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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산행(성삼재 -천왕봉 -중산리)
□ 산 행 개 요( 봄철 지리산 종주)
○ 산행일시 : 2005, 5, 14- 5, 15(1박2일)
○ 산행코스 :
-5월 14일 : 성삼재-노고단대피소-임걸령-삼도봉-화개재-토끼봉-연하천산장(점심)
- 벽소령 -선비샘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 세석산장(숙박)
-5월 15일 : 세석대피소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 -장터목산장 -제석봉 -천왕봉(정상) - 법계사 -로타리대피소 -칼바위 -중산리 식당가(점심)
○ 도상거리
-성삼재 - 노고단 2.5km
-노고단 - 세석산장 20.4km
-세석산장 - 장터목산장 3.4km
-장터목산장 - 천왕봉(정상) 1.7km
-천왕봉 - 중산리식당(매표소) 5.4km
※도상총거리: 33.4km(실제거리 약 40km이상)
○ 등반인원 : 목포해수청 산악회원 13명
○ 등반일정: 2005년 5월 13일 - 5월 15일
5월 13일
16:30, 목포해수청 직원숙소에서 16인승 미니버스에 12명이 탑승하고 구례로 출발함
순천에서 팀원1명이 합류하여 등산인원 13명
19:10, 구례읍 화엄사지구 내 지리산파크 모텔도착, 숙소배정
19:30-20:30, 지리산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저녁식사 후 취침
5월 14일
03:30, 전원 기상 및 산행준비
04:30, 지리산식당에서 재첩국으로 아침해결, 점심용 주먹김밥을 챙기고 출발
05:20, 지리산 성삼재 주차장 도착하여 산행시작(05:16, 시암재 경유)
17:16, 세석산장 도착(1박) ---약 12시간 소요
5월 15일
04:30 - 05:30, 기상 및 아침식사
05:40, 세석산장 출발
08:25, 천왕봉(1,915m 정상)도착
09:08, 천왕봉 하산 시작
10:30, 법계사(해발1,450m) 도착
12:15, 중산리 도착(종주산행완료)....하산시간 약 3시간 7분소요
11:40(선발대 도착시간)
프롤로그
지리산, 우리나라(북한제외) 에서 한라산 빼고 육지에서는 최고의 높은산이고 전남, 전북, 경남 등 3도에 걸쳐 형성된 거산, 기억이 맞다면 아마 1971년 봄철 학창시절 산악회를 따라 화엄사에서 노고단에 올라본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지리산에 대한 유일한 추억이다.
사실 나는 산을 모른다 살아오면서 등산이라면 직장에서 봄. 가을 야유회로 인근 5-600m 정도의 산행이나 일요일에 가끔 동네 뒷산에 집사람과 함께 산보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이곳 목포에서 혼자 생활을 하게 되어 이 기회에 골프를 배울까 생각하던 중에 지난해 봄부터 직원들과 일요일 같이 산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동안 전남도 일원의 이름 있는 산은 대부분 섭렵하게 되었고 지난 1월에 주작산을 산행하면서 평생에 한 번 쯤은 지리산종주산행을 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게 되었다. 지리산 종주를 위한 사전 훈련의 일환으로 월출산, 두륜산, 만덕산, 팔영산, 무등산, 백운산, 제암산-사자산 등을 산행하면서 나름대로 체력강화와 컨디션 조절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참여의사를 표명하여놓고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피치 못 할 사정이 생겨 이를 핑계로 못가겠다고 취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사실 출발 전부터 상당히 초조 했던 건 사실이다. 만약 산행 중에 낙오라도 하면 팀 전체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05년 5월 9일 17시 00분 산행에 관한 예비모임이 있었고 산행준비에 관한 경험자의 이야기를 메모하여 사전준비를 하였다. 평생처음으로 해드렌턴을 구입하여 이마에 걸고 거울을 쳐다보니 탄광의 새내기 광부 같아 혼자 미소 짓기도 하고 의료기 상사에서 무릎보호대를, 등산자켓, 우의, 여벌용 등산복, 지팡이, 세면도구, 비상약품등을 구입하여 미리 배낭을 꾸려놓고 필요한 음식, 과일, 이동식 등을 출발당일 마트에서 구입하여 챙기니 무게가 약 15kg이 넘는다. 사무실 직원들이 너무 무겁다고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꼭 성공하라고 격려를 해준다.
5월 13일 16시 30분 해항청 관사에 모여 17인승 버스에 등산인원 13명 중 12명이 탑승하고 구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동안의 준비과정과 여러 가지 정담을 나누면서 산행계획과 일정을 논의 하면서 한참을 달리니 어느덧 순천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부산에서 교육을 받고 귀가도중 산행에 합류한 산악회원이 마지막으로 탑승하여 19시 10분경 구례읍 화엄사지구에 있는 지리산파크 모텔에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하였다.
