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명: 庇雨堂 비우당
산지: 진 동 천
규격: 16x14x10
소장자: 문 점 덕
위 돌은 누가 보아도 초가집을
닮은 수석이라서
비를 피하는 집이라는 뜻의
비우당으로 불러봅니다
1987년경 마산의 소장자가
진동천에서 탐석하여
보관하던 중에
부산의 애석인 이신
소암 윤기준 선생께서
1989년 방문하셔서
이 돌에 반하여
양도한 수석입니다
2012년 우연히 부산의
연석정을 방문하여
수석을 감상하던 차에
이 돌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이야기하였더니
도봉 윤두천 선생께서 두 번째
석보에도 수록한 수석을
원주인에게
선물한 돌입니다
애석계의 선구자 소암 선생
애석계의 멋과 맛 도봉 선생
두 분은 떠나가셨지만
수석은 남아 있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초가지붕의 형태가 해마다
이엉을 말아 입혀서 우뚝 솟아있고
비바람에 삭아서 고태미가
물씬 풍기는 비우당에는
해가 지면 호롱불에 불을 밝히고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귀한 수석 제공해주셔서
추억에 젖게 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2022.10.25. 장활유 드림
庇雨堂 비우당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芝峯지봉
이수광(1563-1628)이
살던 곳이다
이조 참판까지 지냈던 인물이지만 작은 초가집에서
실학의 선구적 저술
지봉유설의 산실이기도 하다
이수광의 외가 5대 할아버지인 청백리의 정승
柳寬유관이 이곳에서 초가삼간을 짓고 살았는데
비가 오면 우산으로 빗물을
피하고 살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후에 이수광의 아버지가
이 집을 조금 넓혔는데
집이 소박하다고 누가 말하면
우산에 비하면 너무 사치스럽다고 대답하여
듣는 이들이 감복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없어진
집터에 이수광이 조그만 집을
짓고 비우당이라고 하였다
서울시에서 낙산 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복원하였다.
첫댓글 유서깊은 초가가 지금까지 그 유래를 전하네요
예. 유서 깊은 전래석이군요.^^
초가지붕이 썩어서 굼벵이가 기어나오고
빗물이 방안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주인은 태연하게 글 읽고 있네요.
물이 새는 허름한 초가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주인이 있군요.^^
역사가깊은 초가집입니다
예. 유서 깊은 초가이군요.^^
늘보님
잘계시지요
너무나 반갑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장활유 드림
초가석으로 으뜸입니다. 소장하심을 축하합니다. 샬롬
예. 초가석으로 잘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