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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협 6월 선교지 순회, 민도르 망얀족 편(6.2-3)>
6월 모임에 대한 갈망
매달 서로의 선교지를 순회하면서 기도하고 격려하는 정기적인 선교지 탐방은 이제 우리 마선협의 드레이드 마크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4월 마닐라 생명의주 교회 방문 이후 5월 한 달은 몇 가지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 다들 모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을 것 같다. 4월 첫째 주에 4월 모임이 있었으니, 그 후 6월 첫째 주의 6월 모임을 가지기 까지 꼬박 두 달이 지나간 것이다. 나 역시 두 달이 2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게만 느껴졌다. 그 만큼 우리 마선협 정기 모임은 생일처럼 기다려지는 특별한 날이 되었다.
준비하는 손길들
마선협 정기 선교지 순회 6월 민도르 편을 위한 준비는 이미 시작되었다. 마선협 부회장이자 이번 6월 모임의 선교지는 바로 김인효 선교사님의 사역지였기 때문이다. 김인효 선교사님은 이번 정기모임의 호스트로서 우리 마선협 공동체에 속한 선교사님들을 게스트로 맞이하기 위해서 민도르를 오고 가며 준비하신 것으로 알려졌다. 홍보는 이미 카페에 공지되었다. 정광훈 회장님은 년초에 미리 금년 선교지 방문일정을 공지사항으로 올릴 때 최초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6월 민도르 모임에 대한 안내는 서기 김동조 선교사님이 카페에 게제 하는 순간부터 본격화 되었다.
이어 사무총장인 김용기 선교사님은 메일로 마선협 식구들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으로도 성에 찬 찼는지 카톡을 이용해 홍보작전을 펼쳤다. 역시 이번 민도르 정기 순회모임의 홍보에 있어서 빛을 발한 것은 카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있던 카톡은 이제 태평양을 건너 이곳 필리핀 사람들에게까지 인기가 확산되고 있는 네트워크망이다. 민도르 방문을 며칠 앞두고 카톡에는 실시간으로 참여자 명단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김용기 선교사님은 마선협 카페와 몇 차례 올려 마선협 회장님은 한국 방문일정을 잘 소화하시고, 돌아오시자마자 임원단 모임을 소집해 준비사항을 최종점검하고, 6월 모임에 차질이 없도록 할 정도로 철저한 보완과 준비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만남에서 출발 장면 스케치
드디어 기다리던 민도르 1박 2일 촬영 날이 밝았다. 나는 두 여인가 함께 먼저 놀스 수산나에 있는 회장님 댁으로 향했다. 오해마시라. 두 여인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 이다. 정말 아내와 딸은 민도르 가기 바로 전 주 목요일부터 하루 전날 주일까지 성경학교와 두 교회 예배를 섬기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 사역들을 은혜 중에 마치고 떠나는 민도르 나들이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내가 두 여인들에게 위로를 못해주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마선협을 통하여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렸다.
정광훈 목사님 댁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김용기 선교사님이 저쪽에서 귀순용사처럼 유유히 걸어오시더니 쑥 회장님 댁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한참 만에 나오시더니 우리더러 날래날래 차에 타라고 하신 것이다. 영문인즉 오늘 정광훈 목사님의 12인승 스타렉스는 김선교사님이 모는 모양이었다. 나는 요상해서 물었다. 정광훈 목사님과 사모님은 못 가시느냐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분들이 다 가신다고 했다. 다른 차량을 이용해서 뒤 따라 오실 것이라고 했다. 우리를 태운 차량은 놀수 수산나에서 김인효 김정렬 부회장님 부부와 김적용 선교사님 부부에다 김용기 선교사님의 짝꿍 김양금 사모님을 더 태우고 1차 만남 장소로 향했다.
우리 쾌존팀이 서로 만난 곳은 우리의 유명한 접선 장소인 까띠쁘난 맥도였다. 거기서 반가운 마선협 가족들의 얼굴을 대면하였다. 잠시후 도착하신 정광훈 김경순 선교사님부부에서부터, 유병국 백옥자 선교사님부부, 김인효 김정렬 선교사님 부부, 김용기 김양금 선교사님 부부, 김적용 선교사님 부부, 우리 부부인 문병금 이창금 선교사와 딸 혜인 그리고 문상영, 정찬준 선교사님까지 총 15명이 모여 햄버거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모닝커피로 티타임 시간을 오붓하게 가지고 출발하였다. 아침 7시 57분경이었다.
바탕가스 항구 가는길
우리 쾌존 팀이 출발한 차량은 두 대로 분승하였다. 두 대 모두 회장님이신 정광훈 목사님께서 차를 내 주셔서 가능하였다. 스타렉스 차량에는 기사에 김용기, 조수에 김인효, 그 다음열에는 김적용 부부, 3열에는 김정렬, 김양금, 맨 마지막 4열에는 유병국, 문상영, 정찬준 선교사님이 자리했다. 스타렉스 팀 9명이 먼저 출발했다.
뒤를 이어 이노바 팀의 면면이다. 언제나 자상하게 우리 승객들을 위해 수고해주고 계신 베스트 드라이버에 정광훈, 그 옆 자리를 지키며 먹을 것을 제때 제때에 조달하시는 조수 김경순, 바로 그 뒤 2열에는 백옥자, 문병금, 마지막 3열에는 나의 두 여인 이창금과 문혜인이 타고 있었다.
맥도 앞을 출발은 스타렉스가 먼저 출발했다. 우리는 잠시 머물렀다가 뒤에 출발했다. 역시 C5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안했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츄레픽이 상당했다. 그래도 우리차 차주이시자 드라이버이신 정광훈 목사님은 잘도 빠져가셨다. 이제 몸은 중년을 넘어 서서히 초 노년으로 접어드신 목사님이신데 운전할 때만큼은 다르다. 20대 청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날쌘돌이가 되어버린 정목사님을 발견하게 된다. 휴게소에 누가 먼저 도착했게? 뻔할뻔짜 물어보나 마나다. 상당히 더 늦게 출발한 정광훈 목사님의 이노바 차량의 승이다.
우리는 슬렉스 맥도날드가 있는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에 들려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에 들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출발한 후 얼마 안 되어 칼람바에 다다랐다. 그곳에 다다랐을 때 통행요금을 내는 톨게이트가 보였다. 왼쪽에 있는 톨케이트 차량이 줄지어 돈을 내고 있었다. 우리 차는 옆으로 비껴갔다. 그러자마자 도 톨케이트가 나왔다. 그래서 정광훈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어떤 차들은 저기 톨에 내고, 어떤 차들은 이곳에 낸 답니까? 그러니 선문답 같은 응답을 하셨다. 저기에 내고 싶은 차는 저기에 내고, 여기에 내고 싶은 사람은 여기에 내면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한 바탕 웃었다. 마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생각났다.
