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Lindenbaum (보리수)
https://youtu.be/ctnsku7uv-U?t=2
소문난 애처가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알콩달콩,
달콤뽀짝한 깜짝이벤트를 잘 열기로
널리 소문난 연기자 최모씨는
대한민국의 남편들에게 의문의 1패를
하게 만들며 공공의 적이 되었다던데..
그 정도로는 스케일과 급수부터가
쨉이 안되는 놀라운 이벤트로
남다른 아내 사랑을 보여줬지만
그 결과로 시원하게 나라를 말아먹은
사랑꾼이 왕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그의 아내는 잉글랜드의 공주,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이다.
그녀의 가족 중엔 세계사를 배우며
익히 들었던 이름들이 좌르르 등장하는데
메리 스튜어트 여왕이 그녀의 할머니이고
제임스 1세가 아버지이며
잉글랜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연이은 헛발질로 대처하다가
영국 역사 중 전무후무한 '왕의 재판'을 거쳐
결국 참수를 당해버려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비운의 왕, 찰스 1세가 그녀의 동생 되겠다.
두 사람의 결혼과정은 장벽이 많았다.
우선 격이 맞지 않는 결혼이라 생각한
공주의 엄마, 앤 왕비가
"난 이 결혼 반댈세." 했던 것이고
공주의 오빠였던 헨리 왕자가 그즈음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파워는 대단한 법.
소문난 미인에 천성이 발랄한 공주에게
이미 눈이 멀어버린 프리드리히는
그 모든 난관을 척척 뚫어내고
의외로 속전속결로 결혼을 성사시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 입증~
프리드리히가 얼마나 공을 들였냐 하면
결혼식을 위해 런던에서 머무르고 있던 와중에도
수시로 발품을 팔아 오가며 결혼해 살게 될
하이델베르그 궁전을 단장했는데
일단 공주가 묵을 방의 위치가 끝내줬다.
창으로 내다보면 없던 사랑도 샘솟을 만큼
노을진 강변 뷰가 기가 막혔을 뿐더러
실내 공간도 잉글랜드의 공주 방을 옮겨온 마냥
흡사하게 꾸며 놓았다고 한다.
와우, 이 정성 뭐지?
거기에 값비싼 보석 등의 선물은 기본,
동물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진기한 동물들도 여기저기서 구해와
동물원까지 만들어 놓을 정도였으니
두 사람의 사랑은 날로날로 깊어갔다.
남의 눈을 1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그들은 서로 사이가 좋았다는데
그 정도로 만족하며 햄볶고, 깨볶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둘 다 온유하고 밝은 성품으로
늘 명랑하고 타인에게 친절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호감형 인간이긴 했지만
막중한 국사를 이끌고 가기에는
세상 단순하고 철이 없었던 듯 하다.
온갖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쉽게 남들을 믿어버리는 순진함이
어리석음이 되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팔츠의 선제후였는데
선제후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는 선거권을 가진 작위를 말한다.
종교 대립이 극심하던 그 시대,
유럽은 카톨릭과 개신교 진영으로 나뉘었고
프리드리히는 개신교 진영이었는데
그가 보헤미아 왕위 제안을 받았던 것이다.
(보헤미아는 지금의 체코)
보헤미아 왕위 제안은 뜨거운 감자였다.
매력적이지만 너무 위험했기에
치밀한 검토와 물밑작업이 필요했는데
그는 개신교 진영에서 도와주려니 믿고
이걸 덥석 물어버렸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어엿하게
왕비의 관을 씌워주고 싶었던
그의 갈망이 아주 크게 작용했고
엘리자베스도 옆에서 그걸 바랬다.
당시의 보헤미아는 신성로마제국의
통치령이었고 신성로마제국의
새로운 황제 후보로
페르디난트 2세가 거론되고 있었다.
이 페르디난트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꼰대 중 꼰대로
누구나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만큼 대대로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냈던
합스부르크도 더 이상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카톨릭 진영의 합스부르크 출신인 그가
황제가 된다면 개신교 지역인 보헤미아에서
종교 탄압을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말하자면 보헤미아에서 프리드리히에게
손을 들어 SOS를 보낸 셈이었다.
보헤미아의 왕이 되는 것은
합스부르크를 상대로 사자의
콧털을 잡아당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막연히 동맹국들이 있으니까..
하고 안일했던 그의 생각은
판단 미쓰였다.
모든 동맹들이 반대했으며
등을 돌렸고 심지어 칼을 꽂았다.
보헤미아 왕의 즉위식 때만 해도
그들은 천국이 여기런가 했을 것이다.
왕비의 대관식을 따로 하자 할 만큼
그는 아내를 극진히 생각했고
즉위식은 온통 축제 분위기로
보헤미아의 분수대마다
붉은 포도주와, 흰 포도주가 솟아나서
모두 거나하게 취해 기쁨의 춤을 추었다.
하지만 기쁨도 거기까지.
이내 그들은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프리드리히는 무능한 리더였음을...
이상만 높았을 뿐 실제적인 통치능력은
제로인 젊은 애송이에 불과한 것을.
이로 인해 기나 긴
30년 전쟁의 서막이 울려퍼졌고
프리드리히와 엘리자베스는
네델란드로 망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1619년 겨울에 즉위해
다음 해 겨울에 쫓겨나고 말았다.
겨울왕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
자기 집인 팔츠를 비우고
보헤미아에 가있는 동안
팔츠마저도 빼앗기고서 말이다.
그러나 망명 중에도
여전히 금슬은 좋아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며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댓글 유럽 왕가의 역사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비님은 너무도 다양한 품격의 소유자 같아요.
제가요?
다중인격자인가? ㅋㅋ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기님은 부드럽고 따뜻한 인품을 가지신 분이라
늘 마음이 편해요
무비님
재미있게 읽으며
세계사 공부도 한답니다~
좀 지루하셨죠?
@무비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재미있는건 좋은 거지요? ㅎㅎ
@박영란(근정)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