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일 일요일, 옆지기 동문들과
경주 남산 산행 겸 유적답사를 갔습니다.
서남산주자창에 9시 40분에 도착합니다.
삼릉쪽으로 올라 갑니다. 출발 시간은 9시 45분!
3시간 코스로 가는데 시간이 어떻게 될지는....
산행 안내를 맡으신 분의 말씀으로는
오늘 우리가 걷는 이 코스가
가장 많은 유적과 불상들을 만날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있는
핵심 코스라고 합니다. 기대를 하며 오릅니다.
다들 잘 익어 맛나 보이는 저 사과 사고싶어 했는데....
올라가는 길이라 그냥 통과합니다.
남산에는 소나무가 모두 이렇게 굽은 나무만 있다고 합니다.
보기에도 그렇지요.
이유는 곧은 나무는 모두 한옥 짓는 데 사용되었고 쓸모없는 굽은 나무만....
보기는 좋네요.
우리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라는 말도 있지요.
삼릉입니다. 설명은 아래 도움말을 보시고....
능(陵)은 왕족의 무덤을 말합니다.
이런 소나무길을 보면서
나무 데크로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옆지기는 오늘 10-22mm 광각렌즈만 들고 왔는데...
카메라가 오래된 것인지 렌즈가 때때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네요.ㅎㅎ
은혼기념으로 제가 카메라 본체 바꾸는 데 500만원 보태겠다고 하는 데도
쓸 수 있는 데까지 쓴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참 야무지기도 하지요~~ㅋㅋㅋ
나무 테크가 끝나고 이젠 돌길이 나옵니다.
상선암까지는 약 1.6키로.... 무난하게 올라갈 듯....
이름없는 머리없는 불상입니다.
경주국립박물관 뒤뜰에 가면 남산 출토의 이런 불상이 참 많습니다.
정말 남산은 불교 유적의 보고(寶庫)이고
신라 불교의 성역지란 말을 실감하게 합니다.
삼릉 석조여래좌상, 설명은 아래에...
옷의 주름과 매듭의 특이한 선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 불상은 불두가 남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 줍니다.
일제시대에 이렇게 철저하게 불상들의 머리를 자르고
계곡에 쳐 박는 종교유린을 한 것일까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서~~ㅠㅠ
삼릉 마애관음보살,
입술에 자연의 붉은 색이 아직 조금 남아 있습니다.
천 년의 세월을 두고 비바람에 씻기면서도 마모되면서도 남아 있는
이 색과 선들이 참 놀라울 뿐입니다.
선으로 부조하였다하여 선각육존불....
선으로 새긴 좀은 독특하네요.
그러나 위 마애관음보살의 양각이 보기는 훨씬 좋은 듯합니다.
바위 위의 사람들이 서 있는 쪽으로 올라가 보니,
바위를 가로질러 빗물이 흘러갈 수 있는 수로를 파 놓았더군요.
그리고 이 선각육존불을 보호하는 보호각을 덧댄 흔적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 선으로 만든 부처들조차 천 년의 세월을 두고
흔적이 남아있었던 것이지요.
올라갈수록 신라인들의 불심과 최선을 다 하는 마음들이
놀랍고도 경이로웠습니다.
기어 오르는 듯한 형상의 자라 바위입니다.
금오봉(金鰲峰)이란 뜻이 '금빛 자라'란 뜻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가 이곳에서 쓰여져
지명을 따서 책의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자라가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영락없습니다.ㅎㅎ
삼릉 선각여래좌상,
얼굴만 양각하고, 나머지는 선으로 새겨놓은,
시간이 없어 급조한 듯한 느낌을 주는,
혹은 재미삼아 새긴 듯한 좀 이상한 불상입니다.
이제 멀리 경주평야가 보이네요.
삼릉 석불좌상입니다.
얼굴 부분과 광배의 일부분을 성형한 흔적이 보이지요?
그래도 보물입니다.ㅎㅎ
제법 떨어져 나와서 보니 느낌이 또 다릅니다.
이날은 정말 엄청난 관람객들과 남산의 문화유산 해설사들이
거의 총동원되다시피 북적거려서
한적한 느낌으로 이리 보고 저리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언제 또 한번 평일에 시간 나는 여인들끼리
한가롭게 하루를 돌아보는 날을 잡아봐야겠습니다.
이제 상선암에 거의 다 왔습니다.
