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반부터 7시 반까지 무려 다섯시간에 걸친 마라톤 만찬은
주로 영국 세실리 오닐 선생님이 연극원에서 했던 '그린 헤이븐'이라는 드라마를 가지고 놀아 보았구요. 과천에서 진행되었던 '세시풍속을 활용한 연극놀이'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사실, 저에게는 그린 헤이븐이 주었던 일종의 '충격'이 있었고, 그것을 활용 내지 변형, 혹은 수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나누고 싶었는데, 몇가지 이끔이의 진행상 미숙함을 여지 없이 드러내면서 마치 대변을 누다 만 듯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마지막에 '어려웠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해 주신 분들과 세시풍속이 어떻게 연극놀이와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참여하셨던 분들께는 너무 죄송합니다.
놀랬지넷 만찬의 가장 큰 장점은 관심과 기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연극놀이를 통해 잠시나마 더 나은 행복을 꿈꿀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제가 진행했던 내용이 소위 '공부 좀 했다'는 연극놀이 이끔이들만을 고려하고, 다른 분들을 겉돌게 하지 않았나 싶어서 부끄럽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오늘이 정월 대보름인데, 지신밟기도 좀 배워보고, 어떻게 연극놀이, 아니면 우리 삶과 연결지어 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면서, 놀아보는 것이 연극놀이 만찬의 취지나 세시풍습을 살리는 의미에도 잘 맞지 않았을까 합니다. 손톱별님 말처럼 기회가 되면 '그런 취지'의 만찬을 다시 열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 했던 ''그린 헤이븐'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목표 : 질병으로 인해서 한 마을 주민들이 겪게 되는 비극을 경험해 보고, 가족과 희생, 삶과 죽음, 문명의 의미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해 본다. (때에 따라선 더 있거나 좀 다를 수도 있습니다)
1. 자기소개
2. 인사춤 만들기(움직임 창조)
벽을 깨는 의미에서 했는데, 벽이 좀 덜 깨졌죠?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있을 경우 사전에 몸을 더 움직이는 간단한 게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 두명씩 짝지어서 각자 공간에서 빠르고 느리게 인사할 때는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다가가고 멀어지는 과정도 좋았는데 좀 더 구체적인 '지시'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3. 그린 헤이븐 (이야기 들려주고, 채우기)
4. 걸으면서 마을 내려다 보고 이야기 하기(상상의 공간 느끼고 말하기)
마을에 대한 묘사가 풍부했고, 그 속에 서서히 몰입해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다만 손톱별님 말처럼 서로가 동의하는 부분을 '정리'하고 넘어가는 과정이 있었으면 나중에 혼선이 덜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 마을에 이상한 변화(상상의 공간 느끼고 말하기)
약간 예상과는 다른 변화이긴 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역시 이 후 부딛칠 연극적 상황을 강화하기 위해 갈무리를 하거나 초반에 '상상의 범위'를 제한시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바이러스'와 관련된 징후들을 더 많이 읽혔더라면 그나마 군인 장교에 좀 더 신뢰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그래도 문제는 남지만요..
6. 군함의 등장(역할 내 교사)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지요?
7. 가족들의 대화(역할놀이)
다들 '프로'답게 즉석에서 척척 만들어 내시더군요. 원래 군인장교는 등장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강원도래요~' 님이 갑자기 말을 붙이는 바람에 엉겹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장면에 '음식 부족'이 이슈가 된 데에 그 영향도 있었습니다. 역할 내 교사는 낄 때, 안 낄 때는 분명히 파악해야겠지요?
8. 마을에 생긴 일(정지 장면 만들기)
물건 훔치는 사람들, 외부인을 통제하는 군인들, 몰래 고기 잡으려는 사람들.
