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에도 트렌드가 있다
정현철 민주노동자시흥연대 의장
92.2%.
반월시화공단의 50인 미만 사업장 비율이다. 2015년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조사한 국가산업단지입주기업체 전수조사 결과다.
외주화와 자동화, 위장 사내하도급의 영향으로 사업체 규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거기에 비정규직 비율은 40%가 넘는다. 반월시화공단의 규모있는 제조업사업장은 계약직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최근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과을’의 싸움이 비단 편의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대기업이 무재고·직서열 방식을 선호하면서 제조업 하청업체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거기에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 속에 중소협력업체 사업주들은 인건비 따먹기 식 경영에 매몰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을들의 싸움이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사업장 규모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활동가들의 바램과는 달리 50인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노조에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 불만은 있을지언정 그것을 해소하는 창구가 노조는 아니라는 뜻이다. 회사의 지불능력은 뻔하고, 사장과 나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그림의 떡이다.
사업장 규모도 작고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에게 ”노조하자“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까.
시화노동정책연구소가 2016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3이상의 노동자들이 노조가 불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노조 불필요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노조가 있어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노조 미가입 사유중 압도적인 것이 ‘별로 이익이 안될 것 같아서’다.
이러한 결과는 무엇을 말하는가. 조직화의 측면에서 기존의 방식으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사업장별 조직화를 넘어서야 한다.
사업장을 넘어 지역으로! 이것이 새로운 조직화 모델이다. 전국에서 공단 노동자를 조직하려는 활동가들 사이에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실험과 논의가 진행중이다.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은 ‘개별 조합원’ 가입과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우선 노조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금의 노조는 ‘산별’노조라고는 하지만 무늬만 산별일 뿐, 내용적으로는 사업장의 틀안에 갇힌 기업별노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형태로는 사업장내의 비정규직도 해당 사업장의 (정규직)노조에 가입하기 힘든 구조다. 그래서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노조, 공단노조 형태의 노조가 필요하다. 금속노조에서는 ‘지역지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지회도 여전히 사업장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있어서 개별조합원을 중심으로한 조직활동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지역지회가 풀어야할 과제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노조는 사업장단위 지회보다는 지역지회로 편재하여 처음부터 지역과 함께하는 노조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개별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동기가 있어야 하며, 활동 내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노동시간단축, 안전한 일터 등의 의제는 소규모 사업장 단위에서는 풀기 어려운 과제지만, 지역적으로 목소리를 모아내면 이야기 할 수 있는 통로가 많다. 개별조합원들과 함께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풀어간다면 개별조합원들의 역할이 좀 더 분명히 보일 것이다. 사업장별 교섭을 넘어 지역사회로 확장된 교섭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노동운동에도 트렌드가 있다. 노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둔감하면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받는 노동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다. 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끝)