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 감문국의 도읍이 지금의 동부 1리에 있었고,
신라시대 감문주 개령군이 설치되었던 이곳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교동으로도 불리우는데
이곳 감문산 동쪽기슭에는 서기 435년 눌지왕 3년 아도화상이
산의 기가 너무 세 산세를 진압하기 위하여 창건한
계림사가 있는데 이 계림사가 있는 일대를 감문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감문산 일대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무덤이 한 곳도 없는데
예전에 어느 한 사람이 이곳에 몰래 무덤을 쓰자
지금의 개령 파출소 앞 쌍샘의 물이 변하여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산 일대를 조사하던 중 무덤을 발견하고 이를 이장했다고 한다.
그후 사찰 주위에 묘를 쓰면 부정을 타서 쌍샘이 변하고
민심이 흉흉해진다고 하여 무덤을 만드는 것을 금하고
서로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쌍샘물을 이용하여
이곳 주민들이 빨래를 하고 농업에 이용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2012 년 9월 18일 화요일
월요일 태풍 "산바" 지난 후 다음날 9 시에 출발해서 현내천 냇가 둑이 터져
물에 잠긴 빗냇들을 바라 보면서
12 시쯤 정상에 갔다가 도자기 파편 몇개 찾아
집에 오후 4 시쯤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