炉開や左官老行鬢の霜
炉 開 や 左 官 老 行 鬢 の 霜
ろ びらき さ くわん おい ゆく びん - 芭蕉
로비라키여, 미장이 늙어서 살쩍의 서리 - 바쇼
풍로를 쓰다가 화로를 쓰기 시작하는 때인 음력 10월 돼지날(亥日)이 이르러 미장이(左官)에게 화로를 놓을 곳을 수선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미장이가 늙었다는 것을 본다. 다른 곳이 아니고 살쩍 즉 귀밑머리를 본다. 맨 첫 글자 炉와 맨 끝 글자 霜이 대조된다. 따뜻하게 차를 마실 것을 생각하는데 바쇼의 눈에는 차가운 서리가 보인다. 辛酸신산한 삶을 살았을 미장이의 살쩍을 보는 것은 바쇼 자신의 그러한 삶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鬢の霜을 보면 바쇼가 杜甫두보를 떠올린 것 같다.
風急天高猿嘯哀 세찬 바람, 높은 하늘, 슬피 우는 원숭이.
渚淸沙白鳥飛廻 말간 물가, 하얀 모래, 빙그르르 나는새.
無邊落木蕭蕭下 가없는 수풀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不盡長江滾滾來 끝없는 장강엔 강물이 넘실 흐른다.
萬里悲秋常作客 만리에 슬픈 가을, 항상 나그네 몸이요,
百年多病獨登臺 백년에 많은 질병, 혼자 오르는 산이로다.
艱難苦恨繁霜鬢 가난한 삶이라, 흰 살쩍이 몹시 한스럽고.
潦倒新停濁酒杯 노쇠한 몸이라, 탁주 잔을 새로 멈춘다.
- 杜甫 「登高등고」
바쇼를 읽고 두보를 읽으니 두보의 구구절절한 표현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바쇼는 제 삼자를 통해서 자신을 본다.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본다고 암시하지도 않고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자연의 상태 그대로이다. 바쇼의 이 하이쿠에는 두보의 시에 보이는 절절한 사연들이 蘇東坡소동파의 「赤壁賦적벽부」에 나오는 것처럼, 강의 맑은 바람처럼, 산 사이의 밝은 달처럼 <그렇게 있다>. ‘귀가 그것을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이 그것을 만나면 색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바쇼의 하이쿠에서 바쇼의 삶을 보려고 하는 자에게는 바쇼의 삶이 펼쳐지고, 바쇼의 달관을 보고자 하는 자에게는 달관의 세계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무진장의 세계가 바로 바쇼의 하이쿠가 아닌가!
且夫天地之間에 또한 하늘과 땅 사이에 만물이
차부천지지간
物各有主하니 각각 주인이 있으니
물각유주
苟非吾之所有인댄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구비오지소유
雖一毫而莫取어니와 비록 한 터럭이라도 가질 수 없으나
수일호이막취
惟江上之淸風과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유강상지청풍
與山間之明月은 산 사이의 밝은 달은
여산간지명월
耳得之而爲聲하고 귀가 그것을 얻으면 소리가 되고
이득지이위성
目遇之而成色하여 눈이 그것을 만나면 색채가 만들어져
목우지이성색
取之無禁하고 그것을 가지는 데 막는 것이 없고
취지무금
用之不竭하니 그것을 쓰는 데 다함이 없으니
용지불갈
是造物者之無盡藏也요 이것이 만물을 지은 이의 다함이 없는 저장고이니
시조물자지무진장야
而吾與者之所共樂이니라 나와 그대가 한가지로 즐기는 바이다.
이오여자지소공락
- 蘇東坡 「赤壁賦」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