깔람바를 지날 때 그전 같으면 우측 바탕가스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 해서 빠져 나가야 하는데 직진 하는 것이었다. 혹시 지나치시는 것 아닌가 이상해서 물었더니 새로운 고속도로가 뚫려 밑으로 계속 가면 바탕가스 포트가 나온다고 하셨다. 우리가 처음 필리핀에 왔을 때보다 이 나라도 점점 더 변화되고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잘못된 부패구조와 시스템,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도 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차 안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갔나?
까띠쁘난 맥도에서 두 대의 차량으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1진은 정광훈 회장님의 스타렉스 12인승으로 출발하였다. 그 차안에는 기사에 김용기, 조수에 김인효, 다음 2열에는 김적용 부부, 3열에는 김양금, 김정열 사모님들, 그리고 마지막 4열에는 유병국, 문상영, 정찬준 선교사님이었다. 이 차안에서 주로 김인효 김정열 선교사님이 민도르에 사역지를 확장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스토리를 은혜 스럽게 청취하는 시간이었다고 전해 들었다.
2진으로 출발한 우리 차는 정광훈 선교사님의 이노바였다. 기사에는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녹슬지 않은 운전 실력을 발휘하시는 베스트 드라이버 정광훈 목사님, 조수에는 김경순 사모님, 2열에는 백옥자 사모님, 문병금 선교사, 마지막 3열에는 나의 아내 이창금과 딸 문혜인 양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차에서는 정광훈 목사님의 목회와 선교 현장의 이야기들을 은혜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가족과 자녀들에 대한 간증도 들려 주셨다. 여행은 먹을 것이 있을 때 더 기쁨이 배가 되는 법, 우리 차에서는 이번에도 빠짐없이 오징어가 나왔고, 과일도 먹었다. 모두 정목사님 사모님께서 챙겨 오신 별미들이었다.
바탕가스 항구 주차장
2시간의 주행 끝에 도착한 마닐라 남쪽의 대표적인 포구 바탕가스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대형 크레인들의 탑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비교적 자리가 여유가 있었다. 승합차에 이어 우리 이노바가 도착하고, 잠시 후에 최학정 선교사님 가족을 태운 승용차가 들어왔다. 반가운 얼굴들을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니 기쁘기만 하였다. 우리는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였다. 차에서는 짐을 꺼내고, 개인 짐을 챙겼다. 열대의 태양이 우리들 머리 위로 마구 내리 쬐고 있었다. 정말 강렬한 6월의 태양이 눈부셨다. 우리는 공통 짐과 개인 짐을 매고서 매표소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매표소 앞에서 실감한 마선협 선교사의 파워
이날의 호스트는 김인효 김정렬 선교사님 부부이다. 김인효 선교사님은 우리 일행을 바탕가스 항구 매표소 앞에 세워놓고 뭔가 안내하시기 시작했다. 물을 만난 물고기마냥 김인효 선교사님은 민도르를 들어가는 뱃길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일류 여행사 가이드 뺨칠 정도였다. 그러면서 배 삯을 흥정한 얘기에서는 자신의 막강한 파워를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다. 김인효 선교사님이 표를 끊으면 상당액을 할인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수년 동안 선교팀을 이끌고 지나간 매표소, 한번에 20-30명씩, 한 200팀이 다녀갔다고 하니 배 삯을 깎아 줄 만한 하다. 이제 어지간해서 선박회사 매표원들도 다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된 모양이다. 거기에서부터 김인효 김정렬 부부의 민도르 가이드의 진가는 서서히 발휘되고 있었다.
항구 안 대합실에서의 기다림
우리는 두 가지를 기다렸다. 하나는 배 시간이 안되어 배를 기다렸고, 동시에 아직 당도하지 않은 이성우 선교사님 차량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빵과 음료수를 약간의 시장기를 달래주었다. 이러저런 흥겨운 이야기들로 무료함을 달래며 기다리는 동안 이성우 선교사님 일행이 대합실로 요란한 노이지를 일으키며 들어왔다. 이성우, 오수경 선교사님 부부와 김해석, 이목현 선교사님 부부 그리고 우영 선교사님 부부였다.
드디어 민도르행 배에 오르다
바탕가스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기다리던 우리는 11시 30분경 승선 안내방송에 따라 배에 올랐다. 여행은 항상 출발의 설레임에 묘미가 잇는 것 같았다. 막상 출발하고 나면 일정의 흐름 속에서 지나가고 마는 것이 여행이다. 그런데 여행 날짜를 며칠 앞두고 손꼽아 세며 기다리는 시간들, 또 여행 당일 눈을 뜨고 출발할 때의 기분은 본선의 여행이 주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배에 오르던 그 시간의 설레임이 여행의 참 맛이 있는 것이 아닐까!
유심히 배에 오를 때의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인상 쓰고 탄 사람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 마선협 선교사님들 면면에서도 김인효 선교사님의 사역지인 민도르 섬 선교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이 물씬 묻어 있었다. 배에 올랐을 때 우리 말고도 민도르에 들어가는 필리피노들과 민도르 섬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여러 명이 눈에 띠었다.
민도르 푸에르토 갈레아 가는 뱃길
우리를 태운 배는 페리 여객선이 아닌 필리핀 사람들의 도서지역을 오갈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좌우 균형을 잡아 만든 복원력이 뛰어난 배였다. 배의 이름은 골든 호크였다. 화이트 비치와 푸에르토 갈레아행 배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푸에르토 갈레아였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 잠깐의 진풍경이 있었다. 우리가 탄 배에 아주 작은 배를 탄 형제이지 부자인지가 나타나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승객이 동전을 바다에 던져주면 순간 잠수해 그 돈을 잡아 오는 것으로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마선협 대원들 중에서도 몇 분이 동전을 던져주자 한 소년이 귀신같이 끄집어 내 온 것이었다. 우리는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는지 몰라도,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련한가, 왜 그들이라고 우리처럼 배를 타고 어디론가 아름다운 곳을 향하여 나들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물론 그들도 자기들의 날에 갈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여유 있는 자들이 아니지 않는가! 그들의 고단한 삶이 애써 이해되었다.
배든 드디어 물살을 가르며 먼 바다로의 항해를 시작하였다. 배 안에서는 선교사님들이 싱글벙글 웃고 뭐시 고로코롬 좋은지 마냥 기쁘기만 한 얼굴들이었다. 여기저기서 얘기 보따리를 풀고 수다를 떠는가 하면, 또 그 수다를 들어주고 마구 웃어주기도 했다. 또 다른 부류는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니라 경치도 수면후라고 모자란 잠을 때우는 사람도 있었다. 아예 김적용 박영란 선교사님 부부는 제일 앞에 앉아서 점점 고개가 서로의 안 쪽으로 처지더니 둘이서 보기 좋게 마주 기대 잠을 잤다. 그러더니 뒤에서 보니 어느 순간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들의 의자는 어느 새 침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또 어떤 분은 책을 읽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아이티 강국 코리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엇인가 검색하기도 했다. 남태평 위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천지개벽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물끄러미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하였다.