정지장면으로 만들고 한 마디씩 해 보았는데, 좀 더 다양한 양식 요구하거나 선택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움직이는 장면이거나, 꿈장면으로 표현하거나, 정지장면에서 독백을 할 수도 있구요. 보도형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발표가 입체적이면서 좀 더 재미를 줄 수도 있지만, 장면 만들기 자체가 그 마을이 겪을 만한 일에 대한 극작 작업이기 때문에 발표 양식을 줄 경우 전후 맥락에서 잘 선택할 필요가 있지요.
9. 휴식
맘 같아서는 쭉 이어가고 싶었는데... 좀 지쳤지요? 잘 쉬었던 것 같습니다.
10. 마을을 내려다 보며 시 쓰기(정서적 반추)
'뭐하러 가느냐'를 짜다가 '제사'를 지내야 할 뻔했지요? 우왕좌왕하면서 활동의 목표를 빗겨갈 것 같아서 끊었습니다. 애초에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1. 공동 시 합창(코러스 만들기, 공감대 형성)
꼭 이 활동을 하면 시 창작의 원리가 원래 이런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12. 군인 장교의 제안 -바이러스 감염 사실과 아이 문제(역할 내 교사)
13. 마을 주민들의 결정 (역할 놀이)
드라마 구조 상에서 이 활동의 목표는 주민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 상황에 처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군인들이 아이를 내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이전에 만들어지 마을 상황이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게 되어 있었고, 또 우리 정서나 이 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군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느끼는 건데, 한가지 더 군인장교가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기 해 주면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태도'를 강하게 보이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바이러스'가 실제 상황이고 치명적일 수도 있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임박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군인장교의 구구절절한 설명 보다는 '확실한 태도'갖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14. 군인 장교의 권유(역할 내 교사)
약간 강요 비슷하게 세 사람이 아이를 보내기로 하지요? 실은 여기서부터 나중에 공통적으로 느낀 '허무함'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제 생각에 이상적인 모델은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마을의 몰락을 예감하면서 선택하는 한 줄기 희망'이라는 건데...
(15. 저의 서투름으로 '악몽장면 만들기'가 생략되었습니다. 몇명의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한 후, 그날 밤 마을 주민들이 꾸는 악몽을 만들어 보는 것이고, 양식적으론 꿈 속 이미지-반복, 비틀림, 연상, 소리, 기괴함 등을 활용해서 표현하도록 합니다. 역설적으로 참여자들은 이 활동을 하면서 아이와 헤어지는 것과, 이 후 마을 상황에 대한 공포를 예감하고 심리적인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16. 아이들과 헤어짐(움직임과 소리로 표현하기)
의논하다 좀 헤맸지요? '일상과 좀 다르게'라는 식으로 물어보았다면 좋았을텐데... 그러나 너무 슬펐습니다. 연극에서 우리 민족이 가진 저력이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요?
17. 30년 후 그린 헤이븐(거리두기, 이야기 들려주기)
18. 그린 헤이븐을 기억하는 사람들(역할 내 교사)
여기까지 했지요. 줏대를 가지고 끝까지 가 보았어야 했는데, 아니면 분위기를 좀 전환 시키던지...이끔이로서 자질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느꼈습니다
19. 그린 헤이븐 방문(상상의 공간 탐색, 말하기)
20. 죽은 자들의 혼령(역할놀이, 생각 들어보기)
21. 그린 헤이븐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역할 내 교사)
22. 후속 작업(기념비 만들기, 시 낭송, 보도하기, 영상물 만들기, 노래 만들기, 건축물 제작 등)
여기까집니다. 그러고 보니 '그린 헤이븐'과 같은 드라마는 연극놀이이기도 하지만 연극 만들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극만들기가 다 똑같아진다면 재미가 없겠지요? 그래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다른 내용으로 채워 갈 수 있는지, 소위 열린 구조를 가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거기에 대한 다양한 '감각'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제가 이번 만찬을 통해 얻은 최대의 수확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좀 얻으셨나요?
그리고 세시풍속을 활용한 연극놀이는 기회가 되면 다른 방식으로 소개할까 합니다....
어쨌든 오늘 추운데도 불구하고, 5시간 동안 저에게 많은 도전의 기회를 주신 열 네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