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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SM Academy) 원문보기 글쓴이: 답사회장 (김신묵)
국보 제15호 - 공식명칭 : 안동 봉정사 극락전 (한자명칭 : 安東 鳳停寺 極樂殿) - 지 정 일 : 1962.12.20 - 시대 : 고려시대
- 주소 :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 (태장리) 문화재청 설명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
천등산(天登山) 봉정사(鳳停寺)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하였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중 하나인 봉정사의 최초 창건은 의상대사 창건설과 능인대덕의 창건설중 대체로 능인대덕의 창건으로 보고 있으며, 창건 이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參禪道場)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 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25 전쟁 때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誌)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께서 다녀갔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영국여왕을 안내한 아름다운 사찰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비롯해 대웅전(국보 제311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1614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영상회 괘불도(보물 제1642호),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우리는 한동안 부석사 무량수전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배웠고 누구나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72년에 봉정사 극락전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상량문에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한 건물을 지은 후 중수하게 되는 시기는 대개 150~200년쯤 뒤이니 그렇다면 1363년에서 그만큼 앞에 지었다는 얘기가 되고, 1376년에 중수한 기록을 갖고 있는 부석사 무량수전을 앞선것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록으로 중수한 연도를 확인한 것이지, 처음 지은 날자가 확인된것은 아니므로 확실히 먼저 지었다고 하기에는 어쩐지 자신없는 측면도 있어서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봉정사 극락전 모두 최고의 목조건물이라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기록으로 실제 건축시기를 확실히 아는 최고(最古) 절집은 수덕사 대웅전이다. (1308년 창건)
뿐만아니라 지난 2000년 2월에는 극락전 옆에 있는 대웅전의 지붕 보수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 (선덕 10년 : 1435년, 세종 17년)이라고 적혀있고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신라대 창건 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다)라고 되어있어 대웅전 창건이 1435년 중창 당시보다 500여년이나 앞섰다는 말이니, 현존 최고의 건물이 극락전에서 다시 대웅전으로 바뀔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는 여론이다. 그리하여 봉정사 대웅전은 2009. 6. 30일 국보 제311호로 승격되었다.
이와 함께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서 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 (지정 21년 : 1361년, 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 시주. 시주자 박재거)라고 적힌 묵서명도 확인되어 대웅전 불단이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임이 판명되었다.
그밖에도 발견된 상량문에는 2층 누각 신축, 단청을 한 시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 사찰규모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 당시 봉정사는 팔만 대장경을 보유하고 500여결(1만여평)의 논밭에다 안거스님 100여명에 75칸의 대찰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기야 국내 곳곳에 천녀고찰이 한 두곳이 아니니 어느 날 어느 절집 상량문이나 묵서명이 발견되어 또다른 최고(最古)의 기록을 갱신할 지 알수 없으니 내심 기대해 본다.
아무튼 2015년 현재 공식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은 지금 소개하려는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이다.
극락전(極樂殿) 영역
봉정사는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면 경사진 길에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누문(樓門) 만세루(萬世樓)를 지나 주불전인 대웅전 앞에 서게 되는데 극락전은 그 대웅전의 왼쪽에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주전(主殿)을2개 모신 특이한 구조이다.
대웅전은 만세루와 마주보며 왼쪽에 화엄강당(華嚴講堂), 오른쪽에 무량해회(無量海會)가 있고 극락전은 왼쪽에 고금당(古金堂), 오른쪽에 무량해회(無量海會)가 있으며 대웅전 앞에 만세루가 있듯이 극락전 앞에 우화루가 있었는데 영산암으로 옮겨 갔다.
대웅전과 마주보는 곳에는 중문격인 진여문(眞如門)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철거되어 없으며 오른쪽 무량해회 앞으로 돌아나가는 협문에 진여문(眞如門)이라고 씌여있다. 대웅전 앞마당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으나 극락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다.