지리산 기슭이라 벌써부터 상큼한 산 공기가 너무나 신선하다. 가족과 함께 하루밤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시 경 인근 지리산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시키고 어느 회원이 가져온 약주로 목을 추기니 그 맛이 일품이다. 풍성한 몸매를 자랑하는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온갖 산채나물을 듬뿍듬뿍 푸짐하게 주신다. 정말 인심 좋은 식당이고 음식 맛도 아주 좋다.
내일 새벽부터 시작될 산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 못 이루는 스타일 탓이기도 하지만 긴장도 한 것 같다.
5월 14일 03시 30분, 모두를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스럽다. 다시 한번 배낭상태를 점검하고 샤워를 한 다음 어제 저녁을 먹었던 지리산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 아주머니는 벌써 재첩국을 차려 놓고 점심용으로 깁밥을 준비하여 주신다.
아침을 마치고 04시 50분 성삼재를 향하여 우리의 미니버스는 새벽공기를 가르고 가파른 길을 달린다. 05시 15분 시암재 휴게소에서 날이 밝아오는 지리산을 바라보니 저 멀리 계곡에 운해가 걸려있다. 05시 20분 성삼재주차장에 도착하여 미니버스는 내일 중산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드디어 지리산 종주산행이 시작되었다.
2005년 5월 14일 05시 22분 성삼재 매표소 앞 졸린 눈을 비비며 관리공단 직원이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세상에 근무시간도 아닌데 꼭두새벽부터 입장료징수라니 한바탕 웃음을 뒤로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대장정에 돌입하였다.
무엇보다도 기상상태가 너무나 좋았다. 구름한점 없이 화창하고 바람도 없다. 날씨가 좋다보니 지리산 운해를 비롯한 일부 비경을 볼 수 없음이 차라리 아쉬울 정도인데.......역시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천왕봉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모두의 안전하고 성공적인 산행을 위해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하면서....
산행기
2005년 5월 14일(토)
성삼재-세석산장(5. 14. 05:22-5. 14 17:16, 22.9km 약 12시간소요)
05:22, 성삼재 출발
성삼재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되어 있는 큰 임도길이여서 산행길이 아니고 관광지 입구를 걸어가는 기분 이였다.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코재를 지나 큰길에서 산길로 조금 올라가니 약 45분여 만에 노고단대피소가 나온다.
06:05, 노고단대피소 도착(06:12, 출발)
벌써부터 많은 등산객이 부산 거린다. 라면도 끊이고 밥도 하고 아침식사가 한창들이다. 저녁 등산을 하고 하산길이 대부분이고 우리처럼 종주를 시작하는 사람, 노고단까지만 왔다가는 사람, 반야봉까지만 계획하고 있는 사람 등 각기의 목적지가 다르지만 생기가 넘친다. 주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가족팀도 있고 연수팀도 보인다. 물병에 식수를 채우니 배낭이 더욱 무거워진다. 천왕봉 25.9km의 표지판을 보면서 다시 출발한다.
06:21 노고단(老姑壇, 1,507m) 도착
원래 노고단은 늙은 할미제사터 라고 한다. 오른쪽 편에 조금 더 올라서야 원래 노고단인데 그곳은 출입통제로 막혀있고 이곳에 돌탑이 서있다. 노고단에 올라서니 정면에 반야봉이 반기고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우리도 단체로 증명사진 한 컷하고 곧바로 출발이다.
* 지리연봉 반야봉을 뒤에 두고 노고단 에서 *
07:08 피아골 삼거리 통과
노고단부터 이곳까지는 별 무리가 없고 무난한 산행길이다 다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주변의 산세도 보고 여러 수종의 나무도 살펴본다. 아직까지 이곳은 철쭉이 피지 않고 꽃 봉우리만 맺혀 있다. 아마 일주일 이상 있어야 만개할 것 같다. 높은산이라 개화시기가 늦어지는 것 같다.
07:17 임걸령 샘터 도착(07:23, 출발)
지금부터는 오르막길을 올라서 가다가 노루목을 지나 반야봉을끼고 가야하기 때문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식수를 공급받는다. 일행 중 산행 전문가 수준인 회원 2명은 이곳부터 아예 선발대로 우리보다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우리와는 보조를 맞추기가 시시한 모양이다.
07:53 노루목 도착(08:00, 출발)
오르막길을 헉헉거리며 노루목 고개에 이르니 숨이 찬다. 다른 산행객들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전망 좋은 바위에 걸터서 배낭을 벗고 오이와 오렌지를 한 조각 먹는다. 서로들 자기의 과일을 먹으라고 권하지만 자기 것만 먹는다. 자기 것을 먹어야 조금이라도 배낭이 가벼워지기 때문에 남의 것은 먹지 않는다. 힘이 들다보니 이해가 간다.
