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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고린도전서 13장(1) / “사랑이 없으면...!”
+ 본 문 : 고린도전서 13장 1절 - 3절 (신약성경 279쪽)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멘!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tabula rasa" 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시는 라틴말입니다. 그 뜻은 글자가 쓰여지지 않은 석판입니다.
이 말이 심리학이나 교육학에서는 "백지상태" 또는 "순백의 마음" 을 뜻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오늘 이 예배시간부터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으로 설교할 때에 우리 모든 믿음의 가족 여러분의
tabula rasa - "순백의 마음" 에 사랑의 주님께서 “서로 사랑” 이라 써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 모두도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므로 영광을 돌리고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도 가정의 열매로 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왜 사도 바울이 사랑장을 기록하게 되었을까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그릇된 은사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교회 성도 각자에게 나름대로 필요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다 소중한 은사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기가 받은 은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사가 더 좋아
보이고, 더 커 보이는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소중한 은사를 주셨습니까? 그것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라고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데 사용하지 않고 ‘나는 이런 은사를
받았다.’ 하면서, 자기가 받은 은사가 최고라며 과시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은사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러는 은사 때문에 자만에 빠지는 사람도 생겼고, 반대로 은사 때문에 풀이 죽어서
열등감 속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잘못된 은사관을 바로 잡기 위해, 위대한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받은 은사가 다를 수 있습니다. 직분도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섬기는 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같이 다 소중한 은사요. 직분이요. 섬기는 사역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기는 오직 한 가지, 사랑이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큰일을 한다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한다든지, 또는 자신의 어떤 육신적인 이익과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서 섬기는 일이 된다면, 그 은사와 사역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로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습니다.
다함께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 가장 먼저 방언의 은사가 나옵니다. 방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내가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있는 성경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제자들은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예루살렘에는 명절을 맞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소아시아에 살던 사람들도 왔고, 유럽에서 살던 사람들도 왔고, 아프리카에서 살던 사람들도 왔습니다.
그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행하신 큰일들을 세계 각국의 언어들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더러는 유럽 말로 하고, 또 더러는 소아시아의 말을 하고, 또 더러는 아프리카의 말로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방언의 은사입니다.
특별히 외국에 나가서 선교하는 사람들에게는 방언의 은사가 참으로 요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도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사의 말” 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오는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갔던 신비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쓰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아름답고 황홀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흔히 천국 방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에 두 가지 악기가 나옵니다. 요즘 흔히 민속악기로 쓰이는 구리와 꽹과리입니다.
잘 아십시오. 이것들은 그 옛날 이교도들이 이방신전에서 주로 사용하던 악기들이었습니다.
잠자는 신들을 깨우거나, 또는 악령을 쫓기 위해서, 그들은 구리를 두드리고 꽹과리를 울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 야릇한 괴성을 발했습니다. "따따따따 라라라라…"
계속해서 그런 소리를 지껄여 댔습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방언을 한다고 하면서 이교도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깨우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쓰는 사람의 방언뿐만 아니고, 하늘에서 쓰는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에,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은사라면
그것은 이교도의 모습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말속에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줄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변이 부족하고, 표현력이 없고, 어눌하다 할지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이
담긴 말을 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평안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
따뜻한 마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말 한 마디라도 사랑이 담겨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아멘!
여기서 먼저 예언이 나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지자가 예언한다고 해서,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할 뿐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 다음으로 나오는 두 가지는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아는 것” 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어진 비밀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지식을 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수반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산을 옮길만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시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예언하는 능,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거기에서 사랑이
빠져버리면 그 결과가 무엇으로 바뀌어져 버립니까? "nothing -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그 어떤 은사이든지 간에 사랑이 있을 때만이, 그 은사들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요나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요나야, 너는 니느웨로 가서 쳐서 외쳐라. 앞으로 사십 일이 지나면 그 성이 무너지리라."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버렸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의 지식을 알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언하는 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요나는 거역했을까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이유는 단 하나, 그에게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니느웨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을 사랑했기에, 강권적으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또 다른 선지자 발람을 생각해 보십시다.
민수기 24장 16절에 보면, 발람선지자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라고 소개합니다.
민수기 24장 17절에 보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라는
놀라운 예언, 곧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이처럼 선지자 발람에게는 예언하는 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과 지식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도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발람 선지자에게도 항상 있어야 할 사랑,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언자로서 받지 말아야 할 불의한 돈을 받고 예언하였으며,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킬 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만듭니다.
그 일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염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발람 선지자 자신은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칼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자신에게 예언하는 능이 있고, 하나님의 비밀과 지식도 알고, 하나님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기에 자기 자신을 ‘something!’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nothing,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에게 예언하는 능도 없고, 모든 비밀, 모든 지식을 알지 못하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없어도,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할 너무나 소중한 한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사랑만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여러분! 그만큼 사랑은 소중하기에,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셋째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에게 얻어지는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에 보면 두 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구제와 헌신의 은사입니다.
세상에 자기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조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한다고 했습니다. 구제의 은사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하는 말씀은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을 말합니다.
세상에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헌신은 은사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으로 구제를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가운데는 구제할 때 회당이나 거리에서 나팔을 불어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구제 행위를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칭찬을 받았습니까?
구제하고 나서 축복을 받았던가요?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구제를 하기는 했지만, 그 구제를 사랑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제가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부부는 자기들 소유의 땅을 팔았습니다. 땅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바쳤습니다.
그것으로 구제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벌 받았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랑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제는 물론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헌신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만든 금 신상 앞에서 절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교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뜨거운 풀무불 속에 있는 그들을 지켜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구제와 헌신에 사랑이 더하여지면, 하나님은 내게 많은 유익된 축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그리고 예언하는 능이 있다면 좋겠지요.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다면 더 좋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구제와 생명을 바치는 헌신의 은사도 있어야 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거들이 다 없어도 되지만,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할 사랑, 믿음 소망보다
더 소중한 사랑만 우리에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남에게 유익을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삶이 값진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우리 자신도 유익 된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 이라는 단어가 불과 아홉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장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사랑은 말과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내야 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실천에 축복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힘써 사랑하여 풍성한 사랑의 열매가 맺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참 사랑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