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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선진국을 위한 제언
의사결정 길어지면 신형무기 구형 된다
글 : 정재원 국방기술품질원장 국방분야의 문호도 우수한 민간 연구자들에게 적극 개방해야… 시장경쟁력이 있는 무기체계와 핵심기술 조기확보가 가능해 방산수출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
⊙ 한국, 세계 11위권의 국방과학기술 수준과 무기를 갖춘 막강 군사력 보유
⊙ 국방 연구개발비, 선진국의 69% 수준… 방산수출도 국내 방산매출액의 5% 수준에 불과
⊙ ‘기술기획’ 없인 좋은 무기 안 나와… ‘軍 전투력 증강’과 ‘국가경제 기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열쇠
⊙ 패키지 예산제도, 총수명 주기체계 관리를 통해 국방경영을 효율화하는 노력 필요
⊙ 획득시스템을 효율적으로 再구축하면 획득 비리도 사라질 것
鄭載元
⊙ 1954년생.
⊙ 서울大 전기공학과 졸업. 서강大 경영학석사, KAIST 전자공학 석·박사.
⊙ 국방과학연구소(ADD) 자주 대공포 체계팀장, 美 해군연구소 연구원,
국방기술품질원 기획총괄부장 역임.
⊙ 現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
2009년 6월 18일, 육군 6포병여단 878포병대대가 경기도 연천군에서 지상화력대비태세 훈련의 일환으로 K-9자주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은 사격에 앞서 자주포가 기동하는 모습. K-9자주포는 터키 등에 수출한 세계 정상급의 국산 무기다.
국방개혁이 올해 화두(話頭)로 등장했다. 지난해 말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연이어 지적한 이후 국방부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2010년 외교·국방·통일분야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무기구입과 조달과정에서 근원적 비리가 생길 틈이 많다”며 “획기적인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국방개혁은 무기획득 체계와 군(軍) 구조 개편, 병력감축과 복무기간 단축 등 전(全) 분야에 걸쳐 추진된다. 특히 무기획득 체계와 군수분야 개혁을 주로 다룰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李相禹 위원장)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렇듯 무기획득 체계가 계속해서 쟁점(爭點)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적(敵)을 눈앞에 두고 시급히 전력을 증강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1970년대 전력증강 사업 때 대부분의 무기를 해외에서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국방기술력이 일천한 탓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리베이트가 오가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들이 줄지어 터지다 보니 국민의 의식 속에 무기 시장은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다.
이제 우리의 국방기술력은 세계 11위권에 도달해 있다. 올해 무기 수출도 15억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첨단 항공기와 유도 무기 등 핵심 무기는 여전히 해외에서 도입하고 있다. 그러니 아직도 거액 커미션 소문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이 “무기도입 커미션만 줄여도 예산의 20%는 절감하지 않겠느냐”고 말해도 반박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40년간의 무기 획득시스템에서 벗어나야
세계 최초로 S&T대우가 개발한 국내 명품 무기 K11복합형 소총. 지난 5월 10일 요르단에서 열린 요르단 특수작전무기전시회에서 K11복합형 소총은 아랍에미리트와 소총의 시험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
우리의 획득시스템은 어느 곳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먼저 핵심기술만 보더라도 기술개발보다는 조기(早期)전력화에 매달려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핵심기술 개발은 대규모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과를 얻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렇지만 이런 기술들은 일단 개발을 하면 몇 십년간 기술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핵심기술을 적용한 무기 수출은 물론, 부품 수출도 할 수 있다.
