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대 영공 수호의 핵심 역할을 맡을 KF-21 양산 준비가 본격화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내년에 KF-21 양산에 착수하고자 5월까지 전투용 적합 잠정 판정 완료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기존 일정보다 6개월 앞당겨진 것으로, 내년 예산안에 양산비를 포함하려는 조치다.
KF-21 시제4호기가 성능 점검을 위한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제공: 세계일보
오는 12월 양산계획이 승인되면 개발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계약을 맺고 2026년 전력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첫 비행 이후 142회의 시험비행을 통해 KF-21은 조종 안정성과 초음속 비행, 항공전자 계통 정상 작동을 확인했다. 이후 최고속도와 레이더, 무장시험 등을 실시해 2026년 6월까지 체계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한반도 제공권 다툼과 해외 수출에서 KF-21이 제 역할을 하려면, 새로운 관점에서의 기술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격력 강화 조치 서둘러야 할 이유
KF-21은 음속의 4배가 넘는 속도로 100㎞ 이상 떨어진 적기를 정확히 타격하는 미티어 공대공미사일(유럽 MBDA)을 아시아 최초로 탑재, 강력한 공중전 능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2026년 체계개발 직후 맞닥뜨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때 전력화되는 KF-21은 공대공 능력과 제한적인 공대지 능력을 갖춘 블록1이다. 가능한 먼 거리에서 지상 또는 해상 표적을 공격해야 조종사와 기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데, KF-21 블록1은 이같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KF-21 시제3호기 조종사가 시험비행을 앞두고 조종석에서 지상 사전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제공: 세계일보 장거리 공대지 능력의 중요성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드러났다. 장거리 공대지 타격력이 부족한 러시아 공군은 지상 공습을 위해 전선에 가까이 접근하다 우크라이나 방공망에 큰 피해를 입었다. 2029년부터 만들어질 블록2에서는 공대함 및 공대지 능력을 갖출 예정이지만, KF-21 최초 전력화 시점부터 육·해·공에 대한 공격력을 최대치로 높여야 항공작전과 해외수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적 함정을 공격할 능력과 북한군 방공망을 제압할 수단을 갖추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주변국들은 공대함 능력 강화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일본은 F-35A에 비행거리가 500㎞ 이상인 노르웨이산 합동타격미사일(JSM)을 탑재할 예정이다. 기존 F-2 전투기에는 사거리가 최대 400㎞로 알려진 ASM-3 초음속 공대함미사일을 장착한다. 중국도 사거리 180㎞인 YJ-83K 공대함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한국은 KF-16, F-15K에서 미국산 공대함 하푼 미사일을 운용중이다. F-15K를 도입하면서 공대함 하푼 장착을 요구할 정도로 한국 공군은 공대함 능력을 중시했다. 하지만 미국 승인 등의 문제로 KF-21 탑재는 어렵다.
공군 장병들이 전투기에 장착하는 항공무장을 기체 날개에 결합하는 과정을 훈련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세계일보 적 방공망 제압의 핵심인 대레이더 미사일도 마찬가지다. KF-16과 F-15K에서 운용중인 미국산 AGM-88 미사일은 미국의 거부와 신형 미사일 개발 등의 이슈가 맞물리면서 KF-21에는 탑재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자체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음속의 3배 속도로 날아가는 초음속 공대함미사일 개발이 추진중이다. 대레이더 미사일도 AGM-88 수준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국산 전투기에 국산 항공유도무기를 탑재하는 것은 시너지 효과가 크다. 하지만 전력화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유도무기와 전투기 간의 체계통합 문제 때문이다. 미사일은 전투기에 장착한다고 해서 운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소프트웨어간 화합이 이뤄져야 하고, 데이터를 주고 받는 기능도 원활하게 작동해야 한다. 미사일과 전투기의 체계통합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이유다. 그나마 운용실적이 축적된 미사일과 전투기의 채계통합은 소요기간이 짧다. F-15K에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체계통합하는 과정은 약 3년이 걸렸다.