이곳에서는 반야봉(1,732m)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다. 지리산 능선 종주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반야봉을 들르지 않고 그냥 가지만 봄여름에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반야봉을 거쳐갈 것을 권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역시 반야봉은 다음으로 미루고 삼도봉으로 향한다.
반야봉은 지리산 어디에서 보아도 여인의 엉덩이 같은 형상의 정답고 포근한 봉우리로 지리산을 대표하는 상징적 봉우리이다. 실제적으로는 천왕봉(1,915m), 중봉(1,875m), 제석봉(1,806m)에 이어 제4봉이며 전북의 최고봉이다. 반야봉의 낙조는 지리산 8경중의 하나로 매우아름답다고 한다.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원래 명칭이 대지문수사리보살에서 지리를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따라서 지리산의 많은 명칭들이 불경에 나오거나 불교와 많은 인연이 있는 것이 대부분으로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반야란 여섯 가지 바라밀의 으뜸 바라밀이고 지혜의 화신이므로 사찰의 문지기인 (사대)천왕과는 그 품격이 다르기 때문에 반야가 천왕보다 월등 높은 품격이므로 주봉은 천왕봉이지만 주산은 반야봉이라고 한단다.
08:17 삼도봉 도착(08:25, 출발)
전남, 전북, 경남의 3도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 하여 삼도봉에 도착하여 3도 경계표지동판과 함께 증명사진 촬영하고 잠시 숨을 고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산행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저 멀리 강이나 바다, 들판 그리고 도시와 마을들이 펼쳐 보인다. 그러나 이곳 지리산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산이요, 계곡이요 또한 산이 보일 뿐이다. 정말 장쾌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게 굽이굽이 이어지는 봉우리와 능선은 장관이다. 지리산은 풍만한 가슴을 가진 푸근한 중년여인의 분위기를 느낀다. 정말 거산이고 웅산이다.
삼도봉을 출발하려고 배낭을 메는 순간 뿌지직 하면서 오른쪽 배낭끈이 찢어진다. 큰일이다 배낭이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 같다. 등산용품은 고급제품을 써야한다며 좋은 것으로 바꾸라며 한마디씩 한다. 걱정이다 끈이 떨어지면 어떻게 가야하나 걱정속에 하중을 왼쪽에 받도록 조정을 하고 토끼봉을 향한다. 조금 지나니 상당한 거리의 나무계단이 설치된 내리막길이다. 내려가면 오르막이 길어지기 때문에 모두들 한숨을 쉰다. 나는 두 무릎이 시큰거리고 통증이 온다. 관절이 약한지 내리막길이 아주 고통스럽다.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에어파스를 듬뿍 뿌려본다.
* 삼도봉에서 뒷 배경 반야봉 *
08:42 화개재 도착(08:47, 출발)
해발 1,315m 지리산 종주산행코스 중 가장 낮은 고개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오르막길이다. 왼편은 뱀사골, 오른쪽은 칠불사 계곡으로 하동군 화개면으로 갈 수 있는 고개였던 모양이다.
09:25 토끼봉 통과(1,533m)
화개재에서 오르막을 올라 토끼봉을 통과하면서부터 다리 근육이 뭉쳐온다.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이 강점이 있는지 우리그룹보다 나 홀로 조금 앞서 가다가 후발대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앞으로 약 1시간 30분여를 더 가야 점심을 하기로 한 연하천 산장에 도착한다.
10:46 연하천 산장 도착(점심, 11:45, 출발)
산행시작 약 5시간 30여분 만에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니 선발대인 회원 2명은 먼저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하천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규모가 별로 크지 않고 시설도 열악한 조그마한 대피소이지만 식수가 풍부하다. 너무도 피곤하여 신발을 벗고 벌렁 누워 버린다. 잠시 후 우리팀이 모두 도착하자 지리산 식당 아줌마가 준비해준 김밥을 꺼낸다. 배낭안에서 범벅이 된 김밥은 옆구리 앞구리 모두 터져있고 김치물이 흔 건히 베어 있다. 옆구리 터진 김밥을 진짜로 먹어보긴 처음이라고 하면서도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꿀맛이 따로 있겠는가? 점심을 먹고 나니 가기가 싫다.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산장까지는 아직 반도 오지 않았는데 큰일이다. 오던 길에 후발대 직원들은 함안군 마천에서 오신 급체한 아주머니를 만나서 소화제를 제공하고 사혈(바늘로 손의 피를 빼주는 것)치료를 해주었다고 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그분은 꼭 한번 들려달라고 하였다며 산우들만이 맛볼 수 있는 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11:20, 일행 중 11명은 세석산장에서 2명은 장터목에서 숙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산행전문가 2명은 장터목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먼저 출발하였다. 우리보다 1시간30분을 더 산행하여야 한다. 대단한 분들이다 한편 부럽기도 하고...............
