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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71
1300독, 의지할 의(依) 중복
이번 편지의 ‘정토뉴스’는 제2회 정토안거입니다.
지난 8월 20일부터 22일까지, 비구스님 4분, 비구니스님 6분, 그리고 사미스님 2분이 모였습니다.
세종 영평사에서 열렸는데, 아미타신앙을 하시는 영평사 회주 광원환성스님의 배려와 성원, 휴가 오신 영관스님의 동참으로 덕분에 원만히 회향했습니다.
미탄스님께서 <<십주비바사론 이행품>>을, 박소현 교수님께서 <<낙방문류(樂邦文類)>> 중 네 편의 글, 그리고 제가 「안심가」(廣德스님의 향가, 종래 ‘원왕생가’)와 <<무량수경종요>>를 강의하였습니다.
모두 한문 원전 강독이었습니다.
이 안거를 마치면서 한 편의 영사시(詠史詩, 역사를 읊은 시)를 지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 읽으시면서, 그 분위기를 추체험(推體驗)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2회 정토안거
부모 형제를 한 번 버려본 까닭이던가
한 고집
한 개성
나름대로 장착한 스님들
비구가 넷
비구니가 여섯
사미가 둘
사미니만 몇 더 있었더라도
사부중(四部衆)의 승가가 완성되었을 터인데
뭍길로 마딘 길 걸어가는 것보다
물길이 편안하다
그리 못 박아 놓으신 용수보살
읽었으니,
훗날 용수보살 같은 저술가도
나오시리라
혼돈의 전쟁시대, 그 당시
지식인들 123인과 함께
불교역사 최초로 결사(結社)라는 것
백련결사(白蓮結社)를 맺어
결사적으로 왕생을 원했던
여산혜원스님 이야기
들었으니,
훗날 여산혜원스님 같은 결사의 주동자도
나오시리라
분황사에서 일하는 보살 하나 얻어서
무늬만 부부로
위장한 채,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밤 세워 염불하다가
왕생하면서, 놓아두고 간
유시(遺詩), 「안심가」
보았으니,
훗날 아름답고 깊다란 정시(淨詩)의 대시인도
나오시리라
그 말도 많고
말 안 되는 것도 많은
원효스님의 무량수경종요,
그 안에는 유심정토(唯心淨土)는 설하지 않았다
강하게 파사(破邪)하는 논리,
정말 그런가
싶었으니,
훗날 탄이초(歎異抄)의 또 다른 저자
나오시리라
조선 오백년 강원(講院)은 물론
고려도 건너뛰고
저 찬란했던 메이저리그 시절
신라에서도
원효스님 광덕스님 그 시대에서도
어디 스님들 모아놓고
정토의 책들 읽고 강(講)하는 그런 법회
있었는지 어땠는지
“자주 모여서 법을 토론한다면 망하지 않는다”
말씀하신
부처님 말씀 실천한 적 있는지 없는지
비록 모르지만,
이제 그 새로운 수레바퀴
이미
굴러가기 시작 했네
앞으로
앞으로
(2024년 8월 24일)
사실, 금년까지는 스님들 모시기가 적잖이 힘들었습니다만, 내년부터 좀 더 많은 스님들을 수월하게 모집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1년 동안 차분히 준비할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정신게」’를 한번 읽어보기로 합니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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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
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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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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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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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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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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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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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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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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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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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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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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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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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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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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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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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
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
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
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