조그만 암자인 상선암 주변에도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잠시 법당 참배하는 데도 사람의 숲을 헤치고 가야 할 정도였답니다.
이 날의 상선암은 그야말로 장날의 시장 한복판 같았습니다.
겨우 법당 참배하고 나와서, 법당 뒤의 돌길로 또 올라갑니다.
상선암에서 봉사하시는 분 같았는데
등산객에게 콩고물 묻힌 찰떡을 하나씩 돌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출출하던 차에, 참 요긴하게 하나 얻어 먹고
마음으로 축원하며 올라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축원이 모여 소망하는 바가 꼭 이루어졌지 싶습니다.
상선암 좁은 마당에 사람들 좀 보세요~~
남산은 정말 평일날 와야할 듯합니다.
남산에 오르는 코스가 7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예전 답사 한창 다닐 때 남산의 탑곡에 갔다가
황룡사지탑의 축소판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던 기억이 살아납니다.
남산은 어느 코스로 가더라도, 늘 이렇게 놀랄 만한 것들이 가득한
신라 천년 불교 문화의 집산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정상에 다 왔나 봅니다.
멀리 잡아 본 상선암 마애불입니다.
훼손이 심하기도 하고, 위험한 지역이라 출입 금지를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출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네요....
지킬 것은 지켜줘야 하는데....
우리 부부도 멀리 뒷배경을 하고 찍어 봅니다.
단풍과 어우러진 상선암 지붕이 보입니다.
금오봉 정상에 왔습니다.
탁 트인 조망에 다들 카메라에 휴대폰에... 바쁩니다.ㅋㅋ
점심은 예약을 해둔 관계로 간식만 먹습니다.
준비한 용호동 오돌족발, 요거 은근 맛있습니다.
도토리묵도 보이고, 과일이랑 오징어무침도 먹었는데....
옆지기 울산 사는 친구가 늘 들고오는 고래고기...
남정네들 벌떼처럼 달려들어 순식간에 없어지더군요.ㅋㅋㅋ
저 도시락 하나에 10만원이라는군요.
오돌족발 맛있게 보이죠?
돼지 오돌뼈 부분을 족발처럼 삶은 것인데
쫀득하고 오돌오돌한 게 참 맛있었어요.
상사바위 뒤편입니다.
금오산 정상석입니다.
'오'자가 자라라고 이야기했었지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우한 천재 -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의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중도 속인도 아닌 미친 사람처럼 떠돌다가
말년에는 경주 금오산(지금의 남산)에 은거하여
<금오신화>를 집필하였다고 하네요.
금오신화는 원래 몇 편인지는 잘 모르지만,
현전 5편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는 소설집입니다.
통일전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거의 임도 수준입니다만
우린 용장으로 내려가기로 했기에....
일단 용장사지를 들러 봅니다.
여기 용장사에서 김시습이 기거했다고 합니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입니다.
옥계석을 보니 3층이네요. 상륜부가 없기에 보물이 되었지만,
상륜부가 온전했다면, 당연 국보급인데....
정말 중요한 사실은, 이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남산 전체를 기단석으로 삼아, 남산의 한가운데
가장 강한 기를 받으며 서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기단석을 가진 단 하나의 석탑이란 것입니다.
진입로가 좀 외진 곳에 있는 탓인지
아까 상선암쪽의 그 엄청난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우리 일행들만 독점해서 감상했습니다.
저도 탑을 만져 보기도 하고, 탑돌이도 하면서
경주 남산 불교 성역지의 가장 핵심적인 강한 기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탑에 귀를 붙이고 서서, 오래 전 신라인들이 소리와 기원을
공감해보려고도 했습니다.
천 년의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누군가 탑귀퉁이에서 걸어나올 것도 같았습니다.
석탑쪽을 향해 내려가는 길의 우측 돌에 새겨진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이것도 보물인데
탑만 보고 내려가기 바빠서 자칫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8세기 후반의 마애불로 추정하는 데, 선이 뚜렷하고 아름답습니다.
마애불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륜'은 바퀴라는 뜻이고 흔히 법륜(法輪), 즉
세계를 교화하는 전륜성왕의 수레 -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기 위해 세상을 내려다보며 앉아 계신 불상의 머리를
어느 잔혹한 손이 저렇게 잘라버렸을까요?ㅠㅠ
원형의 좌대를 보니, 문득 화순 운주사 생각이 납니다.
뒷면의 모습입니다.
용장사지의 모습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용장사지터는 아마도 남산의 심장에 해당하지 싶습니다.
