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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섬투어♪
*일시: 4월 8일(둘째 일요일)
*동구청6시>대우APT10분>북부20분>두류역1번출구(코오롱 스포츠 옷매장앞)6시30분>성서홈플 지나서 굴다리밑6시40분
*시간 엄수,신분증 지참*
*버스: 드림투어1624(황금색) 김상현 기사님:010-3388-3403
*총 무:정미연010-3002-6758.유동훈010-3523-4900.산대장:박상영010-3011-9147
*회 비:70,000(배삯16,000포함+25인승버스?+특식?+주류?+등등=적자)
*대구은행(황태경):010 8873 9951
*배편 관계로 인해 부득이 1시간 앞당기며 예약 받습니다*
*조식.중식 제공 하오나 개개인 간식은 넉넉히 지참 바랍니다(소지품 검사함)
☜일 정☞
*06:40성서홈플 출발(차내조식)→10:30분(목포 북항도착/승선.유람선)→12:00비금도(가산항)도착 (현지백반특식으로 중식)→13:30비금도 천혜의 자연경관 관광(25인승 버스대기)하트해변 골목길 투어.명사십리.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의 고향(기념관 탐방).논드래미 해변.국내최대 천일염 생산지→17:40일정종료(비금도 출발)→19:20목포 북항도착/대구로 출발→22:00대구도착/해산(당일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수 있음)*
*마을형성
삼한시대유랑하던 유족이 당두에 최초 입도 생활근거지로 정착. 이후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유배 및 유랑민들이 정착하여 다양한 씨족이 분포됨. 당초 10여개의 섬으로 형성되었으나 사람이 정착하면서 인력으로 방조제를 막아 현재의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당시 배가 드나들던 구지(곶)가11개소 있었음.
*지명유래
비금도는 섬 전체의 형세가 날아가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날 비(飛) 새 금(禽) 섬 도(島)자를 써서 "비금도"라 칭하였다.
*지리적
위치(현황)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지역으로 동경
125°55', 북경 34°45'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다도해의 일부로써,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으로는 성치산성이 서쪽으로는 선왕산이
우림하여, 그 사이의 평지에 1,515ha의 농지가 펼쳐지고,
동남해안은 약22km 25개의 방조제가 축조되어 420의 염전이 형성되어 있음.
◈ 비금도는 약1,880가구
약3,92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51.53㎢ (신안군의 8.20%) 경지 31%
(15.96㎢), 임야 45.5% (23.47㎢), 기타 23.5% (12.11㎢)
◈ 유인도서 3개 (비금도, 수치도, 상수치도)와 무인도서
79개로 형성되어 해안선은 132.64㎞에 이르고 있다.
◈ 동으로는 바다건너 암태, 팔금, 안좌도와 서쪽은 바다건너
흑산도와 마주하고 남으로는 도초도와 북으로는 자은도와 이웃하고 있다.
*비금도의 특산품
◈ 비금섬초
- 1958년경에 비금면 죽림리(임리) 최남산씨가 종자를
구입 재배를 시작 처음에는 서부지역 일원에서 주로 재배를 시작하여 중.동부지역으로 확산됨
비금에서 생산된 시금치는 "비금섬초"라는 브랜드로
가락동시장으로 대부분 출하된다.
- 섬초(시금치) 연 재배면적은
642ha(800여농가), 생산량은 10kg상자 42만상자 소득예상량은 약100억정도
- 비금섬초(시금치)는 청정해안의 게르마늄 지질대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 단맛이 강하고 비타민A, B, C, 철분과 칼슘성분이 다량 함유된 알카리성
건강채소이다
◈ 비금도
천일염
- 소금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비금도의 천일염 역사는
1947년 일제시대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평안남도 주을염전에서 일하던 비금도 출신 박삼만씨가 해방후 고향으로 돌아와 약2ha의 개펄에 염전을
만들어 천일염 생산에 성공한 것이 시초이다.