우리도 11:45 행장을 수습하여 다시 출발하였다.
12:40 형제봉(1,452m) 통과
형제봉의 암반에 올라서니 전면 멀리 천왕봉이 보이고 바로 밑에 알프스 산장처럼 보이는 벽소령대피소가 보인다. 또다시 출발이다 벽소령에서 휴식을 하기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13:25 벽소령대피소 도착(13:50, 출발)
조그만 하지만 아주 멋있고 아름다운 대피소이다. 벽소령은 화개(경남 하동군)와 마천(경남 함양)의 봇짐장수가 발품 팔아 오가던 소금 길이라고 한다. 내륙의 함양에 갯가의 소금을 전해준 또 하나의 생명의 길이였던 모양이다.
산행객들이 지친 몸을 풀고 여기저기서 라면도 끊이고 밥도 해먹는다. 산행을 포기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하산을 하기도 하고 예정에 없는 여장을 풀고 1박도 하는 곳이란다. 지리산 종주길의 고비길이라고나 할까? 나 역시 더 이상 가지 말고 이곳에서 퍼졌으면 좋겠다.
아침 기상하여 10시간이 지난시점이고 산행시작 8시간만이다. 모두들 행장을 풀고 등산화를 벗고 들어 누어서 휴식을 취한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화창하며 하늘에는 구름한점 없다. 무릎이 시큰거리며 이따금씩 깜작 놀라게 한번씩 땡 겨오는 통증이 온다.
뭐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가? 이제까지 등산경험도 없는 자가 갑자기 산을 탄다고 몇 달간 미친듯하더니 너무 경솔하게 나선 것은 아닌가? 지리산을 등정하면 우매한자도 지혜로워 진다고 하여 나선 것은 결코 아닌데........... 날로 무디어져가는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산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별 것 있나 가보자.. 아직까지는 우리가 선발대나 마찬가지 인데....잘 나가고 있잖아.......
마음을 다잡고 뜯겨진 배낭줄을 수선하려하니 바늘도 실도 없어 난감하다. 산행 베테랑인 모회원이 등산용 바늘과 실을 건네준다. 역시 경험자는 틀리다. 이분 배낭속에는 없는게 없다. 그래서 남보다 배낭도 크고 무겁다. 산에서는 무슨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챙겨야한다고 한다. 산행에서 배울 수 있는 사전준비, 유비무환의 인생교훈을 체험으로 배울 수 있는 사례다.
그래서 사람들은 등산가형 인생을 설계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양이다. 나의 서툰 바느질 솜씨를 보며 미소를 짓고 다시 행장을 꾸린다. 제법 많은 시간(약 25분) 휴식을 취하였다.
14:48 선비샘 도착(15:15, 출발)
오르고 내리고 가파른 길을 한참을 온 것 같다. 매우 피곤하다. 선비샘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식수를 받는다. 이곳에서 세석산장까지 필요한 물을 챙겨야한다. 수량이 풍부하지 않고 졸졸졸 나온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네 차례가 와서 물을 받으니 갑자기 물이 펑펑 나오기 시작 한다. 참 이상도 하다. 수건에 물을 묻혀 세수도 하고 머리에 뿌리기도 한다.
모두들 고비인가 보다. 함께 휴식을 취하던 다른 산행객들이 나이 들어서 산행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지리산 종주는 건강을 위해서는 좀 무리라고 한다. 네가 생각해도 나의 건강을 위해서는 4-5시간 정도의 산행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를때의 성취감, 충만감, 자신감, 자연속에 하나 될 수 있는 경외감과 만족감, 겸손함, 해낼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과 함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심은 맛보지 않은이 누가 알 수 있을까?
한참을 머문 것 같다. 오늘의 목적지 세석산장 까지는 별도의 휴식 없이 주파해야한다. 다리에 파스를 듬뿍 바르고 다리통을 맛사지하고 무릎보호대를 고쳐 끼고 다시 출발이다.
15:15 덕평봉(1,522m) 통과
16:10 칠선봉(1,558m) 통과
17:00 영신봉(1,652m) 통과
* 끝없는 계단..... 계단..... 연신봉 전망대 *
세석산장까지 빨리 도착하기 위해 정신없이 강행군을 한 것 같다. 중간 중간 목을 축이는 정도로 계속 전진하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없는 산야가 정말 장관이다.
그러나 솔직히 선비샘 이후부터는 모두들 별 말없이 고통과 인내의 싸움인지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나는 조그마한 내리막 길에서도 무릎이 시큰거려 매우 곤란하다 . 조그만 더 가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강행군이다.
