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리더스다이제스트란 잡지에서 이런 유머 한토막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청소기를 사시면 당신의 집안 일을 반으로 줄여줍니다. 그러니...
2대를 사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문명의 이기를 바라는 인간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마는
제 몸 편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1970년대나 80년대 산업화의 가장 큰 혜택은 역시 부엌에서가 아닐까?
각종 가전제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던 그 시대에 왠만한 집에는 텔레비젼이나 냉장고는
필수품이었고 요즘은 부엌에 전자렌지, 김치냉장고, 오븐, 음식물처리기에 식기세척기까지...
가히 부엌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이 가전제품을 통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득한 어린시절 부엌에서 일하시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궁이에 불을 때가며 밥을 지으셨고, 한여름엔 우물에 긴 밧줄을 내려 김치통을 담그는 정도로
냉장고를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어쩌다가 놋그릇을 닦을라치면 수세미로 모래를 뭍혀가며 파란 녹을 제거하셨던 기억이 난다.
여자들이 부엌일 중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설겆이라고 한다.
음식 찌꺼기하며 구정물 속에 손을 담그고 그릇을 닦는 일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닐것이다.
나도 가끔은 집안 일을 도운답시며 설겆이를 하는데 그릇은 이렇게 엎어 놓아야 물기가 빠지고
이건 저렇게 저건 저렇게 놓아야 한다며 아내의 핀잔을 듣기가 일쑤다.
그래서 몇달 전 아내의 요구에 의해 식기세척기를 장만하였다.
아침 저녁 삼시 세끼를 설겆이하며 허비하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힘든 것이 여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식기세척기보다는 싱크대에서 옛날에 하던대로 설겆이 하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때의 번거로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려면 그릇에 뭍은 음식물 찌꺼기를 말끔히 제거하고 어쩌다 기름이라도 뭍은 그릇은
티슈등으로 닦아주어야 한단다. 때로는 그릇에 달라붙은 것을 물에 한참을 불려서 넣어야하는 것도 있다.
아내는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때 그릇이나 접시를 늘 이런식으로 깨끗하게 닦아서 넣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내가 한마디 한다.
"그러려면 아예 깨끗하게 설겆이를 해서 넣지 그래!"
어떨 때는 예전에 하던대로 부엌 창문을 바라보며 접시와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리울 정도다.
들어보았는가? 집집마다 부엌 창문으로 들려오는 접시와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숟가락 젖가락들이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한 가정의 단란한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하다.
또한 그렇게 손을 놀려가며 설겆이를 해야 치매 예방에도 좋단다.
무엇보다도 부엌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개구장이 아이들의 치기어린 장난이나
단란한 가족의 모습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쩌다 쌓인 피로나 스트레스를 접시를 깨며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느 날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당장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여자들이 집안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 매일 설겆이 해 봐!"
해서 나는 그냥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여 집안 일을 도우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식기세척기의 장점은 역시 여가 시간을 늘려준다는데 있다.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면 부엌에서 설겆이하는 시간만큼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식기세척기 속에 접시며 그릇, 컵, 수저를 넣고 스위치 몇개를 누른다.
"자! 이제 무얼하지?"
첫댓글 다음엔 내가 신문을 끊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빵이 주식이 아니면 식기 세척기가 불편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