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무대 시그널 음악이 울리고--- 막이오른다.
사회: 가요 무대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해외동포및 근로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대중가요가 탄생하여 흘러온지도 숱한 세월이 지난것 같읍니다.
대중가요란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상황이 스며던 민중의 노래 입니다. 기쁨과 슬픔의 정과 한이 노래속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대중가요의 탄생기인 1930년대 부터 1980년대 까지의 큰 줄기들을 골라서 엮어 드리기로 하겠읍니다
추억속에서 즐겁게 감상해 주시기 바라며-- 아마도 60년의 세월이 주마등 처럼 지나갈것 입니다
# 사의 찬미 157(1926년 김우진작사 외국곡 윤심덕노래)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곳 그 어데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싫다~~"
대중가요 최초의 힛트곡 입니다. 외국곡인 '다뉴브강의 잔물결' 에 작사를 붙힌것 인데 노래 제목 만큼이나 염세적이군요
노래를 부른 윤심덕은 일본 유학 성악가 였으며 소설가이자 이 노래의 작사가인 김우진과 현해탄에서 동반 투신 자살 하므로써 장안의 화제를 낳았읍니다
*1930년대에 접어 들면서ㅡ 그때까지의 '창가'라는 이미지에서 벋어나서ㅡ 대중가요라는 의미로 정착하게 되고 창작가요가 불리워 지게 됩니다
그첫번째 곡이 '낙화유수'(1929년) 였고 이곡은 후일 '강남달'로도 불리워 젔읍니다
*1932년 '황성옛터'가 레고드로 제작 되였는데 레코드 음악의 효시인 동시에 명곡으로 꼽히고 있읍니다.
당시 '조선의 세레나데'로 알려저 민족 정서를 자극한다하여 금지곡이 되기도 했읍니다
# 황성옛터 77 (1929년 왕평 전수린 이애리수)
"♬~~황성옛터에 밤이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1935년 이후부터 레코드 산업이 번창하게 되며ㅡ
그 당시 작곡가로는 김교성 김용환 손목인 김해송 박시춘 이재호 등이고ㅡㅡ
대표적인 곡들은 목포의눈물(1935년 이난영) 타향살이(1934년 고복수) 짝사랑(1937년 고복수) 홍도야 울지마라(1939년 김영춘)
애수의 소야곡(1937년 남인수) 눈물젖은 두만강(1938년 김정구) 불효자는 웁니다(1939년 진방남) 나그네 설음(1940년 백년설) 번지없는 주막(백년설) 찔레꽃(1941년 백난아) 등입니다.
일제의 압박속에서 신음하던 민족의 고통과 바램이 망향가 속에 혹은 다른 은유적 표현으로 노래속에 많이 뭍혀 있읍니다
# 눈물젖은 두만강 748 (1938년 김용호 이시우 김정구)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꿈에도 그리던 해방의 물결----다들 감격시대의 기쁨과 희망이 넘칩니다
# 귀국선 681(손로원 이재호 이인권 )
"♬~돌아오네 돌아오네~~고향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민족은 남과 북으로 삼팔선이 가로 막히게되고 그실망과 실향의 아픔이 노래로 나오게 됩니다 '가거라 삼팔선' '꿈에본 내고향'(한정무) 한많은 대동강(손인호) 등입니다
# 가거라 삼팔선 734 (1946년 이부풍 박시춘 남인수)
"♬~~아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남북이 가로 막혀 원한 천리길 ~ 삼팔선을 탄한다~~"
*이무렵 부산 출신 현인의 노래가 크게 힛트 합니다.ㅡ 신라의달밤(1947년) 비내리는 고모령(1948년)
박재홍의 울고넘는 박달재(1948년)
*이어서 민족의 비극인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고난과 슬픔으로 얼룩집니다.