1948년경에 비금도의 450세대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여 조합원들은 떡메산 바위와 흙으로 약2km의 제방둑을 축조하여 약3년만인 1950년에 완공하여 150여ha가 넘는 염전을 조성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약100ha의 대성염전을 만들었다. 이 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전매청에서 전량 수매하여 판매하는 전매사업방식이었으며, 우리나라
염전발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대동염전은 2007년 11월22일 근대문화유산 362호
지정(비금면 가산리 213-35외)되었으며, 대동염전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청정해역 바닷물로 가장 질 좋은
천일염을 생산하는 이 곳 아름다운 섬 비금도의 대동염전 소금이야말로 최고의 소금이 아닐까 생각 든다.
*비금도 소개
◈ 선왕산(255m)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산으로서 전국최초로 도서등산로가 개설되어 제 2회 도서등산대회가 열렸으며 등산로가 안전하고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숲과 암벽, 능선이 적절히 조화되어 오르는 재미가 있어 주민들은 물론 등산을 즐겨 하는 외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산이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얼음처럼 잔잔한 바다 위로 떠있는 작은 섬들, 하얀 염전과 푸른 들이 뒤섞인 풍광이 아름다우며,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트모양의 하누넘해수욕장과 그 너머로 떨어지는 짙은 석양은 도서등산만의 장점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섬에서의 하루를 충만하게
한다.
선왕산 정상
선왕산의 숲과 암벽은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벨벳처럼 곱고 맑은 모래와 잘 조화되어 있는데 산 정상에서 보이는 하얀 염전과 잔잔한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어서 비금도의 보물이기도 하다. 선왕산의 숲과 암벽은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벨벳처럼 곱고 맑은 모래와 잘 조화되어 있는데 산 정상에서 보이는 하얀 염전과 잔잔한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어서 비금도의 보물이기도 하다
◈ 명사십리.원평해수욕장은 길이 4Km, 폭 150m의 해수욕장으로 서해바다에서 밀려오는 모래로 형성되어 있으며, 하얀 모래가 십리를 두고 펼쳐진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 원평해수욕장이 있는 명사십리는 붉은 해당화와 진녹색의 곰솔숲 사이로
희망산책로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가는이의 발걸음을 묶어두곤 한다.(원평에서 수림마을
사이) 수림마을 입구
윈디펜션 앞에는 풍력발전기 풍차 3기 세워져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명사십리 풍차
◈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하누넘해수욕장은 비금면 내월리에 위치하며, 길이 1Km, 폭
50m(간조시)에 이른다. 다도해해상 국립공원내에 위치하며 해변의 모습이 하트를 형상하고 있어, 하트해변, 또는 사랑의 해변으로 불리고 있고,
SBS 드라마 『봄의왈츠 감독 : 윤석호』의 촬영지로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이 찾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기암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 하트해변의 전설 : 하트해변에는 할머니가 볼일을 보다 깜짝 놀라 주저앉는 바람에 바닥에 엉덩이가 찍혀 생겼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오는 엉덩이바위가 있다. 핸드프린팅처럼 엉덩이를 눌러 놓은 것 마냥 바닥에 펼쳐진 바위가 앙증맞다. 그런가하면 해변 위쪽 산 쪽을 바라보면 할아버지가 공기놀이를 했다는 공깃돌바위도 눈길을 끈다. 해변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하늘과 맞닿은 능선의 바위로 된 봉우리가 보인다. 그 봉우리 왼쪽의 평평한 바위 위에 공깃돌 같은 바위가 놓여있다
하느넘 일주도로에서 바라 본 일몰
◈ 고막해수욕장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2곳의 아늑한 백사장과 백사장 주변은 기암괴석과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또한 천연기념물 제332호인 칠발도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칠발도 너머로 지는 석양의 낙조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바다속으로 빨려 들듯한 황홀감에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천연기념물 제332호인 칠발도
해변을 지나 조그만
언덕에 올라서면 옛날 우리 조상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용머리가 한 눈에 보이며쾌청한 날이면 흑산도까지 보이곤
한다.
