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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세계 최초로 요리 매연에 주목한 국가다. 요리 매연을
저감하기 위해 1997년부터는 패스트푸드점의 ‘직화’를 규제했다.
그래서 지금의 햄버거는 직화가 아닌 불판 위에서 굽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GettyImages
30여 년 전만 해도 패스트푸드 가게의 조리 형태는 달랐다. 햄버거 속 패티를 직화하여 ‘불맛’을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7년 이후 패스트푸드 점의 직화 풍속은 사라졌다. 고기를 불에 직접 닿게 굽는 방식과 판 위에서 굽는 방식은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미국 정부가 요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즉, ‘요리 매연’을 저감하기 위해 규제를 시작한 것이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엔 마스크를 챙기고는 한다. 그런데 삼겹살을 구울 때는 군침이 돌 뿐, 마스크 생각이 나지는 않는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맛있는 냄새 속 초미세먼지가 가득하다는 생각은 잘하지 못한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요리 매연’은 초미세먼지의 일종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군 발암물질이다. 삼겹살집에 갈 때마다 담배 100개비를 피는 꼴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 집 요리 매연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요리 매연’은 초미세먼지의 일종으로 세계보건기구
(WHO)가 정한 1군 발암물질이다. ⓒGettyImages
요리 매연 노출은 호흡기 건강, 폐 기능, 심혈관 건강, 두뇌 활동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용하는 화기(가스레인지, 인덕션 등)와 메뉴, 조리 방법 등에 따라 방출되는 입자의 양은 달라진다. 가령, 튀김은 삶기, 찌기, 볶기 등 다리 조리법에 비해 가장 많은 입자와 유해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1㎥당 745㎍의 입자를 방출하는데, 이는 자연 환기가 되는 주택에서 발생하는 양에 비해 90배 더 높은 수준이다.
가정의 조리 환경에서 방출되는 요리 매연 양상을 분석하기 위한 기존 연구는 단일 지점에서 공간적, 시간적 농도 변화를 측정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미국 카메기멜론대 연구진은 주거 공간을 그대로 모사한 주거용 시뮬레이션을 제작하고, 가정에서 조리하는 동안 초미세먼지(PM2.5)가 배출되는 양상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2022년 국제학술지 ‘건물과 환경(Building and Environment)’에 실렸다.
연구진은 면적 32.6㎡인 1베드룸 아파트 형태의 주거용 모듈을 제작했다. 인덕션 위에는 스토브후드가 설치되어 있었고, 안방과 침실에 2개의 공기청정기를 설치했다. 욕실에는 환풍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공간에서 연구진은 5단계의 열로 팬을 1분 동안 예열한 뒤, 베이컨 4조각의 앞뒷면을 각각 5분씩 구웠다.
▲ 연구진이 설계한 주거용 모듈의 도면(왼쪽)과 조리 시작 후 초미세먼지 농도 변화(오른쪽).
ⓒBuilding & Environment
PM2.5 농도는 조리를 중단한 이후 급격히 감소했지만, 약 2시간 정도 실내 공간에 머물렀다. 연구진은 PM2.5 제거에 효과적인 환기 방법도 조사했다. 스토브후드와 욕실 환풍기, 공기청정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공기 중에 부유하는 입자를 제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조반 펜테릭 박사는 “스토브후드는 즉각적 PM2.5 제거 효과가 높지만, 71개 가정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스토브후드 사용 빈도는 전체 요리 중 28~36%에 불과했다”며 “또한 공기청정기 역시 훌륭한 도구이지만, 주거 공간에 걸맞은 수와 용량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리 매연 가장 많이 방출하는 메뉴는 ‘철판요리’
그렇다면 어떤 메뉴를 조리할 때 가장 많은 요리 매연이 방출될까. 중국 상해교통대 연구진은 2022년 국제학술지 ‘환경 오염(Environmental Pollution)’에 식당 메뉴에 따른 초미세먼지 발생 정도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존에도 서양식 패스트푸드와 중국 음식을 조리할 때 일본 음식에 비해 PM2.5가 각각 2.1배, 6.7배 더 많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반면 조림식 메뉴를 볶음이나 팬 등 기름을 사용하는 요리보다 PM2.5가 40~50% 적게 생성된다. 요리에 사용되는 기름의 종류도 PM2.5 배출량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올리브유를 사용하면 콩기름을 사용할 때 보다 배출률이 더 낮다.
▲ 6가지 메뉴의 상업용 주방에서 요리사들의 호흡 공간에 머무는 초미세먼지 농도를 분석한 그래프.
ⓒBuilding & Environment
연구진은 상업용 주방에서 요리사들의 호흡기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을 더 정확하게 분석하고자 요리사의 호흡 공간에서 초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중화요리, 양식, 치킨, 철판요리(데판야키), 바비큐, 전골 요리를 판매하고 있는 식당에서 초미세먼지 배출 특성을 측정했다. 요리사가 호흡하는 장소에서 측정한 초미세먼지 농도는 철판 요리 식당에서 가장 높았다. 1분당 7.7mg 수준의 초미세먼지가 방출됐다. 그 뒤는 중화요리, 양식, 치킨, 바비큐, 전골 요리 순으로 나타났다.
준멩 류 연구원은 “철판구이의 경우 큰 철판을 사용하는 만큼 재료가 뜨거운 표면과 접촉하는 면적이 더 커서 PM2.5 발생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도한 기름 성분이 완전하게 열 분해되면서 이로 인한 PM2.5 배출률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해 학교 급식소 노동자의 폐암 산재 인정을 계기로 2025년부터 음식점과 급식소가 배출하는 요리 매연 발생량을 집계하고, 요리매연 저감 장비 설치를 지원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10년간 시행되는 ‘제3차 대기환경종합계획’에 처음으로 조리시설을 미세먼지 배출원에 포함시켰다. 배출량 기준으로 2020년 발생한 초미세먼지 가운데 1%가 고기, 생선 구이에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앞서 소개한 상해교통대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상업용 주방에서 요리하는 남녀 요리사의 연평균 PM2.5 흡입량은 일반인에 비해 각각 4.83배, 4.33배 높았다. 가정과 식당의 요리사를 위한 요리 매연 저감장치 설치가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