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경남 언양(울주)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시인 김종태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인 『넉넉한 시계』를 발간했다. 이번 시집 『넉넉한 시계』는 평생 농사를 지은 시인의 생활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시에는 서정의 미학이나 수사적 기술같은 시적 기교가 없다. 그저 삶의 진실함에서 녹여난 철학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감흥을 주는 시집이다. 한국 문단에서 농부시인 하면 경상도에는 영천의 이중기 시인, 전라도에는 고재종 시인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이제 언양의 김종태 시인을 한국의 농부시인으로 지칭하여도 무방하다. 농부시인이라 하여 농사와 관련된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이 농부이고 그러한 자연의 삶에서 우러나는 진솔함이 담긴 시를 쓴다는 것이다. 이번 시집 『넉넉한 시계』가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생활에 녹아난 ‘땀의 서정’, ‘진실의 서정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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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김종태의 시는 언어를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서도 얼마나 말이 주는 힘과 생성력을 펼쳐보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난날 ‘농촌공동체’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교향과도 같은 소재와 이미지를 능숙한 솜씨로 재현한다. 여기에는 거짓과 속임이 없다. 그래서 자연의 넉넉한 품에 안긴 듯 평안하고 온기가 스며든다. (------) 김종태 시에 드러나는 삶의 형식에서 비롯한 존재 양상은 실상 우리가 살면서 만나고 겪게 되는 자잘한 생활양식을 깊게 응시한 데서 형상화된 풍경들의 다양한 면모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하루하루 이어가는 생명의 거룩한 모습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각양각색의 눈짓들이 담겨져 있다. 지난날의 기억에서 배태되는 그리움도 포함된다. 특히 「허기」에 형상화되어있는 그리움은 허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아이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이다. 누구나 한번 겪었을 법한, 끼니 때 보이지 않는 자식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정훈(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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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김종태 시인은 1945년 울산에서 태어나 언양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평생 고향 울주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부이다. 시인은 울산대 평생교육원과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에서 시공부를 하면서 뒤늦게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들어서 2008년 《문학저널》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간월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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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好雨가 내려
농작물 튼실하게 자라기를
장단기 농업계획을 세워
잘 펼쳤으면
일복 저고리에 소금꽃 핀
구릿빛 농부들,
삼위일체로 이루어 낸
풍년!
2023년 봄에 김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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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속 시
볶인 땅에 빗소리
다급히 창을 두드린다
낭보, 잠결에 뛰어나간 마당,
얼마 만인가 비다운 비!
양팔 벌린 가슴에 뛰어내린다
단비야, 때 늦어도 좋다
선걸음에 갈 것인가
사나흘 주룩주룩,
토라진 벼 낯짝을 펴고,
축 처진 콩 어깨도 토닥였으면
내사, 날만 새면, 들에 나가
가무사리 탄 몸뚱어리 쫄딱 적시며
철철, 철철, 철철
물꼬소리 장단에 어깨춤 출란다
봉답, 논 가장자리엔
초록을 잃어 결실의 꿈을 접은 벼들
물에 말은 밥을 양껏 먹고,
벼꽃을 피우려고 서두르는 벼들
희비가 엇갈린다
추적추적, 볶인 땅이 물켜는 소리
우듬지엔 못다 핀 연두 잎 피우겠다
바싹 말랐던 냇바닥에는
황룡이? 용트림하며 굽이친다
저녁상 물리고, 마을회관에 모여든
물꼬 싸움으로 서먹해진 검게 탄 얼굴들,
비의 중재로 막걸리잔 입술을 맞댄다
배경음악 삼아 빗소리 들으며 이슥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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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새끼손가락
추석 전날
대처로 나간 자식을 기다린다
누런 들판을 질러 난 마을 길 양옆,
분홍, 하양, 빨강 코스모스들
귀성객을 맞이하고 있다
마을회관 마당에 다다른 승용차에서
강보에 싸인 손자를 받아 안은 달천 영감
웃는 입이 바지게 같다
됫병짜리 정종을 사 들고 부모 찾아오려니,
달이 뜨면 더욱 애달아
모롱이 돌아오는 차 불빛을 헤아린다
눈치 보여 안 오리라는 생각을 떨쳐내고,
이젠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리라!
막차마저 끊긴 밤
팔베개하고 잠귀를 열어둔다
대문이 덜컹덜컹, 확 방문을 열어젖힌다
돌개바람의 주먹질
궁륭을 걸어가다 뭉게구름 등 뒤에서
막 얼굴 내미는 열나흘 달,
환하다 곧 어스름,
생손앓이 새끼손가락 가슴에 품고
풀벌레 울음에 지새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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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김종태 <넉넉한 시계>
차례
제1부
망초꽃
새끼손가락
넉넉한 시계
방황
오감
십억 광년
볶인 땅에 빗소리
연등
상생
늦가을
자연으로
달천댁 2
자식 농사
덜 요량으로
드므
인동 초
고독사
제2부
국화
먹구름
라일락
다 가는 길
낙엽
꼬마물떼새
걸음
출연료
치마
하버지
철새
상처
길
애견 미용사
날 구한 소나무
천사
피서
빈자리
왕초보
무게를 더할 것인가
제3부
영세농
달천댁 1
꽁보리밥
마른 물꼬
들길
쌀값
태풍
두레꾼
배추 예찬
옥수수
곁순치기
새
낟알
제4부
독도
운문댐을 지나며
걷다 보면
단풍
허기
곶감
이농에서 귀농으로
보릿고개 1
보릿고개 2
외할머니
여행길
산야초 생식
쌀밥을 소가
간월재
요트
간월폭포
딱, 한 잔만 더
장가간다
목에 힘주지 마세요
*해설: 푸른 오감으로 틔우는 삶의 문장들-정훈(문학평론가)
첫댓글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