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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년 전 단편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그 당시 이병주 소설의 매력에 빠져 '관부연락선'도 읽었고, 그 밖의 소설도 차근차근 읽어봤습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사이 단편소설집 한 권을 읽기 시작했고, 오늘 읽기를 끝냈습니다. 장마리 소설 <선셋 블루스>(2013. 12, 문학사상)입니다. 이 소설집에는 <선셋 블루스>를 비롯하여 <불어라 봄바람>, ...<꿈꾸는 마미>, <거기, 어디쯤에서>, <바이킹을 타다>, <고래를 찾아서>, <거미집>, <산을 내려가는 법> 등 8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작가의 주된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실패한 사람들(루저), 밝고 가벼운 스토리보다는 어두워 보이지만 의식을 건드리는 스토리, 관념과 표현의 사치보다는 현실과 내면의 절박함, 아무런 다툼도 치열함도 없는 삶보다는 갈등 속에 발버둥치는 삶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셋 블루스>는 "노을이 변산 바닷가를 물들였다. 그곳에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라는 두 줄 시로 시작합니다. 소설의 주무대는 새만금 간척지. 그곳에 외지에서 온 두 남녀가 지프를 타고 나타나고, 그들은 동네 뒷산 언저리 밭을 구입합니다. 날이 지나면서 그곳에는 통나무 집이 제 모습을갖춰 갑니다. 그 후로 남자는 어쩌다가 한 번씩 지프를 타고 나타나고, 여자는 병색이 짙어 갑니다. 보름달이 뜬 날 한밤중에 여자는 동네 80세 노인의 집에 나타나고, 그 집에서 아이를 사산합니다. 사산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인 아이를 품에 안고 다시 통나무 집으로 돌아간 여자는 그 뒤로도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이장이 통나무 집으로 들어가 침실을 들여다봤을 때, 침대 위에는 커플 잠옷을 입은 남녀가 누워 있었습니다. "남자는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지 눈과 입이 시커먼 동굴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옆에 누운 여자는 곱게 화장을 하고 있어 볼이 발그레했다. 입가에는 미소가 어린듯 보이기도 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뒷산 언저리 땅 주인을 물어보던 모습이었다. 여자는 뼈만 남은 남자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남자의 손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이장은 지난 봄에 제초제를 움켜쥐고 통나무집으로 돌아가던 여자를 떠올렸다." 이들이 왜 낯선 이곳으로 왔는지, 이 소설에서의 갈등상황은 무엇인지를 옮기는 것은 의도적으로 생략하겠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이 작품이 현대 문학교수 350인이 선정한 <2011 올해의 문제소설> 속에 포함된 것인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문학평론가 정은경 교수의 작품평론과 읽는 이의 느낌을 비교 대조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일의적인 해석만이 가능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다의적인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단편소설에 대한 갈증을 잔잔하게 풀게 되었습니다. <facebook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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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따라 해질녁 그림자가 더 길어 보이네요. 저 넓은 바다에는 받아도 받아도 부족해 보이는 삶의 갈증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