공군에서 쓰고 있는 다양한 항공무장들이 지상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세계일보
반면 미사일을 새로 개발해 기존 전투기에 통합하거나, 신형 전투기에 기존 미사일을 통합하는 작업은 시간이 걸린다. 전투기에 항공무장을 체계통합하는 주도권은 항공무장 개발사가 갖는다. 항공무장을 전투기에서 분리할 때, 전투기의 자세 제어나 역학 특성 등을 항공무장 개발사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사일이나 전투기 둘 중 하나를 새로 만들었을 때, 해당 무기 개발사는 체계통합 관련 데이터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체계통합을 하게 된다. 시험평가 등을 감안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 신규 개발 미사일-신형 전투기 간 체계통합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미사일 개발사와 전투기 생산회사 모두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새로 만든 미사일이 성능 시험과 감항인증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일정이 더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국산 항공무장 개발을 진행하되 전력공백 해소 차원에서 검증된 외국의 항공무장을 갭 필러(Gap-filler) 개념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KF-21 탑재 F414 엔진 모형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스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제공: 세계일보
일례로 KF-21에 탑재된 미티어 공대공미사일을 만든 유럽 MBDA는 지상 및 해상 목표물 공격이 가능한 스피어(Spear)-3 미사일을 만들었다. 사거리가 100㎞ 이상인 스피어-3는 영국군 타이푼과 F-35B에 탑재된다. 데이터링크를 통해 표적 정보를 실시간 획득하면서 비행 중 임무를 업데이트한다. 다기능 탄두를 갖춰 다양한 종류의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적 방공망에 대한 전파방해(재밍)을 감행하는 스피어 EW는 최신 개념인 근접교란(스탠드 인 재밍) 방식을 사용한다. 스피어-3 미사일 탄두와 탐색기 부분에 첨단 전자전 장비를 탑재한 방식이다. 기존의 원격교란(스탠드오프 재밍)은 적 방공망 밖에서 전파방해를 감행하거나 미사일을 쏜다. 근접교란은 적 방공망 사거리 안에서 재밍을 한다. 그만큼 위험하므로 미사일을 사용해서 정밀타격 스타일로 전파방해를 한다. 이를 통해 레이더 교란 및 지대공미사일 유인 등을 수행한다. 스피어 EW는 적 레이더를 마비시킬 수 있고, 적 방공부대 사격을 유도해 아군이 적의 위치를 찾게 해준다. 수십개의 가짜 물체를 만들어 적 방공망이 대응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해상에서도 적 함정을 상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방산업계에서는 MBDA가 KF-21에 미티어를 통합하는 과정에 참여, KF-21의 특성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스피어 미사일이 국산 항공무장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KF-21 시제2호기가 시험비행을 마치고 착륙하기 위해 활주로에 접근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제공:
세계일보 ◆외국에 팔려면 엔진부터 해결해야 현재 KF-21에는 미국 GE F414 엔진이 쓰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GE와 제휴해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한다. 원천 기술은 GE가 갖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조립과 생산을 한다. 한국 공군용 KF-21 120대에 장착될 F414 엔진 공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해외 수출 과정에서는 잠재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항공기 엔진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신뢰성을 요구한다. 엔진을 개발한 뒤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시험을 하면서 운용경험을 축적하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항공기 엔진 독자 개발이 가능한 국가가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불과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합작 개발로 범위를 넓혀도 영국, 독일이 추가되는 정도다. 한국은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고 수요도 적었으며 예산도 부족해 관련 기술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 등 선진국은 엔진 수요가 많았고, 100여년에 걸친 비행기 제작 경험이 있었던 덕분에 엔진을 개발해 수익을 올렸다. 이들 국가는 엔진 기술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자국 엔진이 사용된 제품, 장비 등은 미국의 승인 없이는 제3국 이전이 어렵다. 미국 엔진을 쓰는 KF-21을 수출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방산 수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국이 개발한 타이항 터보팬 엔진이 전시회에 전시되어 있다. 신화·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방위사업청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엔진 국산화를 추진중이다. 우선 2020년대 중반부터 2030년대에 걸쳐 모습을 드러낼 저피탐 무인정찰기와 저피탐 무인편대기에 국산 터보팬 엔진을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관련 기술을 연구한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는 2040년 이전에 F414 엔진과 유사한 국산 엔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국산 엔진이 순조롭게 개발될 지는 불확실하다. 항공기 엔진 개발 경험이 있던 중국조차도 J-20에 탑재할 WS-15 엔진을 개발해 양산하기까지는 약 30년의 시간과 25조원의 예산이 필요했다. 국산 엔진 개발도 유사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기존 계획대로 진행해도 10여년 동안은 미국의 승인에 의해 KF-21 수출이 영향을 받는다. KF-21은 수명주기 내내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2030년대 이후 KF-21이 해외 시장에서 6세대 전투기에 밀려날 위험으로 직결된다. 엔진 국산화를 추진하면서 GE 외에 다른 파트너를 찾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F-15K의 경우 1차 도입분은 GE, 2차 도입분은 PW 엔진을 쓰고 있다. KF-21은 한국의 항공우주산업 역량을 결집해 만든 최초의 다목적 전투기다. 부가가치를 더욱 키우려면 항공무장과 엔진 등 핵심 장비의 운용 및 개발 전략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그래야 자주 국방과 산업 진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