우리를 태운 배는 정원을 상당히 많이 태울 수 있는 배였다. 김인효 선교사님께서는 이 배와 관련해서도 열변을 토했다. 필리핀 해상 사고사에서 큰 훼리 여객선 사고는 여러 번 있었서도 우리가 탄 배는 사고가 없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배가 매우 과학적이게 만들어진 것 같이 보였다. 풍랑이 일고 파도가 밀려와도 좌우에 약간 휘어지게 만들어 놓은 좌우 날개가 배가 안 뒤집어지게 균형과 복원력을 잡아 준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배와 관련해서 도 한번의 김인효 선교사님의 무용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김선교사님께서는 이미 그 배로 자비량 선교도 일찌감치 생각하고, 이미 가격도 법적 허가도 다 알아본 모양이다. 가격은 2,500-3,000만 원정도 한다고 한다. 문제는 아무나 허가를 내 주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그렇다는 것이다. 일단 한 노선을 확보하고 배를 구입하면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김인효 선교사님에게 여객선 사업의 길이 그때 안 열린 것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선교사님들이 비즈니스 선교, 전문인 선교, 텐트 메이킹 선교를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죄가 아니고, 얼마든지 할 수 도 있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목사들 중에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재정에 기름부어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미국의 치코 목사가 그런 케이스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유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여, 강권적으로 사업을 허락하시어 재정에 기름부어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비니니스 선교 형태는 특히 중동 회교권같이 목사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서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전략적인 접근에서의 비즈니스 선교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목사 선교사로서 선교지에서 자비량이니, 킹덤 비즈니스니 명분을 내세우면서 사업하는 것은 매우 위험성이 많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돈, 두 주인을 섬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급기야 본질에서의 이탈하고 세속화로 나가고 말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있듯이 '사람이 절대로 한 몸에 두 지게를 못지는 법'이다. 결국은 선교사가 사업을 하게 되면 선교보다도 사업을 우선시하게 되어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우리의 본질적인 사명을 등한히 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급기야 사명은 내 팽개치고,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경우에 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안타까운 경우를 주변에서 보았다. 우리 마선협 선교사님들은 오직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삼는 지상명령이라고 하는 주의 부르심에 충성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태운 배는 바탕가구 포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해안선에 위치한 화력발전소를 지나 점점 큰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남태평양의 검푸른 바다가 금방이라도 삼킬 듯 위엄을 떨치고 있을 때, 우리의 배는 겁 없이 전속력으로 쾌속 질주를 하였다. 간간히 부서져 튀어 오르는 파도가 옆으로 솟구쳐 올라왔다. 좌우에 투명한 두꺼운 비닐로 가로막이 내려와서 바닷물은 차단막에 걸려 흘려 내릴 뿐이었다. 바닷물이 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친 가로막이 한 편으로는 우리를 갑갑하고 덥게 해주었다. 바닷물을 조금 맞더라도 차라리 올렸으면 하는 마음이 꿀떡 같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우리의 바램을 알았는지 승무원이 양쪽 물막이 커튼을 걷어 올렸다. 바로 그때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바다바람이 더운 우리들의 몸을 식혀 주었다. 정말 상쾌하기 이를데 없는 고마운 자연 바람이었다.
푸에르토 갈레아 항구의 아름다움
바탕가스 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한지 한 시간여 지났을까? 목적지 푸에르토 갈레아 항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섬에는 야자수가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싱그러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닷물은 강렬한 태양 때문인지 열대 바다의 특유 빛깔인 옥빛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늘은 우리나라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르렀다. 맑은 하늘에는 솜털 같은 하얀 뭉게 구름이 파란 색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웠다.
처음 찾은 푸에르토 갈레아 섬은 바다와 녹색 삼림과 하늘의 뭉게구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평화로운 포구였다. 항구 주변에는 한 폭의 요트들이 여러 대 떠 있었다. 김인효 선교사님에 의하면 그 요트들은 부자들의 개인 요트라고 한다. 섬의 포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거나 요란하지 않은 소박한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가 타고 온 배와 맑은 하늘에 크고 웅장한 구름기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현지인이 찍어 주었는데 와서 보니 2% 부족하게 나왔다.
지프니를 타고 들어간 리조트
푸에르토 갈레아 항구에서 우리가 묵게 될 리조트 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마선협 식구들은 대기중이던 지프니를 타고 이동했다. 참석했던 인원이 그 지프니 한 대에 다 들어갔다. 딱 한 대 분량의(?) 인원이 참석한 것을 인해 서로 신기하듯 웃고 좋아했다. 비포장도로도 간간히 있어서 흙먼지가 일기도 했지만, 대도시의 매케한 매연에 비하면 차라리 섬의 무공해 흙먼지가 나은 듯싶었다.
리조트에 도착 감사기도
우리가 1박 2일 촬영을(?) 하게 될 리조트는 샌드 바 리조트였다. 아주 깔끔하고 조용한데다 마치 모래 사장 둔치가 리조트 좌우 양쪽 바다를 가르는 형세를 띠고 있어 샌드바 비치라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숙소는 자연친화적으로 지어진 팬션 이었고, 그 앞에는 곡선 처리가 잘 되어 멋있게 빠진 수영장이 있었다. 우리는 방 배치를 하기 전에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캔틴에 모여 감사기도를 드렸다. 이성우 목사님께서 대표로 기도하였다. 리조트 측에서는 시원한 파인애플 주스를 한 잔씩 제공해 주었다.
방 배치 후 라면으로 점심을 먹다
도착 감사기도와 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축인 후 방 배치에 들어갔다. 우리는 아내와 딸이 참석하여 가족 참석자에게 주는 특혜 한 가지를 받았다. 방 하나를 따로 우리 방 키를 받아들고 문을 따고 들어갔다. 나는 아내 딸과 함께 방에 들어가자마자 감사기도를 드렸다. “우리가 하나님께 한 것은 항상 지극히 작고 부족하기만 한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늘 크고 놀랍기만 합니다” 고백하며 연신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우리는 짐을 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캔틴이 딸린 식당으로 갔다. 점심은 맛있는 라면이었다. 야외에서 그것도 섬에서 또 그것도 한국 라면을 필리핀에서 또 거기에다 나 혼자 만이 먹는 라면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먹는 라면이어서 그런지 별라도 더 맛나기만 했다. 라면에 곁들여 먹은 김치가 잘 어우러져 더욱 맛이 있었다.