남산의 심장을 보지 않고는 남산에 다녀왔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용장마을로 내려갑니다.
암석이 많은 돌길을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이 길 역시 우리 일행 말고는 별로 사람이 없었답니다.
멀리서 잡아본 용장사지 3층석탑,
여기까지 내려올 동안 약간의 유격훈련도 하며 조심스레 왔어요.
이제는 편안한 오솔길입니다.
설잠교 나오면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잠(雪岑)은 매월당의 법명이랍니다. 설잠스님 매월당~
매월당이 얼마나 천재였는지는, 아주 옛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습니다.
5살 때, 세종대왕 앞에 나가서, 한시를 지어 바쳤는데
하도 잘 쓴 까닭에 세종대왕이 기특해서 상을 내립니다.
비단 50필을 내리며 하시는 말씀~!
"너 혼자 힘으로 이것을 가지고 가거라."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린 김시습이 비단을 모두 풀어 끝과 끝을 매듭지은 다음
마지막 한 끝을 자신의 허리에 매어 걸어나가더라는 것이지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들의 삶은 항상
사람의 마음에 짜안한 여운을 남깁니다.
칠삭동이로 태어났지만, 계유정란을 기획하고, 세조의 장자방이 되어
평생 두 딸을 왕비로 바치고, 자신은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오른
한명회와는 같은 스승 밑에 동문수학한 사이였지만,
서로 선택한 길이 다른 두 사람이었습니다.
남여를 타고 등청하는 한명회 앞에, 똥바가지를 퍼부으며
욕을 하기도 했던 유일한 친구였지요.
가치 기준이 달라, 서로 극과 극의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을
후대의 역사가들은 어떤 관점으로 볼까요?
생각에 잠겨 고즈넉한 숲길을 내려오다 보니, 다 왔습니다.
드디어 용장주차장에 도착합니다.(오후 2시경)
간식 먹고왔지만 4시간이 넘게 걸었습니다.
워낙에 볼거리가 많아서 사진을 찍고 감상을 한다고
걷는 시간에 비해 산행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보고 왔습니다.
보문에서 보리밥 정식으로 유명한 '토함혜'에 점심 먹으러 갑니다.
제일 비싼 것 1인당 18,000원짜리를 단체라고 하여 15,000원에 주문해 두었습니다.
전체 4인상입니다.
이 청국장은 참 맛이 괜찮았지만, 나머지는 가격에 비해 좀 별로였어요.
진짜 꽁보리밥이라 저는 쌀밥으로 바꿔 먹었습니다.
보리는 이상하게 소화가 잘 안 되고 싫더라구요.ㅎㅎ
요건 안주용으로 나온 매운 갈비찜... 그냥 갈비찜 맛입니다~
그리곤 부산으로 그냥 갈 수 없잖아요!
보문까지 왔는데, 감포로 넘어갑니다.
가다보면 나오는 감은사지, 그리고 감은사탑 2개
처음 이 탑을 보았을 때 그 감동이란....
익산의 미륵사지탑을 석양 무렵 처음 만났을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나는 감격을 느꼈다면,
이 감은사지탑은 한마디로 탄성이 우러나오던 탑입니다.
그때는 너무나 조용한 곳이었고, 주위에 조그만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그 감동으로 그 가게에서 호박전 하나 시켜서 먹었는데,
천 원짜리 호박전 하나 한다고 모녀가 한참을 숟가락으로 호박을 긁어
아주 크고 두툼하게 구워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너무 싼 값이라 돈을 지불하기가 미안하다고 하니
"있는 것으로 구워주는데...좀 크게 해 줘야지요..." 했던 가게 주인의 말도 기억에 납니다.
예보했던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 감은사지탑은 찍을 것도 많고,
바로 앞이 지금은 논이 되어있지만 그 옛날 신라시대에는 바다였다고 합니다.
대왕암에서 여기까지 통하는 바닷물이 흘러다녔다고 하는 데...
보고 또 보아도 장엄하고 귀품있는 탑입니다.
아무튼 사진 말고 가서 꼭 한번 느껴보세요!
그렇게 비 속으로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남산의 구석구석 보물 같은 유적과 기묘한 색상의 단풍과
마지막 가을 비까지 맞으면서
그리고 함께 있어서 더 좋은 사람들이랑,
늘 함께 할 옆지기와 더불어 눈이 호강하고, 마음이 행복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