무기에 쓰이는 핵심기술은 특히 성능이 우수하다. 이런 기술을 민간에 넘기면 다방면으로 활용 분야가 넓어진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런 기술을 갖게 되느냐다. 단순히 국방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방기술을 어떻게 개발할 것이냐는 기획단계부터 시간을 쪼개 관리하는 시간경영제 도입, 예산을 패키지로 관리하는 제도의 채택, 기술 수명(壽命)의 주기(週期) 관리 시스템 도입 등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대부분 정부 주도사업으로 진행되는 국방 연구개발(R&D) 시스템에 의한 자본과 인력의 낭비를 줄여야 한다. 융·복합의 시대에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민간이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는 과감히 민간에 맡겨야 한다. 대신 국방분야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민관(民官)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 방안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지난 40년간 지속돼 온 무기획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작전과 무기 기술 등을 모두 아는 전문인력 양성해야
2009년 10월 19일 LIG넥스원 구미공장에서 대함 유도탄 방어무기체계(SAAM)인 RAM 유도탄 국산화 생산 출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제품설명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구본상 LIG넥스원 사장, 미국 레이시온사의 신시아 데이비스 부사장. |
그렇다면 우리 군의 획득 프로세스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획득 소요 제기 단계’의 개선이다. 이 단계는 무기체계 획득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군이 어떤 무기를 필요로 하는가를 ‘기획’하는 단계를 보자. 미래전쟁을 어떻게 수행하느냐는 개념을 제시하는 ‘합동전장(戰場) 운영개념’부터가 구체적이지 않다. 합참과 각 군은 합동작전을 고려하기보다는 각 군의 입장에서 역할과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력의 소요를 제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합동전장 운영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상태에서 단지 의사결정 시기의 단편적인 논리로 무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각 군은 합동전장 개념을 전장 기능별로 구현하기 위한 검토를 거쳐 무기구입을 요구하는 ‘소요(所要)’를 제기하도록 하고, 합참은 미래전쟁과 신기술 발전추세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분석을 통해 소요가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조사·분석은 전문기관이 해야 한다. 여기에는 미래전장 임무 분석, 신기술 개발동향 조사와 활용가능성 분석, 각종 획득가능 대안 분석, 군사기술 개발사업 식별 등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소요 분석을 함에 있어서도 과학적 방법보다는 주로 정성적(定性的·주관적) 방식에 의존함으로써 개념과 소요의 연계성이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육군에서는 무기 소요를 산정할 때 나름대로 전투실험을 거치고 있으나 상당히 제한적이다. 무기를 필요로 하는 쪽의 논리를 근거로 일부 정량적(定量的·객관적) 분석을 하고 있으나 정성적 분석을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량적 분석을 위해서는 각 군의 전투실험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 인력, 시설, 예산 측면에서 미흡하다 하여 기술적인 측면보다 개념과 구조·편성에 편중되어선 곤란하다.
소요제기 인력의 전문성 부족도 지적할 수 있다. 합참은 소요결정 단계에서 각 군 요청서의 타당성을 검토한다. 그런데 수시로 순환보직을 하다 보니 소요제기 인력의 전문성이 매우 부족하다. 과학적 분석 평가가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때문에 비슷한 무기체계의 발전추세를 고려하지 않거나, 군 요구사항 작성 때 국내 기술수준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단순히 외국자료를 참고해 소요를 제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말 어떤 무기가 얼마만큼 필요한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작전운용 개념, 과학기술 발전추세, 기존 무기체계, 소요예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소요제기 단계부터 참여해야 한다.
‘기술기획’ 없인 좋은 무기 나오지 않는다
지난 8월 2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40주년 기념 종합학술대회’가 열렸다. 연구소 관계자가 참석자들에게 대잠무기인 ‘홍상어’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방연구개발비는 국방비 대비 5%로, 주요 국방 선진국(10%)보다 낮다. |
일반에는 약간 생소한 개념이지만, 최근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활동이 바로 ‘기술기획’이다. 국방기술 기획이란 미래 국방목표 달성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이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획득하느냐는 전략을 제시하는 활동으로, 무기체계 획득과정 전체의 성공여부를 좌우하는 핵심요소이다. 즉, 미래 전장 환경에 적합한 연구개발 방향, 핵심기술 과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선정 및 평가, 국가과학기술 전체를 통찰하는 시각으로 국방연구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주요 무기체계를 해외에서 직접 사거나 조립생산을 하다 보니 국방 핵심기술 개발을 위한 체계적 기획 활동을 소홀히 했다. 무기체계를 독자적으로 기획해 개발할 수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개발된 외국 기술을 그대로 들여오거나 모방생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기술수준은 나날이 높아지고,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기술이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국방연구개발의 투자효율을 높여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 국방기술 기획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 말하려면 용모는 기본이고, 그에 맞는 지성과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러 요소를 골고루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기술기획도 마찬가지다. 전투력 증강을 기본으로 하되, 국가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고, 국가과학기술 수준도 높일 수 있어야 좋은 기술기획이다. 단순히 한 가지 목표만 고려해 세운 기술기획은 효율성이 떨어져 국방예산 낭비를 초래하는 주범(主犯)이 될 수도 있다.
