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한 편의 시: 김형수 시인의 「차바퀴에 부서지는 별빛」
김완
별이 떨어지네 돌아오는 길에
고원에는 부서진 빛들이 묻힌
풀 무덤, 하늘의 묘지
어둠은 늑대 울음 기슭에 일행을 묻고
나는 전조등만 외로운 광야를 헤쳐 오는 길
무엇이 저토록 차바퀴에 깔리는지
거친 바람결에 지문조차 지워진
얼굴 없는 사막
낙타 등짝 같은 대지 끝에서
혼자 깬 새끼 양이 숨죽여 엿보는
그 틈에도 아이가 자라 몸 팔러 가고
빈자리에는 항상 어둠의 속삭임
아아악, 불빛 도시에 닿고 싶지 않아요
경악하는 저 별똥과 함께
무엇이 첩첩 어둠 속에 잠기는지
배호도 김추자도 없는 머나먼 차창까지
사라진 많은 날이 매달려 우는
깊은 밤 돌아오는 차바퀴 뒤에
무엇이 저토록 첨벙첨벙 숨지는지
-「차바퀴에 부서지는 별빛」전문
-김형수 시집『가끔 허깨비를 본다』, 문학동네시인선 129 중에서
1995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빗방울에 대한 추억』이후 24년 만에 펴낸 김형수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4부 57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형식으로 문학을 치열하게 살고 있음을 알았지만, 「져야 할 때는 질 줄도 알아야 해」, 「남한강 기행」연작 시편, 「빗방울에 대한 추억」등에 매료되었던 나로서는 여간 반갑고 궁굼한 시집입니다. 1부 15편의 시는 존재에 대한 사유와 시인의 결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렴풋이'나의 절망이 아직은 싹트지 않는 빈집과/하모니카와 같은 슬픔의 열매를 알알이 달고 있는/옥수수밭을 만났다', ‘전의를 잃고 쓰러진 시인의 그림자’, ‘황혼이 만지작거리는 대로/시인의 영혼을 맡겨버린’ 그때 그 정신의 암중모색 같다고나 할까요? 2부 12편의 시는 주로 몽골에서 체류하면서 얻은 시편들입니다. 3부 14편은 고향 함평 밀래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호명한 아름답고 귀한 시들입니다. 4부 16편의 시는 해설을 쓴 이택광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어 ‘유토피아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시대에 시인에게 남겨진 임무는 무엇일까. 그의 시는 대답하고자 한다.’입니다.
1연 19행 8문장의 시입니다. 몽골에 오래 체류한 시인의 경험이 시에 잘 녹아있습니다. 어느 날 시인이 어떤 일행들을 몽골의 외진 고원 늑대 울음이 들리는 기슭에 데려다 주고 홀로 차를 몰고 ‘전조등만 외로운 광야를 헤쳐’ 되돌아오면서 느낀 감상을 시로 만들었습니다. 차바퀴의 흔적(=지문)조차 ‘거친 바람결에 지워지는 얼굴 없는 사막’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위대함이지요. 그런 대자연의 신비 속에서도 ‘혼자 깬 새끼양이 엿보는’줄도 모르고 인간의 욕망은 ‘아이가 자라 몸 팔러 가고’라는 비루한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계, ‘빈자리에는 항상 어둠의 속삭임’이 있습니다. ‘아아악, 불빛 도시에 닿고 싶지 않아요/경악하는 저 별똥과 함께’ 시인들은 과장법이 심하지요. 어둠 속에 잠긴 밤이, 별빛이 시인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에게 자연스레 묻고 있습니다. ‘배호도 김추자도 없는 머나먼 차창까지/사라진 많은 날이 매달려 우는’ 깊은 밤, 홀로 돌아오는 차의 차창에 수많은 상념들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과거의 시간들, 사라진 많은 날들이 매달려 웁니다. ‘무엇이 저토록 첨벙첨벙 숨지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자연의 위대함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시인 스스로 시인의 말에서 독백했듯이 ‘왜 이토록 삶을 기뻐하지 못했을까?/돌아갈 길이 끊긴 자리에 한사코 서 있는 모양이라니!’, 시간을 견딘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시인들이 몽골에 다녀와 쓴 시들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나는 아직 몽골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하면 어느 곳을 가든 제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처음과 끝은 어디인가를. 처음과 끝을 구분하려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인 한계를 확인하는 슬픈 언어일 것입니다. 애초에 자연은 처음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섭리에 따라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 나무, 별, 하늘, 구름, 모래, 바람의 생과 사를 자연은 그저 아침, 저녁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연의 본 모습이지요. 언젠가 저도 몽골에 가면 아름다운 시 한 편 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