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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생의 마지막 순간에
2003년 2월18일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도시철도 1호선 송현역에서 안심행 1079호 열차에 탑승한 김대한이 중앙로역에 도착했을 때 휘발유를 객실 바닥에 뿌리고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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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도시철도 1호선 송현역에서 안심행 1079호 열차에 탑승한 김대한이 중앙로역에 도착했을 때 휘발유를 객실 바닥에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 사고로 19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으며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빠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리고 기다리지 마. 나 안 간다.”
“아침에 화내고 나와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죽어가는 순간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족에게 남긴 최후의 짧은 글들은 19년이나 지난 지금도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한다. 사고 발생 4분 전(오전 9시 49분) 한 주부는 남편과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라는 마지막 통화를 했다.
사고 발생 1분 후(오전 9시 54분) 대학생 딸은 쫓아와 불구덩이에 뛰어들려는 어머니에게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하고 말렸다.
한 남편은 아내에게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로 간다”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8분 후(오전 10시 01분) 누군가는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라고 울부짖었다.
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직장을 구하러 가던 아들은 노모에게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저 죽지 싶어예. 어무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라며 통곡했다.
어머니와 딸은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라는 기가 막히는 말로 이승의 대화를 끝내야 했다.
현진건의 소설에 <불>이 있다. 어린 소녀가 팔려서 시집가 무지막지한 노동과 성행위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집에 불을 지르는 내용으로, 비인간화를 강요하는 당대 사회를 고발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불가해한 범인과 불합리한 대처가 낳은 인재였다. <불>과 같은 사회적 의미가 있을 리도 없는 참담한 인재 그 자체였다. 후대에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어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