세석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울에서 왔다는 젊은이 두 사람이 종주하느냐고 묻는다. 자기들도 2박3일 예정으로 화엄사에서 종주코스로 왔다면서 마라톤을 좋아하는데 체력강화차원에서 등반을 하게 되었단다.
산행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을 보면 건전하고, 힘있고 뭐든지 굴하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들로 보여 마음이 든든해진다.
영신봉을 휘돌아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은 오늘 산행의 최고 고비길이다. 단숨에 올라챌 수가 없어 계단 중간지점에서 가뿐숨을 몰아쉰다. 이곳만 올라서면 바로 밑이 세석대피소(산장)이라고 일행이 격려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야 취사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단다.
영신봉을 올라서니 세석산장 0.6km의 이정표가 보인다. 다 왔구나 ....안심이 된다.
17:16 세석대피소(세석산장, 세석평전)도착(12시간 소요, 1박)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많은 산행객이 벌써부터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시끌벅적하다. 앞서간 해심원장이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반겨준다. 오늘밤은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정상에 오른다. 서구식 통나무집으로 깨끗하고 깊은 산속 휴양림에 있는 산장처럼 멋있어 보인다. 지리산 대피소 중에서 가장 수용인원이 많고 규모가 크단다.
적당히 휴식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먼저 온 사람들로 매우 붐빈다. 옆 벤치에다 행장을 풀고 후발대를 기다린다. 술잔을 기울이며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니 배가 고파온다. 이곳은 취사용 물 사용 이외에는 세면도 이도 닦을 수가 없다. 시원하게 머리도 감고, 손발도 씻어야하는데 끈적거리고 미치겠다.
후발대를 기다리며 동료들과 함께 가져온 소주로 목을 추기니 소주맛이 기가 막히다. 거푸 몇 잔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는다. 바로 옆자리에 아까 보았던 젊은이 들이 자리를 펴며 인사를 한다. 반갑다.
후발대가 도착하여 저녁식사준비를 하는데 버너가 부족하다. 선발대로 장터목산장으로 가버린 팀원이 버너/코펠을 가지고 있어 11명의 식사준비에는 버너2개가 부족하여 아까 젊은 친구에게 버너를 빌려서 햇반과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대충해먹는 음식이지만 맛은 좋다.
우리는 미리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하였기 때문에 숙소걱정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약하지 못하고 왔거나 일정변경으로 숙박을 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은 미리부터 잠자리를 잡는다. 비박(밖에서 노숙하는 것 ?)을 하면 춥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온도가 하강하여 추위를 느끼며 자켓을 꺼내어 걸친다.
방 배치를 받기위해 접수창구에 간 직원들이 난감해한다. 인터넷상으로 예약한 대표자가 있어야하는데 그 대표예약자는 선발대로 장터목으로 가버렸으니 곤란하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신분을 밝히고 일행이라고 사정해도 안 된다고 하더니 결국에는 양해를 하고 해결해 준다. 반드시 예약자의 신분증이 있어야 한단다.
참고로 이곳 지리산 대피소는 인터넷으로만 예약이 가능하고 1사람이 3사람까지 가능하며 예약자가 반드시 현장에서 신분확인이 되어야만 나머지 사람도 이용이 가능하단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입실하려고 하니 아까 젊은 서울친구들이 소주1병 달라고 한다. 소주를 주니 언제 알았는지 “해양수산부 파이팅”을 외친다. 그리고 기념촬영까지 한 컷트....뭐든지 베풀면 좋은 것이여...
20:00, 일찍 잠을 청하기 위해 배정된 침실로 올라가니 가관이다. 통나무 마루바닥에 아마 폭이 50-60cm정도쯤 될까? 1인당 취침공간이다. 바로 누우면 함부로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다. 사람이 죽으면 들어갈 관속의 넓이가 이정도일까? 어찌되었던 채 10분이 안되어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이 속출한다. 나와 일행중 몇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실내온도가 너무 건조하기도하고 자리도 비좁고 너무 피곤하여 그러한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예 모포를 가지고 거실(홀)로 나가버린 회원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깊은 수면에 빠진다. 정말 부럽다. 옛날 기차소리를 방불케 하는 코고는 소리, 힘주어 내뿜는 방귀소리, 발 냄새, 어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내일 등산을 위해 눈을 감고 인내심을 발휘하여 잠을 청해보지만 미칠 것 같다.
23:00분경 참다못해 밖으로 나온다. 그동안에 예약하지 못한 산우들도 숙소 거실로 입실하여 잠을 청하고 있다. 밤바람이 차겁지만 아주 상쾌하다. 밤하늘의 별빛이 너무나 아름답다.
식수대로 아무도 없다. 양치도하고 세수도 하고 .... 기분이 상쾌해진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아래서 비박을 하면서 젊은 남녀, 가족 등 산우들의 도란도란 이야기가 들려온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수많은 별을 한참 쳐다보니 옛날 생각이 난다.