푸에르토 갈레라 산 중턱에 세워진 사랑의 마을
약간의 휴식 후 김인효 선교사님의 안내로 푸에르토 갈레라 섬 산 중턱에 있는 사랑의 마을을 탐방했다. 마을은 조성된지 1년이 되었으며, 현재 45가구가 지어졌다고 한다. 부지의 일부는 후원을 받아 구입하고, 일부는 20년 장기 임대 한 상태라고 한다. 집의 크기는 집집마다 다른데 이유인즉, 개인이나 후원교회의 지원 규모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인효 선교사님의 앞으로 계획과 비전은 먼저, 지금의 사랑의 마을을 하나의 샘플로 성공적으로 잘 조성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이 같은 공동체 마을을 점차적으로 여러 군데 세워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곳에 교회도 개척해 가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성장하면 8킬로그램이나 되는 몬스터 치킨을 분양해 주어,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사역의 비전을 위해 마선협 정광훈 선교사님의 인도로 비록 길지 않은 5분 예배였지만, 사랑의 마을 현장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경배 하면서, 중보기도로 그의 사역과 비전을 위해 간절히 함께 기도해주었다.
사랑의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다
공동체 마을 현장에서 예배를 드린 우리 일행들은 조성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집이 없던 사람들에게 더 없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되었다. 도시 빈민들이 집단으로 사는 지역의 집에 비하면, 정말 깨끗하고 좋은 집이었다. 집 건축 재료도 대나무, 코코넛 잎, 원목 합판으로 지어졌다. 거기 안에 들어온 45가구는 정말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 선교사를 만나 그들은 그대로 호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대체적으로 밝았다. 우리들을 환영하는 눈치였다.
집들을 돌아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그곳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고, 행복해 겨워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김선교사님 부부의 사랑의 수고와 한국교회의 선교의 결실이다. 의미 있는 심방도 하게 되었다. 이제 갓 태어난지 며칠 안 된 신생아가 있는 가정을 들른 것이다. 엘빈이라는 아이로 이름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이로 자라, 귀하게 쓰임받기를 위해 기도하며 축복해 주었다.
시장의 별장에서 일대의 섬 풍경을 감상
우리들은 김선교사님의 안내로 마을을 순회하고, 마을 위에 자리 잡고 있는 특별한 건물을 향했다. 그 건물은 푸에르코 갈레라의 시장의 별장이라고 했다. 정말 전망좋은 곳에 지어진 건물이다. 그곳에까지 건축 자재를 운반해 지었다니 수고했을 필리핀 노동자들의 수고가 땀방울이 스며 있음이 느껴졌다. 그곳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번씩 휴양차 왔다가 잠시 쉬고 가는 곳 같았다. 무슨 가구나 살림 살이는 없었다. 김인효 선교사에 의하면, 시장이 언제든지 그 별장을 김선교사님에게 이용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고 한다.
그 별장 라운지는 전망대나 다름 없이 탁트여 멀리 푸에르토 갈레라 일대의 바다와 비치, 항구 등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전체 기념촬영을 하고, 또 부부끼리 기념촬영을 했다. 여성국 동무들은 또 함께 한 컷 찍기도 했다. 나도 아내와 딸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랑의 마을 교회건축 현장에서
시장의 별장에서 섬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 한 후 사진을 찍은 우리들은 마을 아래로 내려왔다. 우리 일행이 다음으로 들른 곳은 교회 건축이 한창 진행 중인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인부들이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현장 지휘 감독은 필리핀 파스토가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건축과정과 남은 일정 그리고 교회의 목회 계획과 비전을 잠시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높은 산 중턱에 농구장을 미리 닦아 두었다. 그런데 그 농구 보드 판이 나무 판때기로 제작되어 세워진 필리핀 스타일 이었다. 그들은 그 허름한 농구장을 통한 스포츠 이벤트로 복음을 전할 계획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합심하여 건축 중에 있는 주님의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산 중턱에서 들어선 1일장
기도를 마친 우리는 집들이 세워져 있는 언덕길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의 마을에 처음 당도했을 때 기도를 하고, 마을에 대해 김선교사님으로부터 브리핑을 들었던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이 마을의 회관 앞 작은 마당처럼 사용되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마을을 돌아보고, 시장 별장을 올라가며, 교회 건축현장을 돌고 있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좌판을 벌여 놓았다. 좌판에는 그들이 집에서 만든 죽세 수공예품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자기들이 만든 대나무 수제품들을 일일이 벌려 놓고서 그날의 1일장의 고객들인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1일장이 아니라 차라리 번개장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때 정광훈 회장님의 특명이 떨어졌다.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모두 두 점 이상씩 꼭 사야 내려 갈 수 있다는 명령이었다. 회장님은 먼저 몇 점을 사셨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에 쓰고서 현장에서 CF모델이 되어 가난한 주민들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약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무엇을 살 것인가를 의논하고 두 점을 샀다. 뜨거운 국 받침대와 바나나 쟁반을 샀다. 김용기 선교사님은 얼마나 헌금을 많이 걷어 들이려고 그런지는 몰라도 헌금함 같은 것을 산 것 같았다. 우리는 원주민들이 직접 만든 죽세품을 산지에서 시장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처럼 우리의 깜짝 방문으로 주민들은 적잖은 매상을 순간적으로 올렸고, 대신 우리는 싸게 특산품을 샀다. 그래도 우리가 물건을 팔아주자 기뻐하고 좋아하던 그들을 바라보니 우리의 마음도 흐뭇하고 기쁘기가 한량없었다.
하산하여 내려오던 길에
사랑의 마을 탐방을 마친 우리들은 지프니를 타고 다시 산길을 내려 왔다. 내려오는 길에 지프니 안에서는 김적용 선교사의 그 끈질긴 신상 털기 아니 노래 털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노래를 쥐어 짜냈다. 잘 기억에 나지 않지만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는 옛날 노래를 유도하는 방법이 아닌 새로운 레퍼토리를 이번에는 가지고 와서, 한 명씩 노래를 부르도록 분위기를 몰고 간 것이다. 김경순 사모님은 김적용 선교사의 집요한 노래 유도에 벗어날 수 없으셨는지 한 곡을 뽑았다. “내가 만든 염소똥 1원에 12개.....”다들 함께 웃었다.
저녁 만찬을 위한 장보기
망얀족들의 살고 있는 사랑의 마을을 돌아보고 내려온 우리는 푸에르토 갈레라 시장에 들렀다. 어느 곳이든지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파한 학생들과 저녁을 준비하려 나온 주부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 차량은 주차할 만한 한적을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내려 저녁 만찬을 위해 김인효 김정열 선교사님은 해산물을 사러 어디론가 떠났다. 나머지 우리들은 시장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차에서 내린 곳은 가게들이 늘어선 곳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한산했다.