이 세 가지 목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한 가지 목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기획이라면 나머지 목표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전투력 증강에 기여하려면 시대를 앞서 가는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체계여야 하는데, 이를 개발하는 과정이 곧 국가과학기술을 선도하는 것이며, 수출을 통해서 국가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단위 무기체계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국방전력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언제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며, 어떤 무기체계를 개발해야 하고, 미래전장에 필요한 기술은 어떤 것이 있는가 등 보다 정확하고 장기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특히, 국방연구인력 육성, 연구시설 확보 등은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요소들인 만큼 정책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기업경쟁력은 속도에서 나온다
군에서 흔히 하는 소리로 ‘국방부 시계는 두 배 느리게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는 병사들만의 농담일까. 국방분야 전반의 의사결정 속도도 민간기업과 비교해 볼 때 현저히 느리다. 지나치게 정형화된 의사결정 체계가 많은 이유도 있지만, 경쟁에 노출될 일이 없어 전혀 무리할 필요가 없는 군의 특성이 반영된 탓도 있는 듯하다.
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속도에서 나온다. 신속한 의사결정 없이는 수시로 변하는 시장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를 보더라도 한발 앞선 의사결정과 투자가 경쟁기업을 물리치고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무기획득 절차를 볼 때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고, 구매절차 또한 복잡하다. 이렇다 보니 구매결정 당시에는 첨단이었던 무기가 실제 배치될 때는 구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경영’의 개념은 국방분야에서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기술진보 속도에 맞추어 발 빠르게 국방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신속한 의사결정이 선행돼야 한다. 국방분야에서는 올해 계획이 수립되면 예산 반영을 거쳐 빨라도 3년 후에나 사업이 실행된다. 이 말은 곧 3년 이내에는 계획에 묶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나 사업추진의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나 전장변화를 무기체계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기간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국방과학기술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적절한 무기체계가 적기(適期)에 전력화되어야 전력증강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획득기간을 단축하면 의사결정에 투명성과 공정성이 저하돼 부패나 예산의 오·남용(誤濫用)이 심화될 수 있지 않느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오히려 신속한 의사결정이 부패를 방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기간이 길어지고 단계가 복잡할수록 많은 인력이 관여하게 되며, 여기저기서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비리가 개입할 소지가 많아지기 마련인 것이다. 사업의 효율성과 투명성까지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의사결정이 신속, 단순해야 한다.
‘유연한 예산’이 왜 필요한가?
의사결정 기간만 단축하면 될까. 아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성공을 뒷받침할 두 가지 요소, 즉, ‘돈과 시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기술발전 속도나 전장환경의 변화를 사업에 즉각 반영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방기술품질원에서 발간한 <2007 국방과학기술조사서>에 따르면 최근 과학기술분야에서는 18~24개월마다 기술혁명이 발생하고, 기술 반감기(半減期) 또한 4년으로 단축됐다. 미래 지향적 연구개발 활동을 적시에 하지 못한다면 도태될 기술을 개발하는 헛수고를 하고, 국가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사실은, 2010년 미국 국방연구개발 예산 797억 달러 중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 32억 달러가 배정됐는데, 그중 2억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패키지예산’이라는 점이다. 패키지예산이란 기존 예산체계가 중장기적으로 미리 선정된 과제별로 고정된 예산인데 반해, 예산의 세부항목을 특정하지 않고 신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을 말한다.
