네
부시시한 해가 산허리 짚고 올라
아침이 되어야 하네
세상은 이렇듯 수평으로 깨어나지만
숲속에는 아직 어둠이
잣나무 가지에 걸려있고
너무 일찍 꽃 떨군 생강나무
아래에도 눈물처럼 묻어있네
아파하지 말라 밤새 찬 서리는
내 잠든 사이에도 숲속으로 내렸다
모두가 평등으로 눕기에 산과 들이 너무 고르지 않다
맑은 햇살 몰고 아침이 온다
서리 맞은 금빛 포구에
설익은 공단을 옆구리에 끼고
늦가을 은빛 서리 앞세워 날이 밝아온다
또 하루가 지나면 내가 지어 올린
집들이 무사하고 따뜻할까
누구도 봐주지 않는 세상 모퉁이에
탕 탕 소리 나지 않는 못질을 한다
그대여 깨어있는가
나는 어찌 이 부질없는 세상으로 걸어 나와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처럼
나와는 무관할 듯한 시공에
바느질하고 있는가
사무치도록 허전한 발걸음
허공에 내딛고 있는가
새벽이 부윰하게 엷어져도 닭 울음은 없네
똑딱이던 시계 소리도 멈춘 지 오래
이음과 단절의 경계가 없는 시공에서
어디엔가 묻혀있을 또 다른 나에게 편지를 쓴다
미지여, 내 알지 못하는 세계여
나는 아직 몽매한 꿈길에서 찬 서리 맞아
뒤뚱거리며 기우는 뱃머리 부여잡으며
길을 나선다
물 위에 머물던 목선은 숲으로 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으로 간다
송백이 울울이 빽빽한 산림에
깊숙이 묻혀 돌아올 길
아득한 니르바나의 꿈을 꾼다
겨울 고운사에서
겨울 고운사에 가 보았다
고운은 오래전 멀리 흘러나가고
외로운 구름 조각 차운 하늘에 오락가락 떠 있다
일주문 들어서자
그때의 험궂은 사천왕 늙지도 않고
날 잡아먹을 듯 버티어 앉아 있고
가람 중앙을 그어 흐르는 도솔천이
마른 개울로 기침 없는 입 다신다
천년 고목 어우러진 숲길 허적여
가슴 아린 중생되어 불계에 첫발 들여놓으면
무엇이 허하고 망하고 아프던가
오래 목은 굴참나무가 상처 진
제 등걸 내보이며 넌지시 물어온다
새는 울지 않았다
절벽에 매달리던 얼음새도
제 날개를 펴지 않았다
고운이다
달은 천 개의 강에 도장을 찍고
관세음보살 천 개의 눈으로 소리를 보고 있다
무얼 그리 아파하는가
오고 가고 또 흐르는 걸
낡은 기와를 바꾸고자 새 기와 불사에 이름을 올리고
무턱대고 나비 절을 하며 빌고 또 빈다
고운은 오래전 멀리 흐르고
저녁 예불을 올리는 독경 소리 숲을 두드려 깨우고
“문종성 번뇌단---”
범종이 운다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식은 등 뒤를 돌아 골바람이 경내를 빠져서 나가며
타이르는 듯 속삭인다
멈추고 서성이고 버리고 떠올리는 것이
불 없는 연기 되어 등운산 솔가지를 쓰다듬고
이윽고 산 능선을 오르다 어둠 더불어
적묵당으로 내려온다
산은 또 산이요
물은 그만 물이다
아직도 못 다 구제했는지 운종루에 운판과 목어
법고 그리고 범종이 울지 못하고 침묵으로 정좌하고 있다
나 또한 고목이 되어 돌부처가 되어
댓돌 위에 나란한 고무신을 신어 본다
아직도 나를 떠나지 못하는
그 봄날 정숙한 목련을 떠 올리며
길을 찾아 일주문을 나선다
고운사에 외로운 구름은 없다
문짝 없는 문이 기둥 하나 붙잡고
오래 서 있다
내 그대에게 별이 되고자
내 그대에게
푸른 별이 되고자
깜깜한 밤하늘 은하수 등지고
새벽 외로이 반짝인다
그대 나에게
가슴 타는 꽃이 되라고
새벽이슬 열린 잎 적신다
사랑이여 푸른 별로 타는 꽃으로
홀로 외로워 말자
여름밤이 허전해 별은 이슬로 내리고
꽃은 밤하늘 은하수 탄다
내 그대에게 반짝이는 별 하나 되고자
그대 나에게 뜨거운 꽃이 되라고
밤은 더욱 깊게 어둠에 잠기고
바람도 이슬 젖은 먼 길을 떠난다
강희동 시인 약력
1959년 안동 출생, 동국대 대학원 졸업
1999년 시집 기억 속에 숨 쉬는 풍광, 그리고 그리움으로 등단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꼴 등 7권, 시선집 세한도
율목문학상, 경기펜문학 대상, 영랑문학 대상,
경기문학인 대상, 한국시학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글밭 동인, 경기PEN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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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희동 시인님이 늘, 궁금하다가 내마음대로 생각도 해보다가 했는데 이 글을 읽고 거리가 조금 당겨진 것 같아요.
귀한 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