우리들은 시장 상가를 돌아보며, 김선교사님 부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그것은 부코와 파인애플 주스였다. 망얀족 사랑의 마을을 더운 날씨에 다녀와 다소 지쳐있는데다 어찌나 목이 마르던지 갈증이 심한 상태였다. 그때 길에서 사서 마신 부코 주스는 그야말로 꿀맛보다 더한 맛이었다. 우리 마선협 선교사님들이 한 무더기로 에워싸자 주인이 신이 나서 용기에서 부코와 파인애플 주스를 퍼 올려 컵에 담아 건네주었다. 김선교사님 부부는 해산물을 양손에 가득 들고 돌아왔다. 우리는 리조트로 돌아왔다.
수영장에서 펼친 해골 수구전
리조트에 돌아온 우리는 리조트 측 주방에 요리를 맡기고, 두 팀으로 나누어 수구전을 펼쳤다. A팀 선수로는 우영, 유병국, 최학정, 김해석, 박영란, 김정열, 오수경 선수였다. B팀 선수에는 이성우, 문상영, 김적용, 정수남, 백옥자, 박선희, 박명희, 이창금 선수였다. 심판으로는 목소리 큰 남자 김용기 주심이었다. 그리고 이날 수구전에는 아주 끔찍한 공이 등장하였는데 그것은 해골이었다.(?) 마선협 6월 모임에는 해골이 등장한 것이다. 리조트에서 배구공을 구입할 수 없어 원시인들이 가지고 놀았던 원주민들의 해골을 배구 공 대신 사용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른 야자 열매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해골 덩어리 같았다. 그날 해골도(?) 마선협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단단히 한 몫 하며 쓰임 받았다.
항상 경기에는 경쟁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 나뉘어 다른 팀에서 뛰어도 결코 봐주지 않는다. 인정사정 볼 것 없었다. 악착같이 밀치고, 당기고, 빼앗고 용호상박이 따로 없었다. 경기가 과열된 양상을 띠자 수영장에서는 미묘한 전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이거 남녀가 함께 어우러져 경기를 하다 보니 그것도 승부욕을 가지고 악착같이 경기에 임하다 보니 신체 접촉이 안 일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경기도중 특히 일부 여성 선수들에 의해서 이의가 제기 되기도 했다. 그것은 상대방 남자 선수에 대한 항의였다. 과도한 몸싸움이 도를 넘어 경기하는 선수들 당사자들도 모르는 사이 과열경쟁으로 인한 신체접촉이 있어 5만 볼트 가까운 전기 스파크가 찌릿찌릿 튀었던 모양이다. 경기를 관중의 입장에서 지켜보던 몇 분들도 공을 잡는 것보다도, 은근슬쩍 신체 접촉에 더 신경을 쓴 수상한 사람이 물속에서 활동하는 것 같다고 말함으로 여성 선수들의 항의가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뒷받침 해주었다.
이에 마선협 여성국에서는 민도르 수구 경기 후 마닐라에 돌아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당일에 있었던 경기에서 일부 남성선수에 의해서 자행된 과도한 신체접촉은 여성 선수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고 깊은 유감을 표명하였다. 이어 국제 수구연맹에 제소하기 위해 CCTV 원본을 리조트 당국으로부터 확보하여 보냈다고 한다. 이날 경기는 말이 많은 경기였어도, 엎치락 덮치락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A팀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되었다. 이후 국제 수구연맹에서 해당선수를 찾아내 중징계하기 위하여 CCTV 판독에 들어갔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까지 물의를 일으킨 남성 선수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해 사건전모에 대한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수영장에 설치된 CCTV가 장비의 노후화로 선명하지 않은데다, 여성 선수에 대해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과도한 신체접촉을 야기한 선수가 기묘하게 크게 물보라를 일으키고, 물장구를 치는 바람에 얼굴을 정확히 확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광석화와 같이 아주 민첩하게 순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끝내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고 한다. 그날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던 선수는 떨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을 찾기를 바란다.
‘라보때’에서 씨푸드에로의 대반전
점심에는 라보떼 즉 ‘라면으로 보통 때워’ 식사를 했다. 그에 반해 그날 밤에는 대 반전이 일어났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풍성한 씨푸드가 식탁에 올라온 것이다. 라면 먹은지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니 채 몇시간도 못 되어 신선한 해산물을 먹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싸인과도 같았다. 혹시 우리의 삶 가운데 라면을 먹을 때가 있다면, 곧 하나님이 씨푸드를 먹여 주실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자. 그날 밤 우리가 먹은 씨푸드에는 메뉴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돌고 침이 콜깍콜깍 하는 것들이다. 들어보았는가? 참치회, 오징어, 새우, 생선바비큐, 돼지바비큐에다 따끈따끈 해서 속이 다 시원한 조개국이 나왔다. 컵에 얼음을 넣고, 콜라나 사이다를 부어 시원한 음료수를 마셔가며, 우리 모두는 맛있는 해산물을 즐겼다.
성당을 정복하여 예배를 드리다
저녁 만찬을 샌드바 비치 리조트에서 풍성히 가진 마선협 지체들은 휴식 후 리조트 단지 안에 있는 성당으로 모였다. 아니 웬 성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성당이라고 해야 지붕만 씌어져 있고, 옆구리는 다 터진 8각형 건물이었다. 거기에는 천주교 의식에 사용된 작은 성현(saints)들의 상(像)들과 촛불 단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마 리조트에 투숙객으로 온 필리피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졸지에 그 단 앞에 선 김인효 선교사는 사제가 되어 있었고, 앞에서 헌금위원으로 수고하신 김용기 선교사는 성당에서 견습하는 예비사제 아니면 수사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두 가지 목적에서 미사장소로 쓰인 건물에 모였다. 하나는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영양가 있는 강의를 듣기 위함이었다. 예배는 김인효 선교사님의 사회로 최학정 선교사님이 기도함으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비록 간이 미사 공간으로 쓰였다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교회는 건물이 아닌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성령과 진리안에서 예배 드리면 그곳이 진정한 예배의 장소가 아닌가! 말씀은 문상영 선교사님께서 선포해 주셨다. 문선교사님께서는 우리의 목회와 선교의 대 선배인 사도바울의 고백과 권면이 담긴 본문을 가지고 오늘 우리들의 선교 현장을 잘 대비해 아주 실제적인 적용을 제시하시며 은혜를 끼쳐 주셨다. 필리핀 선교사인 우리 각자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고 다짐하게끔 귀한 도전을 준 은혜로운 말씀이었다.
우영, 박명희 선교사님 부부의 연속강의
예배에 이어 귀한 강의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니 강사가 우리 뒤에 배를 타고 리조트에 나타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마선협 안에는 언제든지 세미나를 인도할 수 있는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많다. 그날 우리는 세미나에 있어서 마치 정전이 되어도 전기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자가 발전기를 가동한 것이다. 바로 우영, 박명희 선교사 부부였다. 먼저, 우영 선교사님께서 강의를 해 주셨다. 이 분은 오랫동안 스포츠 마사지 분야를 가르치던 노하우를 가지고 우리 마선협 선교사님들의 신체와 건강관리에 대하여 매우 실제적이고 유익한 강의를 해주셨다.
