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강박과 허무 사이에서 길을 찾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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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간 책을 내일까지 반납하라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허둥지둥 2/3정도 읽은 책을 찾아내서 8챕터 중 7챕터까지 읽기를 마친다. 그러나 마지막 장은 읽기가 싫다. 결국 나는 그 책을 ‘책수첩’에 적을 수 없었다. ‘책수첩’이란 머리말부터 맺는말까지 완벽히 읽은 책만 기록하는 (그래봤자 책제목, 저자, 출판사, 독서기간이 전부이다) 작은 노트이다. 한 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250권이 넘는데도 이 엄격한 규칙 때문에 ‘책수첩’에 기록되는 책은 고작 50~70권 남짓이 된다. 그렇게 나름 완벽하게 읽었다는 책도 3개월만 지나면 내용이 하나도 남지 않고 휘발되어 버리니 이건 참 허무해도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쏟아져 나오는 신간에, 고전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읽어야 할 책들은 넘쳐나는데 읽고 나도 남는 게 없는 독서에 차츰 의욕을 잃어갈 즈음 대단한 책을 발견했다.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도 이미 나는 앞에서 읽은 것을 망각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은 것처럼 되어버리는 순간까지, 즉 다시 비(非)독자가 되어버리는 순간까지 연장된다. 그렇게 될 줄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그냥 비독자로 머무는 편이 나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어떤 독자도 이 망각의 과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p.77~78)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줄 알았다. 아니면 책을 잘못된 방법으로 읽어서 내용을 잊는 줄 알았는데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아니 <수상록>을 쓴 몽테뉴도 그렇고 모든 독자가 그렇다고 단언한다. 큰 위로를 받는 대목이었다.앞으로는 ‘책수첩’에 관대하게 기록을 해도 좋겠다 싶다. 아니 ‘책수첩’ 따위 개에게나 던져주어야 할지도.
저자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이나 대충 훑어보는 것,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책 내용을 귀동냥한 경우나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모두 비독서의 방식들인데 어떤 누구도 심지어 저자 조차도 자신의 책을 완벽히 기억할 순 없기 때문에 책 내용의 명확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교생활에서, 선생 앞에서,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 담론의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해법을 제시한다. 먼저 부끄러워하지 말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책을 꾸며내고, 자기 얘기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단순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맘에 걸리기도 한(책을 꾸며내는 것은 좀~~) 해결책에는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내면의 책’이다.
이 가상의 책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필터처럼 기능하면서, 어떤 요소들을 간직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결정함으로써 새로운 텍스트들의 수용을 결정짓는다.(p.118~119)
독서토론의 과정을 통해 이 ‘내면의 책’이 무엇을 뜻하는지 경험한 바 있다. 같은 텍스트를 읽고도 어떤 사람은 사건에 집중하여 주제를 파악한 반면 다른 사람은 시대배경에서 저자의 의도를 알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같은 책을 읽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해석이 달랐던 이유는 각자 가지고 있는 필터 즉 ‘내면의 책’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책을 읽었느니 안 읽었느니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내면의 책’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책을 통해 ‘나’를 찾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런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달라진다. 접근 가능한 몇 가지 자료들에 입각하여 무엇보다 우선 중시해야 할 것은 바로 작품과 자기 자신, 그 둘 사이의 다양한 접점들이기 때문이다. (p.229)
그렇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통해 나를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책과 만나는 접점에 있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상고하는데 있다면 굳이 책 내용을 세세히 기억하지 않아도 충분히 얘기할 거리가 많을 것이다. 작가가 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도 책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 심지어 비록 읽지 않은 책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부끄러워 할 필요도, 독서에 완벽을 기한다며 스스로 지쳐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조금씩 세상에 유일하고도 독창적인 하나의 책 자체로 만들어져 간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다.
첫댓글 ㅋㅋ 책수첩 따위 개에게나 던져줘요? ㅋㅋㅋㅋ
남 앞에서 책을 말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말하려고 전문가답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우리는 다 있으니까요..
이 책으로 그런 부담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면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은희샘 글을 읽으니 더욱요 ~~
언제나 양이냐 질이냐를 두고 갈팡질팡했다면
이젠 질로.. 더욱 세밀하게 나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글. ㅎㅎ
샛별 샘, 요새 왜 글 안올리세요~~ 엄청 기다리고 있는뎅. 혹시 개인 블로그 만드시고 계시는 중??
좋은 글 빨리 올리삼~~
저만 자꾸 잊는 줄 알았는데~
작가도 그러겠죠. 스스로를 위로하며 편한 맘으로 책을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