망망대해를 항해중 섹스단트(육분의)로 별을 관측하여 선박의 위치를 측정하던 일, 그때 활용했던 별도 몇 개 보인다. 저 한쪽 편에는 리겔, 안타레스, 베텔기우스 등 오리온성좌도 보이고 .................다시 입실했지만 그렇게 ,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해심원장은 차라리 잠 못 이룰 바에야 야간산행으로 천왕봉 일출을 보러가지고 제의하였지만 솔직히 내가 겁이 나서 가지 못하고.....................또 그렇게 그렇게 보채다가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날이 새버렸다.
2005년 5월 15일 일요일(제2일 째)
04:00 전원기상, 식사준비-05:30 식사완료
사실상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일어나서 쌀쌀한 새벽공기를 맡으니 그래도 한결 낫다. 이렇게 상큼할 수가 있겠는가? 정말 온몸에 있는 독소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침낭에 의지하여 비박(?)을 한 젊은이 들이 여기저기서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젊은 시절에 한번쯤은 꼭 경험해야할 필수 코스라 여겨진다. 남은 햇반과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천왕봉을 향하여 행장을 추수린다.
05:40 세석산장 출발
그래도 다리가 뻐근한 것은 조금 풀린 것 같은데 무릎이 시큰거리는 것은 여전하다. 어쨌던 오늘은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하는 날이다. 산행시간도 어제의 1/2밖에 되지 않으니 조금은 여유가 있다.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은 없지만 세석산장을 뒤로 하고 촛대봉을 향하여 돌 계단을 오르며 세석평전을 떠난다.
06:10 촛대봉(1,704m)
촛대봉을 오르니 가벼운 옷차림으로 세석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여 이상하다고 느끼고 물으니 아침 일출을 보고 내려온단다. 아차차 우리는 천왕봉 일출만을 생각하고 일정상 포기하고 있었는데 천왕봉 못지않은 일출이 이곳 촛대봉이라는 사실을 우리를 몰랐단 말인가? 밤새 한숨못자고 뒤척이고 있었는데 차라리 이곳 일출이나 보았더라면....아쉬움이 남는다.
* 둘째날 촛대봉 에서 늦은 일출을 바라보며...... *
06:50 연하봉(1,730m)
삼신봉을 거쳐 연하봉에 이르니 장터목이 0.8km이다. 벌써부터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거쳐 노고단으로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종주하는 산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 격려인사를 나누며 장터목을 향한다.
07:10 장터목 산장(1,653m) 도착(07:30, 출발)
정상을 눈앞에 둔 마지막휴게소, 정상까지 마지막 고비길이 시작되는 장터목산장은 세석산장에 비해 규모도 작고 사람도 별로 붐비지 않은 것 같다. 식수 사정이 좋지 않고 식수대까지 거리도 있다.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여태까지 배낭에 남아있던 과일과 소금과자를 서로들 나누고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며 정상으로 향한다.
07:47 제석봉(1,808m)
가파른 오름길을 통과하여 천왕봉을 지키는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서니 좌우에 고사목이 즐비하다. 바로 눈앞에 정상이 보인다. 이제 다 왔구나. 약 20여분이면 갈수 있다. 힘이 난다.
*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 고사목 군락지 제석봉 *
08:05 통천문(通天門)
천왕봉을 오르기 직전의 통천문, 양 바위 틈사이로 하늘에 오르는 계단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코스다. 우리 일행은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젊은이 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힘차게 통천문을 오른다. 역동적인 젊음의 힘이 느껴진다.
08:25 천왕봉(天王峰 1,915m, 세석산장에서 2시간45분 소요)
통천문을 지나 하늘에 오르는 계단을 거쳐 드디어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올랐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천왕봉은 나를 반겨주는 것 같다. 바로 이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한 보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정상에 서있는 천왕봉 표지석은 "지리산 천왕봉 1,915m"이라 새겨 있고 다른 한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있다. 감개무량하다. 장터목에서 숙박하고 먼저 와있던 동료와 반갑게 하이파이브로 인사하고 우리 동료들 모두 서로를 격려하며 힘찬 악수를 나눈다.
모두들 가족과 친구들에게 핸드폰으로 정상정복을 알리고 나또한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 천왕봉 등정성공을 알린다.
많은 산우들이 앞 다투어서 사진 촬영을 하고 우리도 단체로 정상 표지석을 사이에 두고 기념촬영을 한다.
* 한국인에 기상이 발원되는곳 지리산 천왕봉 1,915m *
잠시 지리산 자락을 굽어보며 상념에 잠겨있으니 얼마 전 직장동료가 천왕봉에 올라 읊었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인연』
오란다.
