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잘 나가는 외국인 기업이었지요. 회사는 계속 흑자를 유지했고 열심히 일만 한 것이 전부인데 한국 기업과 기업인의 불투명한 처사가 직장을 앗아갔어요.” 지난 9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허핑(和平)구 시타(西塔)가에서 어렵사리 만난 전 삼보컴퓨터 현지직원 천(陳)모씨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조로 자신의 신세타령을 했다. 선양시 훈난(渾南)하이테크 개발구에 있는 이 회사 1000명 안팎의 직원들은 모두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고 공장은 폐쇄된 채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
이 바람에 ‘한류 1번지’로 불리며 잘나가던 선양의 한인사회에는 봄이라는 절기를 거슬러 한랭전선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인들로부터도 냉대의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 선양의 한류(韓流)메카로 ‘샤오서우얼(小首彌)’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시타가의 표정에서도 도무지 예전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 활기가 넘칠 정오인 데도 이곳의 대형 한국음식점은 대부분 텅텅 비어있다.
반면 조선족 중국인과 북한이 운영하는 인근 냉면집과 북한식당은 발디딜 틈없이 북적거렸다. 식당들은 물론 커피솝과 노래방 의류점 PC방 미용실 등 한류의 메신저격인 업소들에도 역시 고객의 발걸음이 뜸하다.
환경설비업체를 운영하는 김상룡 사장은 “그동안 중국의 여러 도시 가운데 선양이 한국과 가장 우호적인 관계였다"며 "90년대 초반 한국인들이 발을 딛기 시작한 지 15년여만에 요즘이 분위기가 가장 안좋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엔 한국인과 조선족간의 불화와 사기 사건이 빈발하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고 그는 덧붙였다. 중국측은 한국기업이 중국은행들한테 빌린 기업자금까지 한국으로 가져간 뒤 다시 인건비 등 운영자금조로 중국 현지법인에 보내는 방식으로 자금운영을 해온 것을 문제삼아 한국기업과 한국사회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외국자본이라면 넙죽 절부터하는 관리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질타와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원저우(溫州) 자본도 있고 일본 자본도 있는데 왜 굳이 한국자본이어야 하는갚라며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랴오닝성의 한 매체는 ‘지난 2004년의 경우 선양시의 외자유치액 22억위안(약 2860억원)중 대부분이 한국자본이었다‘며 ‘외자도입에 앞서 자금의 건전성과 투자용도를 선별해야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현지에서는 최근 중국 금융당국이 한국기업의 과실송금과 각종 자금흐름, 재무 등에 대한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앞서 중국 사법당국은 삼보 현지법인 부도 당시 이례적으로 본사 파견직원의 여권까지 압수하는 강경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LG전자와 농심 등 비교적 건실한 기업들까지 직간접적으로 삼보 사태의 영향권안에 빠져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중국 진출 대기업은 최근 선양 판매법인의 경영상황을 점검하는 긴급 대책회의를 갖기도 했다.
삼보 사태와 함께 이런 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선양의 한인사회와 한국 이미지에 모두 ‘한류(寒流)’라는 한랭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한인회의 권혁 국장은 “선양은 한류의 1번지나 마찬가지였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오는 7월 열리는 한국주간행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같다”고 걱정했다.
선양=최헌규 특파원(k@heraldm.com)
헤럴드 생생뉴스 200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