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
추녀 물을 새어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들었다.
<박형진의 ‘입춘단장’ 전문>
매운 날씨가 시나브로 눅지는 듯, 푹한 느낌이 들더니 어느새 입춘(立春)이네요.
요즘엔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입춘이 되면 집집마다 가게마다 문에 입춘첩(立春帖)을 붙였죠. ‘입춘대길(立春大吉)’ 한 줄로 쓰기도 했지만, 옆에 '건양다경(建陽多慶-새해에 경사스런 일이 많기를)’이란 글을 붙이기도 했죠.
이밖에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풍부해지기를)’,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땅을 쓸면 황금이 쏟아지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등의 입춘첩을 붙이고 한 해의 행운을 빌었습니다. 참고로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격에 맞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개발에 주석편자’ ‘거적문에 돌쩌귀’ 등이 있습니다.
조상들은 입춘에 자신이 잘 하고 싶은 것을 아홉 번 되풀이하는 ‘아홉 차리’ 풍습을 지켰습니다. 서당의 학동은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는 등…. ‘9’라는 숫자를 좋은 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서양에서 ‘99’를 영원의 수로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조상들은 입춘 전야나 당일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한 해 내내 액운(厄運)을 면한다며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을 실천했습니다. 상여소리에도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하였는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우리 민족은 참 밝고 따뜻하고, 현명한 민족이었습니다.
선행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이 현대의학의 연구결과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선행을 할 때 뿌듯함을 느끼며 엔돌핀, 엔케팔린 등의 물질이 분비되면서 면역력이 올라가고 진통작용이 생긴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무엇인가를 나눌 때, 선행을 할 때의 행복감은 로또에 당첨됐을 때의 행복보다 더 오래 간다고 합니다.
오늘 어떤 일을 ‘적선공덕행’을 하실 겁니까? 옛날에는 남몰래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는다거나, 굴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을 지어 놓든지 했지만, 여러분은 무엇을 하실 겁니까? 오늘, 입춘 날에. |
첫댓글 선행을 할 때의 행복감은 로또에 당첨됐을 때의 행복보다 더 오래 간다고 합니다. ,, 선행,,!!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오늘은 카펜터즈네요~ Top of the world~ 왠지 조형기가 생각난다는...
선행을 마니마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