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창고는 2백원짜리 머리핀에서 1만원짜리 의류까지 다양한 중고물품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국내외 불우 이웃들을 돕기 위해 99년 설립됐다.
지난해엔 기증받은 3억원 상당의 물품 가운데 약 1억원어치를 팔았고, 나머지는 국내외 결식아동.독거노인.복지시설 등에 직접 물품으로 전달했다.
지난 14일 서울 청담동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생명창고 매장에서 高씨를 만났다.
홍익미대 2학년이던 1965년 난의 비가(悲歌)로 데뷔한 뒤 각종 문예 영화에서 발산했던 아름답고 고운 자태는 예전 그대로였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일까.
귓가에는 하얀 머리카락이 한 움큼 둥지를 틀었고, 눈 주위에도 주름살이 늘어나 있었다.
현재 여덟살짜리 손녀를 둔 할머니다.
생명창고 대표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집과 사무실로 축하 화분이 쇄도했다고 한다.
"대중 앞에 다시 서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하지만 취지가 워낙 좋아 생명창고 대표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죠.
특히 기독교 신자로서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도 저를 채찍질했고요." 사실 高씨의 성실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CBS가 80년 9월 시작한 신앙간증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를 무려 15년간이나 진행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장안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
특히 그동안 그는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새롭게 하소서의 방송출연료를 딱한 이웃들에게 내놓았고, 97년엔 북한돕기성금으로 1천만원을 기부했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의 인연도 90년대 초반 이 단체의 자선공연 행사에 무료로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향후 생명창고 대표로서 두 가지에 주력할 생각이다.
첫째 되도록 많은 중고 물품을 기증받고, 둘째 현재 하나밖에 없는 생명창고 매장을 더 늘리는 것이다.
"집안에 사용하지 않고 쌓아둔 물건이 있으면 어려운 이들을 생각해 연락을 주세요.남을 위해 하는 선행이 습관이 되면 우리 삶의 행복도 더욱 커질 겁니다." 高씨는 79년 TBC의 여자의 얼굴을 끝으로 연예계를 떠날 때까지 2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기도 했다.
"젊을 때는 쏟아지는 찬사에 마음이 들뜨기도 했어요.
그러나 마음 한 편에 그 인기가 제가 평생 가치를 둘 만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연예계 은퇴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었죠." 그에게선 50대 후반의 나이에 어울리는 관조적 삶의 자세가 엿보인다.
마치 故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의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구절의 주인공처럼…"요즘 세수 후 거울을 보면 어머니가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