강의 도중에는 갑자기 강의현장에 있던 나를 앞으로 불러내 나는 대중 아닌 소중 앞에 나가게 되었다. 그 분이 나를 불러낸 것은 나를 교보재로 쓰기 위함이었다. 그때 나는 이틀 전 집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다가 그만 오른쪽 팔목 인대가 늘어나 옴짝달싹을 못하고 심한 통증 중에 있을 때였다. 그런데 예배 전 강사이신 우영 목사님께서 부목을 댄 것 같은 효과를 주는 밴드로 내 팔을 고정해 주었다. 그래서 더욱 나를 당신의 강의에서 엑스트라로 이용해(?) 먹은 것이다.
강사님의 진단에 의하면 나의 경우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준비 스트레칭 없이 팔굽혀 펴기를 했기 때문에 인대에 무리가 간 경우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한참을 앞에 나가 강사님 곁에 서서 교보재가 되어 있었다. 강사님은 나를 이용해 먹을 때로 이용해 먹고, 폐기처분하듯 들어가라고 하자,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강사님 오늘 강사료 나오면 저랑 같이 나누시게요... 그리고 강사님은 나의 팔이 2주 정도는 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주일 되기 전에 앞으로 3일 안에 제 팔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옵소서. 이어 나는 선포했다. 나의 팔은 3일 안에 모든 통증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올지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기도하고 선포한대로 나의 그 통증이 심하고 부었던 팔은 3일 안에 통증이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나의 기도를 섬세하게 듣고 응답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할레루야!
현장강의 제 2강은 우영 목사님의 박명희 사모님께서 담당해 주셨다. 사모님은 또 히든카드였다. 오랫동안 치유 분야의 연구를 해오시고, 크리스챤 계통의 케이블 방송을 비롯 여기저기 강의를 나가고 있다고 한다. 강의만이 아니라 치유상담으로 여러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 중이다. 우영 목사님은 박명희 사모님이 강의를 당신보다 훨씬 잘한다고 엄청 자랑했다. 실제로 두 번째 박명희 강사님이 평점이 조금 더 높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편의 명강의를 들은 우리들은 숙소로 돌아가 1박 2일 현지 버라이어티 촬영 중 첫날 촬영을 모두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해안가 리조트에서의 아침
우리는 전날 밤에는 씨푸드로 꿀맛 같은 만찬을 즐겼다. 그뿐 아니라 리조트에서의 1박하던 밤은 잠도 꿀맛이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침상에서 개인 기도시간을 가졌다. 그 뒤로 아침 해가 일찍이 떠올랐다. 열대의 태양이 육지에 있을 때보다 민도르 섬 푸에르토 갈레라에 오니 더 빨리 떠 오른 것 같았다. 몇 몇 분은 전 날 밤에 예배하고, 세미나 강의를 했던 성당 건물에서 아침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아내가 전해주었다. 정한 시간이 되어 우리는 밥, 계란, 토스트, 소시지, 김치 등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물놀이 복장으로 무장을 하고 인근 섬으로 호핑투어를 떠날 채비를 하였다.
인근 섬으로의 호핑투어
우리가 샌드바 비치에서 다른 섬으로 배를 타고 호핑을 떠나던 날, 민도르 선교지 탐방 2일째 날씨 또한 매우 맑고 화창했다. 열대바다를 음미하고, 스노클링 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우리는 두 대의 배로 인근 코랄 비치로 이동했다. 그곳이 우리가 마음껏 스노클링을 하고, 수영을 하며 먹고 마시고 놀려고 하던 그날의 포인트였다.
우리는 스노클링 포인트에 도착했을 때 해안가 닛빠에 짐을 풀었다. 그날 점심때 먹을 식재료와 과일, 음료수들이었다. 그리고 구명조끼를 입고 작은 배에 좌우 두 명씩 해서 네 명이 스노클링을 떠나기 시작했다. 참 독특한 장면이었다. 작은 배 좌우에 두 명씩 균형을 잡고, 양손으로 줄을 잡고, 고개를 바닷 속으로 밀어 넣으면 배를 따라가며 스노클링으로 물속의 산호와 물고기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못 보던 장면이었다. 쉽고, 편하고, 안전하게 스노클링을 즐기도록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우리 순서가 되어 나는 배에 올라탔다. 그때 나는 외팔이가 되어 있었다. 팔꿈치 인대가 늘어나 한 손을 못 쓰고 있었다. 수영을 좋아하고, 스노클링하며 산호와 물고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쉽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선원과 함께 배 위에 올라탔다. 대신 물 속에는 좌우 두 사람씩 포진되었다. 우리 배는 왼쪽에는 문상영 선교사님과 김양금 선교사님이 한 조를 이루고, 오른편에는 나의 아내와 딸이 한 조를 이루고 스노클링에 들어갔다.
나의 가슴이 마구 뛰며 흥분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던지,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산호와 물고기들이 보였다. 물 밖에서 육안으로 보던 나도 이럴진대 수경을 쓰고 안을 들여다보는 당사자들은 얼마나 그 아름다움에 심장이 콩콩 뛰고, 감격스러울까 상상되었다. 나는 연신 감탄사를 남발하였다. 하나님,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필리핀 아이들과 함께 부르던 ‘Our GOD is so great big GOD’을 계속 불렀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고 또 불렀다.
스노클링을 한 참 하다가 이번에는 또 다른 장관이 펼쳐졌다. 각 배의 선원들이 스노클링을 어느 정도 하고나자 물에서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샌드위치 빵을 으깨어 주변에 뿌렸다. 그것을 뿌리기가 무섭게 열대어들이 파다 파닥 물려들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열대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환호성이 절로 났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지 모른다. 일부러 빵을 우리들의 발가락 근처에 뿌렸다. 이번에는 물고기들이 피쉬 닥터가 되어버렸다. 얼릉 나의 각질을 다 뜯어 먹어라. 물고기들이 우리의 발과 발꾸락을 마구 간지럽혔다. 나는 그날의 물고기들과 함께 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숨겨진 섬
나는 필리핀에서 유명한 비치는 가보지 못했다. 고작 바탕가스 랄루즈 리조트와 다바오의 어느 리조트 정도 가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수정 같이 맑고 깨끗한 바닷물에 물속의 산호가 선명하고, 많은 물고기가 많은 곳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이번에 민도르 섬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좋았던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숨겨진 천혜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푸에르토 갈레라 일대의 산호섬을 만끽 하였다.
