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이노의 비가(悲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제 1 비가 ( 《두이노의 비가》, 구기성 옮김, 2001, 민음사 ) 내가 설령 울부짖는다 해도 여러 서열의 천사들 중 누가 이 소리를 들어줄 것인가? 만일 천사가 하나 갑자기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면 그 강한 존재에 눌려 나는 사라지리라. 왜냐하면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겨우 견딜 수 있는 무서운 일의 시초에 불과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그토록 찬탄하는 것은 우리를 멸망시킴을 잠잠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천사는 모두 무서운 존재. 그러므로 스스로를 억누르며 어두운 오열이 유혹하는 부름을 나는 그저 삼켜버린다. 아, 우리는 누구를 부릴 수 있는가? 천사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그런데 눈치 빠른 짐승들은 이 해석된 세계에서 우리가 별로 안주하고 있지 않음을 쉽게 알아차린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날마다 보게 될, 비탈에 선 한 그루만이 남아 있으리라. 어제 거닐던 거리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는 습관의 삐뚤어진 성실성이 남아 있을 뿐, 그것들은 남아서 가지 않았다. 아, 그리고 밤, 밤, 우주 공간에 가득 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고 들어올 때...... 누구에게 이 밤이 남아 있지 않을까, 그리워 했지만 살며시 실망을 주는 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앞에 고달프게 다가서는 밤.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이 밤은 한결 수월할까? 아, 그들은 다만 서로서로 자기들의 운명을 숨길 따름이다. 그대는 아직도 모르는가? 두 팔에서 공허를 떼어내어 우리가 호흡하는 공간을 향해 던져라. 아마도 새들은 이 넓어진 공간을 은밀히 날면서 감지하리라. 그렇다. 봄이 분명 그대를 필요로 하리라. 뭇별들은 그대가 느껴주기를 기대했으리. 지나간 세월에서는 큰 파도가 일었던가, 또는 그대가 열려진 창가를 지나갈 때 바이올린 소리가 몸을 맡겨왔었다. 이 모든 것은 위임된 것. 하지만 그대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던가? 온갖 것이 사랑하는 여인이 오리라고 예고하기라도 하듯 그대는 아직도 기대에 가득 차 그 일을 잊지는 않았던가? (애인을 어디에 숨겨두려 하는가, 낯설고도 위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하고 밤에도 머무르는 일이 많은데.) 그러나 그리움에 못견디겠거든 사랑하는 여인들을 노래하라, 그 사랑이 잘 알려져 있긴 해도 영원하기에는 아직도 미흡한 이 여인들을. 그대가 거의 부러워했던 저 버림받은 여인들, 사랑에 충족된 여인들보다 사랑이 훨씬 더 크다고 여겨인 여인들을. 아무리 해도 미흡할 수밖에 없는 찬양을 그래도 시작하고 또 시작하라. 영웅은 스스로 지탱한다는 것을 생각하라, 몰락조차도 그에게는 존재하기 위한 구실, 최후의 탄생에 불과하기에.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자연이 사랑하는 여인들만은 품속으로 다시 안아드린다, 두번 다시 그럼 힘이 없는 듯. 가스파라 스탐파를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어느 실연한 소녀가 이 위해한 사람의 선례에서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고 느낄 만큼. 이 옛날의 아픔이 이제는 우리들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연인에게서 벗어나 아픔을 떨면서 이겨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마치 화살이 쏘아올려지기 전에 멀리 날아가기 위해 팽팽한 줄의 힘을 온몸으로 견뎌내듯, 머무는 일은 아무데도 없는 것이기에. 소리, 소리를. 내 마음이여 들어라, 일찍이 성자만이 듣던 소리를, 엄청난 부름 소리가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을 때, 있을 수 없는 자들이여, 그들은 계속 무릎을 꿇은 채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듣고만 있었다. 그대가 신의 소리를 견딜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바람처럼 불러오는 것, 정적에서 생겨나는 이 끊임없는 소식을 들어라. 저 젊어서 죽은 이들의 속삭임이 이제 그대에게 들려온다. 그래가 들어가는 곳마다, 로마와 나폴리의 성당에서 그들의 운명이 나직이 그대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또는 묘비명이 숭고하게 그대에게 당부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본 산타 마리아 포르모사 성당의 비문처럼. 그것들이 내게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들 정신의 순수한 움직임을 조금씩 방해하는 일이 있는, 그들 누명의 외관을 가만히 벗겨달라는 것이리라. 이 땅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익힌 지도 얼마 안 되는 관습을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이상한 일이다. 장미꽃과 특히 촉망되는 그 밖의 것들에게 인간 미래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 무한히 걱정하던 손의 보호를 받던 사람이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일, 자기 자신의 이름마저 부서진 장난감처럼 내버려야 한다는 일이. 소원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연관되었던 모든 것이 공간에 흩어져 나부끼는 것을 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죽어 있다는 일은 참으로 벅차고, 만회할 일이 많다. 그저 조금씩만이라도 서서히 영원히 감지할 수 있기 위하여 ㅡ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너무나 심하게 구분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천사들아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 드나드는지, 죽은 자들의 사이에 드나드는지 알 수 없다(라고 흔히 말한다). 영원한 물줄기는 항상 두 세계를 뚫고 나이와는 상관없이 모두 다 휩쓸어가며 두 세계에서 이들의 소리를 압도하며 흐른다. 요절한 자들은 마침내 우리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살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살며시 떨어져 나오는 것처럼, 하지만 슬픔에서 흔히 복된 진보가 연유하는 큰 비밀이 필요한 우리들, 우리들은 그들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옛날에 리도스의 죽음에 대한 비탄에서 첫 음악이 고갈된 응결을 뚫고 감히 울려나왔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 갑자기 신과도 같은 젊은이가 영원히 떠나간 후, 경악에 사로잡힌 공간에서 비로소 공허가 저 선율의 진동으로 화했다는 전설은 지금에는 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선율로. ...... to be continued <제 2 비가> #라이너마리아릴케 #두이노의비가 #릴케문학선 [출처] 두이노의 비가(悲歌) - 라이너 마리아 릴케|작성자 서창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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