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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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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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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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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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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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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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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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
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교행신증』 제2권)
‘의지할 의’는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천친 보살 찬탄’ 중에서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의수다라현진실’은 ‘수다라에 의지하여 진실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려서 이제 다 아시겠습니다만, ‘수다라’는 곧 범어 ‘수트라(sūtra)’를 소리베낌(音寫/음사)한 것입니다. 뜻으로는 ‘경전’인데, 천친보살의 <<정토론>>에서는 곧 <<무량수경>>을 가리킵니다. <<정토론>>의 원래 제목이 <<무량수경우파제사원생게>>인데, 거기에 분명 ‘무량수경을 우파제사’하노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량수경>>을 우파제사(upadeśa)한다’는 말은 ‘<<무량수경>>을 논의한다’는 말입니다. 이때 ‘논의한다’는 글자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주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전을 거시적으로 보면서, 그 핵심만을 파악해서 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른바 오늘날 우리가 쓰는 ‘논문’ 역시 그런 의미에서는 우파제사와 가깝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지금 신란스님은 ‘천친보살조론설’, 즉 ‘천친보살은 <<무량수경우파제사원생게>>를 지어서’라고 말합니다. 그 ‘논설’의 첫머리에 ‘귀명진시방 무애광여래’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행하든지 제일 먼저 ‘귀명’부터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 인사하고 귀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이 예의이고, 신앙입니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으로 천친보살은 무량수경의 의미를 논의하는 데,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원생게(願生偈)」입니다. 그러한 「원생게」를 통해서 간단명료하게 제시하였으나,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다시 산문으로 좀 더 자세하게 주석합니다. 자주(自註), 즉 남이 해주는 주석이 아니라 자기 글에 자기 스스로 하는 주석입니다. 이 부분을 담란스님은 ‘해의분(解義分)’이라 말하고, 그 앞의 ‘원생게’를 달리 ‘총설분(總說分)’이라 하였습니다. 총체적으로 설하는 부분이라는 의미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천친보살조론설, 귀명무애광여래, 의수다라현진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강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이 문제입니다. 그 구절의 뜻이 곧 ‘진실’의 구체적인 의미내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천횡초대서원’이라는 말을 ‘진실’의 함의(含意)로 본다면, ‘광천횡초대서원’이라는 ‘진실’이, 신란스님이 좋아하는 그 ‘진실’이, 과연 천친보살의 <<정토론>>에도 나타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총설분에서든, 아니면 해의분에서든 말입니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1차적으로 해야 할 작업은 ‘광천횡초대서원’의 의미가 무엇인가 살피는 일 아니겠습니까. ‘광천’이라는 말은, ‘빛 광’에 ‘열 천’입니다. ‘연다’는 ‘천’에는 ‘분명하게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흔히 ‘천명(闡明)’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천명하는데, 그것도 ‘광천한다’는 말입니다. ‘천’은 동사이고, ‘광’은 동사를 꾸며주는 부사입니다. ‘빛 광’에는 다른 뜻으로 ‘넓을 광’의 의미도 있습니다. 무량수경에 ‘광천도교(光闡道敎)’라는 말이 나옵니다.
‘광천’의 목적어가 되는 것은 ‘횡초대서원’입니다. ‘횡초의 큰 서원’이라는 말인데, 여기서 어려운 말은 ‘횡초’입니다. 이는 신란스님께서 대단히 중시하는 말입니다. 정토사상, 그 중에서도 <<무량수경>>의 진실한 가르침은 ‘횡초’라고 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사실, 당나라 선도대사에게서 가지고 온 말입니다. 관경소 현의분(玄義分)에 ‘횡초단사류(橫超斷四流)’라는 구절이 있는데, 신란스님은 <<교행신증>> 제3 신권에서 바로 그 말을 주석하십니다. 그 부분을 인용해도 좋겠습니다만, 그보다 ‘횡절(橫截)’이라는 말에 대한 주석을 먼저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선도대사는 다음과 같은 무량수경 하권의 ‘횡절’이라는 말을 ‘횡초’로 바꾸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갈래의 나쁜 길을 가로로 끊어버려서
나쁜 길(로 가는 문)은 저절로 닫히리라.
횡절오악취(橫截五惡趣)
악취자연폐(惡趣自然閉)
이 구절에 대해서도 이미 앞의 어느 편지에선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의 ‘횡절’에 대해서 신란스님은 어떻게 주석하셨나 살펴봅니다. 신란스님의 저서에 <<존호진상명문(尊號眞像銘文)>>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존호’는 ‘나무아미타불’을 가리키고, ‘진상’은 아미타불을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평소 그런 존호와 진상을 그려서 족자로 만들어서 모시고 법회 같은 것을 해왔습니다. 그럴 때, 존호와 진상의 아래 위로 경전이나 어록의 글귀를 씁니다. 이를 ‘명문’이라 합니다. 신란스님은 평소에 존호와 진상에 명문으로 적어 넣었던 글귀를 모아서, 사람들이 알기 쉽게 일본어로 하나하나 설명하는 저술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존호진상명문>>입니다.
