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0세기,
다윗이 세운 고대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은
아들 솔로몬에게 계승되었지만,
솔로몬이 죽은 이후에는 통일왕국이 분열되어
북쪽에 위치한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에 위치한 유다 왕국으로 갈라집니다.
솔로몬 사후,
그동안 대형 토목공사를 하느라 과도한 세금을 내야만 했던
열두 부족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이윽고 북쪽의 10개지파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하브암에게 등을 돌려 독립을 하였고
남쪽의 유다와 벤야민이 남 유다 왕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두 왕국으로 분열되지 마자,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의 아시리아라는 강국에
둘러싸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서 인지하면서
두 왕국은 모두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세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근거는조선왕조실록처럼
이스라엘의 두 왕조가 기록을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 왕조의 실록과 남 유다 왕조의 실록이 존재했었는데
두 왕국의 실록은 신명기계 역사가의 신학적 해석을 보태어
구약의 ‘열왕기’에 담기게 됩니다.
그래서 열왕기는 신앙인들뿐만이 아니라
인류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열왕기 저자가 신앙공동체에 전하는 주된 메시지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고
이 징벌의 과정 안에서
회개를 하게 되면 구원을 받게된다는 신앙적 교훈입니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가능한 공식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메시지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인간의 모든 역사 안에 하느님께서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하느님의 활동은 주로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엘리사는
기원전 9세기경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예언자 였습니다.
그는 예언자 엘리야의 제자였습니다.
열왕기 상권은 엘리야가 주된 예언자로 나오고
하권은 엘리사가 그 역할을 이어갑니다.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승천한 뒤로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위대한 예언자의 소명을 이어갔습니다.
예언자는 개인의 회개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주로 사회의 부정과 부패에 대항하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임금과의 관계가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예언자들은 권력자들에 의해
정치-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아갑니다.
반대로 예언자들이 보기엔
예언자들을 받아 들이지 않는 이들은
군소리 없이 권력에 기대어 사는 우상숭배자들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즉,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권력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과도 비슷한 것이지요.
그래서 예언자는 끊임없이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시대의 소금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예언의 정신은 예나지금이나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합니다.
1독서에 나오는 엘리사도 마찬가지로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한편
권력자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엘리사를 보고 있노라면
여러모로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과부와 가난한 이들을 살뜰히 챙겼고,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부인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 예언해주었습니다.
또 그 아들이 죽자 엘리사는 기도로 이 아이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독이 든 국에 밀가루를 넣어 위기를 모면하고
빵 스무개로 백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며
‘금도끼 은도끼’처럼 요르단 강에 빠진 도끼를 찾아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병환자인 나아만을 치유해주는 등
여러 이야기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의 깊은 연결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활동은
마치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파견된 제자들은 엘리사와 같은
예언자적인 소명을 가지고
예수님께 받은 임무를 실행해 나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당신과 제자들을 예언자에 비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는데 앞서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시는데
오늘 복음의 내용은 그 마지막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예언자의 신분으로써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라고 분부하십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웰빙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느님을 전하는 사람이기에 고난이 예고됩니다.
그리고 기꺼이 그 고난에 동참합니다.
그러므로 오해와 박해는 예언자의 숙명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은 예언자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 만이
예언자의 고단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미로움이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피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 시대에도 예언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희생을 거름삼아
하느님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한편, 예언자들의 삶을 반추해 볼때,
오늘날의 세대들은
옳은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고 싶으실까요?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라는
경고의 말씀과 더불어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라는
위로의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간적인 부덕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하느님의 정의로움을 전하는데 있어서
더욱 용기를 내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