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루의 대청호 오백리길 기행, 16코스 벌랏 한지체험 길 걷기
대청호 오백 리 둘레길 16코스는 보은군과 청주시 경계 구간에 있다. 보은 회남면사무소를 시작으로 회남천을 따라 호접산 산
협 남대문리를, 염티재 남쪽 능선을 넘어서며 청주시 권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샘봉산 산협의 유명한 벌랏한지마을을, 군도
인 염티소전로를 따라 소전 2리 소전보건진료소에 이른다. 16코스의 다른 이름이 '벌랏한자마을길'인 것은 이 구간을 대표하
는 볼거리가 바로 벌랏한지마당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일, 16코스를 걷고 왔다.
방방곡곡에 꽃대궐이 한창이다. 대청호 북쪽의 보은군 회남도 마찬가지, 이곳의 봄은 혹한의 겨울을 이겨낸 호반에 자리해서
그런지 더 화려했다. 마치 '얼어붙은 대지에 피는 봄이 더 화려하다(寒凝大地發春華)'는 듯이. 회남면 거신교 삼거리의 화려한
벚꽃 길을 따라 면사무소 앞 사담길을 찾았다. 굽돌이 회남천이 강심 저편에 연초록 건너편 산자락을 담고 고깃배의 그물질
에 이는 잔물결은 연신 퍼져가고 있었다. 회남천은 금강의 지류다. 하지만 이곳의 회인천은 벌써 불류 수평(不流水平) 대하가
되고 큰 호수(대청호)가 되어 있다. 천변 남대문공원을 지나 남대문리 마을을 돌아 거구리 마을을 찾았다. 둘레길은 마을 안
쪽 산협에서 부터 산넘이 길이다. 산골을 오르다 나물 뜯는 노부부를 만났다. 인사를 건네니, 환한 모습으로 '요즘 뜯는 쑥은
보약이랍니다.' 라며 화답한다. 자연이 삶이고, 삶이 곧 자연인 사람들, 주름 깊은 그 얼굴에 피는 봄빛이 화사해 보기 더 좋았
다.
지도 상 송이재배지로 표시된 능선 안부를 찾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세 곳 산봉우리를 넘어, 벌랏 선착장을 돌
아 유명한 벌랏 마을을 찾았다. 주소는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소전 1리다. '벌랏'은 '비탈밭들이 많은 산촌'이란 뜻을 가진 이
름이라 한다. 샘봉산 남쪽 산협 오지인 이 마을의 역사는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사람들로부터 비롯되고, 오늘날은 한지 체험
마을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었다. 기대하고 찾은 한지 체험장은 마침 촌장이 출타하고 문이 닫혀 아쉬웠다. 한지(韓紙)는 내
게 있어 늘 어릴 적 추억을 불러오게 하는 단어다. 어릴 적 나는 아랫마을 윗마을 60여 호가 있는 울진 산촌 마을에 살았다. 4
대가 함께 살았던 우리집은 전면 4칸 반. 측면 두 칸 팔작지붕 기와집이고, 초가(草家) 별채와 디딜방아깐 별채까지 있어 방
문(房門)이 많았다. 마을 앞 실개천 가에 있는 밭둑이 높고 긴 밭이 있었는데, 이 밭둑에 닥나무가 가득 심겨 있었다. 가을 농
번기가 끝나면 할아버지가 인부들과 닥나무를 베어 단을 묶어 놓으면, 이웃 산촌 마을 한지 공장 사람들이 와서 껍질을 벗기
거나 나뭇단을 그대로 지고 갔고, 겨울이 지나면 전지 10장씩 두 번 접어 한 권을 이룬 2~30십 권의 한지 묶음을 지고 집으
로 가져왔었다. 그리고 그 한지로 매년 초겨울 바람 없는 맑은 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문짝마다 묵은 한지를 떼어내고
새 한지를 발랐었다. 문고리 부분은 찢어지지 말라고 특별히 두 겹으로 바르며 나를 불러 문 여닫을 때 조심하라 일러주시곤
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문 바르던 결 거친 옛 한지 여러 장을 서울 집에 보관하고 있다.