점심시간 이모저모
물고기들과 산호를 바라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스노클링에 취해 있었던 대원들의 귀환 명령이 떨어졌다. 모든 대원들이 속속들이 돌아왔다. 다들 스노클링 하면서 흥분되었던 감정을 가라앉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무슨 용궁이라도 다녀 온 것처럼 표정들이 상기되어 있었다. 하물며 우리를 위해 예비 되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가히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구명조끼를 벗고, 우리는 점심 준비에 돌입했다. 숯불에 바비큐와 소시지를 굽고, 밑반찬을 식탁에 차렸다. 얼마나 배고팠는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맛나게들 잡솼다.
나는 한 팔 밖에 쓸 수 없었지만 먹는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식 전쟁에 뛰어 들었다. 이 모습을 보던 김용기 선교사님이 나를 놀려대며 한 마디 한다. “외팔이가 그래도 먹고 살라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니 측은하다”고 놀리면서 마구 웃는 것이다. 그런 놀림이 있은지 이틀 안에 하나님은 이런 조롱을 비웃으시고 보란 듯이 나를 쌍팔이로 회복시켜 주셨다. 이날 별미가 나왔다. 그것은 성게 알이었다. 나는 남이 잘 먹지 않자 몇 개를 입에 떨어 넣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마선협 6월 선교지 민도르 탐방 때에는 여성국 회장님이신 김경순 사모님께서 귀한 김치를 거기 까지 싸 오셔서 우리는 잘 먹었다. 우리는 해양 활동을 위해 숙소를 떠나 배를 타고, 인근 스노클링 포인트로 이동할 때 그만 깜빡 잊고서 김치를 숙소에 그만 놓고 와 버렸다. 그 만난 김치가 없었으면 어떻게 돼지 바비큐를 먹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아주 민첩하게 6월 우리를 민도르 사역지로 초대한 호스트 김정렬 사모님이 얼릉 배를 타고 김치를 수송해 오셨다. 그래서 그 김치를 더욱 맛나게 먹었다. 김치를 싸 오셔서 우리 마선협 식구들에게 먹는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해주신 김경순 사모님과 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우리들을 섬겨주시며 사랑의 수고를 다 해주신 김정렬 사모님의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를 돌리고 싶다.
기념촬영과 수영장에서의 소금빼기
우리는 호핑투어를 마치고 우리의 숙소가 있는 샌드바 비치로 배를 타고 돌아왔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백사장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전체 기념 촬영을 끝마쳤다. 그리고 리조트의 체크아웃 시간이 임박해 오자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수영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바다에서 막 돌아온 우리 마선협 멤버들 몇 명은 곧 바로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수영장에 풍덩 풍덩 몸을 빠뜨린 것이다. 이유인즉 바로 숙소에 들어가도 순번이 있어 바로 샤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바닷물에 절여진 몸과 옷에 달라 붙어있는 소금기를 먼저 수영장에서 빼려 한 것이다. 우리 마선협 지체들은 하늘의 지혜를 받은 자들이어서 그런지 대단한 꾀보들이었다.
5분 예배로 폐회예배를 드리다
체크아웃 시간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민첩하게 움직이던 마선협 식구들의 협조 속에 우리의 체크아웃도 시간 안에 할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젖은 옷들을 담아 가방에 넣고서, 팁은 침대에 놓아두어 룸서비스에 대한 감사표시를 하고, 우리들은 식당으로 다시 모였다. 이제 우리가 푸에르토 갈레라의 아름다운 섬과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무 네 명의 마선협 선교사님들이 다 모였을 때, 그곳에서 정광훈 회장님께서 인도하시고, 5분 예배를 드림으로 폐회 예배를 드렸다.
김인효 선교사님의 몇 가지 파워
우리가 폐회 예배를 마치자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김인효 선교사님이 우리가 푸에르토 갈레라 항구로 지프니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김선교사님이 선박 회사에 알려, 우리 샌드바 비치에 우리 일행들이 많이 있으니, 그 항구를 출발한 후 우리가 있는 샌드바 비치를 경유하여, 승선 조치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김인효 선교사님이 리조트 사장을 설득해서 네고를 잘 하여 비용을 상당부분 줄였다고 한다. 역시 민도르는 마선협 출신 김인효 선교사님이 꽉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인효 선교사님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묵은 샌드바 리조트 사장에게 그 리조트를 넘길 의향이 없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 왈, 자기 맘대로 못해서 그것은 안 되고 대신 장기임대로 저가에 1 핵타르 정도를 사용하게 해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마선협 공동체와 선교사님들을 위한 선교센터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푸에르코 갈레라 그 풍광 좋은 섬, 샌드 바 리조트 바로 옆에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따낸 그것 역시 민도르를 지키는 김선교사님의 작은 힘이 아닐까?
민도르 비치들을 찍고 찍고
5분 예배로 폐회 예배를 마치고, 우리 마선협 식구들은 비치 쪽으로 걸어 나갔다. 잠시 후 우리가 그 섬에 타고 들어갔던 배가 우리들이 묵었던 샌드바 비치 해안선으로 미끄러지듯 스무쓰하게 들어왔다. 선원들은 “너희는 샌드바 비치에까지 가서 나의 존귀한 자녀들을 배로 태워오라”는 하나님의 특명을 받고 온 듯, 분주하게 배 위에서 목재 계단을 내려 해안선에 내려놓았다. 그 계단을 이용해 한 명 두 명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배 측면에서 대원들의 승선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여러 사람들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디서 뽐들은 기가 막히게 카피해서 그럴싸한 포즈가 나왔다. 그 중에서 정광훈 회장님의 제스처는 정상들이 보여준 포스 그대로였다. 마선협 선교사님들은 마치 외국 순방길에 오르는 대통령이라도 된 것 마냥 착각들을 하면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에 올랐다. 아니다 착각이 아니다 우리는 대통령보다도 더 존귀한 이 시대 하나님이 보내신 친권대사, 하늘의 메신저, 주 예수님의 사명자들이 아닌가!
승선을 모두 마치자 배는 서서히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선수를 돌려 이제 바탕가스 행 질주를 본격화 하려는 듯 엔진 소리는 더욱 거세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아듀 샌드바, 아듀 푸에르코 갈레라여 작별을 고했다. 우리를 태운 배가 어느 지점을 지나갈 때 나는 우리가 전날 스노클링을 즐겼던 포인트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 하얀 글씨로 코랄 비치라고 쓰여 있었다. 잠시 후 코랄 비치를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비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이 교민 소식지를 통해 보고,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코코비치였다. 사진 속에서 보던 팬션들이 그대로였다. 김인효 선교사님에 의하면 우리가 머물렀던 푸레르토 갈레라 일대에만 해도 12개의 비치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비치들을 하나 씩 찍고, 찍고 우리의 목적지 바탕가스로 돌아가고 있었다.