‘횡절’이라는 말이 나오는 <<무량수경>> 하권의 말씀 역시 명문으로 쓰인 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설명하는 글을 쓰셨던 것일 터입니다.
‘횡’은 옆모습이라고 하며, 옆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여래의 원력을 믿 기 때문에 (왕생 역시 – 인용자) 행자의 의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악취를 저 절로 내버리고 사생(四生)을 떠나는 것을 횡이라고 말하고, 타력이라고 말하는 것 이다. 이를 횡초라고 말하는데, ‘횡’은 수(竪)에 상대하는 말이고, ‘초’는 되돌아가 는 것(迂/우)에 대한 말이다. 수는 세워진 모습, 우는 되돌아간다가 된다. 수와 우는 자력성도(문)의 뜻이고, 횡초는 곧 타력진종의 본의(本意)이다.
횡은 수와 상대되는 말입니다. 수는 세로이고, 횡은 가로입니다. 세로는 오히려 우회라고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계단 한 계단 다 걸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 가로는 그러한 세로가 아님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래 번역자들이 뜻으로 파악한 ‘단숨에’나 ‘곧바로’가 올바른 이해였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횡초나 횡절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인의 길을 걷는 것은 정토불교의 추천사항이 아닙니다. 그를, 자력의 의도(일본어로는 하카라이)를 오히려 내다버리고서 아미타여래의 타력본원에 내다맡길 때, 그 본원의 힘으로 인해서 다 초월해서 안심입명이 가능하고, 왕생이 가능하며, 성불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타력진종의 근본 뜻입니다.
신란스님은 이렇게 ‘횡절’이나 ‘횡초’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당신의 생각이나 선도대사의 생각에서가 아니라 천친보살의 정토론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 말합니다. “수다라에 의지하여서 진실을 드러냈으니 / 널리 횡초의 대서원을 천명하셨네”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토론에서 ‘횡초’의 개념에 맞는 입장이 나타나 있을까요?
이러한 의문이 있다면 다시 <<정토론>>을 정독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꾸 자꾸 읽게 됩니다.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읽었다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둘째(보살의 장엄공덕 성취 넷 중에서 둘째 – 인용자) , 저 (부처님의) 응화신 은 모든 때에 앞도 없고 뒤도 없으며 일심(一心) 일념(一念)으로 큰 광명을 놓아 서 능히 두루 시방세계에 이르러서 중생을 교화하되, 갖가지 방편으로 해야 할 일을 수행하고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제거하신다. 그러므로 (「원생)게」에서 “때 (垢)가 없는 장엄한 빛이 / 일념 일시에 / 두루 모든 부처님 회상(會上)을 비추어 서 / 모든 군생(群生)을 이익케 한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응화신(=보살들)이 빛을 놓아서 일체 중생들의 고통을 다 소멸케 하노라 하신다면, 중생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러한 빛에 의지하는 것이 바로 타력진종의 횡초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제33원의 뜻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신란스님의 말처럼 <<정토론>>에서도 ‘횡초의 대서원을 널리 천명하셨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것은 그 이야기를 불장엄공덕성취 8가지 중에서 하지 않고, 보살장엄공덕성취 넷 중에서 한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신란스님의 이해와 천친보살의 이해가 혹시라도 다소간에 차이를 갖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저로서도 남습니다. 당장에 답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차차 답을 찾아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편지를 마치기 전에, 지난번에 내드린 ‘<<무량수경>> 퀴즈 –5’의 답을 말씀드립니다. 제4원입니다. 정답과 오답이 반반이었습니다만, 정답을 주신 분들은 이미 야나기 무네요시 선생님의 <<나무아미타불>>을 정독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아직 못 읽으신 분들은 일독을 권진합니다.
‘<<무량수경>> 퀴즈 –6’ 드립니다. 역시 5에 이어서입니다. 제4원에 보면, ‘무유호추(無有好醜)’라는 말이 나옵니다. ‘호추’라는 말을 보다 적절한 말로 바꾼다면, 어떤 말이 될까요? 역시 2음절입니다. 많은 분들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2024년 9월 6일)
추신 : 편지를 다 쓰고 보니, ‘의지할 의’는 지난 69번 편지에서 이미 썼던 것이었습니다. 대개 겹치지만, 조금 차이 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보냅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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