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이름 - 선덕여왕 남편(음飮 갈문왕)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의 남편이 “음(飮) 갈문왕”이라고 되어 있다. 갈문왕은 왕의 친척들에게 붙이던 호칭이니, 이름은 “飮(음)”이라는 얘기다. 설마하니 부를 때 “음아!” 하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 같고, 도대체 실제 이름이 어떠했기에 “飮”이라고 한 것일까?
한자 飮은 음료수라고 할 때의 ‘음’ 자다. 영어 drink에 해당하는 ‘마실 음’ 자다. 그러니까 순우리말로 [맛/마시]라 부른 이름을 한자로 “飮”이라 쓴 것이다.
이름이 [맛/마시]였다고?
그렇다. 이름이 [맛/mos]이었다는 얘기다.
‘맏이, 으뜸, 우두머리’를 뜻하는 [맏].
한국어에서 [맏, 맛, 맞, 맡, 만] 등은 본래는 저마다 다르게 소리가 나지만 같은 음으로 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이들 말 바로 뒤에 [ㄴ]음이 이어지면 전부 다 [만/mon]처럼 소리가 난다. ‘맏누이, 맛나, 맞네, 맡는’ 등을 발음하면 전부 다 [만]처럼 소리가 난다.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맏/맛/맞/맡/만]이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 혼용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맏/말/맛/맑/막/만/맞/맒/맓/망...] 등이 서로 부전(浮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맛/마시]는 [맞/마지]나 [맏/맏이]와 혼용되기도 하였고, 이들은 모두 같은 말로 여겨지기도 했다는 얘기다.
향가 「모죽지랑가」의 주인공인 화랑 죽지(竹旨)는 순우리말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듁맛(돍맏)] 정도로 불렀던 이름이다. 한자 旨가 맛(taste)의 뜻을 지닌 글자인데, 그를 이용해 ‘맏이, 으뜸, 우두머리’를 일컫는 [맏(맛)]을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차자방식을 사음훈차라 한다. 똑같은 [맏(맛)]을 선덕여왕의 남편은 飮이란 글자를 택해 쓴 것뿐이다. 역시 사음훈차한 글자다.
부여를 건국한 이의 이름은 해모수(解慕漱)이다. 해모수는 ‘가장 크고 으뜸되는 자’를 일컫는 [불맛]을 한자로 解慕漱란 한자로 옮긴 것이다. 해모수의 [모수(못)]는 바로 여기서 논하는 갈문왕의 이름 “飮(음)”과 화랑 죽지의 이름에 쓰인 “旨(지)”와 같은 [맛]을 적은 것이다. 慕漱는 순수하게 음차(音借)한 표기다.
백제 동성왕의 이름은 ‘牟大(모대), 모도(牟都), 말다(末多), 마제(麻帝)’라 했는데, 이들 모두가 [맏/mot]을 음차한 표기이다. 역시 같은 의미를 지닌 이름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某支(모지)”라는 이름이 많이 실려 있는데, 이들 이름 역시 [몯이(몯이)]를 소리나는 대로 음차하여 적은 것이며, ‘맏이, 으뜸, 우두머리’의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앞에서 다룬 이름들과 그 계통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