우리나라 국방연구개발의 경우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을 하고 나서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획득해서 집행하기까지 최소한 3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IT나 생명공학, 나노분야처럼 변화속도가 빠른 기술을 도입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타부처에 비해 로드맵이 철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국방분야의 경우, 전력증강의 안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현 예산체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지만, 추가로 패키지예산과 같은 유연한 예산체계로 보완함으로써 전력증강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부처 예산을 국방연구개발에 쓸 수 있게 하는 제도적·법적 문제도 연구해 봐야 한다. 국방연구개발비를 국방비의 한 항목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과학기술 전체의 틀에서 놓고 보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60% 정도가 국방연구개발비여서 국방분야가 국가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현 국방예산 내 연구개발비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의 예산도 국방연구개발 예산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방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과학분야 전체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국방연구개발비, 선진국의 69% 수준
보잉사가 제조한 미 공군의 로봇 폭격기인 X-45A가 2004년 4월 18일 캘리포니아의 한 사막지대에서 GPS(위치파악시스템)에 의해 유도되는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무기유도용으로 개발된 GPS는 오늘날 항법, 측량, 지도제작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
그럼 국내 연구개발 여건은 어떠한가? 그동안 우리나라 연구개발이 주로 선진국 무기의 모방생산, 재래식 무기 위주로 이뤄져 왔고, 군 전력 소요의 시급성을 우선 고려해 첨단무기체계의 국내 독자개발보다는 해외 수입을 우선시한 결과 국방 핵심기술 수준이 선진국 대비 평균 69%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휘통제, 항공기, 통신전자 등 첨단기술 분야가 더욱 뒤떨어져 있다. 국방연구개발비 또한 주요 선진국은 국방비 대비 10% 수준인 반면, 우리는 5% 이하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품원에서 2008년 실시한 주요 16개국의 국방과학기술 국가순위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국방과학기술력이 11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제 국방분야도 국내 수요뿐만 아니라 방산(防産)수출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해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무기체계는 그 상품 특성상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결국 방산수출을 좌우하는 최종적인 요인은 국방과학기술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고성능 무기와 저성능 무기의 싸움은 그 결과가 너무나 명확하다. 어느 나라든지 최고 성능의 무기를 원하는 것이다.
방산시장의 80%는 세계 6~7개 국가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 순위는 해당국가의 국방과학기술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국가가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술력으로 각 부문별 방산시장을 확고히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방산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일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09년도 우리나라 무기수입 규모는 중국·인도에 이어 세계 3위이고, 수출규모는 17위로 나타나 무기 무역역조가 심한 편이다. 방산수출도 국내 방산매출액의 5%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내수 의존도가 심하다.
특히 그동안 우리 군의 무기체계 획득정책이 국내 연구개발 우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기수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획득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개선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방산수출액이 11억 달러를 넘었다고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세계 11위인 우리나라 국방과학기술 수준에 비추어 볼 때 방산수출 17위는 한참 못 미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세계시장에서 모두가 경쟁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선도형 기술개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꼭 완제품일 필요는 없다. 타 국가가 아직 연구개발 중에 있는 기술집약형 부품 수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선도형 핵심기술과 부품 개발 위주로 전환하여 국가과학기술 수준도 높이고, 수출에도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기 유지관리 비용까지를 감안해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기체계 획득부분만이 아니다. 무기를 얻으면 그 다음은 운영유지 단계인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바로 ‘총수명 주기 체계 관리’이다. 이는 군수품의 소요제기 단계에서부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제품의 총생애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오늘날과 같이 무기가 첨단화, 고가화하면 처음 살 때뿐만 아니라 운영유지비도 급격히 증가한다. 어떤 때는 구매가격보다 2배 이상, 많게는 3~4배가 든다. 이것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국방예산 절감의 관건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총수명 주기 체계를 관리할 때 고려하는 것이 바로 ‘총소유비용’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한다고 할 때, 처음 살 때 비용뿐만 아니라 고장이 났을 때 수리비용, 연료비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총소유비용이다. 이와 같이 대개의 구매자는 물건을 고를 때 구매비용뿐만 아니라 폐기할 때까지 그 물품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지를 구매 당시부터 생각하게 된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자동차는 초기 구매 비용은 일반자동차보다 비싸지만 월등한 연비로 인해 운영유지비가 적게 들어 결국 자동차의 총수명 주기 동안 드는 총소유비용이 낮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국방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무기체계를 획득할 때 총수명 주기 동안의 총소유비용을 고려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는 점만은 다르지 않다. 무기체계 연구개발을 기획하는 시점, 또는 소요를 제기하는 시점에서부터 총수명 주기 동안의 비용을 철저히 계산해 구매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확립돼야 국방예산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업무를 함께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무기체계와 비(非)무기체계를 관리하는 조직이나 예산이 구분돼 있다. 특히 무기체계 위주의 사업관리로 인해 비무기체계 관리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기체계와 비무기체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전투력 극대화를 위해서는 두 분야의 균형발전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무기체계에 비해 비무기체계 분야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감이 있었다. 따라서 무기체계와 비무기체계의 동시 발전을 위한 방안 검토는 물론 사업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효율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무기체계를 관리할 때 소프트웨어를 거의 관리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아 왔다. 하지만 최고 사양(仕樣)을 갖춘 컴퓨터라 할지라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그저 고철에 불과하듯이 무기체계에서도 소프트웨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무기체계가 첨단화·고도화할수록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와 같이 소프트웨어는 무기체계 성능발휘에 핵심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무기체계와 연계해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해외에서 도입하는 무기가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비용임을 감안할 때, 소프트웨어는 하루빨리 기술력을 확보해야 할 중요한 분야이다.