그저 오라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가가면 저만치 있고
또 다가가면 그만큼
멀어져 있다.
언제나 부르는 환각에
잠 못 이루다가
그래 오늘 여기 반야의 가슴을 풀어헤치며
부드럽고 넓은 품을
허락받았으나
그래도 어느 듯
반 백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렀으니
저 아래 雲海에 속세의 찌꺼기를 흘러 보내고
내일도 이러한 인연이 지속되길 빌어본다.
《천왕봉》
문수보살의 총애는
반야봉에 넘겼어도
무수한 군웅들을 거느린 위세는
남녁 제일봉에 뒤지지 않는구나
누가 그대의 이름을
함부로 하겠느뇨
일출의 장관을 그만 두고서라도......
백두, 한라의 위용에 움츠리고
금강의 아름다움에 수줍어하지만
부드러운 자태와 느긋한 품성으로
민족의 아픈 영혼을 보듬는 구나
08:40 천왕봉에서 간이 산신제를 올리다.
원래 천왕봉은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모두들 정상등정의 감격을 가라앉히고 평편한 암반에 수건을 펴놓고 누구라 할 것 없이 간직해 두었던 술과 과일, 음료 등 준비한 간소한 음식을 차리고 무사한 산행에 감사한 마음으로 간이 제를 올리고 예를 갖춘 다음 다함께 건배를 하니 우리 팀원 모두 한마음 한가족이 됨에 감사하였다.
09:08 천왕봉 출발(하산)
이제부터 하산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원래 예정된 코스인 중산리 방면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길은 매우 가파른 경사길이다. 보통경사가 아닌 급경사라고 할 만큼 처음부터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다.
팀원 모두 하산길이라 룰루랄라 하면서 하산길을 빠르게 내려간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가 정상에 오를 때 보다 고역이다. 무릎관절의 악화로 솔직히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고통도 심하다. 정상걸음이 아닌 게걸음으로 천천히 양손에 스틱을 활용하여 맨 꼴찌로 처져서 후발대로 하산을 시작한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이고 일요일과 겹쳐서 인지 천왕봉에 오르는 등산객이 아주 많다. 대부분 인근 함양, 하동, 진주 권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일요산행이란다.
특히 지난 월출산 등반시 만났던 김해 산악회의 산우를 우연히 만나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전 산행을 격려하였다.
솔직히 하산길은 고통의 연속이라 손에 힘만 더 들어가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처럼 무릎이 좋지 않은 산우를 만나 서로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하산하는 길은 푸르고 웅장한 산야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언제쯤 하산길이 종료될까 조급한 마음뿐이다.
다른 동료들은 즐겁게 하산길을 재촉하는데 끝까지 나를 에스코트해주는 동료가 정말로 감사하다. 그동안 일요등반을 하면서도 항상 신세만 지고 있었는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10:30 법계사 도착
악전고투 끝에 법계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동지들이 반겨준다. 법계사에서 얻은 절 떡으로 새참을 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법계사는 전국에서 현존하는 사찰로는 암자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란다.
선발대와 함께 다시 하산 길을 재촉했지만 곧바로 나는 뒤쳐지고 만다.
12:15 중산리 식당가 도착(산행 종료, 하산소요시간 3시간 07분)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하산 하던 길 후반에는 2명의 회원이 합류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고통을 달랠 수 있었다. 칼바위를 지나고 부터는 내리막 경사가 완만하여 무사한 산행을 마치고 중산리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팀원들이 박수로 격려하며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 가득 따라준다.
정말 나로서는 대장정의 지리산 종주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순간 이였다.
산행후기
귀가 길에 들린 온천(옥종 불소 유황천)물의 뽀듯함을 간직하며 피로도 잊은 채 목포로 향하는 차속에서 우리는 벌써 다음산행을 계획하는 여유로움을 즐기며 지리산 종주는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지리산 종주는 우리나라 종주산행 중에 거리가 가장길고 자신과 인내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종주를 완료하면 산 꾼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지리산은 우매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하지도 못했고 산 꾼이라고 불릴 수도 없는 사람이다.
다만, 얻은 것이 있다면 날로 무디어져 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 길수 있는 힘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 것 같다는 조그마한 자신감의 회복과 산행을 통해 서로 돕고 격려하며, 이해하고 사랑하며 팀웍을 배양하는 것,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한다는 교훈, 좌절하지 않고 인내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집념,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과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큰 소득 이였다.
앞으로의 생활이 산행에서 터득한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등산가형 삶을 추구하기로 다짐하였다.
끝으로 이번 산행에 정말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다. 이번 종주의 계기를 마련해준 목포해수청 선배님과 이번 산행 내내 옆에서 보조를 맞추어주며 무릎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본인을 끝까지 에스코트해주신 회원께는 정말 인간적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이번 산행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목포해수청 산악회 동지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리산 종주 산행팀 화이팅!!!!
