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론〕(25)
제25강 서술과 묘사(1)
김 문 홍
앞에서 얘기했듯이 한 편의 동화와 소설은 서술과 묘사, 그리고 대화로 이루어진다. 어떤 작품이던지 서술 하나만으로, 혹은 묘사 하나만으로, 그리고 대화 하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실험적인 양식으로 이것들 중 어느 것 하나만으로 작품을 구성할 수는 있을 것이다.
동화와 소설의 문장을 구성하는 두 요소는 서술과 묘사이다. 서술은 인물의 움직임이나 사건이나 상황을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설명하는 것을 말하고, 묘사는 자연의 모습이나 상황을 스케치하듯이 적절한 비유법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서술과 묘사는 나름대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술은 시간의 비약이나 사건의 진전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 속도감이 있는 반면에, 묘사는 인물의 내면적인 심리의 움직임이나 상황을 빗대어 표현하기 때문에 문학적인 표현의 장점은 있지만 속도감보다는 정체된다는 느낌을 주는 단점이 있다. 어떤 때는 서술을, 또 어떤 때는 묘사하는 등, 이 둘을 적절하게 뒤섞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대화를 삽입함으로써 한 편의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①
“맛있어?”
동생이 허겁지겁 탕수육을 입에 넣으며 왼손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린다. 형은 자장면을 집어 올리던 젓가락질도 멈춘 채 한참을 동생 모습만 보고 있다.
형은 엄마가 원망스럽다. 곧 돌아오겠다는 쪽지 한 장 남겨두고 집을 나간 게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휴대전화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형, 내 생일 때도 엄마한테 여기 오자고 하자.”
어느새 동생은 탕수육을 거의 다 먹어간다.
“네 생일 때는 더 좋은데 가야지.”
형은 짐짓 큰소리를 친다. 형은 엄마가 동생 생일 때엔 틀림없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동생에게도 엄마가 그렇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자, 형도 먹어.”
동생이 남은 탕수육을 형에게 밀어준다. 정신없이 먹더니,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난 어제 많이 먹었어. 너 다 먹어.”
형이 다시 동생에게 탕수육을 밀어준다.
- 임근희,「공짜 뷔페」
②
바람이 또 거세진다. 왕버드나무 가지에 색실 하나가 걸렸다 날아간다. 다 찢어진 검은 비닐봉지도 하나 날아와 걸린다. (1) 오늘밤엔 아무래도 눈보라가 거셀 것 같다 .어두워진 마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 더 굵어지더니 바람까지 거세지고 눈보라가 된다. 나이테 안까지 파고드는 추위 때문에 왕버드나무는 자꾸 온몸을 떤다. (2)낮에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생채기가 난 가지에 쌓인 눈이 쓰라리기만 하다. (3)왕버드나무는 그럴수록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해본다. (4)올해 겨울을 잘 나야 내년 봄에 잎을 틔우고 새도 불러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감은 두 눈 가득 햇살 한창인 어느 봄날을 떠올려본다. (5)그렇게 귀찮던 새들의 재잘거림. 새잎만 틔울 수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자꾸 꿈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린다. 뽀시락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푸드덕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누구야?”
왕버드나무가 소리를 꽥 지른다.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검은 비닐봉지가 슬그머니 대답한다.
- 문지원,「왕버드나무의 소원」
③
벌써 해가 기울어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이다. 밤이 되니 바람이 제법 심하게 불기 시작한다. (1)눈발이 날벌레처럼 살아 꿈틀거리며 날아든다.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2)사박, 사박 눈 밟히는 소리만 이따금 고요를 휘저을 뿐이다. 고개를 넘어서니 저 아래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3)집집마다 따스한 불빛을 흘리며 어둠 속에 도란도란 잠겨 있다.
마을로 들어서자 어머니가 소년과 외삼촌을 뒤로 불러 세우며 속삭인다.
- 김문홍,「아버지와 함께 걷는 눈길」
위 인용문 ①은 대화를 제외한 거의 모든 표현이 서술로만 일관되어 있기 때문에 인물의 행동과 움직임이 적절한 템포와 리듬으로 앞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생이 탕수육을 먹는 모습과 형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이 하나의 운동감을 형성하며 앞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리듬감을 주고 있다. 그리고 두 형제의 엄마가 집을 나간 지가 한 달이 다 되어 가며 휴대폰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건의 상황을 서술의 표현을 통해 독자에게 인지시켜 주고 있다.
인용문 ②의 첫 번째 단락에서는 (1)부터 (5) 까지를 제외한 모든 문장은 모두가 묘사로 되어 있다. 이러한 묘사들은 현상과 상황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지만, 사건이 앞으로 진전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왕버드나무가 거센 바람과 눈보라에 의해 추위와 외로움을 타는 모습을 비유법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서술적인 표현에 의해 사건과 상황이 앞으로 진전되는 느낌을 주다가도, 다시 묘사적인 문장이 군데 군데에 삽입됨으로써 정체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인용문 ③은 (1)부터 (3)은 묘사이고 나머지는 서술이다. 이 작품은 서술과 묘사가 적절하게 뒤섞여 있어 속도감과 정체감이 교체되어 변화감을 주고 있다. 거기다가 서술 종결형어미를 ‘...다’라는 현재형으로 표현함으로써 속도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용문 ②의 첫 번째 단락을 다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바람이 또 거세진다. 왕버드나무 가지에 색실 하나가 걸렸다 날아간다. 다 찢어진 검은 비닐봉지도 하나 날아와 걸린다. (1) 오늘밤엔 아무래도 눈보라가 거셀 것 같다 .어두워진 마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 더 굵어지더니 바람까지 거세지고 눈보라가 된다. 나이테 안까지 파고드는 추위 때문에 왕버드나무는 자꾸 온몸을 떤다. (2)낮에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생채기가 난 가지에 쌓인 눈이 쓰라리기만 하다. (3)왕버드나무는 그럴수록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해본다. (4)올해 겨울을 잘 나야 내년 봄에 잎을 틔우고 새도 불러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감은 두 눈 가득 햇살 한창인 어느 봄날을 떠올려본다. (5)그렇게 귀찮던 새들의 재잘거림. 새잎만 틔울 수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1)부터 (5)까지의 다섯 문장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문장이 묘사로 일관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묘사적인 문장의 표현을 독자들이 어떻게 수용하느냐이다. 동화와 아동소설의 일차적 독자를 어린이로 상정할 때,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속도감에 길들여져 있는 ‘지금 이곳’의 어린이들이 정체된 느낌을 주는 묘사적인 비유의 문장을 과연 순순히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다. 타인의 말을 잠시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지 못하는 요즈음의 아이들이 이렇게 조갑증 나는 묘사적인 문장을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과연 요즈음의 아이들이 이러한 비유법의 묘사적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열어 감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작가 자신은 그러한 묘사적 표현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일 줄 몰라도 지극히 문학적인 감수성을 지닌 몇몇 아이들 이외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읽고 있던 동화집이나 소설집을 소리 나게 덮어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동화를 쓰는 모든 작가들은 자신이 쓰고 있는 작품에서 묘사적 문장이 들어가지 않으면 뭔가 작품의 문학성이 감소되지나 않을까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