이때의 대표적인 노래들은 전우야 잘자라(1952년 현인) 전선야곡(1952년 신세영) 아내의노래(1952년 심연옥) 굳세어라 금순아(1952년 현인) 단장의 미아리고개(1954년 이해연) 이별의 부산 정거장(1954년 남인수) 삼팔선의 봄(최갑석)--- 등 입니다.---오늘은 전쟁당시 군가 역활도 겸했던 노래--
# 전우야 잘자라 5061 (유호 박시춘 현인)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꽃잎처럼 떨어저간 전우야 잘자라~~'"
*전쟁이 남긴 후유증은 회한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노래로써 나타나게 되는데--비내리는 호남선 (손인호) 미사의노래(이인권) 미사의 종(나애심) 대전부루스(안정애)등 이고ㅡ
한편 재활의 의지를 담고 고향을 기리는 향수와 귀향의 의지, 또한 현실 도피성이 함께 표시 되기도 합니다ㅡㅡ물레방아 도는 내력 (박재홍) 고향에 찾아와도(최갑석) 유정천리등--
# 유정천리 750 (1957년 반야월 김부해 박재홍)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눈물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50년대 초 중반 부터 미국 문화가 대거 유입되여 이른바 맘보 차차차 트위스트 탱고 부루스등이 유행하고 미8군 무대 출신들이 후일 가요계에 나오게 됩니다. 한명숙 패티김 현미( 밤안개 1962년) 최희준 김상국 (불나비 1965년) -- 등 입니다.
*50년대 후반부터 한국 영화가 성행을 하고 영화 주제가들이 60년대 들면서 전성기를 이룹니다
노란 샤스의 사나이(1961년 한명숙) 빨간 마후라(1964년 봉봉) 카츄사의 노래(송민도) 산장의 여인(권혜경) 맨발의 청춘(1964년 최희준) 사랑이 메아리 칠때(안다성) 등 입니다
오늘은 영화 '창살없는 감옥'의 주제가인 '님'ㅡ 탱고 리듬에 실어 나갑니다---
# 님 145 (1962년 최경철 한복남 박재란)
"♬~~목숨보다 더귀한 사랑 이건만 창살없는 감옥인가~ 만날길 없네~왜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60년대 들면서 저음가수가 인기를 얻읍니다ㅡ남일해가 원조랄수 있는데 '이정표' '빨간구두 아가씨' 등을 발표 했읍니다 그뒤를 오기택(영등포의밤 고향무정) 남상규(추풍령) 배호 문주란 박일남(갈대의 순정) 등으로 이어 집니다
# 이정표 664 (월견초 나화랑 남일해)
"♬~~길잃은 나그네의 나침판이냐 ~~해지는 역마루 홀로섰는 이정표~~~'"
*문주란은 드물게보는 여성 허스키에 저음으로 인기를 모았죠 '동숙의 노래' '돌지않는 풍차' 등이 있읍니다
데뷔곡 '동숙의 노래' 가 나올 때 '16세 소녀'라고 크게 떠들어 댔죠
# 동숙의 노래 290 (1966년 한산도 백영호 문주란)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 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 원한 맺힌 마음에~~"
*배호 역시 허스키한 음성으로 저음과 고음을 적절히 구사하며 영혼이 흐느끼는 듯한 감정으로 다가 옵니다.
'안개낀 장충단 공원 (1967년)' '누가울어' '파도' 등이 있고--1971년11월 29세의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요절 합니다. 그의 운명과도 같았던 노래.ㅡ
# 마지막 잎새 728 (정문 배상태 배호)
"♬~~그시절 푸르던 잎 어느듯 낙엽지고~~~~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60년대 중반들어 트롯트의 복고풍이 일어 나는데 대표 주자가 이미자인 셈이고.
'동백 아가씨' 이후 '울어라 열풍아' '아씨'등 주옥같은 노래를 토해 놓으며 '하늘의 묘음' 이란 칭송과 함께 엘레지의 여왕으로 군림하고 60~70년대 여자가수로는 독주를 하게 됩니다
60년대 최고의 힛트곡으로 꼽히고 있는 그의 노래ㅡㅡ
# 동백 아가씨 1229 (1964년 한산도 백영호 이미자)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60년대 후반 월남 파병과 더불어 '월남의달밤'(윤일로)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패티 김은 60년대 미 8군 무대 출신으로 70년대 들어 대중에게 크게 어필 되는데ㅡ 풍부한 성량과 깊은 맛의 노래는 서정적인 노래가사와 더불어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다가 옵니다
'가시나무 새' '초우' '서울의 찬가' 등이 있고 아쉽게도 노래 처럼 길옥윤과 이별합니다
# 이별 553 ( 길옥윤 작사 작곡 패티김)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수는 없을꺼야~~~~"
*흔히들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를 한국 대중가요의 전성기 라고 부릅니다.