코코 비치에 연이어 라구나 비치가 멀리 바라다 보였다. 배는 해안선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이번에는 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띠었다. 그것은 사방비치였다. 이 이름 역시 숱하게 교민신문과 사람들을 통해 들었던 비치 이름이었다. 그곳에서 배가 잠시 정박 하더니 사람들을 태웠다. 그곳이 관광지인 만큼 외국인 관광객들이 필리피노들 보다 더 많이 탄 것 같았다. 우리를 태운 배는 사방비치를 경유한 후 큰 바다로 나아갔다. 그 길은 바탕가스 항구를 향해 가는 코스였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아니 바탕가스 항구로!
민도르에서 바탕가스 항구로 돌아오는 배편의 풍경은 떠났을 때의 설레임과 기대감 대신에 뭔가 쌓인 여독을 잠으로 풀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피곤이 몰려왔는지 자울자울 한 사람이 많이 목격되었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날짜를 정하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그때의 설렘이 최고조에 이른다.
반면에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약간의 허전함과 아쉬움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행 중에 있었던 이런 저런 추억들은 또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활력을 넣어주는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 번씩 일상을 떠나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곯아떨어진 사람들이 깨어날 무렵에는 잠을 자지 않고 깨어서 수다를 떨거나 바다 경치를 보면서 무슨 생각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자울자울 잠에 빠지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간 경유지에 들렸을 때 사방비치에서 탔던 갈색머리에 하얀 피부의 소유자들인 백인들의 피부는 빨갛게 타져있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특히, 그들의 빨간 코을 보았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저렇게 코가 빨개지도록 놀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탕가스 포구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약간의 시장기가 느껴졌다. 바로 그때 여성국 동무들이 망얀족 성도들이 제공한 망고를 몇 개씩 나누어 주었다. 배가 고플 즈음에 나는 입으로 껍질을 벗겨 물컹물컹한 것은 빨아먹고, 깡깡한 것은 씹어서 참 맛나게 먹었다. 그것이 솔찬히 요기가 되어 주었다. 그것을 먹고 난 후 정신이 총총해졌다. 우리 부부는 김해석 이목현 선교사님 부부와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며 여행 막바지 코스를 소화하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자다가 깨어난 여러 분들 역시 1박 2일 선교지 탐방 여행이 아쉬운 듯 지체들끼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생웬수(?)에서 닭살부부가 된 어느 부부
민도르 푸에르토 갈레라에서 바탕가스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어느 부부의 행적이 관심사가 되었다. 그들은 배 오른쪽 옆구리 긴 의자에 앉아 처음에는 도란도란 여느 부부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더니 백주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배 안에서 부인이 남편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인은 남편에게 깊은 딥 터치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부인이 몸을 만져주자 기분이 좋은지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마구 좋아하고 있었다. 찬찬히 뚫어 쳐다보아도 이상한 부부는 막무가내였다. 누구는 못해서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분들이 누구일까? 보아하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이었다. 우리 마선협 커플 이었다. 이름하야 이성우, 오수경 부부였다. 부인되신 오수경 선교사님이 남편되신 이성우 선교사님을 이곳저곳 주물러서 마사지를 해 주었던 것이다. 순간 이상한 행동으로 수상하게 여기고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보았던 내 눈이 부끄러웠다. 대신 우리는 와, 대단하다. 아름답다. 좋아하고 기뻐했다.
순간 그때 김해석 선교사님이 증언담을 한 마디 하신다. “저 부부가 왕년에는 사이가 정말 안 좋았느니라” “그런데 저렇게 된 것을 보니 이상하기도 하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다”라고 했다. 아니 예전에는 얼마나 사이가 안 좋았길래 그런 말이 돌았단 말인가, 하지만 그때 그들의 모습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아름다운 중년의 닭살부부가 되어 있었다. 민도르 선교지 탐방하고 돌아오는 선상 안에서 우리 마선협 안에 새로운 닭살부부가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바탕가스 항구에 도착하다
우리들을 태운 배가 푸에르토 갈레라를 떠난지 50분이 지나자, 멀리 바탕가스 포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형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도 보았다. 여러 다른 여객선들이 바탕가스에서 민도르 여러 항구를 향해 큰 바다로 나아가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배는 점점 항구에 가까워졌다. 우리의 1박 2일 민도르 선교지 순회 일정도 서서히 마감되고 있었다. 이윽고 배는 바탕가스 항구에 도착했다. 우리는 마닐라로 귀환하기 위해서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숨이 끊어져간 생명을 인공호흡으로 살린 사건
주차장으로 이동한 우리들은 짐을 싣고 마닐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찬 근처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 생명의 숨이 거의 멎어 버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 우리 마선협의 1호차인 정광훈 목사님의 뉴스타렉스 점보를 그 옆으로 긴급 출동시켰다. 차를 열고서 긴급히 산소탱크를 연결해 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려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산소 줄을 숨져간 생명의 코에 씌웠다. 한참 해도 좀처럼 생명의 기식이 없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면서 더욱 산소를 악셀레이터를 밟으며 더 많은 산소를 쎄게 불어 넣었다. 그러자 잠시 후 콜록 콜록 죽어가던 생명이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기적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다 죽어가는 생명은 다름 아닌 최학정 선교사님의 차량이었다. 최목사님의 차량에 문제가 생겼다. 미등이 켜져 있었던지 차가 방전이 된 모양이다. 최 목사님이 수차례 시도했으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정광훈 목사님 차량의 보닛을 열고, 점프선을 연결해 전류가 어느 정도 들어가더니, 킥킥킥 쎄레모터가 작동하고 금새 시동이 걸렸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내고 함께 마닐라를 향해 출발했다.
마닐라 오는 길에 들린 마지막 휴게소에서 작별하다.
바탕가스 항구에서 마닐라를 향해 출발한 마선협 커뮤니티의 이동 차량들은 남부 고속도로를 질주하였다. 도로는 시원스럽게 뻥뚤려 생각 보다 빨리 마닐라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마닐라에 오기 전 남부 고속도로 어느 휴게소 졸리비에 들렸다. 그때 예산이 거의 바닥상태에 있었다. 그것을 안 회장 정광훈 선교사님과 사모님께서 흔쾌히 지갑을 열어 우리들을 대접해 주셨다. 우리는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 후 우리는 주차장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이렇게 해서 마선협 7월 민도로 선교지 탐방 1박 2일 버라이어티 촬영은 끝을 맺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좋은 시간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미를 돌리고, 7월 몬딸반 김용기 선교사님 사역지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귀가 길에 올랐다.
첫댓글 여러가지 분주한 일로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저의 선교지 탐방 리포트를 잘 읽으시고, 더욱 더 우리 마선협 공동체의 모임에 열심을 내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다 읽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어느 대목에서는 숨을 졸이면서 말입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 하셨고 재미있게 올려 주셔서가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마치 다녀 온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올라 올 사진들이 궁굼하고 기대가 됩니다.
선교사님 사진 올렸습니다. 부족한 글도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