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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끼치지 않는가. 경기장을 가득 채운 45,000여명의 관중, 윙윙 울리는 양 팀 서포터들의 응원가, 훌륭했던 명품 경기력, 때마침 터진 두 골. 우리가 늘 동경해왔던 저 멀리 바다건너 리그의 모습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모습이 오늘 K리그에서도 연출됐다. 좋은 경기를 감상했으니 천천히 소화시킬 겸 이 경기 내용에 대해 평을 해보는 건 어떨까. 두 팀의 승부를 결정지은 키워드를 팀 별로 각각 3개씩 꼽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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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원의 공격 전개 : 말 그대로 아름다웠어.
수원의 공격 전개를 두고 뷰티풀하다고 해야 할지, 원더풀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경기를 본 분들이라면 그 의미는 말로 안 해도 어느 정도 통하리라 본다. 스테보-라돈치치를 향한 로빙 패스가 메인 요리가 됐다. 여기에 에벨톤C와 서정진의 중앙 침투, 이용래-박현범의 패스웍이라는 사이드 메뉴가 추가됐다. 자칫 단순하고도 재미없을 수 있는 선 굵은 축구에 가는 선까지 가미한 수원의 공격력은 다양성까지 갖추었다. 특히 스테보-라돈치치의 조합이 경기 시작부터 나선 건 처음인데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장난 아니었다” 정도면 될까.
2. 수원의 셋피스 : 준비된 플레이, 승부의 균형을 깨.
지난 시즌, 수원이 쏠쏠하게 재미를 봐왔던 득점 루트가 바로 염기훈의 발끝에서 시작된 셋피스였다. 염기훈이 경찰청으로 유유히 떠나버린 올 시즌, 이 부분이 조금 우려스럽기도 했으나 수원 선수들은 영리하게도 여전히 그 기회를 잘 이용했다. 오늘 첫 골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숏패스를 통해 상대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았고, 허겁지겁 높이를 의식했던 서울 수비들의 뒷공간을 박현범이 뛰어들어가 아주 제대로 찔렀다. 준비된 플레이, 승부의 균형을 깬 엄청난 장면이었다.
3. 수원의 지키기 : 1골을 더 넣으려는 의지보다는 2골을 지켜.
10-11 시즌 엘클라시코, 홈 팀 바르샤가 전반 18분 만에 두 골을 넣은 뒤 후반에도 세 골을 몰아쳐 스페셜 원 무리뉴를 처참히 무너뜨렸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이런 일이 오늘 빅버드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일찌감치 두 골을 리드한 수원은 후반 들어 본인들의 진영으로 많이 내려간 모습이었다. 이 부분이 그저 아쉬웠다. 안심할 수 없는 스코어 차이, 공수 밸런스, 경기 흐름 등 갖가지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건 맞는데 욕심을 조금만 더 내서 전반전에 버금가는 맹공을 퍼부었으면 어땠을까. 더욱더 화끈한 플레이는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이는 더 많은 팬,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필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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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의 3톱 : 데얀과 박희도는 어디로?
최용수 감독은 수원 공략법으로 3톱 카드를 꺼내들었다. 몰리나와 박희도는 전 소속팀인 성남과 부산에서 3톱을 소화해본 경험이 있고 기대에 부응할 만한 활약을 보여준 바 있다. 또, 데얀 역시 윙어들의 지원을 받는 원톱의 옷을 꽤 입어봤기에 그리 어색한 역할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박희도는 잠깐씩 까메오로 출연하는 데 그쳤고 데얀은 보스나-곽희주에 꽉 막혀 수원 울렁증에 시달리는 듯했다. 결국 서울은 3톱 중 몰리나만 줄곧 보이는 1/3짜리 공격을 하고 말았고 슈퍼매치 역대 전적에서 3경기 연속 무득점을 기록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 서울의 수비 실수 : 서울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려.
첫 실점은 수원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한 방 먹었다고는 하지만 두 번째 실점은 굳이 주지 않아도 됐을 골로 그 충격이 몇 배는 더 했을 것이다. 스테보의 발을 떠난 볼은 순식간에 골키퍼 김용대를 지나 골문을 갈랐고 서울 진영에서 파랑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뒹굴기 시작했다. 수원 벤치에서 환호하던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아디는 상대팀 벤치 바로 앞에서 아파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실점 장면 전에도 위험천만한 수비 실수가 한 번 있었는데 서울의 패배는 결국엔 수비 실수로 자멸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3. 서울의 고명진 : 희망과 아쉬움을 동시에 가져.
몰리나와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고명진이었다.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볼 키핑 능력, 거기에 스피드 돌파 능력까지 갖춘 탈압박의 귀재가 오늘도 상대 진영을 마구 휘저었다. 어쩌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서울 미드필드진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슛팅 능력. 페널티박스 밖 언저리에서 때린 슛팅은 번번이 하늘로 솟구쳤고 때로는 과감히 때렸으면 하는 타이밍에 팀 동료에 연결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다. 슛팅 능력까지 갖춘 고명진, 당연히 K리그 탑클래스 아니겠는가.
2010년 8월 28일 이후 서울 상대로 4연승. K리그 우승은 못 잡아도 서울만큼은 확실히 잡고 있는 윤성효 감독. 서울이라는 보약을 잘 지어먹은 수원이 제주전 패배 이후 다시 한 번 약진을 시작할 수 있을까. 전복 먹고 전북 잡은 최용수 감독이 이번엔 닭을 부족하게 먹었는지 3승 1무로 잘 나가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서울. 이 팀이 과연 연패 없이 상위권 경쟁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더욱더 흥미진진한 건 이변이 없는 한 이 두 팀이 앞으로 올해가 가기 전에 최소 3번은 더 맞붙는다는 것이다. 우선 8월 18일 토요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그 후속편을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