산소개
최고봉은 산 동쪽의 천왕봉(1,915m)으로 남쪽 반도에서는 최고봉이다. 지리산 제2고봉은 1,875m의 중봉, 제3고봉은 1,806m제석봉, 그리고 반야봉은 1,732m의 제4고봉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산세로 보아 반야봉은 지리산 서부의 맹주로서 천왕봉과 자웅을 겨루는 지리산의 제2봉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지리산은 경남 함양, 하동, 산청과 전남 구례, 전북 남원등 3도 5개군에 걸쳐 광활한 산역을 포함하고 있다. 옛부터 백두, 금강, 묘향과 더불어 한국의 4대 명산의 하나로 숭배되어온 산으로 1967년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등의 3대 주봉과 피아골, 뱀사골, 화엄사계곡등 10킬로미터 이상의 긴 계곡도 10여개나 되며, 불일폭포, 구룡폭포, 칠선폭포, 가내소폭포 등 빼어난 경관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는 남강이, 남서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강과 물이 어우러진 절경을 이룬다.
또한 골마다 웅대한 사찰들과 유서 깊은 암자들이 지리산의 정취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지리산의 천왕봉은 행정구역상으로 경남에 들지만 그 주능선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로 뻗어 내리며 주봉우리를 전남 땅에 쏟아 부었으니, 그 산세로 따진다면 전라도 땅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왕봉에 천녀가 내려와 살고 있었는데, 엄천사의 중 법우화상이 그와 혼인해서 딸 여덟을 낳았고, 이 딸들이 조선 팔도의 무당이 되어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구실을 맡았다고 한다. 그 천녀가 늙어 죽은 후에 천왕봉아래에 할미당을 세웠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까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그 후 제사터를 노고단(老姑壇,늙은 할미 제사터)으로 옮겼고 조선시대에는 구례군 광의면의 종석대 기슭으로 옮겼다. 조선왕조 말엽에 이르러서는 화엄사의 스님들이 절 밖에 조그만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고, 1962년부터는 구례군청에서 이 산신제의 이름을 약수제로 바꿔 군민행사로 이어가고 있다.
智異라는 이름의 유래
지리산(智異山)은 그 넓이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두류(頭流), 방장(方丈), 지리(地異 또는 地利), 불복(不伏), 반역(反逆), 적구산(赤拘山)으로 불려온 산 이름에서 벌써 지리산의 속내와 아픔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흘러나온 산줄기가 지리산에서 멈추었다 해서 두류(頭流)라고 썼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산세가 멀리 넓게 둘러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순 우리말 '둘러' '두루' '두리' 에서 음을 따와 한문으로 쓰다보니 '두류'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장산은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더불어 중국에서 우리나라 즉 동방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지리산을 지칭하는 이름인 동시에 불교적인 의미로도 쓰이는 산 이름이다.
크고 작은 산줄기의 갈래가 얽히고 설켜 바다같이 넓고 깊은 지리산은 그 품 안에 수많은 가람을 들어앉힌 한국 불교의 탯 자리이다. 지리산 등반이나 여행은 언제나 구례의 화엄사와 천은사, 하동의 쌍계사와 칠불사, 남원의 실상사, 그리고 산청의 대원사와 내원사 같은 이름 높은 신라시대 고찰의 산문(山門)에서 시작하고 맺음하게 된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문수보살이 1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한다는 곳으로 문수보살의 원명(原名)이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따온 지리산(智利山)이었다고 한다. 문수보살이 갖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인(異人)이 많이 사는 산’이라는 뜻으로 지리산(智異山)으로 적는다고 한다. 이런 불교적 심성을 초석으로 하여 산자락의 명승지마다 보금자리를 튼 가람들이 있기에 지리산은 여행객에게 산행 이상의 깊은 탈속 체험을 안겨준다.
불복(不伏)'과 '반역(反逆)'은 태조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큰 뜻을 품고 명산을 찾아 기도할 때 유독 지리산에서만 소지(燒紙)가 타오르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유로 태조에 등극한 뒤에 지리산을 불복산, 반역산이라 하고 죄인들을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또 빨치산이 우굴 거리는 산이라 해서 적구산(赤拘)으로 불리게 됐으니 산 이름에서까지 역사의 편린을 읽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지리산이 크고 웅장해 "지루하다"의 남부 사투리인 "지리하다"에서 변형된 말이라고도 한다.
첫댓글 저도 꼭한번 해보고싶습니다~!!
오늘하루도 행복한하루되세요~!!
건강관리 잘하시구요^^*
멋진 산행후기 잘 읽었습니다. 전 2006년에 노고단에서 잔 적이 있었는데..시끄럽고 왔다 갔다 계속하고...잠 못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루 멋지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