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넘어 탄 기차는 아침 8시 즈음 하이데라바드에 닿았다. 몇 시간을 굶었을까. 배가 고프다못해 이제는 감각이 없어지려 하고 있었다. 피곤에 절은 몸을 질질 끌고, 하이데라바드 기차역 밖으로 나갔다. 햇살이 어지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호객 행위를 하기 위해 몰려드는 오토릭샤 드라이버들. 그들은 "마담, 칲 호텔"을 외쳐댔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에워싸고 졸졸 따라왔다. 주머니엔 꼬깃한 25루삐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25루삐면 시티뱅크까지 오토릭샤를 타고 갈 수 있을까 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졸졸 따라오는 오토릭샤 드라이버들을 휙 돌아보았다.
"나는 시티뱅크에 가고싶은데 말야. 시티뱅크 알아?" "물론이지." "시티뱅크까지 얼만데?" "20루삐만 내." 주머니에 25루삐가 있었으므로, 오토릭샤비를 내고 짜이를 한 잔 마시고도 2루삐가 남을 터였다. 그러나 길을 모르면서도 무조건 안다고 말하고 일단 손님을 태우는 인도의 오토릭샤 드라이버들인지라 믿을 수가 없었다. "근데, 시티뱅크 위치 정말 아는거야?" "그럼 물론이지, 마담, 여긴 시티라서 뱅크가 많다구." "......"
시티라서 뱅크가 많다니, 이런. "그래, 여긴 시티지. 내 말은 시티에 있는 뱅크 말고, 시티뱅크." 오토릭샤 드라이버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시티뱅크 ATM카드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자, 이것 봐봐. 여기 시티뱅크 라고 써있지? 뱅크 이름이 시티뱅크라구. 시티에 있는 뱅크가 아니구."
오토릭샤 드라이버는 시티뱅크의 로고를 처음 보는 듯했다. 저런, 그래놓고 나보고 타라고? 오토릭샤비가 20루삐라고? 가만히 있었으면 제일 가까운 은행앞에 세워주고, 시티에 있는 뱅크에 왔다면서 돈을 요구했을게 뻔하다. 그럼 이를 어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 오토릭샤 드라이버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마담, 내가 시티뱅크를 알아. 내 오토릭샤에 타." "정말 알아?" "응, 정말 알아." "오토릭샤비가 얼마야?" "거리가 좀 되거든. 50루삐." "말도 안돼. 너무 비싸잖아." "하이데라바드 공항 가는 길에 있어서 좀 멀다구." "조금만 깎아줘, 돈이 없어." "얼마면 되겠어?" "25루삐..."
잠시동안의 실갱이 끝에 나는 그의 오토릭샤에 올라탔고, 오토릭샤는 부릉부릉 기분좋게 달렸다. 가이드북에 시티뱅크의 위치가 안나와있는 것을 보면 시티뱅크는 중심가에 있지 않은게 분명했다. 그래서 일단 나는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처음 들렀던 은행은 시티뱅크가 아니었다. 난처해 하는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는 금새 표정을 바꾸더니 "노 프라블럼" 이라며 방향을 바꾸어 오토릭샤를 몰았다.
그 역시 시티뱅크의 위치를 모르는게 분명했다. 나는 스멀스멀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얼른 돈을 찾아서 푸짐하게 아침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던 기분이 조금씩 짜증으로 바뀌었고, 모르면서 안다고 말하고 무조건 타라고 말한 그에게 화가 났다. 그래, 너 그렇게 헤매봐라. 내가 25루삐 이상 주나 봐라.
한참을 빙빙 돌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그는 오토릭샤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시티뱅크의 위치를 묻기 시작했다. 아무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가다가 세우고 묻고, 또 묻고 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나서 팔짱만 끼고 방관하고 있던 내가 우연히 그의 뒷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그만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가 한쪽 다리를 절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는 한쪽 다리를 절며, 열심히 사람들에게 시티뱅크의 위치를 물었다. 그렇게해서 결국 시티뱅크를 찾았고, 나는 8000루삐를 인출했다. 인출된 빳빳한 돈을 보면서 안먹어도 배부르다는게 어떤 느낌인지를 절절히 느꼈다.
아직 오토릭샤비를 받지 못한 오토릭샤 드라이버가 은행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처음 약속한 25루삐가 아닌 100루삐를 릭샤비로 주었다. 그도 만족했는지 씨익 웃었다. "그런데, 아침 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내가 아침 사줄께. 여기 맛있는데 어디야?" "내가 아는 곳 있어, 갈래?" 주머니가 넉넉해진 나는 마음도 넉넉해져 그에게 아침까지 사주었다.
첫댓글 쥔장님 참 착하군요^^
정현님 멋져요~~^^
저두 끝까지 달려와버렸네요..정말 재밌게 글 잘쓰셨어요..정말 인도가고싶은생각이 간절하답니다..우선 이 몹쓸직장부터 때려치워야..!!-ㅅ-;;
나두 몹쓸직장..ㅠㅠ
시티에 있는 뱅크 시티에 있는 뱅크? 역시 인도답군요. 5학년이 단숨에 달려오느라 ,,,딸애 눈총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밤잠 또한 설쳤으니 그래도 정현씨 무지 이뻐합니다.건강히 여행마치길 기원할께요,,,,,
< 진실>보다 강력한 무기가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