벌랏 마을에서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염티소전로, 1차선 지방 군도다. 길은 마을 뒤로 돌아 언덕으로 오르고 고개 넘어
소전 2리로 이어진다. 샘봉산 능선 300m 이 길 서낭당재는 이 구간 최고의 뷰 포인트다. 고개에서 뒤 돌아 동쪽을 보면 벌랏
안골 동쪽으로 조금 전 지나왔던 험한 산능선이 마루금을 잇고, 남쪽을 쫓으면 전전 코스에서 지나왔었던 막지봉이 산그리
메를 그리며, 그 멀리엔 고리산(환산)이 또 보일 듯 말 듯 아름거린다. 재 넘어 소전 2리를 찾았다. 양지 녁 돌담에 핀 금낭화
가 주렁주렁 예쁜데, 발랏에서는 없던 배나무 밭 과수원에 가지마다 벌써 앙증맞은 배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올
해는 산촌의 봄도 일찍 피었다.
촬영, 2023, 04, 01.
▼ 회남면 조곡리 입구, 거신교 삼거리
▼16구간 안내도
▼전구간 안내도
▼거신교 입구
▼ 거신교
▼ 거신교 아래 회남천과 우측 사담길 데크
▼ 회남면사무소
▼ 거교 2리, 벽화 마을 - 1
▼ 거교 2리, 벽화 마을 - 2
▼ 벽화 마을 선착장
▼ 거신 2리 선착장
▼ 한국 토종 하얀 민들레
▼ 남대문 공원
▼ 남대문교 아래 회남천과 건너편 회남로 벚꽃 터널길
▼ 회남로 남대문교
▼남대문교 동단 남대문 1리 가는 길
▼ 남대문리 동구와 원탑(圓塔)
▼ 산당화
▼남대문리 경로당
▼ 남대문 삼거리
▼ 거구리 경로당
▼ 거구리 마을
▼ 거구리 마을 뒤 산협 임도
▼ 보은군과 청주시 지경의 산능선 해발 300m 봉 / 옹이버섯 재배지 남쪽 봉우리
▼ 벌랏 안골 하산로
▼현호색
▼ 괭이눈
▼ 벌랏 안골
▼ 벌랏 선착장
▼ 벌랏 선착장 삼거리의 안골 입구 꽃터널길
▼ 샘봉산 자락 벌랏 마을
▼ 벌랏 마을 쉼터와 경로당
▼ 벌랏한지마당
▼ 한지마당 사무실 / 출입문이 닫혀있음
▼산두릅 새순
▼딱총나무(접골목) 꽃송이
▼ 마을 뒤 언덕에서 본 벌랏과 앞산 / 방금 지나왔던 능선으로 청주와 보은 경계 능선임
▼ 벌랏 마을 뒤 마을 쉼터
▼ 산도화
▼ 샘봉산 '염티소전로' 서낭당재 / 소전 2리와 소전 1리(벌랏)를 잇는 군도(郡道)
▼서낭당재 전망대에서 본 벌랏마을 쪽 풍경 / 맞은편 산은 조금 전 걸어왔던 능선임
▼ 서낭당재에서 남쪽으로 본 풍경 / 멀리 왼쪽은 막지봉, 가운데 희미한 산이 환산
▼ 소전 2리
▼ 금낭화
▼ 소전 2리 /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소전리
▼소전보건진료소
첫댓글 어린시절 한지에 얽힌 추억이 저한테도 있었지만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되살려 주셔 감사합니다.
봄꽃들이 다투어 우리곁으로 얼굴을 내미는 약동하는 봄날
싱그러운 봄소식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화려하게 피었다 한 순간 스러지는 봄날의 수채화는
마음 속으로 담아 두고
두고두고 음미하는 여유를 가지면
더 좋겠지요.
늘 건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