<봉정사는 주전(主殿)이 2개가 되는 특이한 구조이다. 사진에서 왼쪽 팔작지붕이 대웅전, 오른쪽 맞배지붕이 극락전이다.>
<극락전 전경. 낮은 축대위로 왼쪽이 고금당, 오른쪽이 무량해회인데 무량해회는 대웅전쪽이 앞이고 극락전쪽은 뒷면이다.>
<단정한 맛배지붕에 정면3칸인 극락전은 가운데칸에만 단순한 출입문이 있을뿐 좌우 양칸에는 살창을 달았다.
벽면은 전체를 토벽으로 발랐는데 배흘림 기둥이며, 기둥 위에만 포를 올린 주심포식으로 아주 간결해 보인다.>
<옆면을 보면 4칸의 면분할이 뚜렷하고 9개의 도리가 돌출되어 9량집임을 알수 있다. 지붕이 충분히 나와서 안정되어 보인다.>
<뒷면은 중앙에만 앞면과 비슷한 모야의 문을 내었는데 사용하지는 않는듯 하다.>
<극락전 앞마당의 왼쪽은 대웅전과 경계상에 서있는 화엄강당(華嚴講堂)의 뒷면이다.>
<극락전 앞마당에는 경북유형문화재 제182호 삼층석탑이 서 있고, 오른쪽은 고금당(古金堂)이다.>
<극락전 현판, 1386년 병인년(丙寅) 6월에 송파동몽(松坡童蒙)이 썼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안동 권씨 권행의 15세손 송파((松坡) 권인(權靷)을 말하며 동몽(童蒙)은 자신을 낮춰 부른 말이다. 그 옆에는 광서(光緖), 즉 청나라 덕종 광서8년이므로 1882년 임오년(壬午) 4월에 채색하였다고 쓰여 있으니, 극락전 못지않게 현판도 오래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극락전 내부에는 뒷벽 중앙에 나무로 불단을 만들어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윗쪽 닫집이 섬세하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극락전은 1972년에 완전 해체, 수리하면서 단청까지도 새로 칠하였다고 하는데 예전 단청을 그대로 살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옛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을 왔을때 이 극락전의 중수에도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것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임금에 대한 칭송문구가 단청무늬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주상전하(主上殿下), 성수만세(聖壽萬歲)가 쓰여져 있다. 아마도 불사에 힘을 실어준 공민왕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남겨둔 것이 아닐까?
또한 극락전은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면서도 매우 소박하고 간결해보이는데 이는 전체적인 건물의 구조나 목재들의 결구처리 방식이 단순한데서도 느낄수 있다. 특히 기둥위에 올린 공포를 보면 옆에 있는 대웅전의 공포와 비교하여 극락전 공포는 꼭 필요한 구성만 갖추었을뿐 장식적인 부분이 아예 없음을 알 수 있다.
<극락전은 처마아랫부분과 외목도리, 공포, 그리고 보가 지나는 목제부분에만 가볍게 단청을 하였는데 기둥위에만 위치하여 몇 개 되지 않는 공포의 모양이 비교적 단순간결하다.>
<이에 비하여 대웅전은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포를 얹은 다포식 건물인데다가 그 포의 모양이 큼직하고 힘있게 강해보이는데다 단청마저 벗겨져 마치 어떤 동물 형상인가 싶어 자꾸 다시 보게 된다.>
봉정암은 극락전만으로도 그 무게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절집이다.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의 무게가 그만큼 크고 무겁다는 뜻이다.
물론 최근들어 대웅전 건물에서 역사적인 기록들이 추가로 발견되어 최고(最古)의 영예을 넘겨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려때 법당건물의 고건축물로서의 값어치는 불변일 것이다.
또한 봉정암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빛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년 배용균 감독), ‘동승’(2003년 주경중 감독)이 영산암에서 촬영되어 그 유명세를 보탰으니, 그 이후 찾는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며, 문화재청, 대한불교조계종, 안동시 등이 나서서 2018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부디 좋은 성과를 거두어 모법적인 문화유산으로 길이 보전되기 바란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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