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열려있었고 아무나 드나들 수 있어서 경남지역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해왔던 마산 창동의 카페‘시와 자작나무’가 13일 러시아 문화의 밤 행사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현대문학 94년 1월호에 시 ‘가덕도에서 보내는 한 철’로 등단한 시인 송창우(37)씨가 지난 99년 1월 처음 문을 열었던 시와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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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모습 송창우 시인, 앞모습 성선경 시인. |
| 평소 송 시인에게 카페를 연 이유를 물어보면 “커피를 돈 안내고 먹을 수 있어서”라고 이야기했다.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물 대신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반쯤 진담으로 듣기도 했다.
하지만 송 시인이 진짜 이같은 카페를 연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1일 송 시인은 “예전에는 부림시장 쪽에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는 고모령이라는 술집 등 문화 예술인들이 자주 모이는 문화공간이 많았다”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이런 문화공간 아니 특별하게 문화 예술인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놀이터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는데 없어서 그런 공간을 하나 만든 것”이라고 진짜 카페를 연 속내를 드러냈다.
창동 코아 양과를 지나 삐걱거리는 목조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 초록빛 나무문을 열면 왼쪽 통유리로 된 창틀에는 수백종의 책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전방에는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오르간 그리고 각종 꽃과 러시아 음반 등이 있다.
이같은 모든 인테리어를 송 시인이 직접 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시와 자작나무가 다른 카페들과 다른 점은 주인이 있든 없든 항상 문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도둑 맞으면 어쩌려고 문을 열어놓고 다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송 시인은 “문을 열어놓은 것은 아무나 편하게 와서 지내라는 뜻으로 열어놓은 것인데 이상하게도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어느 날은 빵이, 어떤 날은 인형이, 어떤 날은 냉장고가 새 것으로 바뀌어 있기도 했다”며 “잃을 것도 없지만 누군가가 깨끗하게 청소까지 해 놓고 간 날은 하루 종일 행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13일 러시아 문화의 밤 행사 끝으로 문 닫아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공간이지만 초창기 때만 해도 1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들이 많았다. 하루에도 몇 개의 점포가 문들 닫고 또 그만큼 개업하는 창동 불종거리에 카페가 있었고 임대료도 적은 액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언은 초반기에는 적중하는 듯 했다. 어떤 날은 커피 한잔만 판 적도 있었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바람만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 문학인들을 중심으로 하나 둘 출근부에 찍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늘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문화 예술인들에서 시간이 갈수록 지역의 실천운동가들, 더 나아가 문화에 갈증을 느끼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하나 둘 찾아온 것이다. 강원도 등 타지역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시화전 등 여러가지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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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우 시인 |
| 송 시인은 “처음에는 문인들이 많이 찾아왔으나 그 뒤에는 문화에 관심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며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학 등 예술하는 사람들이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누구나 와서 문학이든 사회든 다양한 지역 문화에 대한 대화를 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갔는데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 시인은 이어 “카페를 차리고 나서 결혼도 했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내가 마산사람이 됐다는 것”이라면서 “지역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 지역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어느새 마산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진정한 마산인이 되어 갔던 것 같다. 여기를 찾아온 많은 사람도 아마 그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전면에10평짜리 황토집 짓고 새 삶 살고파”
이렇게 보낸 시간이 어느덧 만 7년이 지났다. 방랑벽이 유난히 심했던 송시인이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던 곳이기도 한 시와 자작나무.
시와 자작 나무의 문을 갑자기 닫게 된 연유를 물어봤다.
송 시인은 “돈 벌기 위해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제적인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유지하려고 하면 몇 년 간은 더 유지할 수 있겠지만 시골에 집을 짓고 살고 싶었는데 올해 그 일에만 전념하기 위해 문을 닫게 된 것”이라고 털어놨다.
송 시인이 집을 짓겠다는 곳은 마산시 진전면 미천리 부재골이라는 팜스테이 마을이다. 여기에 10평 남짓한 황토집을 직접 짓겠다는 것.
왜 10평인지를 물어봤다. 송 시인은 “집을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어서 너무 크게 잡으면 다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면서 “올해는 집 짓는 데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섭섭하지 않느냐고 묻자 “정신적으로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동안 덜 자유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다”며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리하는 시원함도 있다”고 했다.
서울의 안국동 느티나무카페 같은 지역의 문화 공간이 부족한데 이제 시와 자작나무마저 없어져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자 송 시인은 “집을 다 짓고 나서 여력이 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 옆에 또 10여평 남짓한 크기로 시와 자작나무 같은 공간을 하나 더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말로 답했다.
여하튼 시와 자작나무에서 마지막 이별 행사를 준비했다. 오는 13일 오후 7시 마산 불종거리 코아양과 뒤편 카페 시와 자작나무에 오면 러시아 음악과 문학에 대해 듣고 이야기할 수 있는 러시아 문화의 밤 행사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