기우제를 지내던
용머리
◈ 칠발도는 해발 104m로 바다
가운데 돌출한 경사가 60도 이상이나 되는 가파른 등대섬으로 섬의 둘레는 바위절벽이나 암석이 노출된 일부의 지역을 제외하고는 키가 1m나 되는
모락풀이 자라고 있으며 2월부터 11월까지 바다제비,바다쇠오리, 슴새등 많은 희귀한 바다철새들이 집단으로 번식하고 있음. 칠발도는 철새들의
이동경로상의 출발지점이며 또한 철새들의 휴식지로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임. 또한 칠발도 주변은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 332호
규 모
: 면적 35,703㎡ 해안선 2.5㎞
지정연월일 : 1982년 11월
4일
◈ 용소리 마을의 바로 앞에는
천연 연못인 용방죽이 있는데 면적 9,118평, 깊이 3m인 이 연못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이곳에서 용이 살다가 승천하면서
꼬리질을 한데서 연유된 곳에 지금도 물이 그치지 않고 치솟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수많은 식물과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연꽃이 가득자라 있어 연꽃이 필 무렵이면 홍련과
주위의 풍광이 잘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용방죽 연꽃 필 무렵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연꽃
◈ 떡매산
이야기
옛날에 큰 산이 공중에 떠오는데 그 산의 바위 위에는 장군이
말을 타고 서 있었다. 원래 그 산은 비금 용소리에 내려 앉을려고 했던 것이나 용소리에 채이르기 전 도고리와 가산리 중간쯤 이르렀을 때 마침
아이난 여인이 피묻은 속옷을 빨고 있다가'떠 온다 떠 온다 떡메산' 하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여기에 부정을 탄 공중에 떠 있던 산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내려 앉아 버렸다. 그것이 지금의 떡메산이다. 지금도 그 산의 바위 위에는 장군이 두던 바둑판이 새겨져 있으며 우산처럼 생긴 우산 바위
장군의 신자욱이 남아있는 신바위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낮은 암벽 구릉으로 이루어져 짧은 시간안에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주변에는 대규모 염전이 많아 여름에 산 정상에서 주위를 바라보면 온통 하얀 눈이 온 천지를 뒤덮는 듯하여 풍치를
더한다
◈ 비금도 동북방 끄트머리에 위치한 광대리 소재 해발 164m의 성치산 정상부에는 고려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추정되는 성치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높이 12m, 면적 45.936㎡로써 주위가 130칸 되는 돌성이다. 1231년 몽고병이 침입하기 이전만 해도 성 밑에 마련된 넓은 땅에서 군사훈련을 하느라고 함성과 말발굽소리가 요란했다고 ~~~~~~~~~~~~~
성치산 성지는 거의 소멸되었으나 오늘날까지도 성치산성의 맨 꼭대기에는 봉화대가 뚜렷이 남아 옛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성치산성 봉화는 옛날 우리나라의 서남해 도서지방을 연결하는 곳으로 흑산 봉화를 받아 목포 유달산, 무안 삼향 왕산,
함평 옹산, 개성,강화도로 이어졌으며, 이 곳에 봉정이 주둔했다고
한다
◈ 당
제
옛날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그 딸은 선왕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끝내는 죽고 말았다. 그 후 딸의 원혼이 울면서 마을을 돌아다녀
주민들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선왕신으로 모시고 당제를 모시게 되었다. 당제는 선왕산 중턱에 있는 동자상 앞에서, 거리제는 마을입구 노변에서
행해진다. 원래는 당제에 신체가 없었고 선왕산 중턱 두 개의 바위틈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다가 1947년 이 마을의 유지인 유영덕씨가 이 곳 두
개의 바위사이에 동자상을 세웠고 이 상이 당제의 신체가 되었다.
◈
서산사
서산사 고려후기 우왕 1년(1390년) 불교의 미타신앙과 우리 고유의 용왕과 산신 신앙이 복합된 신앙을 기원으로 당초 내월리 선왕산 뒤편에 처음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음.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선왕산 중턱으로 선과 교를 방편삼아 교화를 펼쳤다고 전해지며 1898년 목포개항과 더불어 현 위치에 옮겨 3차에 걸쳐 중창하였음.
◈월포 내월리
석장승
1950년대 어느 해 마을의 젊은이들이 원인 모르게 사망하는 등 마을에 액이 겹치자
풍수지리에 밝은 이 마을 주민 전남균씨가 선왕산 숭애봉의 세찬 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숭애봉과 마주보는 장승을 세우도록 주장하고, 주민들은 큰
바윗돌을 구해다 장승을 깎아 세워 앞산의 기를 꺾음으로써 액을 막을 수
있었다.
☞참고사항:산행시 발생한 개인의 어떠한 사고도 본 산악회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꼭 안전산행에 유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