이와 같이 무기·비무기체계, 하드웨어·소프트웨어는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구분해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예산이나 관리기관 등이 분리돼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고, 예산절감과 사업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서는 관련사업을 통합하여 관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방과 민간분야를 ‘씨줄’과 ‘날줄’로 엮는 작업 필요
현대는 국가총력전의 시대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방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이제 국방분야뿐만 아니라 민간분야의 우수기술까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민간분야까지 포함한 국가과학기술 역량을 총동원해 국방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오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방연구개발에 국방과 민간분야를 모두 참여시켜 국가과학기술 역량을 총결집함으로써 보다 첨단화한 무기체계의 개발과 연구개발비의 효율적인 집행, 그리고 전력화 시기의 단축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민간분야가 우위에 있는 기술인 IT, 생명공학분야, 나노분야, 항공우주분야, 로봇기술 등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민간분야에 위임하거나 이들이 국방사업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국방분야는 고유영역 중 핵심분야를 선택해 집중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분야의 연구개발은 전공분야별로 발전돼 왔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출범한 이래 KIST로부터 20개가 넘는 독립 연구소가 전문분야별로 분화, 발전돼 나온 것이다. 이에 반해 국방분야의 경우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한국국방연구원과 국방기술품질원, 단 2개의 연구소만 분화돼 나왔는데, 이는 그만큼 국방분야가 폐쇄적이고 경쟁이 없다는 반증일 수 있다. 또한 국방분야는 민간분야와는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방R&D를 민간분야에서처럼 전공별로 세분화해 발전시킬 필요는 없지만, 기획·연구개발·생산·운영·유지 등 기능위주로 구분할 필요는 있다.
민간분야의 전공별로 발전되어 온 연구개발 시스템과 국방분야의 기능별 연구개발 시스템을 서로 씨줄과 날줄처럼 견고하게 엮는다면 보다 유기적이고 조직화된 국가연구개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국방분야와 민간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개방형 국방R&D의 도입은 단순히 민간에 기회를 주고 기술개발을 촉진시키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민간의 우수기술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경쟁시스템까지도 국방분야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첨단 군수기술을 민수분야로 스핀오프(Spin-Off)시킴으로써 거둘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매우 크다.
지금이 시스템을 바꿀 절호의 기회
예를 들어, 인공위성을 이용한 항법시스템인 GPS는 미국 국방성 주도로 원거리 무기의 명중률과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무기유도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이제는 항법·측량·지도제작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인터넷도 미국 국방성의 지원으로 유사시 중요정보 유실을 막기 위해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미국의 4개 대학을 연결하며 구축한 알파넷이 그 시초였다. 하지만 현재는 다양한 서비스와 풍부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거대한 통신망의 집합체로 세계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국방R&D의 효과는 비단 국방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파급효과가 국가적 차원에까지 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부터 이명박 정부는 국방분야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준비 중에 있으며, 그 핵심은 바로 무기체계 획득분야다. 지금 국방개혁 논의가 한창일 때가 시스템을 바꿀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이란 한번 정착되면 여간해선 바꾸기가 힘들다. 과거 우리 군의 전투력 향상만을 목표로 했던 구시대적 시스템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국방분야도 경영효율화를 통해 예산을 절감하고, 경제효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세계 11위권의 국방과학기술 수준과 우수한 무기를 갖춘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무기를 군에 배치하는 것은 물론 해외수출까지 하게 되는 등 양적·질적인 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분야가 많다.
먼저 기술기획 기능을 강화해 군 전투력 증강과 국가경제 기여, 그리고 국가과학기술 선도를 동시에 고려한 통합목표 지향의 기술기획으로 시스템 개혁을 시작하자. 그런 다음, 시간경영, 패키지예산제도, 총수명 주기체계 관리를 통해 국방경영을 효율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국방분야에도 우수한 민간 R&D가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R&D 영역을 개방함으로써 시장경쟁력이 있는 무기체계와 핵심기술을 조기에 확보해 방산업체의 경쟁력과 국가 산업기반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산수출 증대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국방선진화가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그 핵심이 되고 있는 획득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재구축하고, 이를 통해 획득절차가 투명해진다면 그동안 원죄(原罪)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획득비리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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