그 후반부를 장식할 대표 주자 2명이 70년대 초부터 라이벌로 등장 합니다.ㅡ 남진과 나훈아 입니다
50년대에 1차 라이벌은 남인수와 현인인 셈이고 이들은 2차전이 되는셈--
남진이 60년대 후반 조금 먼저 두곽을 나타 냅니다 그의 출세곡 '울려고 내가왔나'를 비롯하여 '가슴아프게' '님과 함께'등이 힛트 합니다
# 가슴아프게 3463 (1967년 정두수 박춘석 남진 )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씨앗' '잊을수가 있을까' '두줄기 눈물'등 숱한 힛트곡을 양산하고 가히 신드룸을 이룹니다
# 사랑은 눈물의 씨앗 129 (남국인 김영광 나훈아)1969년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 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먼 훗날 당신이 나를~~~"
그의 톱가수 인기 만큼이나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은 연상의 김지미와의 결혼 이였고 --
근자에 바지를 내릴뻔 햇던 일들은 좀 천박하죠 남진은 한때 한국의 '엘비스'라고 모방하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좀 천박하고---
*이외 70년대 가수들로는 김상희(대머리총각) 송대관 김부자 정훈희(안개) 하춘화(물새 한마리) 김세레나 등입니다
*80년대들어 기존의 트롯트와 발라드를 합성시킨 곡이 나오게 되는데 이가 조용필 입니다
'돌아와요 부산항'(1975년) 이후 대마초 사건으로 공백기를 지나 '창밖의 여자' '일편단심 민들레' 등-- 80년대를 독주합니다
# 허공 781(정욱 정풍송 조용필)
"♬~~꿈이 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허공속에 뭍혀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현철 송대관 태진아등은 70년대 초반 남진 나훈아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나 미미 했고 그뒤 10여년 만에 복고풍의 바람이 맞아 떨어저 무명 세월을 벗어나 뒤듲게 운좋게 성공한 가수들이고,
혜은이(제3 한강교) 설운도(잃어버린 30년) 주현미(비내리는 영동교 1984년) 등이 가세하여 80년대를 장식하게 됩니다
사회: 자ㅡ 어떠셨는지요 긴 세월도 금방 지나처 가지요 우리 가요의 흐름을 개략적 이나마 파악이 되였다면은 그 또한 좋은 일이 겠지요
오늘 소개된 노래나 작사 작곡가 가수들 이외에도 훌륭한 내용과 사연들이 많이 있겠지만 제외 된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세월의 노래 따라 우리네 지난 인생을 회상해 보면, 가슴저미는 일들과 애달픈 사연들이 숱하게 어려져 있읍니다.
행여 노래가사 처럼 '허공속에 뭍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인지도 모르 겠구요
오늘 가요무대--- 한국가요 반세기를 뒤돌아보며 '인생의 노래 세월의 노래'를 시청해 주신 애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ㅡ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요-----
*무대의 막이 내려지며 출연자 전원이 손을 흔들며 합창한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아아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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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용은 가요 무대란 형식을 빌어 필자가 작성한 것입니다
곡명뒤의 번호는 편의상 태진 반주기의 번호를 붙혔읍니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광범위하여 막막했읍니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10년 단위로 하거나 테마별로 범위를 좁히는것이 효과적 이겠다고 생각했읍니다
음-- 하나 빠졌네요 --호사가들 사이에는 한국 가요사에서 그럼 누가 최고의 가수냐?ㅡ 얘기를 합니다만 큰 의미는 없겠지요. 세월따라 취향따라 틀리니까요
필자의 잣대로 본다면--- 여자 가수로는 이미자 인것 같고 남자 가수로는 남인수 나훈아 조용필 등을 꼽을수 있을텐데 -- 남인수를 택하고 싶네요 남녀 가수 통합 챔피온은 ---- 이미자로-- --아이쿠 괜한 소리 헀나요 비교할수 없는것을---
필자는 60년대 중반 라듸오 따라 노래 가사를 열심히 적던 실력으로 이글을 작성하였지만 우리 가요사에서 크게 이탈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80년대 부터는 관심이 부족하여 내용이 자세하지 못하고 또한 비교적 근세의 가요사 인지라 줄이기로 하였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