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수필】
나를 울리는 시 『목련』
― “아, 어머니가 오셨네요!”
윤 승 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창밖에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목련』입니다.
누님도 전화 주셨습니다. 『동생, 엄니가 보고 싶어!』
팔순 누님과 함께 올해 《목련의 계절》에도
그리운 어머니를 이렇게 뵙습니다.
2025.3.25. 윤승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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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995)
나를 울리는 시
윤승원 수필문학인
시는 함축이고 은유이며 상징이기 때문에 그 속에 숨어있는 뜻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아리송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가 많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시를 일컬어 ‘불가해(不可解)의 언어 예술’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시의 완전한 해석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존경하는 원로시인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했다. “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자기 무지(無知)를 드러내는 사람도 없다. 한 줄의 시를 짓기 위하여 시인은 얼마나 많은 날 고뇌하면서 남모르는 고통을 겪는데 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느냐?”라는 것이다.
꼭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라기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 것들은 쉽게 포기하고 마는 오늘날 독자의 기호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 뒤로 나는 시가 난해하다는 말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몇 번이고 되뇌어 보면서 나름대로 시인의 마음이 되어 그 세계에 빠져보려고 노력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엔 그처럼 어려운 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쉽게 받아들여지면서 감동을 주는 시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시를 만나면 반갑고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여 지워지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시를 빚기 위하여 시인은 얼마나 많은 날 고뇌하였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좋은 시의 상(想)은 곧바로 독자의 가슴으로 전이된다.
시인의 품 안에서 고뇌하던 무수한 시어(詩語)들이 이제는 독자의 가슴앓이 인자(因子)로 작용하는 것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이면 유독 생각나는 시가 있다. 서영옥 시인의 「목련」이다. 이 시는 1991년 KBS 1라디오의 『시와 수필과 음악과』 프로그램에서 추천을 받은 작품인데, 나의 수필 「당선작」과 같은 날 방송된 작품이어서 녹음을 해둘 수 있었다.
▲ 윤승원 시와 수필 - 방송 녹음 테이프
당시 심사를 맡았던 황금찬 시인은 심사평에서 “시골 어머니의 행주치마 같은 깨끗한 시…, 시의 구성이 완벽에 가까워 놀라울 지경”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시가 내게도 유달리 쉽게 받아들여지고, 가슴에 와닿았던 이유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발표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시인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가 비슷한 시기에 다시는 뵈올 수 없는 먼 세상으로 떠나지 않으셨을까 짐작되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가 녹음된 테이프를 심야에 잠자리에서도 듣고, 어머니 기고(忌故)를 전후하여 가족들과 함께 듣기도 한다.
잔잔한 배경음악도 마음을 사로잡지만, 저음의 아나운서가 낭송하는 이 시를 듣고 있노라면 어머니의 환영(幻影)이 눈에 어른거린다.
문 열었을 때
어머니 오신 줄 알았습니다.
흰 저고리 입으시고
뜰에 와 웃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눈부셔 다시 부비고 보니
날 보고 웃고 있습니다
웃고 계신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눈시울을 적십니다
- 서영옥 「목련」 全文 -
“흰 저고리 입으시고 뜰에 와 웃고 계신…”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창밖을 확인해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 나의 어머니
정확한 통계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부음(訃音)을 듣는 빈도를 볼 때, 노인들은 엄동설한보다는 해동하는 봄철에 더 많이 돌아가신다.
나의 어머니도 꽃피는 사월에 돌아가셨는데, 자손들을 위하여 혹한을 피하여 따스한 계절에 돌아가신 것은 고마운 일이나, 자식의 마음은 어디 그런가? 부모의 정을 그리는 자식은 남모르는 계절병을 앓게 된다.
‘좋은 계절에 몸살을 하느냐?’고 누가 묻기라도 하면, 나는 “봄을 심하게 탄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어머니 그리움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어느 집 담장 너머에 하얀 목련이 피어 있으면,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웃고 계신 어머니 얼굴’인데 어찌 그냥 지나치랴! 하지만, 꽃은 쉽게 지고 만다. 마치 어머니의 환영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금세 지고 마는 꽃이 목련이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 한없이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는다. 일 년 뒤엔 반드시 다시 뵈올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주는 꽃이 아닌가. 아!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어머니, 어머니시어! (1995 월간 『문학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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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매일신문(현 충청투데이) 기획 특집 《新 조홍시가》 2004.3.8.
▲ 대전매일신문(현 충청투데이) 이인회 기자 엮음 《新 조홍시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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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페이스북에서 방경태 작가
팔순 누님이 카톡으로 보내주신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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