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무조건 직진이다. 그래서 난 탱크다
- 사람이 싫어 자연으로 돌아가다
- 부친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1999년까지 전북 익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장정수 씨는 행복 한 가정생활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부친이 대학병원에서 수술 후 뇌출혈이 발생하면서 장 씨 인생의 암흑기가 다가왔다. "당시 1년차 레지던트가 아버지 수술을 집도하면서 의료사고가 생겼죠.
이후 재수술을 했으나 계속 의식불명이셨고, 입원하신지 19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의료사고를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해당 병원과 보험회사와 의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개인이 보험회사와 대학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라면서 말리셨지만 전 한번 마음먹은 일은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보고 전진하는 스타일입니다.
7 년간 소송을 이어온 끝에 결국 승소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잃은 것도 많더군요," 어느 누구도 장담 못했던 의료계 거물들과의 소송에서 그는 승소했고, 부친의 억울함을 달래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장장 7년 동안 지속된 소송은 그의 직장과 건강을 앗아갔으며, 사람에 대한 불신을 심었다.
더 이상 도시에서 생활 할 수 없었던 그는 거짓이 없는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기 위해 귀농을 결심한다. 그때가 2006년이다. - 좋은 멘토가 감자농사꾼으로 만들다
- 일단 귀농을 결심 한 그는 2008년 무작정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를 시작했다. 전북 고창군 무장면에 농가임대주택을 구한 그는 현재 무장면 백양리 밭 1ha, 성송 면 시설하우스 1.3ha, 아산면 논 0.33ha 에서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 그가 고창에서 주 작물로 감자를 시작한 이유는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고창의 특산물하면 역시 복분자, 수박을 꼽을 수 있죠. 그러나 감자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창에서 초보 농사꾼이 감자를 재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감자를 선택한 이유는 농촌 진흥청 고랭지농업연구센터에서 근무하는 조지홍 박사님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차례 감자재배를 포기하려 했지만, 조 박사님과의 인연 때문에 쉽지가 않더군요. 괜히 제가 '탱크'겠습니까?"
당시 농사를 짓기 위해 991m²의 땅을 임대하고, 작물 선택을 위해 작물별 전문가들에게 수차례 전화문의를 한 장 씨에게 가장 친근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사람이 고랭지농업연구센터 조지홍 박사였다. 조 박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2008 년 가을, 신품종 고운의 시범재배를 시작했다.
조 박사가 품종육성에 성공한 감자 신품종인 고운은 가공용으로 최적화된 품종으로 대기업에서도 이 품종의 추이를 주목하고 있을 정도로 유망한 품종이다.
또한 일반 소비자에게 분감자로 판매할 경우 제값을 받을 수 있는 품종이기도 하다. 시범재배를 시작하면서 장 씨는 맨토인 조 박사에게 일일이 밭의 상황을 보고했다. 병충해가 발생하려 하면 바로 사진을 찍어 보내고 전화로 상담을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조 박사 입장에서도 자신의 품종에 대한 현장 모니터링이 가능해 품종 육종에도 큰 도움이 됐다. 현재 장 씨는 조 박사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 2009년 귀농교육을 받다
- 조 박사의 도움이 있었지만 농사에 대한 기초 없이 시작한 귀농이기에 한계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2009년 전문적인 귀농교육을 선택해 농사와 교육을 병행했다.
"천안연암대학 귀농교육과정을 통해 고추, 수박 등 선도농가를 찾아가 농사에 대한 현장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농식품 가공 교육을 통해 메주와 장류의 제조 방법을 정확하게 알게됐습니다. 전문적인 귀농교육을 통해 막연하기만 했던 귀농에 대한 목표와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농지의 취득, 전업농의 자격, 농업 자금의 조달 방법 등을 알 수 있게 되면서, 귀농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게 된 장 씨는 지난 7월 전업농으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농업인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 귀농, 성급해서는 안된다
사실 장 씨의 경우 전업농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 2009년 1 년간 무농약인증 감자재배를 위해 공을 들인 임차 한 밭을 포기해야만 했다. 밭으로 들어가는 길이 사유지라며 통행 금지로 막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자신의 토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그는 전업농 획득을 차근히 준비했다. 이제 전업농이 된 그는 농지규모화사업을 통해 감자를 마음껏 지을 수 있는 자신만의 땅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장 씨는 내년도 농어촌공사에서 실시하는 농지규모화사업을 통해 3.3ha의 밭을 매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절대 성급하게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땅을 일궈놨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땅인데 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귀농 한다면 텃세에 대한 준비도 있어야 합니다."
사실 장 씨는 인근 농업인들에게 큰 텃세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살면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처음부터 좋은 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농사 초짜가 동네에서는 별로 짓지도 않는 감자를 재배한다고 열을 올리고, 관행농업도 아닌 친환경농업을 실천한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은 분명히 장 씨가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것이라 생 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년이 지나고 우직하게 목표를 이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마을 주민들도 그의 별명이 왜 '탱크'인지 알게 됐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지내면 텃세도 금방 없어졌겠지만, 사람 때문에 상처를 얻고 자연으로부터 치유받고 있었던 저에게는 제가 먼저 다가가는 것도, 저에게 다가오는 것도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농사에만 더욱 전념하게 됐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탱크인 저도 텃세에 대해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 에 없었습니다. 저야 어렵게 마을 주민들에게 인정받았지만 앞으로 귀농을 준비중인 분들은 마을 주민분들과 융화될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좀 더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감자에 있어서는 더 이상 귀농인이 아닌 베테랑 농사꾼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인정받은 장 씨도 심각한 지역 텃세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농사로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는 장 씨. 이전보다는 주민들과 좀 더 친밀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친밀한 부녀관계 만든 귀농
- "사실 귀농은 저 뿐만이 아닌 제 딸아이의 장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의사의 꿈을 포기하고 식품공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죠. 우리 딸이 말하길 농사를 제가 지으면, 가공은 자기가 하겠답니다. 우리 지언이와 제게 한가지 분명한 목표가 생기게 된거죠.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 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서로를 가슴으로 이해하게 됐다는 부분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소송 때문에 자녀들에게 큰 신경을 쓸 수 없어 서로 소원해졌었다고 밝힌 장 씨는 오히려 귀농을 통해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2학년인 딸 지언양이 아버지와 함께 농촌에서 일하겠다며, 학생 4-H활동도 시작하고, 농식품가공을 전공으로 바꾸는 등 전통식품 사업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중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밭에서 일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과 내 꿈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행복이죠."
한번 생각하면 그대로 직진만을 해야하는 '탱크' 장정수 씨. 그의 뚝심이 최고의 농사꾼으로 성장시킬 것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 < 자료 출처 : 농림수산식품부, 새싹농부! 희망을 노래하다,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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